제국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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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용
작품등록일 :
2024.08.10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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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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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0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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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의 시대, 이납이 산동성에 제국을 건국하다

DUMMY

당나라 수도 장안성.


통금을 알리는 경고(警鼓)가 울리자 성 내 108개의 방(坊)과 동시(東市)와 서시(西市)의 문이 모두 닫히고 인적은 끊겼다.


멀리 개 짖는 소리만 간혹 들릴 뿐, 야심한 밤 사위가 고요하다.


“으흐음··· 이곳은 어떠하냐.”


“폐하, 그쪽이 아니옵니다. 여기, 여어기···.”


“으으음··· 여기 말이더냐?”


“아, 아읏, 바로 거, 거기 흡···.”



황성 대명궁(大明宮) 깊숙이 자리한 이괄의 침전.

남자의 침음 소리와 간드러지는 여인의 교성이 얽히고설켜 문창호를 뚫고 나와 침전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을 때였다.


다다다다다······


복도 한쪽 끝에서 들려오는 당직 환관 조윤의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침실 문 앞에서 급히 멈추었다.

조윤은 문 앞에 이르러서야 침실 내의 적나라하고 야릇한 분위기를 간파하고 얼굴을 붉히며 침실 시중 시녀를 곁눈으로 쳐다보았다.

시녀는 조윤의 날선 눈을 보고도 감히 그의 방문을 고하지 못했다.


그러나 급보를 손에 쥔 조윤은 보고를 지체했다가는 목이 달아날 판이라, 묵직하게 언질했다.


“뭘 꾸물거리시나, 폐하께 급히 고하시게!”


“들으시다시피, 지금 침실 안 사정이······, 고했다가는 경을 칠 분위기라서요.”


“고하지 않으면, 경이 아니라 머리통이 바닥에 뒹굴 거네! 어서 고하게.”


“······.”


“쓰읍, 어서!! 촌각(寸刻)을 다투는 일이라는데도!”


시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문 쪽으로 몸을 돌려 조윤의 방문 사실을 고했다.


“폐하! 오늘 금직(禁直)인 환관 조윤이 뵙기를 청하옵니다.”


시녀의 보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지던 교성과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한참 만에야 잠잠해지더니, 짜증 섞인 황제 이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뭐냐! 이제부터 좀 더 심도 있게 진행하려는 순간에! 네년은 매번 분위기에는 까막눈이야! 그래서야 그 보직 유지하겠느냐?”


“황송합니다! 워낙 급한 일이라고 독촉하기에···.”


“되었다, 되었어! 그래, 경을 칠 놈! 조윤은 고하라. 뭔 일이기에 호들갑이냐?”


조윤은 닫힌 침실문 앞에 부복한 채 보고했다.


“폐하! 반란의 급보입니다.”


“뭐, 무어라!! 반란이라 했느냐?”


아직도 운우지정(雲雨之情)의 몽롱한 기운에 젖어 있던 이괄은 화들짝 놀라 상반신을 벌떡 일으켰다. 그 참에 품고 있던 여인의 뽀얀 알몸 상반신도 드러났다.


“아니! 군사요충지인 변주(汴州)는 이희열에게 빼앗기고, 복양(濮陽)도 이납에게 뺏긴 지 채 넉 달도 지나지 않았건만, 이제는 반란이라니!”


“선무절도사 유흡 장군이 급파한 전령에 따르면, 하남과 하북에서 일어났다 합니다.


“무어라! 하남과 하북에서? 도대체 몇 곳이란 말이냐?”


“하남의 평로번진과 하북의 노룡, 성덕, 위박번진(藩鎭)의 절도사(節度使)들이 작당해 각각 자신들을 왕이라 칭하며 번진국(藩鎭國)을 세웠다고 합니다.”


“으아아아아!! 상대해야 할 상대가 네 곳이나 한꺼번에 생기다니. 이놈 조윤아! 꾸물대지 말고 어서 상세히 고하거라.”


“올 정월 초하루에 함께 하늘에 제를 올리고 평로의 이납은 제(齊), 노룡의 주도는 대기(大冀), 성덕의 왕무준은 조(趙), 위박의 전열은 위(魏)라 일컫는 4왕국(王國)을 세우고 자신들을 왕이라 칭했다고 합니다.”


“아니, 이것들이 지금을 무슨 춘추전국 시대로 아나! 아직도 대당이 건재하건만, 사진의 난(四鎭之亂)이라니.”


상반신을 드러낸 채 교태로운 자세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여인에 대해, 여전히 미련이 남은 듯 아쉬운 눈길을 준 후, 침상을 벗어난 이괄은 신음을 내뱉듯 중얼거렸다.


“으으······ 요동 강국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대제국을 건설했던 대당이 안녹산의 난으로 그 기운이 쇠약해지고 있구나! 절도사 놈들이 저렇게 날뛰고 있으니, 물장즉로(物壯則老)라 했던가!


“근데, 네 이놈, 조윤아?”


“예, 황상 폐하.”


“그놈들이 지금 장안을 향하고 있다 했더냐?”


“아니, 그렇지는 않사옵고···.”


“그런데 왠 호들갑이냐!”


“······.”


“대신들도 모두 퇴근했고, 지금 내게 알려 봤자 별다른 방책도 없는데.”


“······.”


“어짜피 날 무시하고, 세금도 안내고, 군사도 맘대로 징발하고 여태껏 자기들 맘대로 해 먹고 있던 땅덩어리를 이름만 절도사에서 제왕으로 바꿨을 뿐인데. 웬 호들갑이냐? 지금까지도 저희들 동네에서 축소판 황제가 아니었더냐!


“그거야···. 황송하옵니다.”


“그럼 방책이라도 가져왔느냐?”


“방책이라 하옵시면···.”


“반란의 소식을 가져왔으면, 방책을 세울 대신이나, 환관 두목이라도 함께 끌고 와야지! 이 야심한 밤에 너만 달랑 와서 내게 보고하면, 나 보고 어쩌란 말이냐? 이런 경을 칠 놈!”


“······.”


”쯧쯧.“


하기야, 황제의 말대로 어차피 그 자들은 지금껏 장안을 무시하고 자기 번진에서 여태껏 왕 아닌 왕 노릇(을) 해 오지 않았던가?

이러고 보니 황제의 좋은 분위기만 깨뜨린 저에게 경을 칠까 두려워, 조윤은 안절부절못했다.


다행히 이괄은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조윤을 물렸다.


“한심한 놈, 당장 물러가라.”


“예이.”



*****



다음날 새벽, 대명궁 선정전에는 조정 중신들로 시끄러웠다.

선정정 좌우에 위치한 문하성과 중서성으로 출근한 장관과 중신들이 이괄의 닦달로 이른 아침부터 선정전으로 몽땅 집합한 것이다.


“이납! 그자는 지난해 죽은 평로절도사(平盧節度使) 이정기의 아들 아닌가? 그자부터 어떻게 조치해야 할지 계책을 내놓으란 말이다!”


좌우로 도열한 중신들에게 일갈하는 이괄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선정전 전각(殿閣)의 넓은 마루를 쳤다.


779년 9대 황제에 오른 이괄은 이정기와 깊은 악연이 있어 그의 이름 석자만 들어도 얼굴이 붉어지며 짜증이 솟구쳤다.


자기가 황제 자리에 취임하자마자 이정기는 기다렸다는 듯 대운하의 중간 지점인 서주의 용교와 와구를 점령해 장안과 낙양(洛阳)의 물자보급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급기야 781년 8월이 되자 낙양의 코앞, 조주(曹州)의 제음(濟陰) 벌판에서 정병 10만으로 실력행사를 하며 동도(東都)의 낙양을 넘보았던 것이다.


그때 이괄은 황실 이름으로 번진들을 겁박해 긁어모을 수 있는 모든 병력을 탈탈 털어 모아 급히 낙양을 방어하라고 내보냈다. 그야말로 오합지졸들. 뻔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전투가 있기 전 그가 갑자기 죽었기에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다. 낙양은 물론 장안마저 그자에게 넘어갈 뻔했으니.


그때를 생각하자, 이괄은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지금 이정기의 아들 이납이 떡 하니 제국(帝國)이라는 나라마저 세워 또다시 자신을 겁박하려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 이정기가 통치했던 땅 하남도(河南道)에서.


이정기와 이납! 이들 부자의 이름을 떠올리자 이괄은 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들 부자가 대를 이어 나를 겁박하는구나.


“폐하, 고정하십시오. 황송하게도 안사의 난 이후 황실의 중앙군은 허약해져 당장은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재상 노기였다.


황제의 분노의 불똥이라도 튈세라 그는 고작 한 줄의 말에도 몇 번이나 허리를 굽신거렸다.


“뭐라! 대적할 군대가 없다고? 지난해 이정기가 낙양을 노린 적 있다. 낙양 다음은 어디였겠나? 이곳 장안이지 않았겠는가!?”


대신들은 감히 아무도 대꾸하려 들지 않았다.


“이제 그 아들 이납은 나라까지 세웠으니, 그자의 목적 또한 장안이 분명하다. 그런데 조정의 군사 준비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단 말이더냐?”


이괄의 당장 걱정이 장안의 안위라는 것을 눈치챈 노기는 곧바로 이괄이 안심할 만한 말을 늘어놓았다.


“폐하, 당분간 장안의 안위는 염려 마십시오. 그자들은 이제 왕국을 선포했으니, 왕권을 공고히 하느라 당장은 이곳을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연합하여 황실에 대항할 수 있다고는 하나 자기들끼리 서로 견제하는 마음이 있을 테니, 누가 앞서 쉽게 군사를 움직이지는 못할 것입니다.”


“오, 그래? 그대의 말을 들으니 조금은 안심이 되는군. 장안은 그렇다 치고! 그자들이 내 땅의 동쪽을 사이좋게 나눠 가지는 꼴을 어찌 보고만 있으란 말이냐?”


“폐하, 번진들 중 평로번진 이납 군(軍)의 무력이 가장 높고 굳세니, 평로만 치면 나머지 세 번진은 스스로 항복할 것입니다. 이납이 왕권을 강화하기 전에 미리 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어, 그것 좋은 생각이다. 그럼, 누구로 하여 이납을 치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


“회서절도사(淮西節度使) 이희열의 무력이 굳세고 강하니, 충분히 이납을 대적할 수 있습니다.”


“오호, 좋은 생각! 재상 노기의 계책에는 흐트러짐이 없구나!”


이괄은 노기를 칭찬한 후 안진경을 보았다.


“태자태사(太子太師) 안노공(顔魯公)의 생각은 어떤가? 오늘 일이 다급하고 중하여 그대의 지략과 경험을 얻고자 특별히 중신 회의에 불렀네.”


“노신을 아직도 쓸모 있다고 불러주시니 황공합니다.”


“전후사정(前後事情)은 이미 알고 있을 터, 그대의 계책은 무엇인가? 말해보라!”


“반간계(反閒計)와 이이제이(以夷制夷)입니다.”


“으음, 서로를 이간시켜 번진국으로 번진국을 치게 한다. 상세히 말해보라!”


“폐하, 아뢰옵기 송구하나, 안사의 난 이후 대당의 중앙군은 허약해져 이름뿐이고, 재정 여건으로 보아 당장은 재건이 난망(難望)한 상태입니다. 반면에 난을 평정하는 과정에 지방 번진들의 무력만 강성해졌습니다.”


“으으음. 계책을 내놓으랬더니, 안노공은 어째 황실 욕만 하는 것 같네 그려.”


안진경은 황제의 노여움을 살까 더욱 늙은 척 허리를 구부정하게 말았다.

그러나 황제도 안다. 안노공의 말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임을.

자존심이 상한 이괄은 숨기지 못하고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황제를 그런 표정을 보면서도 안진경은 허리를 곱등이처럼 말고서 말을 이었다.


“폐하, 지금 황실이 온전한 것은 황실 자체의 무력보다는 지방 절도사들 간의 무력 균형 때문입니다. 즉 누구도 이 균형을 깨고 장안을 차지하길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흐음, 그건 그렇지.”


“그러니 폐하, 황실에서 그들의 지위를 인정해 주는 척하면서 시간을 끌어 그들끼리 골을 세우게 만들어 보십시오.”


“그러니까 공은, 황실에서 쪼잔하게 그들을 이간질시키란 말이냐.”


“흐흐, 이간질이랄 것까지야. 그저 조금 금만 가게 해놓으면, 결국 서로 싸우게 될 것입니다. 그 이후에 친황실 번진들로 하여금 군사를 동원해 치면 손쉽게 제압할 수 있지 않겠습니다.”


“흐음, 그것이 좋은 계책이긴 하나, 그러기엔 시간이 걸리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폐하. 대의명분 없이 연합한 무리는 시간이 지나면 금이 가게 마련이고, 그동안 조정은 중앙군을 정비하면 됩니다. 그래서 이것이 상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 재상이 내놓은 이희열로 이납을 치게 하는 계책은 어떤가? 해결은 빠를 텐데!”


“노 재상의 계책은 당장의 해결책으로는 좋아 보이나, 우려되는 바가 두 가지 있습니다.”


“우려되는 바라. 말해 보라.”


“예, 폐하. 이납의 평로 번진은 그 뿌리가 고구려계라 무력이나 기질이 대단하여 번진들 중 최강입니다. 그러므로 주변의 약한 번진부터 취하면서, 평로를 고립시킨 후, 마지막에 도모하는 것이 승산이 있습니다.


노기와는 다른 의견이군.


“두 번째 우려는 무엇인가?”


“회서절도사 이희열마저 반란군 쪽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어라! 이희열이 반란군 쪽에 붙는다!?”


이괄은 화들짝 놀랐다.


“예, 폐하. 이납과 이희열의 군대는 당금(當今) 대당 번진들 중 가장 강합니다. 이희열을 내보냈다가 만약 이 둘이 결탁해 버린다면, 번진들의 무력 균형이 깨지면서 장안의 안위가 위태로운 지경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옆에서 가늘게 눈을 뜨고 안진경의 말을 고분히 듣고 있던 노기는, 안진경이 자기 계책의 오류(誤謬)를 황제 앞에서 콕 집어내자 난처했다.


젠장, 늙은이를 산 송장이라서 그대로 두었더니, 아무래도 처치해 버리는 게······.


그때 이괄이 노기를 향해 말했다.


“노 재상의 생각은 어떠한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납과 이희열의 결탁을 막을 방도가 있겠는가?”


노기는 장담하듯 당당하게 크게 소리쳤다.


“폐하, 이희열에게 토벌에 앞서 높은 벼슬을 내려 주시면, 그는 반드시 폐하에게 성심을 다하고 이납을 토벌할 것입니다.”


노기의 젊고 우렁찬 말을 들은 이괄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비천용입니다. 제국의 검은 대체역사와 무협을 퓨전하여 제국의 검객들이 중원에서 펼치는 무용담입니다. 이 글이 독자님들께 즐거움을 주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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