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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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용
작품등록일 :
2024.08.10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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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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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영의 살육

DUMMY

“장군! 사도 왕이 파견한 감군 진무 장군과 그의 호위병을 주살했다는 기별이 왔습니다.”


“음!”


유오의 심복 부장 진창묵이 연무장 한쪽에 임시로 세워진 대형 군막을 응시하고 서 있다가 부관의 보고를 받고 침음성을 내뱉었다.


통 굵은 목소리들이 왁자지껄 연무장을 채웠다. 만찬이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전날 만찬에 초대받지 못한 고구려계 장군급 지휘관과 소장급 이상 지휘관들을 위한 만찬이었다.


모처럼의 위무(慰撫)로 인해 유오 대총관을 칭송하는 목소리들이 군막 밖으로 퍼져 나왔다.


“유오 장군께 감사드리자.”

“유 대총관 만세!”


진창묵의 눈꼬리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살기!


그는 옆에 대기하고 선 부관을 돌아보며 조용히 짧게 명했다.


“시작하라.”


곧이어 은밀히 군막을 빙 둘러 포위하고 있던 유오의 무장 근위병들이 출입구 휘장을 확 제치며 군막 내로 진입했다.


검(劍), 도(刀), 도끼, 갈고리. 그들의 손은 좁은 공간의 단병접전(短兵接戰)에 필요한 살상용 무기들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갑작스런 이들의 등장에 취한 만찬병들은 한마디씩 횡설수설했다.


“너희들은 누구냐? 너희들도 초대받았느냐?”

“쪽수가 왜 이리 많아? 자리가 부족하잖아.”


갑자기 들이닥친 불청객들의 손에 쥔 무기가 의도하는 바를 눈치채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취해 있었다.


무장한 근위병들의 인솔자인 듯한 하급 군관은 차가운 목소리로 카랑카랑하게 말했다.


“우리가 누군지는 알 거 없다. 자리 양보도 할 필요 없다. 그냥 죽어랏.”


냉혹한 말을 끝내자마자 그는 손에 쥔 도끼를 아래로 휘둘러 바로 앞에 앉아있던 만찬병 한 명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크아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 만찬병의 상체와 머리는 음식이 쌓인 탁자 위로 고꾸라졌다.


술과 음식이 튕기며 만찬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를 신호로 다른 근위병들도 일제히 탁자에 앉아 있던 만찬병들을 겨냥해 손에 쥔 도끼와 갈고리를 휘둘렀다.


“웬 살수! 적이냐? 사헌정이 쳐들어··· 크윽!”“본군 사령부 소속 아니냐? 같은 편끼리 이럴 수가. 으아악!”


유오를 칭송하던 만찬장은 순식간에 비명과 칼부림이 난무하는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윽!

크으윽-

으아아아아악-

아아악-


갈고리에 목이 베인 자, 도끼에 머리가 쪼개진 자, 중검으로 가슴을 베인 자들의 신체 일부가 음식들과 뒤섞였고, 순식간에 땅바닥에 피가 고였다.


목숨이 붙은 자들은 검을 찾아 대응하려 했으나, 취한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몇몇은 살검(殺劍)을 피해 군막 밖으로 도망했으나, 대기하고 있던 궁수들의 화살이 그들의 숨통을 끊었다.


군막 안을 가득 채우던 목소리와 비명은 이내 잦아들었다.


군막의 바닥 군데군데 고인 시뻘건 핏물은 울퉁불퉁한 흙 표면이 만들어낸 얕은 고랑을 타고 군막 밖으로 흘러나왔다.


군막을 주시하고 있던 진창묵은 군막 내의 비명이 잠잠해지자, 뒷정리를 부관에게 맡기고 대총관 막사로 돌아왔다.



*****



“대총관, 부장 진창묵입니다.”


“들어오거라. 그래, 진무 장군은 어찌 되었는가?”


“진무 장군과 함께 온 호위 근위병 2명 모두 숙소 군막에서 주살되었습니다.”


“군영 내 고구려계 장수들은 어찌 되었느냐?”


“소장(少將) 이상의 지휘관급은 모두 주살되었습니다.”


“그들이 만찬에는 빠짐없이 왔던가?”


“대총관의 군령이 엄한데, 안 올 수 있겠습니까? 어제 부장급 만찬도 있었던지라, 아무 의심 없이 모두 참석했습니다.”


“모두 몇이나 되던가?”


“장군급 다섯 명, 소장급 스물다섯, 모두 서른 명입니다.”


“간부급에 고구려계가 그렇게나 많이 포진하고 있었던가!”


“예, 대총관. 간부직을 고구려계가 독식한다고 군영 내 병사들의 불만이 꽤 높았습니다.”


군대의 허리 역할을 하는 소장급을 대거 제거했으니 군영을 대부분 장악한 셈이다.


“진 부장, 밑엣것들은 염려하지 않아도 되겠지?”


“대총관. 그 점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목소리를 내어 병사들을 선동할 수 있는 자들이 소장급입니다. 그에 해당하는 고구려계를 모두 주살했으니, 대업을 방해할 자들은 사라졌습니다.”


“병사들이 소속 지휘관의 죽음을 눈치채지 않게 할 대책은 생각해 두었는가?”


“대총관 말씀대로 대책이 필요하긴 한데, 소장 머리로는 도통 방책이 떠오르질 않아서··· 혹시 묘책이 있으신지요?


“두 가지를 해야 한다. 하나는 신임 소장들을 즉시 임용해 주살된 자들의 공백을 채움과 동시에 대규모 보직 이동을 단행하는 것이다. 둘째는 군대 편재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진창묵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서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신임 소장 임명은 이해가 되지만, 보직 이동과 군대 편제는 잘 이해가··· 대총관께서는 어찌 그런 생각을 하시는지요?”


유오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잠시 진창묵을 응시하더니 짧게 설명해 주었다.


“보직 이동을 이동시켜 서로 위치를 바꿔놓으면 주살된 자들의 부하들은 자신의 상관이 다른 보직으로 가버렸다고 여겨 찾지 않을 것이다. 또 군대 편제를 통해 낮선 병사들끼리 서로 뒤섞어 놓으면 주살된 자들이 어디 있는지 모르게 될 것이다.”


진창묵은 그제서야 깨우쳤다는 듯 아아, 탄복의 시늉을 하며 답했다.


“예, 대총관! 탁월한 묘책이십니다. 전시 상황에서는 병부의 공문 없이도 군사령관이 소장급까지는 임명할 수 있으니 곧바로 시행하겠습니다.”


당장 명을 받들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던 진창묵은 엉거주춤 다시 앉으며 유오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대총관,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습니다. 다섯 명의 장관 자리와 스물다섯 자리나 되는 신임 소장 자리에 임용할 대상자들을 어떻게 선정해야 할지······.”


“장군 자리는 우리쪽 부장들로 하여금 직무대행을 시키면 될 것이다. 소장 자리는 바로 밑 직급인 교위(校尉)들을 승진 발령하면, 다들 좋아할 거야. 다만 승진 대상에는 고구려계를 포함해 친고구려계 성향의 요동 출신은 배제하도록 하라.”


“예, 알겠습니다. 인사 병무 담당에게 즉시 시행명령을 내리겠습니다.”


“진 부장! 그나저나 주살 과정에서 근위대 병사들의 동요는 없던가?”


“평소 고구려계 병사들에게 큰 불만이 있던 자들로 주살부대(誅殺部隊)를 꾸렸기 때문에 큰 동요는 없었습니다.”


“그거 다행이로군. 자네는 즉시 나가 신임 소장 임명과 보직 이동의 명을 수행하게.”


“예, 대총관!”


부장 진창묵이 나가자, 유오는 사령을 보내 작전사령부 부지휘관 육진홍을 불러오게 했다.


작전사령부의 군막은 대총관 군막에 근접해 있어서 육진홍은 이각이 채 안 되어 도착했다.


“대총관! 육진홍입니다.”


”들어오게“


유오는 땀을 훔치며 들어서는 육진홍에게 탁자의 맞은편 자리에 않도록 손짓한 후 찻잔에 차를 따랐다.


“이 엽차는 천모차(天目茶)라 불리지. 천모산(天目山)에서 나는 차로 미감이 시원하고 좋은 향이 오래가기 때문에 황실에서도 마시는 차라네. 내 출정할 때 특별히 준비해 왔지.”


“이런 귀한 차를 전쟁터에서 맛보다니, 잘 마시겠습니다. 대총관!”


평소답지 않은 유오의 태도에 육진홍은 안절부절못하며, 차를 급히 마시다 혀끝을 데일 뻔하면서도 너스레를 떨었다.


“아하! 정말 차향이 좋고 혀끝에 감도는 미감이 시원합니다. 근데, 대총관께서 하명하실 일이 무엇인지요.”


“차를 마저 마시게, 뜨거울 테니 천천히. 숨도 고르고.”


유오의 말에 육진홍은 얼굴의 긴장을 조금 풀며 차를 한 모금 더 홀짝였다.


“자네 나와 함께 한 지가 얼마나 되었는가?”


“강호에 있을 때부터 대총관과 함께 했으니 20년은 족히 되었습니다. 그때 대총관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비정한 강호 무림에서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겁니다.”


“세월이 벌써 그렇게 되었군. 그간 내 옆에서 고생 많았네.”


“아닙니다. 대총관 덕분에 강호 왈패 쪼가리에서 제가 이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는 걸 잊지 않고 있습니다.”


“대업을 성사하고 나면, 당 황실은 충성을 조건으로 제국의 통치권을 나에게 넘길 거야. 그때가 되면 나는 자네를 더 높이 쓸 것이다!”


“예, 대총관! 무엇이든 명만 내리십시오. 언제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유오는 충성을 맹세하는 육진홍을 지그시 쳐다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육진홍 같은 자들은 근본이 밑바닥이다. 이런 자들은 밑바닥 인생을 통해 당근과 채찍의 이득을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떡과 고기만 잘 차려주면 나에게 충성할 것이다. 차려주는 먹이의 양과 맛에 따라 충성도가 달라지긴 하겠지만.


육진홍이 찻잔을 다 비울 때쯤, 유오는 본론을 끄집어냈다.


”자네 내말 잘 듣게! 지금부터 어려운 임무를 해주어야겠네.”


갑자기 차까지 대접하며, 평소와 다르게 자신을 대하는 것을 보니, 분명 목숨을 거는 임무일 것이다.


“어려운 임무라 하셨습니까?”


“그렇네. 지금 곧바로 부대편제(部隊編制)를 다시 해야겠네.”


“부대편제요? 지금 상황에 부대를 재편하는 것이···.”


육진홍은 유오의 명령이 자신의 안위와는 관련 없음에 내심 가슴은 쓸어내리면서도, 매우 당황하는 표정으로 대총관을 쳐다보았다.


적을 마주하고 있는 상태에서 부대 재편이라니. 전쟁터에서 제국의 군영은 오랫동안 실전을 통해 개발되어 온 오위진법(五衛陣法)을 토대로 지형과 지세에 맞게 전군, 중군, 후군, 좌군, 우군을 배치한다.

병사들은 오위진법을 모두 훈련받지만, 일단 각 군영과 부대에 배치되고 나면 소속 부대의 역할에 따라 받는 훈련의 내용이 부대별로 더 세분화되고 전문화된다.

그러니 갑작스런 부대 재편은 그간의 훈련을 흐트러뜨려 병사들은 물론이고 지휘관들에게도 필시 큰 혼란과 반발을 불러올 것이다. 더욱이 적진을 지척에 두고서야······.


“대총관! 진영 안팎으로 적의 세작들이 암탐(暗探)을 하고 있습니다. 부대 재편을 틈타 사헌성이 군대를 이끌고 들이치면, 제국을 차지하기는 고사하고 이곳에서 목숨마저 부지하기가···.”


육진홍은 유오의 입꼬리가 아래로 내려가며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고 하던 말을 급히 멈추었다.


“그것은 자네가 염려할 바가 아니다. 한시가 급하니 내 명령을 그대로 따르면 된다.”


매서운 눈매로 차갑게 내뱉는 유오의 명령에 육진형은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군례를 올리며 대답했다.


“예, 대총관! 명을 받들겠습니다. 생각하고 계신 부대 재편의 지침을 내려주십시오.”


“군영의 배치는 오위진법의 진세 그대로 두게. 명심할 것은 각 부대에 있는 고구려계 병사들을 추려내어 전군에 배치하고, 한족(漢族) 출신은 모두 후군에 배치해야 하네. 그리고 돌궐과 실위, 여진, 말갈 등 비고구려계 출신은 중군에 배치하고.”


유오는 육진홍이 자신의 명령을 외우느라 열심히 눈알을 굴리는 것을 보며,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한번 목소리에 힘을 주어 다짐했다.


“명심하게, 육부장! 한족으로 구성된 내 심복들이 수장으로 있는 친위부대를 반드시 후군에 배치해야 한다. 그것이 이번 거사의 성패를 쥐게 될 것이야!”


육진홍은 유오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총관, 후군에 한족 병사를 배치하라 하신 이유는······?”


“후군을 이용해 운주성을 칠 것이다. 고구려계인 이사도 왕을 치기 위해서는 한족 출신이 제격이지.”


“하아, 기막힌 계책이십니다, 대총관! 소장이 원래 아둔한 머리는 아닌데, 붓 길이가 짧아서, 헤헤. 그런데 전군과 중군에 비고구려계를 배치한 뜻은 무엇인지오.”


“쯔, 사령부 부지휘관이란 자가, 이리 답답해서야.”


유오가 혀를 끌끌 차며 말을 이었다.


“고구려계를 전군에 배치함은 그들이 사헌성의 부대와 대치하느라 발이 묶여 후군에 신경쓸 수 없게 함이고, 중군에 비고구려계 병사들을 배치한 것은 내가 이사도 왕을 칠 때 고구려계 병사들이 이를 눈치채고 나의 배후를 공격한다면 중군으로 하여금 이들을 막기 위함이지.”


“하아, 과연, 둘도 없는 명책(名策)입니다. 병적부를 확인해 고구려계 병사를 추려내는 데는 수삼 일 소요될 것입니다.”


“시간이 없다, 명령이다. 부대 재편을 무조건 하루 안에 끝내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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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셈법을 끝낸 유오, 모반의 결심을 세우다 24.08.11 3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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