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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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용
작품등록일 :
2024.08.10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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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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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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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담

DUMMY

먹구름이 달을 가려 밤하늘이 더 시커멓다. 끝없이 세워진 막사들 사이사이 이동로에 서 있는 횃불들은 겨울의 세찬 바람에 꺼질 듯 위태롭다. 군영의 목책을 따라 군데군데 세워진 망루 위에는 활과 창검을 든 초병의 인영(人影)들이 횃불의 일렁임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군영으로 복귀하는 야간정찰 기마병들의 말발굽 소리가 잠잠해지자 사위에 적막감이 감돈다.


밤늦은 시각. 제국의 북방 군영.

유오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흘렀다.


“지금쯤이면 올 때가 되었는데···.”


수 시간 전에 다녀간 이공도의 가노(家奴)란 자가 전해 준 밀서에는 오늘 저녁 자시 경에 전홍정의 사람이 올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자는 내가 요구한 약조를 가지고 올까? 모반의 실행 여부는 그자가 가져올 약조를 보고 결정할 것이야.’


그의 은밀한 방문을 대비해 유오는 심복 부관 중 성격이 차분한 진자의에게 오늘 사령부의 위병조장(衛兵組長) 임무를 맡겼다. 그리고 야객(夜客)을 발견하면, 자신에게 조용히 데려오게 했다.


분명 그자는 무공이 뛰어날 테니, 외곽 초병의 경계는 쉽게 피할 것이다. 그러나 사령부 위병들은 하나같이 무공이 뛰어나다. 발각되어 심야에 검투가 벌어진다면, 이사도의 밀사로 군영에 머무르고 있는 진무의 귀에도 들어갈 수 있다.


‘진자의가 소란 없이 잘 데려와야 할 텐데···.’


유오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조급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식은 엽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때 군막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일이냐?”


“대총관, 부관 진자의입니다. 대총관의 말씀대로 사령부 군영을 기웃거리는 자가 있어 곧바로 포박해 왔습니다.”


“데리고 들어오거라.”


진자의가 휘장을 걷으며 군막 안으로 들어오자 뒤따라 세 명의 위병들이 흑무복 차림에 양팔이 포박된 중년을 데리고 들어섰다.


“소란은 없었느냐?”


“예, 대총관. 이 자는 발각되자 검을 빼어 들고 대항했으나, 대총관 말씀을 전해 듣고는 별다른 저항 없이 검을 내어 주며 포박을 받았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그자의 포박을 풀어주거라.”


“예? 그래도 혹시 위험한 자일 수도···.”


“괜찮다! 이자의 검은 이미 너희 수중에 있지 않느냐! 너무 염려 말거라.”


위병 중 하나가 포박을 풀고나자, 유오는 부하들에게 자리를 물렸다.


“부관은 군막 주변에 머물다가 내가 명을 내리면 들라.”


위병들이 나가자, 유오는 흑무복을 입은 방문객에게 자리를 권하며 물었다.


“그대는 누구고 무슨 일로 이 야심한 밤에 나를 찾아왔는가?”


“소장은 위박번진의 절도사 전홍정 장군의 부관 이정입니다. 대총관께 전해드릴 전 장군의 밀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정이 품에서 꺼내 건네준 밀서를 받아든 유오는 희미한 촛불에 바짝 갖다 대고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마침내 밀서를 다 읽고 난 후 유오는 잠시 생각했다. 서찰의 내용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모반으로 운주성을 친다면 자신이 직접 황제께 유오의 공로를 상주하겠다는 것. 황실에서는 그 보상으로 유오에게 평로절도사 자리와 평로번진의 통치권을 줄 것이라는 것.


부관이라면, 분명 이 자는 밀서에는 없는 전홍정의 복심을 알고 있을 터.

유오는 자뭇 엄격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 장군! 자네도 알다시피, 제국의 전세가 지금은 비록 불리하지만, 이 유오에게 오만의 병사가 있고 제국 12주를 통틀어 10만이 넘는 병사들이 있네. 황실이라 해도 감히 함부로 넘보지는 못할 것이야.”


탁자 건너편에 앉아 유오의 안색을 살피던 이정은 유오의 말이 끝나자 유오의 기세를 받아 힘 있는 목소리로 맞대응했다.


“예, 대총관의 말씀은 매우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총관께서는 지난 동아현 전투에서 5만의 군사로도 전 장군에게 패했고, 양곡에서도 유 장군의 1만 군사가 패하였는데, 다음 전투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다음에도 승리하지 못하면 분명 이사도는 그 책임을 물어 대총관을 벨 것입니다.”


‘이런 쳐 죽일 놈이 있나! 뼈아픈 과거의 패전을 일깨우는 것도 모자라, 사도 왕에게 내 목이 베일 것이라? 이놈이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유오는 입매를 비틀며 심히 불쾌한 내색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정은 유오의 뒤틀린 심사는 모르는 척, 유오가 당면한 현실을 일깨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대총관! 제국에게 비록 10만의 정병이 있다고는 하나, 그들은 제국 12개 주에 흩어져 있어 힘을 모으기는 쉽지 않겠지요. 황하 이북에 전 장군이 도하를 준비하고 있고, 운주성 40리에 사헌성의 선봉대가 이미 도착해 있으니, 대총관의 목숨과 운주의 패망은 사실 시간 문제일 것입니다.”


유오는 황실이나 전 장군으로부터 자신의 신분과 기득권을 보장해 줄 물증이 도착하길 기대하고 있었거늘, 기대와 달리 되레 이정이 저를 겁박하는 말만 내뱉고 있다.


이자의 의도는 무엇인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심 의심이 증가하고 있을 때, 유오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이정의 말이 쏙 들어왔다.


“황제가 절도사들께 내린 조서에는, 이번 전쟁의 목적은 이사도 일족과 그를 지지하는 제국의 20대 세가를 벌하는 것이라 쓰여 있었습니다. 그러니 대총관께서 군사를 돌려 이사도와 그들을 친다면 평로절도사로 제수되어 이사도의 영토를 차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서가 따로 있었단 말이더냐? 으음···. 내가 제국을 넘겨받는 것은 황제의 약속이 있어야만 하네. 황제의 조서나 공문이 있어야, 나도 움직일 수 있네.”


유오는 마침내 그의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자 이정은 기다렸다는 듯이 품에서 한 통의 문서를 더 꺼냈다.


“이것은 황제가 제국과의 전쟁을 독려하기 위해 다섯 번진의 절도사들께 내린 조서입니다. 조서에는 누구든 운주성을 치는 자가 평로를 가진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는 황제가 전 장군에게 내린 조서이니 확인해 보십시오.”


황제의 조서를 낚아채듯 건네받은 유오는 조서를 펼치자마자 옥인부터 확인하고 난 다음 찬찬히 내용을 읽어갔다.


금운주자득평로!

운주성을 치는 자가 평로를 갖는다.


제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는 것을 애써 바로잡으며 유오는 생각했다.


내가 먼저 운주성을 치면, 평로의 절도사는 내 차지가 된다는 뜻인데···.


으음, 침음성을 흘리며 그의 생각이 내달렸다.


그래서 전홍정도 급히 운주성으로 내려온 것이로구나. 제가 먼저 운주성을 치려고!


운주성을 치는 자가 제국을 갖는다. 그렇다면 전홍정과 나 유오가 운주성 입성을 놓고 경쟁 관계에 있다는 건데···.

혹시 전홍정은 내가 운주성을 치게 한 후, 배후에서 나를 쳐 운주성을 차지하려는 속셈은 아닐까?

앞서 그의 수하 사헌성을 선봉으로 내 군영 근처에 진을 치게 한 것은 내가 먼저 운주성을 치게 설득시킨 후 사헌성을 통해 내 배후를 치기 위함이 아닐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유오는 맞은 편에서 자신을 뜯어보며 속내를 염탐하고 있는 이정을 인식하자 쌍눈꼬리를 가늘게 떴다.


“허 음, 제국의 전세가 불리해지자 평로를 나눠 먹기 위해 너도나도 앞다투어 이 전투에 참전하고 있지. 자네의 주군 전 장군도 예외는 아니지 않겠는가? 내가 운주로 군사를 돌리면 내 배후를 친 후, 곧바로 운주성으로 들이닥쳐 그 공을 전 장군이 갖겠다는 것은 아닌가?”


간을 보는 유오의 말에, 이정은 이미 짐작한 수순이라는 듯 품에서 또다른 문서 한 통을 꺼냈다.

위박절도사 전홍정의 인장이 찍힌 위박번진의 공문이었다.


위박군불격유오!

위박군은 유오를 치지 않는다.


유오가 공문서의 내용을 나직이 읽자, 이정은 곧바로 유오의 말을 되받으며 전홍정의 의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대총관. 전 장군의 목적은 평로를 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오는 이정의 말에 눈을 간악하게 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허튼소리 말게! 그런 목적도 없이 그리 많은 군사를 일으켰단 말이냐?”


“대총관도 아시다시피, 이순의 취임 후 지난 15년간 제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번진들이 황실의 수중으로 넘어갔습니다. 여기서 거둬들인 조세로 황실의 재정은 튼튼해지고 중앙의 금군은 강해졌습니다. 황실과 제국의 전쟁에서 황실 편을 들지 않으면, 위박절도사의 운명도 장담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출정한 것입니다. 공연한 싸움에 끼어들어 군사를 잃고 싶지 않기에 전 장군은 본진을 아직도 황하 이북에 둔 채, 선발대 사헌성만 보내 당 황실의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내가 운주성을 치면 전 절도사가 얻는 이익은 무엇인가?”


“전 장군께서는 영양가 없는 황실과 제국의 싸움에 끼어들어 군사를 잃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대총관께서 운주성을 취하게 되면, 전 장군께서는 위박군의 군사를 보전하게 됩니다.”


음, 지금까지 위박군의 움직임을 보건대, 이 자의 말도 일리가 없지는 않군.

황하 이남에 있는 그의 선봉은 고작 4천, 그것으로는 배후를 친다 해도 나를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유오가 전홍정의 진의에 망설이는 모습의 보이자, 이정은 공문서를 다시 상기시켰다.


“대총관, 공문서는 위박번진에서 발행한 공신력 있는 문서로, 만약 이 공문서가 황실로 들어가면 전 장군은 매우 위험해집니다. 공문서의 내용이 적국 사령관인 유오 장군과 싸우지 않겠다고 약조한 내용이니, 황실의 명을 거부한 것이 됩니다.”


“듣고 보니, 일리는 있군.”


‘나와 결탁한 이 공문서를 내가 가지고 있는 한 전홍정은 함부로 뒤통수를 칠 수 없겠지.’


유오가 원하는 것은 황실의 인정을 받아 이사도와 그 일족을 대신해 제국을 갖는 것.

조서를 통해 당 황실이 내린 평로절도사의 자리 약속은 확인했고, 공문서를 통해 배후를 보장하겠다는 전홍정의 약속도 받아냈다.


이 정도면 안심할 수 있지 않은가! 이공도가 내게 확신을 주고자 노력을 많이 했군.’


마침내 유오는 이정에게 모반의 결심을 내비쳤다.


“내 밀서를 따로 남기지는 않겠네. 자네에게 전언하고자 하니, 잘 듣고 그대의 수장에게 전하라. 나의 군사 중에 사도 왕을 따르는 자가 많으니 수삼일 내에 이들을 정리하고 나를 따르는 군사를 동원해 운주성을 취할 것이야. 그 후 사도 왕의 목을 베어 보낼 테니 전 장군에게는 그것을 황실에 바쳐 내 공을 상주(上奏)하여 달라 전하게.”


“예, 대총관 그리 전달하겠습니다. 그러면 대총관께서 운주성을 공략할 때 서로 간의 연락을 어떻게 취해야 할지요. 군호(軍號)를 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운주성을 취하게 되면 전령을 보낼 것이네. 그러나 만약 내가 운주성 공략에 실패하면 봉화를 올릴 것이니 그때는 전 절도사가 군사를 몰고 와 나와 합류해 다시 운주성을 치면 될 것이네.”


이정이 떠난 후 밤이 늦도록 유오의 군막은 불이 꺼지지 않았다.


‘이제 수하 제장(諸將)들을 설득할 일이 남았군. 그러나 설득되지 않으면? 베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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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모반의 협력자들 24.08.14 20 1 11쪽
» 밀담 24.08.13 2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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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셈법을 끝낸 유오, 모반의 결심을 세우다 24.08.11 32 1 11쪽
1 전란의 시대, 이납이 산동성에 제국을 건국하다 24.08.10 55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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