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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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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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0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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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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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성 성문이 열리다

DUMMY

하루를 남겨두고 있었다.


군영의 병사 재배치만 완료되면 운주성을 칠 준비는 끝난다.


1만 5천의 병사는 운주성으로 돌리고, 3만 5천의 병사는 이곳에 남겨둘 것이다. 이정을 통해 전홍정과 불가침 밀약은 했으나, 전홍정이 혹시라도 이를 어겨 자신의 배후를 칠 것에 대비해서.


만약 전홍정이 약조를 어기고 황하를 도하한다면 고구려계를 전군의 위치에 배치해 두었으니 이들을 희생시키면 될 뿐. 그 사이 자신이 재빨리 운주성을 점령해 전공(戰功)을 차지해 버리면 된다. 그러면 전홍정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될 것이다.


운주성에 정예병이 4천쯤 있을 것이고, 이들도 성의 북쪽과 서쪽에 흩어져 있을 테니 성문만 열면 제압은 쉬울 것이다.


그런데.


“음! 가병(家兵)들이 문제군.”


제국 12개 주에 있는 친고구려계 20대 가문 중 당금 제왕을 배출한 이씨가문을 비롯해 9대 가문(家門)이 운주성에 소재하고 있다. 이들이 보유한 가병들은 하나같이 무공이 출중하다. 가문의 세(勢)에 따라 규모는 다르지만 대략 가문마다 오십에서 일백 정도 무사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 친왕실 가문들이 고구려계 성민들을 규합해 저항하면,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이들만 제압하면 성안 곳곳에 흩어져 사는 고구려계 성민들이야 구심점이 없어 힘을 못 쓸 것이다.


“대총관, 모 대인을 모셔 왔습니다.”


부총관 장섬의 목소리다.


“어서 들라.”


군막의 휘장을 걷으며 장섬을 따라 흑무복을 입은 깡마른 초로(初老)의 무인이 들어섰다.


“모 대인, 어서 오시오. 자리에 앉아 우선 차를 드시지요.”


앞에 앉은 자는 모용세가(慕容世家)의 가주 모용천의 셋째 동생이자 세가 내에서 장로의 위치에 있는 모용후다.


“모 대인께서 전날 조 장군을 처리해 주셔서 감사드리오.”


별말 없이 차만 들이키던 모용후는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유 장군, 모용세가는 당 황실과 구원(舊怨)이 있어, 극비리에 제국과 동맹을 맺어 황실을 곤궁에 빠뜨리고자 했소. 그러나 가주께서는 뜻을 바꿔 유 장군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소. 장군께서는 모용세가와 했던 약조를 지켜주길 바라오.”


“염려마시오, 모 대인. 이 유오는 모용세가와 한 약조를 반드시 지킬 것이오. 요하(遼河) 변방의 모용세가가 중원의 중심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남에 기반이 있어야 할 것이오. 이번 거사만 성공하면 모용세가는 이곳 제국의 태산에 자리를 잡게 될 것이오. 앞으로 태산은 모용세가의 명망을 중원에 펼칠 천년의 기반이 될 것이오.”


유오의 말이 끝나자 모용후는 각진 턱으로 꾹 눌러 다문 입을 천천히 열더니 그의 계획을 말했다.


“우리가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이번 계획의 승패는 운주성 내 9대 가문의 신속한 진압에 달려있소. 그들은 패망한 고구려의 실전 검술을 잇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렇다면 그들의 검술은 대단할 것이오.”


“모 대인께서는 고구려 검술에 대해서 경험한 적이 있소? 고구려계 가문들은 자신들의 검술을 공개하고 있지 않소. 일 년에 단 한 번 제국 20대 가문의 비무대회 때만 공개할 뿐이오.”


“모용세가의 기반은 요녕성으로 패망한 고구려의 강역에 속했던 적이 있었소. 그때 고구려 검술을 체험한 기록이 모용세가의 무예제보(武藝諸譜)에 남아있소. 사실 검으로 명망이 높은 모용세가의 검식 뿌리에는 고구려 검술이 깔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오.”


“모 대인의 우려처럼, 이 유오도 운주성내 9대 가문의 저항을 가장 우려하고 있소. 대인께서는 세워둔 계획이 있으시오?”


“이번 전쟁에는 모용세가의 최정예 고수인 모용십이검대(慕容十二劍隊) 중 열 개 검대가 휘하 무사 3백을 이끌고 참전했소. 내가 보낸 세작들이 수집한 첩보를 바탕으로 십검대의 수장들과 의논해 세운 계획은 이렇소.”


“오! 어서 말씀해 보시오.”


“이번 거사의 승패는 신속한 기습에 달려있소. 9대 가문이 힘을 합칠 시간을 주지 말고 군사를 나누어 동시에 들이쳐야 할 것이오. 그러면 적은 분산되어 있고 우리는 수에서 우위에 있으니 제압할 수 있소.”


“그거 좋은 생각이오. 병사를 나눌 구체적인 방법을 말해 보시겠소?”


모용후는 자신이 파견한 세작들이 그려온 운주성 지도를 탁자 위에 펼쳐 놓았다. 그곳에는 운주성의 내성 안 궁성과 총군사령부 그리고 9대 가문과 고구려 촌락들의 위치가 꼼꼼히 표시되어 있었다.


“아니, 어느새 이런 지도까지. 성내 경비가 삼엄했을 텐데, 과연 모용세가의 정보력은 추종을 불허하오.”


“모용십검대 중 아홉 개 검대와 휘하 무사들은 장군의 병사들과 함께 9대 가문과 그들이 있는 고구려계 촌락을 칠 것이오. 한 개 가문을 멸(滅)하는 데에는 한 개의 모용검대와 장군의 휘하 병사 5백이면 될 것이오.”


잠시 뜸을 들인 모용후는 운주성 서문에서 궁성으로 이어지는 운주대로를 손가락으로 쭉 따라가며 말을 이었다.


“5천의 병사로는 성의 서쪽을 쳐 서문에서 왕궁에 이르는 운주대로를 장악하게 하고, 그 길을 따라 장군은 5천을 이끌고 곧장 궁성을 포위 공략하면 될 것이오. 이 모용후는 십검대 중 적성환월검대(赤星幻月劍隊)를 이끌고 장군을 도울 것이오.”


유오는 모용후의 입에서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묘안이 술술 나오자 입꼬리를 위로 씰룩이며 만면에 회색을 지었다.


“모 대인께서 내가 염려했던 것에 해결책을 주시는군요. 대인의 계획을 따르겠소.”



*****



모용후가 떠나고 세 시진이 지난 시각.


유오는 제국군 북부 진영 후군 소속 제장회의를 소집했다. 후군의 장수들은 연판장에 이름을 올린 자신의 심복들이었다.


지휘 군막 내 자리를 잡느라 잠시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정리되자 유오가 손에 든 문서 하나를 펼쳐 들며 운을 떼었다.


“운주성에서 입궐을 허가한다는 공문이 내려왔다. 나는 이 공문서를 이용해 운주성의 서문을 열 것이다.”


유오는 운주성으로 미리 전령을 보내 제왕 사도에게 알현을 요청했다. 제왕 사도는 정체 상태에 있는 양곡의 대치 사항이 궁금했던지 즉시 입궐을 허가한다는 공문을 보냈던 것이다.


“지금부터는 운주성 공략시 장군들의 지휘 소관(所管)에 대해서 명하겠다.”


“부총관 장섬은 여기 남아 내 대신 군을 지휘하라. 육진홍도 여기 남아 군영 배치를 점검하고 장섬을 보좌하라.”


“예, 대총관.”


“부장 진창묵은 성문이 열리면 5천의 병사로 서문에서 궁성으로 이어지는 운주대로를 장악하라. 서문과 서쪽 성벽 둘레에 2천 정도의 왕병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니 5천이면 충분히 제압할 것이다. 나는 5천의 병사로 궁성을 칠 것이다. 그 외 각 부장들은 병사 5백씩 거느리고 9대 가문과 고구려촌을 공략하라. 부장 진자의는 나머지 5백의 병사들로 궁성 10리 주변에 검문을 세워 궁성 주변 모든 도로를 차단하라.”


유오가 명령을 내린 후 주변을 쭉 둘러보는데 조주출신 부장 소지홍이 질문을 했다.


“대총관, 고구려계의 각 가문을 책임져야 할 장수들을 배정해 주십시오? 저처럼 조주 출신 장수들은 운주성의 지리에 익숙하지 못해 가문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길잡이 병사도 있어야 됩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유오는 지휘부 참모들을 동원해 필사한 모용후가 가져온 운주성 지도를 장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모두 운주성 지도를 펼치거라. 지도 위에 9개 고구려 촌락과 길들이 표시되어 있다. 촌락마다 가(家)로 표시된 가옥들은 그 촌락의 대표 가문에 속하는 가옥들이다. 각 촌락마다 담당 장수들의 이름을 표기해 두었으니 확인하도록.”


다들 각자 자신의 전투 배당 지역을 확인할 시간을 준 후 유오는 다시 명령을 내렸다.


“맡은 지역의 접근로를 잘 파악해 두고 휘하부대에 돌아가면 담당 촌락의 위치를 잘 아는 병사를 미리 확보해 두는 것도 명심하라.”


이때 수하 부장 중 마진욱이란 자가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대총관, 9대 가문은 무술이 고강하다고 하는데, 가문 중 세력이 큰 가문의 경우 5백의 군사로 진압이 가능할지요?”


“마 부장의 우려는 충분히 이해 간다. 지금까지 제장들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모용세가의 모용십이검대 중 십검대가 이번 전투에 나 유오를 지원할 것이다.”


참모들이 서로를 보며 웅성거렸다.


“모용세가!? 모용십이검대 중 열 개 검대가!”

“모용세가라면 무림 최고의 검술 명가 아닌가?”

“그들이 왜!?


“제장들에게도 지금에서야 그들의 존재를 알릴 만큼, 그들의 참전은 극비 상황이다.”


“대총관, 그들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아홉 개 검대는 각각 휘하 무사 30기를 이끌고 제장들이 가문을 칠 때 함께 전투에 참여할 것이다. 제장들의 이름 옆에 함께 할 모용 검대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다. 그들은 제장들의 배후에서 지원할 것이다.”


9대 가문을 담당한 장수들은 모용세가 검사들이 자신들을 지원한다는 말에 얼굴이 밝아졌다.


“대총관! 입궐을 즉시 허가한다는 공문까지 내려왔으니, 이를 핑계로 성문을 열 좋은 기회입니다. 군사를 언제 움직일지 알려 주십시오.”


대군의 움직임을 숨기기 위해서는 밤에 움직여야 한다. 병사들이 서로 얘기를 섞다 보면, 운주성에 가까울수록 반란에 가담한 것에 대한 동요가 일고, 이탈자가 생겨 자칫 기밀이 노출될 수 있다.


“출발은 내일 유시(酉時)가 지나 어둠이 내리면 있을 것이다. 기마병의 말에는 재갈을 물려 대군의 움직임이 행군 중에 노출되지 않게 하라. 행군 중에 병사들이 말을 하는 것도 엄금하라.”


유오는 고구려촌 진압을 독려하기 위해 약탈의 명령을 덧붙였다.


“병사들에게 고구려계 성민촌의 노략질을 허용하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성 공략에 공을 세운 자에게는 전(錢) 10만을 상금으로 내리겠노라.”



*****



819년 2월 5일이 되었다.


유오는 오전에 육진홍을 불러 부대 편제완료 및 배치 현황을 보고받고, 오후에는 마지막 후군 지휘관 회의를 소집해 부대 출정 준비를 최종 점검했다.

후군이 회군한 것이 군영내 알려져서는 안된다.

유오는 부총관 장섬에게는 특별히 군령을 내려 군영내 부대간 병사의 이동 금지하게 했다.


마침내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황하강 남쪽으로 넓게 펼쳐진 운주 벌판. 그 벌판의 동북쪽에 우뚝 솟아 있는 운주성에도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성벽 바깥에는 환영받지 못한 자들의 마을이 삼삼오오 을씨년스럽게 흩어져 있었다. 부역을 피해 도망친 자, 부랑자, 범법자, 호패에 등록되지 못한 자들의 하루살이 같은 삶이 불안하게 지탱되고 있는 공간.


흑빛의 어둠.

밤하늘을 꽉 채우고 있던 시커먼 먹구름이 달빛을 완전히 가렸다.


성 밖의 관도 주변 곳곳에 흩어져 있던 부랑촌에 어둠을 타고 서쪽에서 이동해 온 일단의 흑의인들이 숨어들어 몸을 숨겼다. 불청객들이 내는 살기로 개들마저 짖기를 멈추었다.


따각따각-

따각따각-


다음 날 새벽 축시(丑時)가 지날 무렵 운주성의 서쪽 성벽 앞에 10여 기의 군마와 5십여 명의 보병이 멈추어 섰다. 7장 높이의 거대한 성벽을 따라 폭이 8장이나 되는 넓은 해자(垓子)가 그들을 가로막고 있어 성문을 통하지 않고는 도저히 성내 진입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어디서 오는 군마인가? 소속과 성내 출입 이유를 밝히시오!”


서문을 보호하는 반원형 옹성(甕城) 벽의 문루(門樓) 위에서 관도를 감시하고 있던 긴장한 보초병의 목소리가 밤공기를 타고 울렸다.


초병의 목소리 주변 문루와 적루(敵樓)에는 활에 시위를 넣은 수십 기의 궁병들이 야밤의 불청객들을 향해 조준하고 있었다.


“양곡에서 오는 유오 대총관의 호위대요. 왕을 뵙기 위해 왔소!”


“왕을 뵙기 위한 군대의 이동치고, 규모가 너무 크오.”


“전시 상항이라 총사령관인 유오 장군의 안위를 우려해 수행 병사를 늘렸을 뿐이오.”


“야심한 밤이오. 야간에 군대의 성내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어 있소.”


“전시 상항이라 밤낮을 가릴 처지가 아니오. 낮에 군을 지휘하다 전선이 안정되어 밤을 새워 왕을 뵙기 위해 온 길이오. 내일 이른 아침 왕을 알현하고 곧바로 돌아 가야 하오.”


“공문과 통행증을 가진 병사 한 명만 성문 앞으로 오시오.”


유오의 호위병 중 한 명이 해자 위를 가로질러 놓인 다리를 건너 옹성 앞에 이르자, 잠시 후 걸쇄(乬鎻)가 걸린 채 옹성 성문이 빼꼼 열리더니 초병이 나와 공문과 통행증을 받아 들고 성문 안으로 사라졌다. 옹성문은 다시 굳게 닫혔다.


성문위소(城門衛所)에서 공문의 진위 여부를 확인했는지 이각(二刻)이 지나자 누각에서 화살의 시위가 거둬졌다. 곧이어 옹성문과 그 안쪽의 서문이 활짝 열렸다.


마침내 운주성 멸망의 문이 열린 것이다.


유오 일행은 다리를 건너 천천히 성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 성문 주변 부랑촌의 흑빛 어둠 아래에 숨죽인 채 몸을 숨기고 있던 모랑십검대의 3백 무사들이 신형을 날려 그 뒤를 따라 성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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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제나라, 고구려 유민들의 디아스포라 NEW 4시간 전 3 1 14쪽
13 고별강의 24.09.19 10 1 11쪽
12 운주성 최후의 날 24.09.18 10 1 14쪽
11 당의 세작부대 팔검귀살단을 주살하다 24.08.26 20 1 12쪽
10 유오의 모반을 감지하다 24.08.23 17 1 13쪽
9 홍방과 천무오검 24.08.21 14 1 12쪽
» 운주성 성문이 열리다 24.08.19 16 1 13쪽
7 군영의 살육 24.08.17 17 1 13쪽
6 달밤의 검투 24.08.16 15 1 12쪽
5 모반의 협력자들 24.08.14 19 1 11쪽
4 밀담 24.08.13 20 1 11쪽
3 제국에 암약하는 당의 세작들 24.08.12 27 1 11쪽
2 셈법을 끝낸 유오, 모반의 결심을 세우다 24.08.11 32 1 11쪽
1 전란의 시대, 이납이 산동성에 제국을 건국하다 24.08.10 53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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