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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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용
작품등록일 :
2024.08.10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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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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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4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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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반의 협력자들

DUMMY

이정과의 밀담이 있은 다음 날.

유오는 술시에 작전회의를 연다는 명목으로 몇몇 부대의 지휘관급 이상 장수들을 사령부의 지휘관 군막으로 불렀다. 이들은 유오가 강호 무림을 주유할 때 함께 했던 자들 중 특별히 발탁해 군부 내 부장급과 지휘관급 자리에 심어 둔 자들이었다.


지휘관 군막으로 들어오던 장수들은 탁자 위에 놓인 잘 차려진 저녁 만찬과 술병들을 보고는 어리둥절한 채 서로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았다.


유오는 탁자에 빙 둘러앉은 십여 명의 수하 장교들을 쭉 둘러본 후 먼저 잔을 들며 분위기를 띄웠다.


“제장들! 그간 오랜 군사(軍事)의 일로 심신이 지쳤을 테니, 격려차 만찬을 준비했네. 주백약지장(酒百藥之長)이라 술은 모든 약 중의 으뜸이니 오늘 이 한 잔의 술로 피곤을 녹여내고 나면, 내일은 전의가 더욱 불타오를 걸세. 자자, 쭈욱 들이키세.”


그제야 다들 잔을 입에 가져가며 긴장을 풀고 한마디씩 했다.


“대총관, 전승 후에나 볼 수 있는 음식 아닙니까?”

“저희는 내일 전투가 시작되나 궁금해하며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내일 새벽에는 마침내 전투가 시작될 거로 생각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습니다.”

“저희의 마음을 이렇게 알아주시니 고맙습니다, 대총관!”

“이 귀한 술로 간을 적시니, 백약지장으로 힘이 불끈 솟습니다요.”


다들 한마디씩 하며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데, 탁자 한쪽에서 묵묵히 식사만 하는 조 부장이 유오의 눈에 들어왔다.


유오가 수년 전 발탁한 조수극이란 자로, 무예가 출중해 장차 긴히 쓰려고 눈여겨보고 있던 자다. 이 무리 중 유일하게 유오와 강호 시절을 함께 보내지 않은 아직 약관(弱冠)의 젊은이였다.


“부장 조수극은 왜 이리 말이 없는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은가?”


“그런 것이 아니라, 대총관! 운주성을 노리는 전홍정의 군대가 황하 건너 바로 코앞에 있습니다. 그들이 언제들이 들이닥칠지 모르는데, 이렇게 군영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우려되어 그럽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장수들이 지나친 걱정을 한다는 듯 너도나도 한마디씩 건넸다.


유오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술병을 들고 조수극의 옆으로 가 그의 잔에 술병을 드리웠다.


“위박의 전홍전은 아직 황하를 건너지 않았고, 우리 앞에는 그의 선봉 사헌성이 끌고 온 4천의 병사만 있을 뿐이네. 우리 군이 좌우 협공하면 한 순간에 공략할 수 있을 게야. 나는 본군의 전홍정이 황하를 건너기 전에 사헌성을 공략할 계획이네.”


”자자. 조부장! 전홍정이니 사헌성이니 전장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한잔 받게. 내 특별히 사헌성을 공략할 때 자네를 선봉에 세워 공을 세울 기회를 주겠네.“


“예, 감사합니다. 소장을 이리도 생각해 주셔서.”


조수극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잔을 받아 쭉 들이켰다.


조수극의 잔에 한 잔을 더 따른 후 자리로 돌아온 유오는 탁자를 빙 둘러 수하들을 보았다.

적당히 취기가 올랐고 분위기도 무르익었다. 휘하부대의 지휘관으로서 각자가 개성이 강하지만, 대총관의 최측근이란 자부심 때문인지 서로 동질감을 느끼는 듯했다.


분위기 좋군!


유오는 천천히 심중의 말을 꺼내 놓았다.


“군영의 많은 장수 중 그대들은 오랫동안 나와 생사고락을 함께 해왔네. 오늘 특별히 그대들만 따로 모이게 한 것은, 최근의 전투 현황과 우리의 앞날에 대해 음주배설(飮酒排說)의 마음으로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자 함이네.”


유오의 말에 다들 술잔을 내려놓고 잡담을 멈추었다.


“제장들도 소문은 들어 알고 있겠지만, 제국과 경계를 접한 절도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네. 그들이 황실을 등에 업고 연합해 우리 제국을 공격하고 있는 것은 모두 알 것이야.”


사령부의 부지휘관인 장섬이 유오의 말에 맞장구쳤다.


“그렇습니다. 대총관. 우리는 동아현과 양곡에서 잇따라 패해, 병사들의 사기가 말이 아닙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유오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지금 사령부에는 운주성에서 왕이 보낸 밀지가 도착해 있네.”


“왕께서 밀지를 보내셨다고요?”

“밀지에 있는 왕의 령(令)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전쟁에서 패한 책임이 자신들에게 닿을까 염려하여 다들 밀지에 대해 궁금한 내색을 감추지 못했다.


”만약 다음 전투에서도 승리하지 못하면 왕께서는 그 책임을 부장급 이상의 장수들에게도 묻겠다는 내용이었네."


잠시 말을 멈추고, 쪼잔한 왕이 불만스럽다는 듯 유오는 입맛을 다셨다.


“왕께서는 밀지를 가지고 온 왕실 근위대의 진무 장군에게 감군(監軍)의 책임을 맡긴다는 공문도 함께 보내셨네.”


“감군요? 그게 무슨 보직입니까?”


“그를 이곳에 머무르게 하여 전투 현황을 감시하고 공과를 엄히 따지시려는 듯하네.”


사실 진무는 적의 선봉이 운주성 코앞 거리에서 군영을 세웠기에 불안해진 제왕이 적진의 현황과 유오의 전투계획을 상세히 듣고 보고하라는 왕명을 받고 온 것이었다.


사실이 그러함에도 유오는 밀지의 내용을 왜곡해 왕과 부장들 간의 갈등을 부추키는 말을 했던 것이다.


“제장들도 짐작하고 있듯이 승기는 이미 저쪽에 있고, 전홍정에게 무령군과 선무군까지 합류하면, 다음 전투에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어 답답할 뿐이네.”


유오는 목소리와 표정을 조절해 가며 수하 부장들의 심중에 전쟁에 대한 불안과 왕에 대한 불신의 불씨에 불을 지폈다.


“운주성이 요 앞인데 왕께서는 왜 직접 전투를 지휘하지 않고 사람만 보내는 거지?”

“그러게! 왕께서는 운주성의 내궁에 가만히 들어앉아, 전투 현장도 모르시면서.”

“제국의 군대는 12주에 흩어져 있고, 그나마 우리가 목숨을 내놓고 운주성을 최후로 막고 있는데, 우리를 이리 대하다니!”


유오의 말을 들은 부장들이 여기저기서 왕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전에 말을 맞추어 두었던 최측근 부장 몇몇이 노골적으로 제왕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며 그들의 불안과 초조에 양념을 얹었다.


“현 제왕 이사도는 선대왕 이사고가 갑자기 죽자 왕의 준비도 갖추지 못한 채 왕의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제국이 이렇게 존망의 위기에 처한 것도 다 현 제왕의 우유부단함과 통치력 부재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제왕은 전장 경험이 적고 무공 실력도 낮아 고구려계만 빼면 병사들 사이에 그를 존경하는 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기질 또한 유순해 고구려계 근신들에게 매번 휘둘리기만 한다는 소문도 자자합니다.”


“대총관! 다음 전투에서도 어떻게 승리를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때도 승리하지 못한다면 분명 왕은 그 책임을 물어 대총관과 우리 부장들의 목을 벨 것입니다.”


“대총관! 제국에 비록 10만 정병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제국 12개 주에 흩어져 싸우고 있고, 운주는 여기서 40리가 채 되지 않으니, 장군과 우리의 목숨은 시간 문제입니다. 여기서 헛되이 목숨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분위기가 서서히 제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자 유오는 마침내 모반의 뜻을 입 밖으로 꺼내었다.


”당나라 황제의 목적은, 제왕 이사도 가문과 그를 둘러싼 제국의 20대 세가들이다. 그러니, 군사를 돌려 이사도를 치고 당 황실에 충성을 맹세하면 제국의 영토를 우리가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제장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에 사령부 부지휘관 장섬이 먼저 찬동하고 나섰다.


“저는 대총관과 뜻을 함께하겠습니다.”


그러자 장수들이 너도나도 앞다투어 모반에 동참하겠다고 나섰다.


“대총관, 제국의 운명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기울었고, 왕 이사도는 이를 바로 잡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러니 백성들과 병사들의 목숨을 보전하려면 대총관이 세우신 계획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때 한쪽에 조용히 앉아있던 조수극만은 말을 아꼈다.

장수들은 조수극의 소극적인 태도가 답답하다는 듯 그를 노려보며 한마디씩 했다.


“조 부장! 자네는 동참을 할 건가 말 건가. 왜 아무 말이 없는가?”


“대총관께 입은 은혜를 저버릴 작정이라면 여기서 목을 내놓아라.”


여기저기서 외쳐대는 장수들의 말에도 흔들림 없이 조수극은 차분히 입을 열었다.


“대총관, 대총관께서 계획하고 계신 대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가 우려되는 바가 있습니다.”


“오! 조 부장, 그래, 그것이 무엇인가? 어서 말해보게.”


다정한 말투. 그러나 유오의 눈매와 입꼬리가 미세하게 삐딱해지는 것을 조수극은 알아차렸다.


“예, 대총관.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우리군이 운주성을 향했을 때 대치 상태에 있는 사헌성이 우리 배후를 치지 않겠다는 약조가 있어야 하고, 둘째는 우리 군영 내 고구려계 친왕파 병사들의 반발이 예상됩니다. 셋째는 우리가 운주성을 접수하면 이사도 왕 대신 우리가 통치하는 것을 인정하겠다는 당 황실로부터의 약조가 있어야 합니다.”


“조 부장, 그것이 자네가 우려하는 것의 전부인가?”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 계속 말해 보게.”


“백성들이 다칠까 우려됩니다.”


”백성들이 다친다고, 말했느냐?“


“예, 대총관. 제국의 12주는 고구려계 이씨 가문이 통치한 지 55년이나 됩니다. 선대왕 이납이 제국을 건국한 지는 37년, 제국의 기초를 다진 선대조 이정기 장군의 치세까지 포함하면 55년이나 됩니다. 이씨 가문은 대대로 백성을 위하는 정책을 펼쳐 고구려계뿐만 아니라 여러 이민족들도 이씨 왕조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대총관께서 운주성에 진입했을 때, 이들이 이사도 왕의 편에 서서 반발하지 않는다고 장담하실 수 있겠습니까? 결국 그리되면 부득불 성민들의 커다란 희생이 따르고야 말 것입니다.”


유오는 침음성을 울렸다.


“으음, 백성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조 부장의 마음이 참으로 갸륵하구나. 허나, 자네가 우려하는 바에 대한 계획은 이미 세워두었으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


애써 일그러지는 입매를 바로잡으며 조수극의 말을 끝까지 들은 유오는 그의 성민의 마음을 칭찬하였다.


“내 그대들의 의견은 남김없이 알았네. 찬반의 의견이 있었으나, 이제 나는 결심을 세웠다. 나, 유오는, 당 황실에는 충성을 보일 것이며, 제왕 이사도와 그 일족을 없애고 이사도를 대신해 새로운 제국을 세울 것이다. 나 유오와 더불어 목숨을 내놓고 함께 도모하는 제장들에게는, 제국의 12개 주를 공평히 나누어 각 주의 자사를 맡길 것이다.”


그러자 조수극도 재빨리 제 의견을 접고, 무릎을 꿇어 유오 앞에 머리를 숙였다.


“대총관께서 그리 결정하셨다면, 저도 한 치의 어긋남 없이 기꺼이 그 뜻에 따르겠습니다.”


이리하여 회동에 참석한 장수들은 만장일치로 모반에 동참하기로 하고 연판장을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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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셈법을 끝낸 유오, 모반의 결심을 세우다 24.08.11 3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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