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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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용
작품등록일 :
2024.08.10 22:32
최근연재일 :
2024.09.20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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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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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 세작부대 팔검귀살단을 주살하다

DUMMY

정원의 불빛마저 어둠에 짓눌린 듯하다.

천은부의 가옥들을 이어주는 여러 소로의 군데군데 세워져 있는 등롱들이 희미한 불빛을 내어 길을 비추고 있었다.

정원의 회화나무와 작은 덤불숲들은 길게 그림자를 만들어 정원을 바라보는 홍방의 마음을 신산스럽게 했다.


하루 내내 하늘을 꽉 채우던 시커먼 먹구름이 서서히 낮게 내려앉더니 이제는 기어이 눈발을 날리기 시작했다.


홍방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묵색(墨色)의 창공.

그 짙은 어둠 속에서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매화 꽃잎처럼 흰 눈이 춤을 추듯 내려오고 있었다.


황하의 봄은 곧 오겠지만 아직 땅은 얼어있고, 바람은 매섭다. 얼어붙은 정원 바닥에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홍방을 부르는 일량자의 목소리와 함께 다급하게 문이 열렸다.


“주군, 팔귀검살단의 소재로 의심되는 장소를 확보했습니다.”


“그래! 어디더냐?”


“화연객잔(花緣客棧), 동시방(東市坊)입니다.”


“동시방이라면, 궁성의 동쪽 태산로(泰山路) 근처 시장이 아닌가?”


“예, 그렇습니다.”


“정보는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가?”


“내총관 집무실의 서류첩에서 백화상단이 운영하는 주점과 객잔 12곳의 주소를 찾아내 암탐들에게 염탐을 시켰는데, 그중 화연객잔이 의심스럽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근거는 무엇인가?”


“오늘 오후 늦게 화연객잔의 별원에 불이 났다가 금방 꺼졌는데, 그후로 객잔의 손님을 더 이상 받지 않고, 투숙하던 손님은 물론 시종들도 별원 근처에 접근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합니다.”


“음! 팔검귀살단이 그곳에 은신하고 있다면, 암탐 몇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괜히 나섰다가는 모두 목숨을 잃을 것이다.”


“좀 전에 곽자량과 백리향이 천무대 3개 대(隊)를 이끌고 출동했습니다.”


“내가 직접 가봐야겠다. 일검은 삼검과 함께 이곳에 머무르며 이공도가 실토하거든 즉시 내게 보고하라.”


일자량에게 천은부를 맡긴 후 말을 내달린 홍방은 이각이 지나서야 동시방에 도착했다. 동시방의 입구에서 말에서 내린 후 도보로 화연객잔으로 이동했다. 객잔의 정문 쪽에 난 골목에 접어들자, 기습을 노리고 있던 이검이 희미한 어둠 속에서도 금방 홍방을 알아보고 조심스레 다가왔다.


“객잔 골목 주변을 물 샐 틈 없이 포위했습니다. 객잔 후문 쪽에는 사검이 천무사대와 대기하고 있고, 천무이대와 삼대가 정문 쪽에 있습니다. 제가 정문에서 들이치면, 사검은 상황을 보다 후문에서도 들이치기로 했습니다.”


화연객잔의 문과 담장에 걸려있는 등롱에서 새어 나온 등불은 눈 덮인 골목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등불이 만들어 내는 담장 그림자를 따라 군데군데 천은부의 검객조들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만약 팔검귀살단이 저 안에 있다면, 저들은 이미 객잔 밖의 살기를 느끼고 대비하고 있을 것이다.


홍방은 이검에게 객잔의 정문으로 들어가게 하고, 자신은 우회해서 담장을 넘어 곧바로 별원으로 들어갔다.


쾅쾅.


“누구시길래 야심한 밤에 이리 소란이오. 객잔은 오늘 손님을 받지 않소.”


“어서 문을 열라. 관부에서 나왔다.”


객잔 정문을 두드리는 천은부 검객들의 소란을 뒤로하고, 홍방은 객잔의 담장을 따라 골목을 돌아갔다. 비각보행술(避角歩行術)의 보법을 펼쳐 소리와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객잔 내원의 담장을 훌쩍 넘어 별원 쪽문으로 들어섰다.

별원의 정원과 전각에는 등롱이 켜져 있지 않아 사위가 고요하고 어둡다. 홍방은 기감(氣感)을 끌어 올려 주변을 탐지했다.


아니나 다를까. 차가운 공기를 타고 호흡을 잘 가다듬은 팽팽한 숨소리들이 전해져 왔다. 강호를 떠들썩하게 했던 살수답게 상승무공을 지닌 자들.

전각의 지붕 위, 중앙 내실, 정원의 덤불 속, 그리고 자신이 지나온 쪽문 뒤 모두 네 명.


그렇다면 나머지는 객잔의 정문과 후문에 있겠군.


스르륵. 그때 내실의 아치형 방문이 열리며 흑의인이 정원으로 내려섰다. 그는 양팔을 가슴에 포갠 채 상반신을 뒤덮을 크기의 약간 굽은 도(刀)를 앉고 있었다.


“흐흐흐, 이 야심한 시각에 노부의 잠을 깨우다니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게로구나.”


“팔검귀살단 중 곡도((曲刀)를 쓰는 자는 오직 하나. 그대와 함께 온 무리가 팔검귀살단이라면, 그대는 무극검살(無極劍殺) 하굉명이겠군.”


“강호의 무명소졸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그간 내가 쌓아 올린 살수의 명성이 헛되지는 않았군. 아직 젖비린내도 벗지 못한 듯한데, 그대는 누구길래 팔검귀살단을 입에 올리며 내 이름을 들먹이는가?”


“밀군의 살수들이라면 내가 누군지는 익히 알 텐데! 그렇게 아둔한가?”


“오호! 약관의 나이, 대담하게도 팔검귀살단 앞에 혼자 오다니, 그대는 천은부의 수장 홍방이란 자겠군.”


“서로 통성명은 했으니, 쥐새끼처럼 웅크리고 있지 말고 넓은 곳으로 모두 나오시지.”


스스슥.


커렁커렁한 침음과 함께 흰 도포를 입은 깡마른 도인이 정원의 덤불숲을 박차 오르며 홍방의 왼쪽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히죽거렸다.


“누군가 했더니 제왕의 자식놈이군. 어린놈의 새끼가 버릇도 없이.”


곧이어 홍방의 뒤 쪽문에 은신해 있던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흑색 도포를 걸치고 머리를 풀어 헤쳐 흡사 귀혼 검객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별원 전각 지붕 위의 검살은 모습을 여전히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모습을 드러낸 자들은 품(品)자 형태로 홍방을 포위했다.


백의인의 손에는 귀두도(鬼頭刀)가 들려 있고, 흑의 도포를 걸친 자는 왼손에 출수하기 쉽게 검편(劍鞭)을 말아쥐고 있었다.


“백마귀도(白魔鬼刀) 설지청과 혈귀검편(血鬼劍鞭) 마광도를 한꺼번에 보는구나.”


“운주성 촌동네 젊은 놈까지 노부를 알아보다니 내가 유명하긴 한 건가. 이놈아, 죽기 전에 노부의 용안을 어둠 속에서나마 볼 수 있다니 영광으로 알거라.”


“흐흐흐. 네놈이 천은부의 홍방이냐? 오늘 밤 제왕의 아들을 먼저 처리해 우리 손으로 제국의 씨를 말릴 수 있게 되었군.”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제국의 왕실을 도륙하라는 밀군 중앙의 명을 받고, 이제나저제나 은신하며 출동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던 팔검귀살단.

살수자 명단에 오른 자 중 한 명, 제국의 세자 이홍방이 제 발로 죽겠다고 오다니. 이놈 목에 금자 10만 냥! 왠 횡재냐는 듯 회색이 만면하다.


그때 화연객잔의 정문과 후문 쪽에서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와 병사들의 외침소리, 객잔 손님들의 비명 소리가 밤공기를 타고 들려왔다.


“누구의 씨가 말릴지는 곧 두고 보면 알일, 이 자비검객이 살수 노친들의 마지막 길에 자비를 먼저 베푸니 누구든 먼저 출수할 기회를 주겠다. 한꺼번에 덤비면 더 좋고!”


앞에 선 하굉명은 나이가 족히 30년 이상이나 차이 나는 약관에게 놀림을 당하자 입을 씰룩거렸다.


“이런 건방진 놈. 3귀살을 앞에 두고 건방을 떨다니. 우리 명성을 허투루 들었구나.”


“흐흐흐, 장안에서 멀리 이곳까지 고생하며 쥐새끼 마냥 숨어들었는데, 출수 조차 못 해보고 꽥 비명횡사하면 강호에서 두고두고 그대들의 허명이 회자되지 않겠나.”


팔검귀살단. 그들이 누구인가!

당 헌종 이순의 명을 받아 무원형이 당금 최고의 거금을 들여 정파 사파 가리지 않고 강호무림에서 채용한 세작 부대 최상급 살수 집단이 아니던가?


황실에 반란을 일으킨 번진의 절도사나 장수는 물론, 소국을 세운 번진국의 왕들도 이들 손에 주살당했다. 과연 용역 비용에 걸맞게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임무를 처리하는 자들이었다.


암살 후에는 보수를 받기 위해 반드시 살해한 자들의 목을 가져갔다. 지난 10여 년간 그 잔인하고 귀신같은 살수를 칭해 붙여진 이름 팔검귀살단. 이들 앞에서 감히 누가 막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새파랗게 젊은 놈이 감히 자신들 앞에서 이렇게 깝죽대다니 찢어 죽일 마음이 생길 수밖에.


“흐흐흐, 네 놈을 죽여 아가리를 찢어 주마.”


더 참지 못한 무극검살 하굉명은 몸을 반으로 굽혀 지면에 닿을 듯한 요상한 자세로 곡도의 날을 수평으로 눕혀 바람을 가르며 지쳐 들어왔다. 가히 그의 신형은 전광석화 같아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곡도의 굽은 날이 빙글 회전하며 홍도의 양다리를 감아올렸다.


고도의 계획된 공격. 홍방의 뒤쪽 좌우에는 백마귀도 설지청과 혈귀검편 마광도가 버티고 있으니,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상황. 홍방은 그 자리에서 위로 뛰어올라 하단 공격을 피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하면 공중에서 자세가 불안해진 틈을 타 뒤쪽의 혈귀검편 마광도가 검편의 채찍을 길게 풀어 자신의 몸을 휘감아 갈기갈기 찢어 놓겠다는 수작.


스이익.


하굉명의 공격은 너무 신속해 홍방이 미처 보법을 펼치거나 경공(輕功)을 펼쳐 공중으로 뛰어올라 피할 수 없을 듯했다. 내공을 담은 곡도가 공기를 가르는 무시무시한 파공음 소리보다 앞서 검광이 홍방의 다리를 베려는 찰나.


치앙. 검과 도가 어긋나며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아앗!”


단말마의 외침과 함께 몸이 뒤로 밀려난 것은 뜻밖에도 하굉명이었다.


스르 르 릉.


검이 어느새 검갑에서 출검 되었던가!

하굉명의 곡도를 튕겨낸 여운이 아직 진정되지 않았는지 가늘게 떨며 울고 있는 비룡검,

홍방의 왼손에 들린 비룡검의 검신에 새겨진 용 그림에서 푸른 빛이 발산되고 있었다.


곡도가 튕겨 나가면서 흐트러진 검세를 바로잡느라 한 장 뒤로 물러선 하굉명을 향해 홍방은 변화가 없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굉명 그대는 내 앞에서 일초식을 시전했다고 할 수 있네. 이제 그대는 죽더라도 체면을 살릴 수 있게 되었다!”


“이놈이, 말 버르장머리하고는, 노부가 잠시 방심했다고 기고만장이구나. 이번에는 천검일격(天劍一擊)을 맛보아라.”


하굉명의 기습 공격은 휘어진 곡도의 장점을 활용한 기습적인 베기의 절학인 무영도법(無影刀法)의 일종이었다면, 이번에는 정면승부를 걸었는지 천검도법(天劍刀法)류의 한 종류인 천검일격을 시전했다.


천검도법류는 높게 치켜들어 내공을 이용해 내리치며 베는 기술로, 내공이 높은 자가 날 끝이 뭉뚝하고 폭이 넓은 외날도에 내공을 실어 강력한 일격을 날리기 때문에 검으로 도를 맞받아치기가 어렵다.

더욱이 강기를 담은 곡도의 휘어진 날에 부딪힌 검은 옆으로 튀거나 미끄러져 검을 쥔 자의 몸은 그대로 도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하굉명은 홍방의 나이가 어려 내공이 약할 것이라 여겼는지 자신의 공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천검일격을 시전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굉명의 곡도가 홍방의 가슴에 채 이르기도 전.


“윽!”


하굉명은 낮고 짧은 비명을 질렀다.


하굉명은 첫 시전에서와 같이 이번에도 홍방의 검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지 못했다. 홍방을 향해 곡도를 내려치는 순간, 가슴에 작은 통증을 느껴 짧게 비명을 내지르며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으, 으윽, 언제 시전했느냐.”


그때까지 하굉명도 곡도로 천검일격을 시전하고 있었지만, 곧 자세가 흐트러지며 곡도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굉명은 한쪽 손을 힘겹게 들어 제 가슴에 댔다. 도포를 축축히 적시며 나오는 검은 물이 없었다면 홍방의 검이 다녀갔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으으으. 나를 단 일 초에 이렇게 벨 수 있는 자. 강호를 통틀어 단 하나. 설마 그대가 비천검존(飛天劍尊)이라 불리는 자와 동일인인가?”


“회광명은 그 답을 저승에서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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