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의 요리는 특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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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선
작품등록일 :
2024.08.13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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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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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손

DUMMY

“어떤 부탁이요?”


최순자 할머니는 한 번도 세입자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물론 보통 건물주가 세입자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일은 없지만, 최순자 할머니는 그간 세입자와의 교류 자체가 없었다.


“이 앞에 <백반 컵밥>을 찾아온 손님들이 많거든. 그 가게 손님들을 <중화루>에서 쉴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어. 어차피 장사도 안되는 마당에 말이야.”


최아름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부동산 안에 앉아만 있어서 바깥 상황이 어떤지 알지 못했다.


게다가 <백반 컵밥>의 줄이 늘어난 건 불과 한 시간여 만에 일어난 일. 최아름은 벌떡 일어나 부동산 밖을 나가보더니 깜짝 놀랐다.


“어머! <백반 컵밥>에 언제부터 저렇게 사람이 많았대요?!”

“글쎄. 근래에 사람이 많긴 했는데 나도 저렇게까지 줄을 선 건 처음 보네. <중화루> 사장한테 바로 연락할 거지?”

“네···.”


최아름은 긴 줄을, 넋을 놓고 지켜보는 중이었다.


“아. 들어오는 <백반 컵밥> 손님들한테 음료수도 좀 드리라고 해. 음료숫값은 다음 달 월세에서 까준다고 하고.”

“네?! 그렇게까지 하시려고요?”


최아름은 줄을 보고 있다가 최순자 할머니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응. 부탁해. 그럼 나, 간다.”


최순자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훌쩍 부동산 밖으로 떠났다. 홀로 남은 최아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최순자 할머니가 떠난 빈자리를 바라보다가 서둘러 <중화루>의 사장, 안상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최기수는 젊었을 적에 안 해본 일이 없었다. 투자할 시드를 불리기 위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몸을 쓰는 일 밖에는. 그중 배달 일은 물론이고 음식점에서도 일을 했었다.


음식점에서 설거지나 서빙, 계산 일을 하기도 했지만, 가끔 일손이 부족할 때는 간단한 조리 정도도 할 수 있었다.


나중에 가서는 요리라고 할 법한 일도 제법 했지만, 그리 손재주가 있는 편은 아니라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금방 그만두었다.


게다가 당시 주방 일의 급여는 다른 일들과 비슷했는데 노동 강도나 위험도 면에서 다른 일보다 강도가 있는 편이었다.


시간이 부족하고 돈이 많이 필요한 젊은 최기수의 경우 금방 요리를 관두고 다른 일을 했다. 최기수는 기용을 보기 위해 운전기사 김태원과 함께 <백반 컵밥>의 줄을 가로질러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김태원은 영문도 모르고 최기수를 졸졸 따라가는 중이었다.


“아저씨, 여기 줄 안 보여요?”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젊은 여자가 신경질적으로 최기수에게 말했다. 여자는 물론이고 같이 줄을 서 있는 다른 사람들도 최기수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아. 전 손님이 아닙니다. 사장님께서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셔서 도우러 왔어요. 이 친구랑 같이요.”


최기수는 그렇게 말하고 김태원을 끌고 와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최기수가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철면피 같은 낯짝과 능글맞은 성격도 한몫했다.


물론 제 이득이 명확히 보이는 경우에 말이다. 지금도 그랬다. 이런 변명이 아니면 기용의 얼굴을 종일 볼 수 없을 것이다.


김태원은 옆에서 최기수의 임기응변에 속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최기수의 말에 사람들은 마치 홍해를 가르듯이 최기수와 김태원을 가게 안으로 인도했다.


하지만 가게 안에 있던 기용은 아무런 언질도 듣지 못한 상황. 방금까지 대기 줄에서 보지 못했던 웬 남자 둘이 터벅터벅 걸어오니 어리둥절하게 바라만 봤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전 수현이 애비 되는 사람입니다. 우리 애가 사장님께 제 명함을 줬다고 하던데요.”


열심히 컵밥을 포장하다 말고 들어온 최기수와 김태원을 보다가 기용이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


“아! 안녕하세요. 제가 보다시피 지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아서요. 죄송하지만 다음에 다시 오시겠어요?”


기용은 손으로는 포장을 열심히 하면서 죄송하다는 표정을 잊지 않았다. 명함을 유의 깊게 보지는 않았지만, 최기수의 행색을 보니 딱 봐도 부유한 느낌이 흘러넘치는 사람이었다.


“저도 눈이 있는데 당연히 사장님 바쁘신 거 알죠. 오늘은 사장님과 이야기하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 사장님 좀 도와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왔습니다.”


최기수는 그렇게 말하고 양복 재킷을 벗고 와이셔츠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이 친구와 같이요. 제가 이래 봬도 젊었을 때 음식점에서 오래 일했습니다. 김 기사도 전에 음식점에서 일했다고 하지 않았나?”


김태원이 면접 때 했던 이야기를 떠올린 최기수였다.


“예···. 그렇긴 한데.”


김태원은 당황스러웠다. 최기수의 운전기사로 취업한 것이지 음식점에 취업한 게 아니었으니까.


“오늘 일한 건 평소 일급의 두 배로 치겠네. 할 수 있겠나?”


기용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낮고 작은 목소리로 김태원의 귓가에 대고 말하는 최기수. 평소 일급의 두 배면 김태원에게도 좋은 거래였다.


“네. 맞습니다. 설거지를 하도 많이 해서 주부습진을 달고 살았죠. 지금도 집에 가면 와이프 대신 설거지는 제가 다 합니다. 무척이나 빠르게 해요.”


김태원도 씩 웃으며 어느새 와이셔츠의 소매를 걷어 올리고 있었다. 기용은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손님의 아빠 되는 사람이라지만, 오늘 처음 본 사람. 게다가 아무런 대가 없이 도움을 주겠다니.


“컵밥 포장 나왔습니다!”


일단 포장하고 있던 컵밥을 손님에게 들려 보내고 최기수와 김태원을 유심히 바라봤다.


“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제 명함 보셨죠? 제가 생각보다 유명한 사람입니다. 투자에 성공해서 책도 많이 내고 방송이나 인터뷰도 제법 했어요.”


최기수는 기용이 믿지 못할 것 같아서 핸드폰으로 서둘러 제 이름을 검색해서 기용에게 보여줬다. 최기수는 포털사이트에도 등록되어 있는 인물이었다.


“이런 분이 저를 왜···?”


최기수의 연관 검색어로는 투자의 귀재, 자수성가의 신과 같은 칭호가 따라다녔다.


“제 젊을 적이 생각나서요. 사장님과 좋은 인연을 맺고 싶기도 하고요. 우리 이렇게 이야기할 시간 없지 않나요? 전 주문을 받겠습니다. 사장님은 요리를 해주세요.”


최기수는 가게 안에 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고 씩 웃었다. 기용은 좀 더 이들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손님은 밀려들고 있었고 확실히 일손은 없었으니까. 누구라도 도와준다면 거절할 군번이 아니었다.


오늘 처음 보는 사이니 당연히 손은 안 맞을 수 있지만 그래도 손이 하나라도 더 있는 게 나았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일하신 급여는 제가 꼭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기용의 말에 최기수가 화들짝 놀라서 손사래를 친다.


“내가 하겠다고 왔는데 사장님이 왜 돈을 줘요? 됐고. 우리 빨리 손님이나 받읍시다. 아이고 설거짓거리도 많네.”


최기수의 말에 김태원은 후다닥 개수대 앞으로 갔다. 기용은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됐다.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기에는 최기수의 인상이 너무나도 깐깐해 보였기 때문.


‘손님들을 잘 받으실 수 있을까···. 게다가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으실 것 같은데.’


아까 잠깐 포털사이트에서 그를 봤을 때는 성공한 투자자 그 자체였다. 그렇게 돈이 많고 성공한 사람이 작은 음식점에서 손님들한테 주문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쯤이었다.


“사장님? 장사 안 하세요?”


최기수는 어느새 익숙하다는 듯 카운터 앞으로 가서 포스기를 조작하고 있었다. 최기수는 음식점에서 쓰는 포스기를 처음 봤지만, 한때 IT, 전자 업계에 투자한다고 기계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써봤던 터라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기용도 옆에서 최기수에게 결제하는 방법과 포스기에 메뉴 찍는 법 등을 설명해 주고 화구 앞으로 갔다.


“사장님, 이 고무장갑 끼고 설거지해도 되는 거죠?”


어느새 개수대에 있던 삼분의 일가량의 설거지를 끝낸 김태원이 물었다.


“네. 거기 있는 거 다 편하게 쓰셔도 됩니다.”


작은 가게고 이전까지는 <백반 컵밥>의 장사가 그리 잘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식기 세척기가 없어서 손수 설거지해야 했다. 김태원이 없었다면 설거짓거리가 쌓여서 주문을 더 받기 힘들었을 것.


“사장님, 제육 컵밥 세 개요!”


기용이 설거지하는 김태원의 뒷모습을 보고 상념에 빠져 있을 무렵, 그런 기용을 최기수가 일깨웠다.


* * *


안상태는 <백반 컵밥>의 음식을 먹으러 온 손님들을 바라보며 죽상을 짓고 있었다. 안상태는 <중화루>에서 장사한 지 어느덧 10년 정도 됐다.


옛날에는 이 주변에 워낙 뭐가 없어서 선택지가 많이 없었다. 덕분에 그리 맛있지 않은 음식점인 <중화루>에 사람이 제법 왔다.


덕분에 경기도에 작은 아파트이지만, 가족들이 함께 살 집도 사고 생계를 유지하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 상권에도 음식점들이 들어서고 요즘은 또 배달이 발달해서 외식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자연스레 손님이 줄었고 지난 달에는 심지어 월세도 밀렸다.


이번 달도 낼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머리숱이 없던 안상태는 스트레스로 탈모 진행이 가속화되는 상황이었다.


“잘생긴 사람만 대접받는 더러운 세상!”


안상태는 <백반 컵밥>의 컵밥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장사가 갑자기 잘 되기 시작한 게 기용의 얼굴이 잘생겨서 입소문을 탄 것이라고 착각했다.


같은 남자가 보기에도 풍성한 머리숱에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얼굴이 제법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게 앞이 인산인해를 이뤄서 밖에서 봤을 때 <중화루>가 잘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는데 때마침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요즘 오는 전화는 대출받으라는 스팸 전화와 돈이 없다고 바가지를 긁는 마누라의 전화뿐이었다. 두 쪽 모두 유쾌한 전화는 아니었다.


“뭐야!”


전화의 발신자도 확인하지 않고 안상태는 냅다 핸드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분풀이할 상대가 필요했던 것.


-<중화루> 사장님 맞으시죠?


익숙한 목소리. 건물주 대리인 최아름이었다. 안상태는 인상을 잔뜩 쓰고 있던 표정을 풀고 두 손으로 공손하게 핸드폰을 잡았다.


진짜 건물주는 아니고 대리인이라고 하지만, 그녀에게도 밉보여봤자 좋을 건 없었다.


“네. 안녕하세요. 요즘 스팸 전화가 자주 와서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받았네요. 죄송합니다.”


안상태는 그렇게 말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건물주의 고약한 심보는 이 가게에서 10년 일하면서 주변 가게 사장들에게 많이 들었다.


듣기로는 건물주의 심사에 뒤틀리면 아무리 잘되는 가게라도 갑자기 가게를 빼라고 하거나 월세를 올린다고 했다.


-아닙니다. 그럴 수 있죠. 사장님, 이건 여사님 부탁인데요. 지금 <중화루> 앞에 있는 <백반 컵밥> 손님들, 사장님 가게 안에서 기다릴 수 있게 해주시겠어요? 음료수도 무료로 제공해 주시고요. 음료숫값은 여사님께서 다음 달 월세에서 제한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해주시면 지난달 밀린 월세와 이번 달 월세를 안 받겠다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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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손 +5 24.09.07 2,165 67 12쪽
27 정도 +3 24.09.06 2,268 6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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