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의 요리는 특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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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선
작품등록일 :
2024.08.13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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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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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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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DUMMY


“여보! 조금만 더 늦었으면 전화해 보려고 했어요.”


최기수의 아내이자 최수현의 엄마가 버선발로 나와서 최기수를 반겼다.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엄마를 말리느라 혼났습니다. 엄마는 아빠가 노동착취라도 당한 줄 알고 있더라고요. 아빠가 스스로 몸을 쓰는 고된 일터로 갔을 리가 없다면서요.”


최수현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최기수의 아내인 김옥영 여사는 실제로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다.


최기수가 연락이 되지 않았고 아들인 수현이 하는 말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빠가 <백반 컵밥>이라는 작은 동네 가게에서 설거지하고 있었다고 하지 않나.


“미안하네. 연락하고 싶었는데 손님들이 하도 몰려와서 연락할 시간이 없었어. 그래도 짠. 사장님께 졸라서 참치마요 컵밥 싸 왔지.”


씩 웃는 최기수. 김옥영 여사는 그 모습을 보자, 젊을 때의 최기수와 겹쳐 보였다.


시드를 모으겠다고 잠도 못 자고 투잡, 쓰리잡을 하면서 살았을 때의 최기수의 얼굴이. 유독 지친 날이면 퇴근길에 야식거리를 사 오곤 했다.


김옥영과 어린 수현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김옥영도 그런 최기수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최기수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수현을 바르게 키우고 집안일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가끔 그렇게 갑자기 야식을 사 오는 날이면 자는 최기수를 말없이 꽉 안아줬고.


참 힘든 날들이었지만, 그때만의 낭만이 또 있었다. 매번 좋은 집으로 이사 갈 때마다 느꼈던 설렘, 드디어 경제적 자유를 이뤘다고 생각했을 때의 쾌감.


지금은 그런 것들을 잊고 산 지 오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삶이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최기수의 얼굴을 보고 젊은 날의 부부가 떠오르자, 순간 울컥 눈물이 터졌다.


“흑. 흑···.”

“엄마? 갑자기 왜 울어요?!”


최수현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김옥영의 안색을 살폈다. 분명 울고는 있었지만, 그리 슬퍼 보이지는 않았다.


“이상하게 오늘 신혼 때가 떠오르네요. 집에서 하염없이 당신만 오길 기다리던 것도 그렇고 이렇게 퇴근길에 야식을 사 온 것도 그렇고.”


최기수도 수현과 마찬가지로 걱정스러운 얼굴로 김옥영을 살피다가 그녀의 말을 듣고 아련한 웃음을 보였다.


“그러게. 나도 오늘 젊을 때 생각이 많이 났어. 당신도 그랬다니 참 묘하구먼.”


어린 시절의 기억이 많지 않은 최수현만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최수현의 기억으로는 어릴 적부터 중산층 집안에서 살다가 승승장구한 것밖에는 없었다.


부모가 고군분투하며 치열하게 살았던 아주 어릴 적의 기억은 없던 것. 그래서 김옥영이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몰랐다.


“그간 고생 많았어. 나도, 당신도.”


최기수는 김옥영의 등을 쓸면서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물을 훔치고서 김옥영은 최기수 손에 든 컵밥에 시선을 옮겼다.


“이게 그 <백반 컵밥>이라는 곳에서 가져온 거라고요?”

“응. 사장님이 특별히 퇴근하고 만들어주셨는데 양을 많이 하셨다고 했어. 혹시 몰라서 수현이 것까지 두 개.”


흰 봉지를 흔들며 말하는 최기수.


“오. 제 것도 있다니. 아빠는요?”


최기수는 어깨를 들썩였다.


“난 이미 배 터지도록 사장님 음식을 먹고 왔어. 둘이 먹어.”


둘 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은 상태였지만, 지난번에 먹었던 컵밥의 맛이 워낙 맛있었기에 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어머. 사모님, 식사하시려고요?”


평소에 야식을 잘 먹지 않는 가족이었다. 파출부는 놀라서 물었다.


“네. 이이가 오랜만에 야식을 사 왔네요.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시고 들어가서 쉬세요.”


김옥영은 그렇게 말하고 주방에서 수저를 두 개 가져와서 식탁에 앉았다.


“아빠, 근데 설거지하는 거 안 힘드셨어요? 오랜만에 몸 쓰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게다가 그 연세에···.”


최수현은 아까 최기수가 설거지하는 모습을 봤는데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힘들긴 하지만···.”


최기수는 하루를 되짚어봤다.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흔히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했다.


하지만 최기수는 아니었다. 긴 세월을 돌아보면 빨랐을지 몰라도 하루하루는 지나치게 느리게 흘러갔다.


아주 지루할 정도로. 오늘은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일했다.


“재밌던데? 너도 CPA 붙고 입사까지 남는 시간에는 아르바이트나 해봐라. 사회 경험 쌓고 일 배우기에는 딱인 것 같다. 백번 공부하고 책 읽는 것보다 하루 가서 일 해보는 게 돈에 대한 감을 익히는 데 아주 좋은 것 같아.”


최수현은 최기수의 말이 장난인 줄 알았다. 최기수는 늘 최수현에게 아르바이트할 시간에 공부나 더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그날 밤, 김옥영은 만족스럽게 야식을 먹고 씻고 나왔다. 평소와 같았으면 최기수가 책을 읽거나 뉴스를 보고 있을 시간이었다.


나이가 들면 잠이 줄어든다고 했다. 그게 딱 최기수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새벽 늦게 잠들고 아주 일찍 깨는.


푹 자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말도 종종 했다.


“여보, 내일은···.”


김옥영은 침대에 대자로 누워서 곯아떨어진 최기수를 헛웃음 지으며 바라봤다.


“이 장면까지 보니까 진짜 꼭 옛날로 돌아온 것 같네.”


김옥영에게도 의미 있는 하루였다. 제법 긴 시간 풍족하게 그리고 무료하게 살다 보니 이 생활의 소중함을 잊고 있었다.


“수고했어요. 늘 우리를 위해 고생해 줘서 고마워요.”


* * *


“으아. 오늘 엄청나게 피곤했다.”


기용은 긴 하루 끝에 집에 돌아와 침대에 털썩 누웠다. 이대로 바로 잠들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내일을 위해서는 씻고 자야 했다.


-콩.


털 뭉치 같은 게 떨어지는 소리가 나서 옆을 보니, 어느새 재롱이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뭐야?! 종일 어디에 있다가 왔어?”


기용이 추궁하자, 당황스러운 얼굴로 눈을 이리저리 돌린다.


-나, 나도 엄청나게 바빴멍. 본사에 직접 가서 물류 팀이랑 얘기하느라 못 왔멍.


“본사? 물류 팀?”


재롱이가 있는 곳의 시스템을 알 수는 없었지만, 본사라고 칭하는 걸 보니 제법 체계적인 모양.


-오늘 장사가 아주 잘되지 않았멍?

“응. 오늘 손님도 많았고 역대급 매출도 찍었지. 너 없는 동안 말이야.”


물론 재롱이가 온다고 해서 장사에 더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재롱이가 옆에서 응원이라도 해줬으면 힘이 좀 났을 것 같은 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 내심 서운했다.


-재료는 충분했멍?

“그렇지. 내가 어제 재료를 결과적으로 두 번 시킨 셈이니까···.”


기용은 말하다가 생각해 보니 그렇다고 해도 지나치게 양이 많았다. 오늘 나간 컵밥의 양은 평소 팔던 두 배보다 더 됐다.


-형이 장사를 잘할 수 있게 내가 재료를 계속 수급했멍.


재롱이는 턱을 치키고 두 손을 허리춤에 올리며 당당하게 외쳤다. 제가 생각해도 칭찬받을 만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재료가 남기까지 했던 거구나.”


재료가 남아서 직원들에게 컵밥도 하나씩 맛 보여줄 수 있었고 참치와 김치는 심지어 아주 충분했다.


“고마워. 뒤에서 큰 일을 하고 있었네.”


기용이 재롱이의 복슬복슬한 털을 차분히 쓸어주자, 기분이 좋은지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 내일 시킬 것도 미리 주문해 뒀멍. 내일 아침에 가게에 가면 볼 수 있을 거멍!! 지금은 상점이 안 열릴 시간이잖멍.


재롱이의 말을 듣고 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후 10시가 넘어갔다. 상점은 10시가 지나면 열리지 않았다.


“하마터면 내일 장사를 공칠 뻔했네! 고맙다, 재롱아.”


인터넷으로 재료를 시켜도 됐지만, 상점에서 한 번 시켜보니 인터넷에서 시킨 재료는 성에 차질 않았다.


재료를 손질하고 한 곳에 모아놓으면 차이가 더욱 확연히 드러났다. 특히 대파의 경우, 인터넷에서 산 건 힘도 없고 시들시들한 게 보였는데 상점에서 산 대파는 단단하고 맑았으며, 대파의 향을 많이 내고 있었다.


-별말씀을.


재롱이는 그렇게 말하고 오른손을 들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빠빠라밤~!


[백기용 어린이! Step. 5를 수료했군요.]

-아주 훌~륭해요.


[백기용 어린이, 성공 프로젝트 Step. 6!]

[Step. 6 SNS 팔로워 수를 1만 명 이상으로 만들기!]


다른 때보다 경쾌하게 들리는 Step 성공 소식. 상태창에는 키즈락이 걸려 있어서 저녁 10시 이후에 상태창의 도움을 받을만한 일은 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미션 진행 상황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상태창.”


[이름: 백기용]

[Step. 6 SNS 팔로워 수를 1만 명 이상으로 만들기!]

[포인트: 11,320]

[요리 실력: 중하]

[미각: 중하]

[외모: 중상]

[미감: 중]

[서비스: 중상]

[위생: 중상]

[]

[]

[]

···


위생 슬롯도 추가되어 있었다. 깔끔한 기용의 성격 덕에 무려 중상이나 됐다.


많은 손님을 받았지만, 상점에서 재료를 사느라 포인트를 많이 쓴 탓인지 포인트가 엄청나게 많이 모인 건 아니었다.


“그래도 재룟값이 줄어든 덕에 좋은 동료를 셋이나 얻었지.”


게다가 가게 확장도 최기수가 금전적인 면을 많이 지원해 주겠다고 했으니, 경제적인 부담이 많이 줄어들었다.


“너도 오늘 수고했다.”


기용은 씻고 나와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재롱이를 향해 속삭였다.


-형도 수고했멍. 어떠멍? 성공에 좀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멍?


작은 목소리에도 깬 재롱이가 여전히 졸린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물었다. 나지막한 목소리. 녀석도 무척이나 피곤하긴 한 모양이었다.


“응. 성공도 성공인데 행복하네···. 오랜만에 이런 느낌을 느껴본 게 얼마 만인지. 삶이 참 충만하다고 느껴져.”


기용은 누운 자세로 재롱이를 바라보며 읊조리듯 말했다. 목에 힘을 주고 대답할 기운이 없었다. 무척이나 고단했던 하루였기에.


-형아, 잘 자멍.


재롱이도 그런 기용을 빤히 바라보다가 기용이 베고 있는 베개의 반대쪽을 베고 누웠다.


* * *


“더, 덕영아···!”


오덕영의 부모는 덕영이 면접을 보겠다고 나가서 오래도록 들어오지 않아 걱정했다. 오덕영도 최기수와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바빠서 전화를 받을 정신이 없었다.


걱정하고 있던 와중에 멀쩡한 모습으로 들어온 오덕영. 아니, 어딘지 모르게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다, 다녀왔습니다.”


오덕영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왜 이렇게 늦은 거냐. 무슨 일 있었어?”


오덕영의 아빠는 오덕영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오덕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요. 내일부터 추, 출근하게 됐습니다.”


입 밖으로 출근이라는 단어를 내뱉고 나니 더욱 실감 나는 아까까지의 상황. 마치 꿈을 꾼 것만 같았다.


“이게 무슨 일이냐···.”


오덕영의 부모는 오덕영이 어디에서 일을 하는지, 어쩌다가 출근을 당장 하게 된 건지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오덕영이 무언가를 제 힘으로 해냈다는 사실이 기특했을 뿐. 오덕영의 부모는 자꾸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훔쳤다.


* * *


“으악! 헉.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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