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1조원의 남자
1조.
그 금액을 가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평범한 직장인이 1억원을 모으는 데 걸리는 시간.
현실적으로 달에 100만원씩 저축을 하더라도 8년 4개월이다.
그런데 그 금액이 1조라면··· 83,333년이 걸린다.
직장인으로서 꿈도 꿀 수 없는 돈.
그리고 오늘.
나는 그 금액을 손에 넣었다.
2021년 4월 14일.
비트코인은 81,987,000원을 찍고 점차 내려오기 시작했다.
+537.74%의 수익률.
비트코인을 전량 매도하자 업부트 계좌에는 1조 740억원이 찍혀 있었다.
***
경영전략실로 발령 난지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일론 마스크와의 식사자리에서의 내기를 떠올렸다.
"21년 10월 31일. 티슬라의 주가는 1243.5불로 고점을 찍고 내려올 겁니다."
"하하- 그 말이 맞다면 기분은 좋지 않을 것 같네요."
그 내기의 결과를 알기까지 앞으로 6개월정도 남았으려나.
- Only Invest.
주말 아침임에도 사무실에서는 각 인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들 잠시 모여주세요."
5층의 회의실.
커피머신에서 갓 내린 커피 한 잔씩을 손에 쥔 채 한 자리에 모였다.
봄이 가고 여름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아직은 쌀쌀한지 커피에서는 김이 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얼음이 가득 담긴 내 잔만을 제외 한 채.
나는 커피 한 모금으로 목을 가볍게 축이고는 입을 뗐다.
"아무래도 저희의 첫 계획을 실행에 옮길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박 이사님께서 상세히 설명해주실 겁니다."
박 이사는 옷을 한 번 다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천천히.
그리고 균일한 보폭으로 걸어가 스크린 앞에 위치했다.
"저희 Only 인베스트가 공략할 첫 기업은 바로 이 곳입니다."
그의 말에 맞춰 ㈜은양과 관련된 자료들이 화면에 띄어졌다.
그러고는 다시.
"㈜은양은 차세대 하이니켈 2차전지인 NCMA계 양극재를 생산하기 위한 핵심 원료인 수산화리튬 가공 설비를 구축했습니다. 최근에는 관련 제품의 승인을 득하며 상한가를 찍기도 했죠. 확실한 건 지금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는 기업이라는 겁니다."
발포제 사업을 영위하던 ㈜은양은 생산 공정과 수산화리튬의 가공 공정이 유사한 것을 확인하고 곧장 수산화리튬 사업에 뛰어들었다.
대세 사업으로의 전환.
경영진의 빠른 판단이 아니었으면 불가할 일이었겠지.
"㈜은양의 총 발행주식은 5,260만주. 그리고 최근 투자자금 확보를 위해 대표이사가 보유 주식의 8%를 처분함에 따라 대표이사 보유 지분은 약 30% 수준입니다. 특수 관계인들을 포함하더라도 1% 내외이고요."
"그럼 저희가 ㈜은양을 인수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금은 얼마 정도 되는거죠?"
권도훈의 물음에 박 이사가 대답했다.
"1,000억원. 그 수준이면 가능합니다. 지분 매입이 시작되면 5% 룰에 따라 저희 인베스트가 경영참여 목적으로 공시될 경우 일시적인 주가의 상승으로 여유 실탄은 필요하겠지만요."
대표이사의 지분이 30% 수준이라고는 하나 박 이사는 모든 변수를 제거하기 위해 최소 51%의 지분을 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투자 자본의 10%.
㈜은양 내부에서 몽골 리튬 광산에 대해 어디까지 진척이 됐는지 중요하다.
리튬 광산이 나가리 된다면 이번 투자는 실패다.
박 이사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어떤거죠?"
"지분 매입이 시작되면 ㈜은양 측으로부터 협상을 위해 연락이 올 겁니다. 그 테이블에는 누가 가는게 맞을지···"
Only 인베스트의 형식적인 대표이사는 박준혁 이사였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경영전략실에서 협상이라면 지독하게도 많이 봐왔다.
이제는 그걸 실전에 적용할 차례다.
"모습을 드러내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어차피 제가 뭘 하는 사람인지도 모를 겁니다. 테이블이 마련되면 주요 내용들에 대해서는 박 이사님이 논의해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뒤이어 정우용을 바라봤다.
"그리고, 정 실장님."
"네, 대표님."
처음에는 친구 사이에 대표님이라는 호칭을 극도로 어색해했는데 지금은 얼추 적응이 된 것 같았다.
"지분 매입이 이뤄지면 주변 언론사들이 득달같이 달려들 겁니다. 가급적 기업사냥꾼 같은 부정적인 내용들이 기사에 나오지 않도록 사전에 접촉해주세요. 혹여나 인터뷰를 요청하는 경우에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거절해 주시고 꼭 해야하는 상황이 생기면 그 인터뷰는 박 이사님이 진행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정우용은 Only 인베스트에 온 직후부터 기자들을 만나느라 마시지도 못하는 술들을 연거푸 마시고 다녔다.
그 탓에 주량이 소주 한 병에서 두 병으로 늘었지만.
그의 주름살도 함께 늘어난 것 같았다.
"그럼, 회의는 여기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해주세요."
"네!"
우렁찬 소리가 사무실 안을 가득 메웠다.
진짜 시작이다.
***
월요일 아침 출근길.
아방떼N의 라디오에서 DJ의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말소리인지 기계음인지.
지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지직- 네, 안녕하세요. 아침이 좋다 DJ 박훈입니다. 지직- 오늘은 최근 떠오르는 화제의 탑스타죠. 한수지씨를 모셔왔습니다.]
한수지.
그녀는 에코포로 홍보모델이 된 이후 세간에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톱스타의 복귀 무대가 평범한 기업체에다 낮은 모델료로 홍보모델을 했다는 것이 알려지며 그녀의 대한 미담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미담이라.
그 미담을 작성한 대부분의 IP가 에코포로의 정우식 부장인게 알려지며 정 부장이 곤혹을 치루긴 했지만.
무튼 그 탓에 처음에는 잦게 오던 연락이 이제는 뜸해지기 시작했다.
그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려면 당연한 것이려나.
[치직- 안녕하세요. 한수지입니다.]
[네, 치직- 반갑습니다. 다시 원래의 한류스타 한수지로 돌아오기까지 고작 걸린 시간이 육개월인데 소감이 어떠세요?]
[소감보다는 한 사람에게는 감사한 마음을 느끼고 있죠. 치직- 제가 다시금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준 사람이니까요.]
한 사람이라.
그게 설마 나인가?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는 라디오를 경청했다.
[와, 누구인지 정말 궁금한데요? 한수지 씨가 치직- 감사하다는 그 사람이 혹시 라디오를 듣고있을지도 모를텐데 한 마디 하시겠어요?]
[음··· 잘 지내요? 이제는 사람들과 함께 식당에 들어가면 수저와 젓가락을 세팅하고 물부터 따르기 치직- 시작했어요. 기본도 없는 제게 그런 기본들을···]
띡-
내 미담이 흘러나오고 있는 가운데 정 과장이 라디오를 끄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라디오 빨리 고쳐야겠네. 대표님 거슬릴텐데."
애는 착한데.
항상 보다보면 눈치가 참으로 없었다.
"대표님. 도착했습니다."
"정 과장님. 오늘 아침부터 시작해서 ㈜은양 지분 매입이 이뤄질 겁니다. 증권가 쪽으로 Only 인베스트가 어떻게 소문이 퍼져나가는지 동향 계속 확인해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그 길로 모퉁이에서 내려 에코포로 본사를 향해 걸어갔다.
***
일층 로비.
비트코인이 고점을 찍고 내려온 탓에 최근 직원들 사이에서의 화젯거리는 코인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이.
들려오는 직원들의 대화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건전한 조정이에요. 비트코인 1억 무조건 간다니까요?"
"하아- 김 대리. 올라도 너무 올랐어. 정리하려면 지금 해야돼."
"그릇만큼 먹는단 말도 못 들었습니까? 이 과장님 같은 분은 투자를 하시면 안되는 체질이에요."
"뭐? 내가 그릇이 작다는 거야?"
그릇만큼 먹는다는 말.
적어도 먹을 수만 있다면 다행이다.
투자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못 먹는 사람들이 태반이니까.
"그런데 이 과장님. 요새는 비트코인보다 알트코인들이 더 잘나가는 거 아세요?"
"아, 알트 코인?"
알트 코인(Alternative Coin)
비트 코인 외에 모든 코인을 알트 코인으로 칭하고 있었다.
"이것 좀 봐보세요. 요새 엑시인피니트 코인이라고 업부트에 22,000원에 상장했다가 조정와서 8,000원까지 떨어졌어요. 그런데 코인이 꽤나 흥미로워서 한 번 담아보려고요."
"그게 무슨 코인인데?"
"동남아에서 흥행하고 있는 게임이 엑시인피니트인데 이게 P2E(Play to Earn)라고 해서 게임을 하면서 얻은 토큰을 그대로 코인으로 전환시킬 수가 있어요."
"게임으로? 우리도 할 수 있는거야?"
"아니요. 국내에서는 금지시 되어있다보니까 저희는 그냥 코인만 사서 오르길 바랄 수 밖에 없죠."
"뭐야. 그런 잡코인 같은거 샀다가 패가망신 할 수 있어."
"잡코가 아니라니까요? 진짜 후회하실 겁니다."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엑시인피니트라.
과연 누구 말이 맞을지 한 번 확인이나 해볼까.
나는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업부트를 켰다.
비트코인 시세를 확인하는 것 외에 다른 코인들의 시세를 확인하기 위해 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엑시인피니트(AXS)를 검색하자.
그 옆으로 보여지는 '미래시'
두 눈을 의심했다.
이렇게 오르는 게 가능하다고···?
21년 4월 19일.
지금의 시세는 8,050원.
그리고 그 옆으로 보여지는 '미래시'
[2,402.7%, 201,900원, '21.11.6]
고작 7개월이다.
엑시인피니트의 시가총액은 1조원.
투자 금액 전부를 투자할 경우 되레 주가의 미래가 바뀔 수 있다.
단순히 1,000억원을 분할로 매수할 경우 내가 벌어들일 수익은···
2조 5천억원.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다한증도 없는 내 손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달아 보여지는 알트코인들의 '미래시'
대부분의 상승률이 엑시인피니트보다는 못미쳤지만 그에 상응하게 지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리스트를 정리하고는 곧장 박 이사에게 전화를 넣었다.
- 네, 대표님.
"문자로 코인 종목과 투자해야 할 금액을 보내놓았습니다. 종목별로 분할 매수 진행해주세요."
종목은 족히 스무개를 넘어갔다.
시총에 따라 낮은 시총에는 적은 금액을.
많은 시총에는 1,000억원 수준까지 적혀있었다.
- 네? 대표님 비트코인도 아닌 알트코인들을 샀다가는 투자금 손실이 상당할 수 있습니다.
"한 번만 믿어주세요. 저희 펀드가 피해보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박 이사.
코인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권도훈으로 인해 그 시선이 점차 변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 종목에 수백억원을 태운다는게 하이리스크로 보여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동안 박 이사의 휴대폰에서 말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그의 침 삼키는 소리는 선명히 들려왔다.
"박 이사님?"
- 진행···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식의 반복이라면···
미국을 집어삼키는 것도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박 이사는 전화를 끊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러다 바닥에 나앉게 되면 은양에서··· 다시 받아주려나?'
김민규와의 통화때문이었을까.
박 이사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얼마 남지 않은 머리 한 올이 낙엽잎처럼 살랑살랑- 그의 손 위로 안착했다.
그는 머리카락 한 올을 잡은 채 햇빛이 내리쬐는 창가를 바라봤다.
"그래도 내가 선택한 대표니까 믿고 따라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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