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한 고인물이 특전을 독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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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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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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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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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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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1)

DUMMY




 내가 삽날에 바른 것은 ‘검은 칼날의 이끼’라고 불린다.

 곱게 갈아낸 뒤 충격을 가하면 이게 칼날처럼 매우 날카롭게 솟아나는데, 안타깝게도 몬스터와 싸울 땐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

 피와 체액을 비롯한 수분이 닿거나, 너무 강한 충격을 받으면 칼날이 힘을 잃기 때문이었다.


 지속시간도 두어 시간 정도라 보통 덩굴을 베거나 할 때 유용하게 쓰지만, 그 진가는 땅을 파는 것에 있었다.

 이걸 바르면 마치 눈밭에 삽을 집어넣는 것처럼 저항 없이 흙을 파는 게 가능했으니까.


 “자, 그럼. 여기가 원래 입구일거고.”


 내가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 게이트는 빛을 잃고 아치형 장식물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이걸 레닉수스의 게임 시작 지점이라고 생각하면, 그 너머를 향해 걸어가야 했다.

 정상적인 진행 방향과는 완전히 반대.


 가는 길에 발견한 작은 샘에서 수통을 채운 뒤, 계속해서 걸어갔다.


 10분 정도 걸음을 옮겼을까, 서서히 숲속에 안개가 끼는 것이 느껴졌다.

 이 방향대로 한참 걸어가면 ‘숲의 결계’가 있다는 의미였다. 


 “이 근처일 텐데···. 아.”


 찾았다.

 얼추 200평 정도, 커다란 놀이터만 한 넓이의 땅이 가뭄이 온 것처럼 바싹 말라 있는 곳.

 그 위에 올라서자 묘하게 지반이 불안정한 느낌이 들었고, 나는 거침없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삽날이 잘 들어간다고 해도, 흙을 푸는 것까지 가벼워지진 않는다.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체력적으로 문제는 없었다.


 미래 세상에 있을 당시, 게임 생활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구매한 게 회복 캡슐이었다.

 누워있기만 해도 신체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해주는 것을 넘어, 오히려 본래 이상의 건강한 몸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장치였다.

 특수 옵션으로 영양제까지 매월 꾸준히 갈아줬으니, 내 몸은 현대 운동선수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돈만 있다면 힘, 건강, 수명, 심지어 타인의 삶까지 모조리 살 수 있는 시대에서, 이 정도 근육과 체력은 큰 돈 없이도 만들 수 있는 수준이었다.


 쿠궁.


 1시간 정도 땅을 한 곳만 파 내려가던 와중, 갑자기 지면이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씨익 웃으며, 삽에 힘을 꽉 주고 온 힘을 다해 내리찍었다.


 쿠구궁!


 그러자 주변의 지반이 먼지를 흩날리며 붕괴했다.

 3m 정도 아래로 떨어졌지만, 미리 대비한 데다가 흙더미가 쿠션이 되어 크게 아프진 않았다.


 “콜록!”


 먼지가 걷히고, 눈앞에 드러난 것은 거대한 땅굴이었다.


 구불구불하지만 거대한 이 땅굴은 장정 네댓이 나란히 걸어 다녀도 걷는 데 문제가 없을 만큼 거대했다.

 게다가 벽이나 천장에 마치 별가루처럼 뿌려진 무언가가 은은히 빛을 밝혀주고 있어 횃불이나 라이트 마법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탐사할 수 있었다.

 땅굴을 파는 게 습성인 어떤 거대한 몬스터가 지나가며 뿌린 흔적들이,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남아있던 것이다.


 “콜록, 휴. 자, 갈까.”


 잠깐의 휴식을 취한 뒤, 곧바로 나는 땅굴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땅굴의 재밌는 점은 숲속 이곳저곳에 미로처럼 존재하는 결계인 ‘원점회귀의 계’를 파훼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헤메이는 숲은 아주 거대한 미로 같은 공간인데, 무턱대고 한쪽 방향으로 쭉 나아가다간 다시 모닥불이 있는 시작 지점으로 돌아오고 만다.


 거대한 숲 전체에 결계가 거미줄처럼 군데군데 뻗어나가 있기 때문인데, 재밌게도 땅 아래에는 그 결계가 작용하지 않는다. 

 미로긴 하지만, 잘만 이용한다면 한방에 숲 출구 근처의 땅굴로 나올 수도 있다고 희미하게 기억이 난다.


 인터넷에는 땅굴에 대한 정보가 없긴 했지만, 분명 알고 있는 사람은 꽤 될 것이다.

 지금 내가 들어온 이곳 말고도 숲 이곳저곳에 땅굴로 이어지는 비밀통로가 있으니까.


 ‘그래도 기껏해야 숲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는 정도만 알겠지만.’


 내가 하려는 건 땅굴을 통해 숲 출구 근처로 가는 것이 아니라, 더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이쪽이지?”


 [ 정리된 기록에 따르면 이 앞에서 우측으로 꺾어야 할 확률이 95% 정도입니다. ]


 “나머지 5%는?”


 [ 레닉수스 초기 플레이 로그에 기록된 도혁 님의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거야’라는 말씀 이후, 제 안내를 무시하고 직진하셨을 확률이 5%입니다. ]


 “···그게 5%나 된다고?”


 한참 알티와 시답잖은 대화를 이어가며 계속해서 땅굴 아래로 걸어 나갔다.

 길이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곳도 있었고,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이 이리저리 혼재된 곳도 있었지만, 알티 덕에 기억을 더듬을 필요도 없이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은은한 빛이 나는 땅굴 속 풍경을 감상하며, 꼬불꼬불한 길을 한 시간 넘게 내려왔고.


 “여기겠지.”


 [ 대화 기록에 따른다면 그렇습니다. ]

[ 맵 기능은 아직 열려있지 않아서, 출발 지점에서 이동한 거리와 방향을 계속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

[ 높은 확률로 이 곳이 '교차 지점' 입니다. 오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유능해서 좋네."


 목표로 하던 지점에 도착했지만, 주변 풍경에 특별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쭉 아래로 이어지던 땅굴이 아주 완만한 V자 모양을 그리며 오르막길이 다시 시작될 뿐.


 다른 사람이 이곳에 도착해봤자, 아무런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계속 걸어갈 만한 그런 장소.


 오차가 있든 없든 지금 할 일은 하나였다.

 연금 주머니에 조금 남은 ‘검은 칼날 이끼’를 모두 삽에 펴 바르고 활성화한 뒤, 곧바로 두 번째 삽질을 시작했다.



**



 이 세상, 그러니까 레닉수스의 세계의 표면은 거대한 바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지구보다 훨씬 더 거대한 것으로 추정되는 표면 위, 수없이 펼쳐진 하늘섬들이 존재하는 세계다.


 그렇다면 만약, 하늘섬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모든 섬에는 거대한 막이 존재하여 내부의 생명체가 바깥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는다.


 “후욱! 후욱!”


 한참 동안 땅을 파고, 또 쌓인 흙을 바깥으로 퍼낸다.

 수직으로 파 내려가는 게 아니라 옆으로 파고 있어 비교적 쉽긴 했지만, 흙을 꺼내는 게 힘든 것은 매한가지였다.

 수통을 꺼내 목을 축인 뒤, 곧바로 다시 삽질을 재개했다.


 “후우, 숨차네. 알티, 그거 이름이 뭐였지?”


 [ 네뷸라 가드 말씀이군요. ]


 그래, 네뷸라 가드인가 뭔가.


실제로 저렇게 부르던 사람들은 거의 없고, 다들 그냥 ‘섬의 결계’라고 부르곤 했다.

 결계는 빈 곳 하나 없이 섬을 둘러싸고 있기에, 섬에서 떨어진 생명체는 언젠가 반드시 거기에 닿을 수밖에 없다.


 그럼, 그 생명체는 순식간에 결계의 천장으로 몸이 이동한다.

 마치 텔레포트나 워프 같지만, 그 어떤 전조 현상이나 마력의 흐름조차 없다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사과를 떨어뜨리면 땅으로 떨어진다’라는 명제처럼.

‘섬의 결계 안쪽에서 바닥에 닿으면 천장으로 이동한다’ 또한 불변의 진리인 것.


 결계의 천장까지 이동한 생명체는 천천히 섬을 향해 낙하하게 되는데, 속도는 일정하게 유지되며 그다지 빠르지 않아 제대로 서 있기만 한다면 어린아이라도 크게 다치는 일 없이 안착할 수 있다.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는 태초부터 존재해 온 법칙이다 보니, 어떤 섬에서는 아이들이 결계를 놀이기구처럼 타고 노는 일도 흔했다.


 ‘그래서 정해진 수단을 제외하곤, 절대 다른 섬으로 이동할 수 없지.’


 그 결계를 통과하는 수단은 여럿 있지만, 그 이외 다른 방법으로 섬에서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때문에 개척자들이 직접 비행기니 열기구니 하는 것들을 만들어서 다음 섬으로 이동하는 꼼수가 통하지 않는다.


 섬의 결계는 이 세계를 구성하는 법칙이나 마찬가지였고, 이것이 큰 문제가 일으킨 적은 없었다.


 딱 한 번의 케이스를 제외하고.



**



 흙을 파내고 퍼내고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슬슬 삽 끝에 부착된 검은 칼날 이끼가 닳아가는 것이 느껴질 때쯤.


 파삭!


 “오.”


 흙을 퍼내기 위해 삽으로 끝을 밀어낸 순간, 마치 쌓여있던 스티로폼 자재들을 박살 내는 것 같은 모습과 함께 눈앞의 흙들이 앞으로 밀려 나갔다.

 그 흙더미는 마치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허공에 두둥실 떠 올랐고, 눈앞에는 그토록 바라던 목표 지점, 청량한 하늘이 나를 반겼다.


 옆으로 파내던 구멍이 마침내 섬의 땅을 밀어내고 아래까지 도달하게 된 것이다.


 “흐아! 드디어 도착했다.”


 그제야 나는 삽을 옆으로 던지곤,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흙이 무너지지 않을만한 지점에 앉곤 바깥을 바라보았다.

 시야 저 멀리, 바닥을 뚫고 내려올 정도로 거대한 식물의 뿌리 2줄기가 겹친 게 보였다.


 [ 과거 도혁 님이 ‘인삼이 다리 꼰 것 같네’ 라고, 말하셨던 기록이 있습니다. ]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싶은 생각에 피식 웃었다.

 저 땐 체력이 넘쳤나 보다.

하긴 뭐, 점핑으로 만든 캐릭터라 150레벨을 넘긴 힘을 가졌을 테니 손쉽게 여기까지 도착했을거다.


 아무튼 알티의 말 덕분에, 역시 이곳이 내가 기억하던 그 지점인 게 거의 확실해졌다.


 “숲과 섬의 결계가 서로 만나는 지점···의 바닥.”


 지금까지 설명했던 섬의 결계.

 그리고 숲속을 헤매는 사람들을 시작 지점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숲의 결계.


 누군가 설치한 것이 아닌, 마치 물리법칙처럼 태초부터 존재하는 결계가 두 개나 있는 곳은 이 섬이 유일했다.


 땅굴을 통해 숲의 결계를 파훼할 수 있다는 말은 곧, 숲의 결계가 땅 아래로는 기능하지 않는 반구(半球)의 형태를 가졌다는 이야기.

 그리고 섬의 결계는 섬 전체를 감싸는 타원 모양의 넓적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한가지, 숲 결계의 형태엔 특이한 점이 존재했다.


 반구의 형태를 가졌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론 원뿔에 가까웠던 것.

 둘 다 바깥에서 육안으로 보이진 않지만, 숲의 결계 중앙의 높이가 매우 높아 섬의 결계를 침범하다 못해 뚫고 올라가 있는 상태인 것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레닉수스에는 어떤 버그가 발생했었다.

 앞으로의 게임 운영 전체에 영향을 줘버린, 가장 유명한 동시에 치명적인 버그가 말이다.


 “자, 그럼.”


 자리에서 일어선 뒤, 두근거리는 가슴을 최대한 진정시켰다.

 땅굴 끝 하늘과 마주하던 부분까지 발을 내디뎠고 눈을 감은 채 깊게 심호흡했다.


 “후우···. 제발 됐으면 좋겠네.”


 이 세계는 레닉수스를 그대로 들고 왔지만, 분명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어쩌면 버그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수정된 버전을 가지고 왔을 가능성도 있고, 버그는 어디까지나 게임이었을 때만 발생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시도해 봐야지.’


 만약 안된다고 해도, 하루정도 시간을 버렸을 뿐인 그런 이야기다.

이 길 끝에 있을 과실은 그냥 지나가기엔 너무 달콤했다.


 굳게 마음을 먹은 뒤, 하늘 아래로 몸을 던졌다.


 휙.

 슈우우욱!


 “흐읍!”


바람이 몸을 감싸고, 점차 낙하 속도가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어느 정도 낙하에 익숙해졌을 때, 혹시나 모를 일을 대비해 눈을 활짝 떴고.


 눈앞에 광활한 바다의 풍경이 펼쳐졌다.


 드넓은 수평선이 끝없이 이어져 하나의 선을 그리고 있었다.

 부드럽게 일렁이는 바다 위로, 반짝이는 햇빛이 파도마다 작은 다이아몬드처럼 부서지며 빛을 뿜어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순간, 몸을 뒤덮은 풍압이 잊힐 만큼 무척이나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게임으로 겪었을 땐 그다지 감흥이 없었던 것 같은데.’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한 기분이었다.


 [ 곧 결계에 닿습니다. ]


 알티의 목소리가 풍경에 빠져버린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해주었다.

 나는 턱을 약간 아래로 당겨 목이 곧게 펴지도록 한 뒤, 몸을 최대한 곧게 펼치고 팔과 다리 또한 일직선으로 바짝 붙였다.


 ‘목이 꺾이지 않게.’


 거기에 최대한 목에 힘을 바짝 주었다.

 결계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긴장을 쭉 풀지 않았고.


 웅!


 시야가 뒤집혔다.

 어느새 나는 숲의 상공에 있었다.


 우우웅!


 섬의 결계의 법칙에 따르면, 내 몸은 곧바로 낙하해야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상공에 바짝 고정된 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현상을 확인한 순간, 나는 버그가 성공했음을 확신했다.


 단순히 이동을 차단하는 섬의 결계 상층부와 달리, 결계의 하층부는 생명체를 정확히 위아래 대칭이 되는 위치로 이동시켜 버린다.

 그런데 만약 그 생명체가 걸쳐지게 된 상공에 하필 숲의 결계 외곽 또한 정확히 걸쳐있게 된다면?


 ‘천천히 섬의 바닥으로 낙하시킨다’라는 명령과 ‘시작 지점으로 돌려보낸다’는 명령.

 완벽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동하게 된 두 명령은, 이윽고 교착상태 오류를 일으키게 되고.


 그 결과.


 “큭, 크으으윽···.”


 순간 오장육부를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고는, 내 몸에서 떨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근육에서 시작되는 떨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손이 날 쥐어 잡곤 덜덜 떨고 있는 듯한 감각.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 흐른 뒤.


 [ 즐거운― ]


 쐐애애애액!


 “우와아아아아악!”


 [ 비행 되시길. ]


 파아아앙!


 총에서 발사된 총알 마냥, 내 몸은 정확히 수직으로 하늘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



 “얼마나 걸렸죠? 11시간?”

 “10시간 39분.”

 “꺄악! 스승님들이 말씀하긴 시간보다 1시간이나 빨랐잖아!”

 “으흐흐, 기록에 분명 남았겠지? 지역 랭킹 1등으로 말이야.”


 6명의 사람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특수 옵션이 부여되어 은은하게 빛이 나는 장비들을 착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미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지 바닥에서 발을 동동 띄운 채 움직이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그들은 성도혁과 이사수가 금수저 개척자라며 잠깐 쳐다보았던 바로 그 일행들이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아무리 빨라도 하루는 걸려야 할 ‘헤메이는 숲’을 고작 10시간 반이라는 시간 만에 돌파하는 기록을 세워낸 것이다.


 “호들갑 떨지 마라. 세계 신기록은 아니니까.”


 그중에서도 두터운 갑옷과 검을 허리에 찬 인물이 입을 열었다.


 6명의 일행 중에서도 가장 비싸 보이는 장비는 물론, 그 사이사이로 근육질과 흉터투성이의 몸도 보였다.

 190cm가 넘는 거구에, 굵고 날카로운 인상까지.


 그의 말에 모두 집중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가 이 일행의 리더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으, 그래도 한국 신기록은 확정인데, 태오는 더럽게 깐깐하다니까. 좀 즐겨도 되잖아.”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마법사 여성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호들갑 떠는 동료들에게 핀잔주듯 이야기하긴 했지만, 일행들의 리더인 서태오 또한 내심 기쁘기는 매한가지였다.

 헤메이는 숲을 통과한 기록은 운명의 거울 속에 영구히 각인되는 기록인 데다가, 신입 개척자들에겐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스펙이었다.


 국가별 등수까지 시스템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1등은 꽤 의미가 큰데, 심지어 기존 한국 기록보다 몇 시간은 더 앞당긴 기록이었다.

 최소한 반년에서 1년은 깨지지 않을 기록일 게 확실했다.


 “이곳에서 30분 정도 장비를 정비하고, 이후 도시를 향해 출발한다.”


 하지만 겉으로 티를 낼 필요는 없었다.

 자신은 이 파티의 리더.

 리더는 좀 더 무거운 분위기로 파티의 중심을 잡아줄 필요가 있다고 교육받지 않았던가.


 일행들은 그의 말을 듣곤 짧게 대답한 뒤, 자리에 앉아 각자의 짐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바위 위에 걸터앉은 서태오는 고개를 들었다.

 청량한 하늘이 마치 ‘올 테면 와봐라.’고 그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반칙이나 다름없는 이 시작 장비들. 거기에 각 분야별 한국 최고의 인물들에게 반년 넘게 배운 기술들까지. 우리 파티는 다시 만들어지기 힘들 최고의 신성들만 모여있다. 분명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곧 역사가 될 테지.’


 가진바 재능으로만 따지면, 적어도 한국 내에서는 적수가 없을 거라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같은 한국인이 아니라, 저 너머 세계에 있을 거라고.


 머리 위로 보이는 몇 개의 하늘섬들. 구름으로 가려진 저 하늘 뒤에는 끝없는 섬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겠지.

 헤메이는 숲의 1등 기록을 갈아치운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제 첫걸음이다. 앞으로 2년. 2년 안에 우리는 이 한국 개척자계의 선두에 선다.’


 이계 탐사를 주도하는 파티는 바로 우리가 되리라.

누구보다 빠르게 이 하늘섬들 위로 올라가리라.


 그렇게 주먹을 쥐고 다짐한 그 순간.


 “우···아···아······아···악!!”


 어딘가 멀리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비명 같은 그 목소리에 서태오의 고개는 물론, 파티원들까지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방향은 조금 전 그들이 빠져나온 ‘헤메이는 숲’이었다.


 “뭐지요?”

 “사람···소린가?”

 “까마귀 같은 게 길게 울부짖는 소리 같기도 하네요.”

 “원숭이 소리가 아니라?”


 파티원들은 바람을 타고 온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정도에 그쳤지만, 이미 평범한 인간을 훨씬 뛰어넘은 시력을 가지고 있는 서태오의 눈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들어왔다.

 바로 숲의 상공에서 더 높은 하늘을 향해 쏘아져 나가는 작고 길쭉한 알갱이가 보였던 것.


 그 알갱이는 원근감에 착시가 느껴질 수준으로 기괴하리만치 빠르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하늘을 뚫고 우주까지 도착할 것만 같은 기세로 말이다.


 몇초도 지나지 않아 곧 그 알갱이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뭐지?’


 절대 사람 같진 않은데. 아직 밝혀지지 않은 몬스터같은게 숲 안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곧 신경을 끄고 검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다시 숲에 들어갈 일은 없었으니까.

 지금은 양성소의 수석 통과를 준비할 때···.


 “뭐, 아니, 뭐!? 말도 안 돼! 태오야!”

 “최민서, 왜그러지?”


 그리고 무언가 말도 안 되는 것을 본 듯한 여성의 목소리에 서태오가 반응했다.

 여성은 얼굴이 벌게진 채로 손에 들고 있던 휴대용 운명의 거울을 그에게 내밀었다.


 [ --- 업적 기록 --- ]

 [ 헤메이는 숲 ]

 [ 돌파 랭크 : SS ]

 [ 소요 시간 : 0일 10:39:42 ]

 [ 지역 랭킹 : 2위 (파티) ]


 2위.

 순간 잘못 봤나 싶어 눈을 끔뻑였다.

 하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누가 이런 말도 안되는.


 까득!


 이를 악문 서태오의 머리에 실핏줄이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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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진짜 재능이란 (1) 24.09.02 1,319 45 20쪽
15 돌풍을 몰고 오는 (4) 24.08.31 1,306 41 18쪽
14 돌풍을 몰고 오는 (3) 24.08.30 1,333 40 18쪽
13 돌풍을 몰고 오는 (2) 24.08.29 1,433 3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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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최초의 특전 (3) +1 24.08.27 1,578 44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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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최초의 특전 (1) +1 24.08.25 1,691 42 16쪽
8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3) +2 24.08.24 1,684 45 18쪽
7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2) +3 24.08.23 1,719 44 18쪽
»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1) +1 24.08.22 1,811 4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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