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한 고인물이 특전을 독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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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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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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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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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는 자 (4)

DUMMY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양옆에 서 있던 두 덩치가 그야말로 똘마니다운 욕설을 내뱉으며 무기를 휘둘렀다.


 “에이씨, 죽여!”

 “지랄,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본데!”


 힘이 잔뜩 담긴 것 치고는 꽤 절제된 동작이다.

 기초 교육 훈련소 정돈 열심히 이수했나 보군.

 아니면 필시 현대에서 싸움을 좀 해봤던가.


 그래봐야, 고작 초보 개척자의 일격에 불과하다.

 내게는 느려도 너무 느렸다.


 몸을 뒤로 굽히며 왼쪽 깍두기 녀석의 무릎을 발굽으로 강하게 밀어버린다.


 “어, 어어!”


 퍽!


 쿵!


 마치 코미디 영화를 보는 것처럼 두 덩치가 서로 엉키고 휘청이더니 그대로 넘어지고 만다.

 얽힌 둘의 상체가 쓰러진 곳은 방금까지 내가 서 있던 자리였다.


 그리고 정확하게 그 지점에.


 슈욱!


 콰지직!


 왼손으로 연습용 단검을 꺼내 내리찍는다.

 한 명은 팔목, 한 명은 손등.

 단검은 나무 바닥까지 관통해 깊숙이 꽂혀 들어갔다.


 “끄아아아악!”

 “아악! 씨발, 진짜! 아아악!”


 어우, 목청 큰 것 좀 봐라.

 왜 조폭을 했냐, 성악가나 지원해 보지.


 분명 굉장히 아프긴 할 거다.

 이건 빅터 교관이 준 단검이 아닌, 기초 훈련 수료식 날 내가 사용해 놓고 반납을 깜빡했던 연습용 단검이다.

 날이 세워져 있지 않고 뭉툭하기 때문에, 오히려 놈들의 살과 신경을 짓누르며 찢어버렸을 테니 고통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한 녀석이 단검을 빼기 위해 손을 뻗는 게 눈에 들어왔고.


 쿵!


 나는 아예 그 손을 발로 밟아버렸다.

 고통을 참지 못해 몸을 돌리며 발차기를 시도하는 나머지 녀석.


 안된다니까.


 단검을 밟고 있던 발에 힘을 주어 몸을 공중에 띄우고, 반대쪽 다리를 접어 무릎을 아래로 향했다.


 타이밍 맞춰서, 하나, 둘.

 힘을 주어 그대로 쿵.


 우지끈!


 ““끄아아아아악!””


 내 무릎이 놈의 정강이를 박살 내버렸다.

 동시에 터져 나오는 끔찍한 비명.


 이 정도면 완벽한 제압이라고 할 수 있겠지.


 애초에 서태오 파티 급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녀석들이다.

 만약 아티팩트가 없었다면, 마일스 씨 한 명에게 그대로 제압당해 도시 감옥으로 끌려갔을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게 두 똘마니를 간단히 제압한 뒤, 이제 리더 녀석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디, 너는 이놈들보다 조금 더 나를 재밌게···.


 “너, 이 새끼···. 거기 가만히 있어.”


 권총.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권총이었다.


 이건 상상도 못 했는데.

 상황이 조금 꼬이긴 했다.


 보통 개척자가 일정 레벨을 넘어서게 되면, 권총 같은 무기는 거의 효과가 없어진다.

 연공법을 배우는 것이 보통 20레벨 이후.

 가호와 특성까지 배우기 시작하면, 기와 마나같은 힘이 없는 물리공격은 점차 통하지 않게된다.


 ‘내가 가진 연공법은 아직 보호막을 치기엔 숙련도가 낮아.’


 자연적인 마력 보호막을 치기엔 숙련도가 낮다.

 실드 마법은 2등급밖에 되지 않지만, 내가 공격 마법부터 익히자고 권했던 탓에 아직 알티가 익히지 못했다.


 만약에라도 권총에 맞게 된다면 꽤 치명상을 입는다는 말이다.


 ‘맞는다면 말이야.’


 지금의 나라면 총구와 손가락에 신경을 집중하는 것으로 충분히 피해낼만 하다.


 이런 상황 은근히 기대했단 말이지.

 액션 영화 주인공이 권총을 멋있게 피해내는, 그런 장면.


 그렇게 적극적으로 반응할 준비를 하는데.


 놈의 총구가 움직였다.

 내가 아니라 쓰러진 채 숨을 몰아쉬는 이사수 씨에게로.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움직임이었다.


 “무기 버려. 내 쪽으로.”


 ···쯧.


 지금은 시키는 대로 할까.

 해결할 방법이 없진 않은데, 먼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나는 들고 있던 단검을 녀석의 발 아래에 던지곤 양손을 들어 보였다.

 녀석은 천천히 단검을 집어 들었다.


 “도시에서 계속 벌어지던 절도, 살인. 네가 범인이냐?”


 “순순히 말을 잘 듣는군. 그래. 내가 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왜 주민들을 죽였지?”


 “크레딧이 나오니까. 물약도 나오고. 너도 끌리면 해보던가.”


 무슨 문제가 있냐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 녀석.


 순간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래, 예전에도.

 레닉수스 시절에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꼭 있었지.


 “그게 사람을 죽일 이유가 되나?”


 “이 덜떨어진 새끼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머리가 어떻게 돌아버린 건 아닌가?”


 내 말을 들은 그는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슬금슬금 몸을 옆으로 옮기는 게 보인다.


 “이 섬은 복제된 세상이야. 몬스터를 죽이는 거랑 하등 다를 바 없다고!”


 그러고선 내 단검을 이미 죽어있는 중년 부부에게 던져버린다.

 이미 싸늘해진 주검에 박힌 단검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가짜 세상의, 이런 가짜 새끼들이 가진 돈 좀 가지고 잘 쓰겠다는데, 뭐가 문제냐.”


 가짜.

 가짜라.


 심장이 쿵 쿵 거린다.


 -님, 가짜들한테 뭘 그리 몰입하는데요?

 -NPC 마을 하나 없앤 게 뭐가 잘못이라고.


 -으, 으악! 별 미친놈 다 보겠네!

 -알았다고, 접는다고! 젠장, 이게 다 얼만데···.


 과거의 환청이 머릿속에 울려 퍼지자, 조금씩 숨이 가빠지는 듯 하다.

 들이쉬고, 들이쉬고.


 [ 심박수 비정상 상승. ]

 [ 경고. 경미한 공황발작이 감지되었습니다. ]


 물속에서 숨을 쉬는 듯한 답답함이 조금씩 커지려는 그 때.

 알티가 뇌 내에서 무언가를 분비했는지, 숨을 쉬는 것이 한결 가벼워졌다.


 “후···우···. 그래, 하나만 더 물어보자.”


 여전히 토할 것만 같은 감각이 느껴지는 채로, 나는 녀석의 뒤를 턱으로 가리켰다.


 “니 뒤에 있는 그건 뭔데.”


 “야 이, 새끼야. 뇌가 우동 사리냐? 이게 무슨 영화인 줄 알어? 그딴···.”


 투쾅!


 놈의 머리 위에 생겨나 있던 알티의 아케인 다트가 머리 위쪽으로 내리꽂힌다.

 후두부에 묵직한 돌이 정통으로 꽂힌 듯한 충격을 받았겠지.


 쾅! 콰광!


 연이어 세 발의 마법이 더 내리꽂힌다.


 털썩.


 “어···떻, 이, 씨···팔.”


 용케도 정신을 잃지 않았군.

 나는 천천히 놈에게 다가가 떨어진 권총을 주워들었다.


 이 도시의 주민들은 이전에도 말했듯 ‘에코즈’라는 복제된 존재들이다.

 당연히, 그들 스스로도 그 사실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독자적인 삶을 이어간다.

 완전히 똑같은 환경에서, 완전히 같은 에코즈와 만난다고 하더라도 그 삶의 방향성은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타의에 의해 복제되었을지라도 그들의 삶조차 ‘가짜’는 아니라는 말이다.


 “잠···, 크레딧···, 줄···게.”


 총구가 자신의 가슴께를 향하는 것을 보고 다급히 피하려고 하는 녀석.

 그러나.


 탕!


 “흐아악···!”


 머릿속에 피가 돌고,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문다.


 주민을 죽였다는 사실 하나에 이렇게까지 화가 난 건 아니다.

 레닉수스의 세계를 등반하며 무고하게 죽어가는 주민이야 수도 없이 봐왔다.

 이사수 씨와 마일스 씨를 죽이려 했던 것도 분노를 일으켰지만, 그게 나를 폭발하게 만든 주된 원인은 아니었다.


 분노가 머리 끝까지 차오른 이유는 하나.

 감히 이 세상을 가짜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그게 마치 내가 인생을 바쳤던 이 세상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들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잘 들어, 이 새끼야. 여기 사람들이 에코즈든, 아니든.”


 방아쇠를 당긴다.

 귓가에 총성이 울린다.


“이 세상의 NPC들은, 주민들은.”


 한번 더.

 놈이 몸이 움찔거린다.


 [ 도혁 님. ]


 이 세상은 나를 처음으로 편견 없이 받아준 세계다.

 목숨도 끊으려 했던 나를 치유해 줬던 안식처.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었던 유일한 공간을, 가짜라고 부르지 마라.


 “모두 진짜들이라고, 망할 새끼야!”


 타앙!


 [ 도혁 님. ]


 알티의 목소리가 들린다.


 [ 진정하십시오. ]

 [ 이미 죽었습니다. ]


 그 말대로였다.

 처음 쏜 총알은 가슴에 박혔지만 즉사시키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이후의 총알들은 모두 빠짐없이 머리를 향했다.

 이미 그의 머리는 곤죽이 되었고, 서늘한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숨을 가다듬었다.

 옛날에도 이런 일이 종종 있곤 했지.


 [ 여긴 레닉수스가 아닙니다. ]

 [ NPC들을 장난삼아 학살하던 유저들도 없고, 애초에 이제는 NPC가 아닌 원주민입니다. ]

 [ 분명 사람들의 인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게임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니까요. ]


 맞다.

 이곳은 레닉수스가 아니다. 이계다.


 가짜에 몰입하냐고 비웃을 유저들도, 학살을 막으니 중독자 취급받던 그 시절도,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 인간도 이 세상 전체를 가짜라고 하려던게 아니란 건 안다.

 그냥 신예의 둥지라는 특정한 공간을 말했을 뿐이겠지.

 다만 내가 ‘가짜’라는 말에 과거의 유저들을 투영해버린거고.


 [ 진정되셨습니까? ]


 '응.'


 [ 다행입니다. 혼란이 계속 이어지신다면, 땅콩버터 젤리 샌드위치가 진정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그래, 오늘은 돌아가면서 꼭 하나 사 먹어야겠다.


 다시 고개를 돌려 시체가 된 리더 놈을 바라보았다.



 그러게, 남의 트라우마는 왜 건드리고 그러냐.


 몰랐다고? 어쩌라고.


 나도 갑자기 공황이 올 줄은 몰랐어, 인마.


 그리 억울해하지는 마라.


 네가 그 얘기를 했든 안 했든, 마일스 씨와 이사수 씨를 건드린 이상 나는 너를 반드시 죽였을 거니까.


 달리는 덤프트럭 앞에 섰는데 기사가 깜짝 놀라서 엑셀을 밟았다, 뭐 그런거라고 생각해.



 “후우.”


 사람을 ‘진짜로’ 죽인 것은 처음이었으나, 특별히 격한 감정이 일어나진 않았다.

 분노가 충격을 희석했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레닉수스 시절 플레이어를 죽일 때 느껴지던 감각과 별반 차이가 없던 것도 있고.


 무엇보다도, 내가 살았던 미래 세계에서는 인간의 목숨이 너무나도 가벼운 세상이었다.

 갱단 간의 총격은 늘상 일어나는 수준.


 괜찮은 칩을 뺏기 위해, 보호비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심지어는 그냥 길을 가로막아 기분을 상하게 했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조차 있던 세상이다.

 그런 세상 속에서 그들에게 동화되지 않고 현대인의 자아를 유지하려 많이 애를 썼건만.


 죽음에 대한 인식이 좀 바뀌어버린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완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라, 그래도 조금 구역질이 올라오긴 했다.

 못 참을 정도는 아니다. 그걸로 끝이었다.


 한숨을 내쉰 뒤, 총을 확인했다.


 여전히 몇 발 남아있던 총알을 본 뒤 몸을 돌렸다.


 “살···살려 주세요, 제발.”

 “저희는, 저희는 아무도 죽인 적 없습니다! 돈만 조금 훔쳤을 뿐이지, 살인은 형님이 멋대로 한 겁니다!”

 “맞습니다, 저희는 그럴 깜냥이···.”


 여전히 단검에 팔과 손이 고정된 채로 살려달라 애원하는 두 똘마니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살려두어선 안되겠지.


 놈들을 조준한 순간, 가늘고 희미한 이사수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혁···씨.”


 그때, 이사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려주···셔유. 김도훈만···죽었으면, 그걸로 충분해유···.”


 고민은 잠깐이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사수 씨의 부탁이라면.”


 일단은 그가 안심할 수 있도록 그렇게 말한 뒤.


 ‘알티, 이거 혹시 수감되나? 조건은 딱 맞을 것 같은데.’


 [ 조건 확인 중. ]

 [ 하우징 수감 조건 성립되었습니다. ]

 [ 감옥으로 전송할까요? ]


 ‘응.’


 그들은 예고도 없이 나를 선공했으며, 나는 두 명을 완전히 무력화시켰고 싸움 의지까지 잃게 했다.

 그렇다면 시스템이 정한 규칙에 따라서.

 하우징에 있는 감옥에 보낼 조건이 성립하게 된다.


 [ 전송. ]


 슉.


 두 명의 모습이 지우개로 지워내듯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걸 본 이사수 씨는, 안심하는 표정으로 웃다가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속으로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사수 씨.’


 왜냐하면, 여전히 그들을 살려둘 생각은 없으니까.


 갱단, 그러니까 조폭 똘마니 같은 부류의 인간들은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살려줘 버린다고 한들, 분명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복수를 하려 할 것이다.


 이곳이 레닉수스의 세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예 금제를 거는 것도 가능은 하다.

 하지만 그 정도의 정성을 들일 가치는 없다.


 뭐, 아무튼.


 이제 해야할 것은 마일스 씨와 이사수 씨를 치료소로 보내는 것이었다.

 처음 이곳에 오자마자 알티는 현장을 빠르게 스캔했고, 둘 다 치료만 받는다면 무사할 수 있을 거라 했었다.

 간단하게 응급 처치만 하고 치료소로 보낸 뒤, 도시에 범인을 잡았다고 통보 해야겠지.


 그렇게 일을 시작하려던 순간.


 “너.”


 “!”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깜짝 놀라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지만, 곧바로 긴장이 풀렸다.

 눈앞에 나타난 것은 바로 엘레이나였으니까.


 “거기서 쉬어. 내가 치료소로 전송해 둘 테니까.”


 “괜찮습니다. 저도 다친 데는 없어서···.”


 딱.


 그녀의 손가락이 튕겨지자, 보호막 같은 마법이 발동하더니 이사수 씨와 마일스 씨의 몸을 감쌌다.

 그러곤 문을 통해 빠져나가더니 도시를 향해서 쏘아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게 더 편하긴 하지.

 내가 두 명을 들고 가다가 상처가 더 악화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민가 바깥으로 나와서 도시를 바라보았다.


 게이트를 넘겠다고 결심하고 나서, 이계에 대해 알아볼 때.

 이미 확실하게 마음을 굳혔었다.

 필요하다면 사람을 죽이게 될지도 모르니, 절대로 망설이지 않겠다고.


 그러나 살생에 필요 이상으로 먹혀선 안 된다.

 기준은 딱 하나.

 나와 내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했느냐.


 그 선을 넘는다면, 결코 자비를 베풀지 않으리라.


 그렇게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던 그때.


 “나를 속였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개척자인 줄 알았더니.”


 “···예?”


 엘레이나의 목소리에 다시 정신이 들었다.


 “에코즈가 무엇인지 알면, 내가 아바타라는 사실도 얼추 알 테고. 그런데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나한테 마법을 배워 가려 한 거네.”


 에코즈.

 조금 전 분노에 머리가 잠식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그 단어를 입에 담아버렸다.

 낭패였다.


 지금 최정상을 달리는 랭커들 조차도 에코즈라는 개념은 알지 못할 것이다.

 에코즈에 대한 정보가 풀리며 퀘스트가 시작되는 것은 한참 나중에야 있을 일이니까.


 엘레이나도 아바타를 통해 여러 계층의 섬을 돌아다녔을 테니 그걸 분명히 알고 있을 테지.

 지금 이 순간 내 머리는 여지껏 없었던 수준으로 팽팽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가 정말로 분노했다면, 내 목은 여기서 날아가고 만다.


 어떡하지?

 뭐라고 변명해야 하지?


 ···싸워야하나? 아, 단검 아직 안에 있는데.


 그리고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그녀가 말을 꺼냈다.

 그것도 만족스러운 듯한, 기쁜 듯한 웃음과 함께.


 “인상적이었어. 무척이나.”


 내 눈이 크게 떠진다.


 “에코즈는 분명 복제된, 만들어진 존재라고 부르는 게 맞지.”


 톡 하고 그녀가 내게 가볍게 무언가를 던졌다.

 그 녀석이 중년 부부에게 꽂아 넣었던, 나의 단검이었다.

 묻어있는 피 하나 없이 깨끗한 모습.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가짜라고 부를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어. 저기 위쪽에는 그걸 이해 못 하는 바보천치들밖에 없거든.”


 위쪽이라. 그렇겠지.

 에코즈의 복제 원리는 마법사들의 풀리지 않는 난제 중 하나다.

 세상의 원리를 파헤치겠다며 에코즈들을 납치한 뒤, 실험이라는 이름의 학살을 자행하는 마법사들이 나타나는 일은 그닥 희귀한 일도 아니었다.


 “···정말 듣고 싶던 말인데, 그걸 태초의 둥지에서 듣게 될 줄이야···.”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는 엘레이나.

 사정이야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리 화가 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하나다.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괜한 변명하려고 하지 말고 솔직하게 용서를 빌자.


 “속여서 죄송합니다.”


 “그래? 그럼, 앞으로는 진실의 결계를 항상 켜두고 얘기해도 불만 없겠네. 아니다. 아예 심음의 장막을 켤까?”


 “예? 아니, 그건 좀···.”


 심음의 장막.

 마음속에서 하는 소리가 아예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되는 마법.


 “농담이야.”


 쿡쿡거리며 웃는 그녀.


 후, 간 떨어질 뻔했네.

 다른 건 괜찮은데, 마음의 소리를 들려주는 것만은 안 된다.


 지금도 가끔 알티랑 속으로 대화하면서 그녀가 ‘호구’ 같다느니 하는 농담을 가끔 주고받는데, 이게 튀어나왔다간 그날로 내 머리의 소유권 이전 등기가 완료될 거다.


 “알고 있는 게 참 많네. 심음의 장막은 아직 가르쳐주지도 않은 마법 이름인데, 그것도 아는 눈치고.”


 “네, 뭐.”


 에코즈를 안다는걸 들킨 판에 숨길 게 뭐 있겠나.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법이지, 그래···.”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던 그녀는, 잠깐 머리 위의 하늘을 바라보더니 내게 입을 열었다.


 “스파이럴 아르카디움을 찾아와. 3계층. 좌표도 알려줄게.”


 “예? 거기는 왜···.”


 당연히 낮은 계층을 모르는 나는 처음 듣는 섬의 이름이었다.

 스파이럴 아르카디움이라, 어감은 나쁘지 않은데.


 “거기 있는 유적이면 신경 재정렬의 설비로 쓰기 충분하니까 그렇지.”


 눈이 크게 뜨여졌다.


 “새로운 신경과 그릇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줄게. 더 강해진 네가 보고 싶어졌거든.”


 약속.

 이라며 엘레이나는 환히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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