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한 고인물이 특전을 독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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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
작품등록일 :
2024.08.1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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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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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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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진짜 재능이란 (3)

DUMMY




 개척자들 간의 정보 공유를 위해 만들어진 사이트는 셀 수 없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사이트가 어디냐고 물어본다면, 돌아오는 대답은 모두 하나였다.


 더 넥서스(The Nexus).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개척자들이 사용하는 사이트이자, 일단 개척자가 되었다면 넥서스 가입부터 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용자가 많은 사이트였다.

 수많은 정보와 클랜, 파티 구인 구직 등의 기능이 한데 모여있어 필요한 건 모두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일반인들도 가입할 순 있지만, 여러 커뮤니티의 기능을 이용하고 열람하려면 반드시 개척자 자격증 정보가 필요했다.


 사건의 시작은, 넥서스에 있던 어떤 작은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질문 글이었다.


 제목 : 신둥) 빅터 교관 진심 상태랑 대련해서 10분 이상 버티는 거 본 사람?

 id : rwg29

 내용 :

 빅터 교관 무슨 미친개마냥 웃고 소리 지르면서 싸우는 거 개무섭더라

 근데 대련하던 사람이 이길 뻔했음

 마지막에 칼 던진 거 보고 빅터 교관 쫄아서 지 목잡고 흠칫하던데


└또 신둥 떡밥 이상한 거 왔네

└ㅋㅋㅋㅋㅋ 케일라 교관이나 리처드면 모를까 빅터 교관은 너무 멀리 간 거 아니냐

└수준 딱 맞춰주는 리처드 말곤 교관들 진심 대련 불가능함 렙차가 얼만데ㅋㅋㅋ

└빅터 싸울 때 미친놈처럼 웃는다는 거 실제로 본 사람은 없고 다른 원주민들 찌라시잖음

└신둥 글에 먹이 ㄴㄴ 인증 하라해도 못하는 곳이라 떡밥 오지게 날라옴


 이계의 하늘섬에는 계층이라는 규칙이 존재한다.


 신예의 둥지를 포함한 최초의 시작 구역, 1계층.


 그 이후 20레벨 단위로 거대한 벽이 쳐져 있다.


 게이트를 통해 현실을 마음껏 오가려면 3계층에 입성해야만 하는데, 그 사람들이 다시 내려갈 수 있는 한계선은 2계층이었다.

 한번 1계층을 빠져나오게 되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기자들이나 클랜의 유망주 영입 담당들이 있는 곳도 모두 2계층 초입의 섬이었으며, 1계층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 진위를 가리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다.

 하물며 신예의 둥지는 게임 채널처럼 수천 개로 나뉘어 있는 공간이다 보니, 하루에도 몇 개씩 헛소문이 퍼지곤 한다.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그냥 잡글이 되어 묻혀버리나 싶던 그때.


 제목 : 신둥)아니 여기 서태오도 있음

 id : rwg29

 내용 : 그 사람도 저 인간한테 그냥 떡발렸고 수석 자리도 뺏김 ㅇ 빅터 교관이 그거 보더니 질척대면서 대련하자고 붙어서 이렇게 된 거임


 └서태오가 누군디ㅋㅋㅋㅋㅋㅋㅋ

 └잠만 서태오? 태백그룹 막내 서태오 말하는거임??

 └졌다고? 금수저 유망주가?

 └??

 └님 지금 그 말 인증할 수 있음?

 └id : rwg249) 여기 신둥이라 인증 수단이 없다 걍 내 눈으로 봤음 그게 끝임

 └뉴스로 서태오 출발 시기 보니까 딱 맞긴 한데? 숲 하루 만에 클리어했다 치고 기초 훈련 2주하고 오늘 딱 끝나는 날 맞음


 rwg29가 언급한 ‘서태오’라는 이름 때문에, 장작이 다시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서태오는 태백그룹에서 1년 넘게 큰돈을 투자하며 준비한, 그야말로 초특급 유망주 파티의 리더다.


 2주 전, 기존 ‘헤메이는 숲’ 탈출 시간 1위 기록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더 이상 1위가 아니라는 걸 인증하면서, 그 자리를 서태오 파티가 가져갔다는 설이 거의 확실시될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아직 이름도 모르는 초보 개척자에게 패배했다니.


 그야말로 커뮤니티가 후끈 달아오를 커다란 이슈였다.


 제목 : 근데 그럼 지금 어떻게 글 쓰고 있는거임?

 내용 : 신둥에 동조 장치 없잖음


 └id : rwg29) 집에 누나 동조 장치 팔찌 있는 거 훔쳐 왔음 이거 키면 패드 연결됨

 └지 누나껄 훔쳤냐ㅋㅋ 와 휴대용이면 누나가 랭커급인갑네 ㅋㅋㅋㅋ

 └배터리는 몇 개나 챙겨옴?

 └id : rwg29) 배터리? 글 쓸 때만 키는 데 한참 쓰겠지

 └아···

 └곧 가겠네

 └안돼 떡밥 더 흘리고 가


 게이트 너머로 전파를 보내기 위해서는 차원 동조 장치가 필요한데, 잠깐 켜두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마력을 소모한다.

 그래서 개척기자들도 어지간하면 수첩에 기삿거리를 기록해 뒀다가 동조 설비가 설치된 도시로 가서 기사를 전달하던지, 아예 게이트를 빠져나와서 알리는 게 일반적일 정도다.


 사람들의 말처럼, rwg29의 글은 저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제목 : 그래서 저거 진짜 ㄹㅇ이면 난리 나겠네 그냥

 내용 : 초특급 유망주가 수석 자리 뺏겼고, 그거 보고 빅터가 진심 모드 대련 한판 붙었고, 거기에 비등비등했다고? 내가 클랜 스카우트였으면 무조건 잡는다 ㅋㅋㅋ 아니 29 저 인간은 이름부터 말하지 진짜


 └님들 그거 기억 안 남? 헤메이는 숲 갱신된 거 인증 글 보셈 그거 2등 인증한 지 한 대여섯 시간 지나서 3등 된 거

 └와 ㅁㅊ 잠만 그게 이렇게 이어진다고?

 └서태오가 1등 아니고 사실 2등일 수도 있는 거?

 └ㅋㅋㅋ아 저 신둥 사람들 2계층 언제 오냐 궁금해 미치겠네 ㅋㅋㅋㅋ


 원작성자가 배터리를 챙기는 걸 깜빡하는 바람에 사라져 버린 이상, 지금은 이름도 모르고 그저 도시 전설 같은 이야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소문에 붙어있는 ‘서태오’라는 이름이, 그 여파를 크게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



 “이야, 이게 다 얼마 만에 먹는 제대로 된 음식이야.”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바닥 깔개 위에 올려진 음식들을 바라보았다.

 현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서양식 음식들은 물론, 처음 보는 형태지만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음식들 또한 먹기 좋게 포장되어 식욕을 자극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얻지 못했을, 남의 돈으로 먹는 밥이기에 더더욱 맛있어 보였다.


 주저 없이 나는 식사하기 시작했다.


 “진짜, 녹는다, 녹아. 꿀이 뚝뚝 떨어지네.”


 [ 돼지의 다리를 통째로 진한 소스에 푹 조리고, 거기에 꿀과 향신료가 섞인 소스를 바른 것으로 보입니다. ]

 [ 실로 파괴적인 맛입니다. 알슐랭 가이드에 올려도 괜찮겠습니다. ]


 눈물은 아래로 떨어져도 숟가락은 위로 향해야 하는 법.

 비유가 아니라 진짜 꿀 소스가 뚝뚝 떨어지는 요리를 먹자, 마음 한쪽에 아주 약간 남아있던 울적함이 훌훌 털어졌다.


 빅터 교관과의 대련 마지막 순간, 패배가 확정되었음을 직감하자마자 참지 못하고 지금의 몸으론 사용할 수 없는 기술을 써버리고 말았다.

 아니, 써버렸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스킬로 존재하지 않는 것은 둘째 치고, 그 기술들을 사용하기 위한 전문화 능력치나 특성조차도 없었다.


 솔직히 떼를 쓴 것에 가깝지.

 그래서 손아귀에서 검이 빠져나갔고, 그대로 끝내기 홈런을 선보이며 대련은 패배.


 처음부터 지금은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 싸운 것임에도, 패배는 쓰디쓴 맛이었다.


 ‘몸이 정상이어도 이기긴 힘들었을 거야.’


 능력치 하락이 없었다고 해도 아마 그를 이기긴 힘들었을 것이다.

 애초에 지금 내가 얻은 특성과 보너스는 오직 수련 속도를 올려주는 데에만 치중되어 있다.

 전투에 곧바로 도움이 되는 특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스킬로 등록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결과적으로 대련의 승패 같은 것은 상관이 없다.

 처음부터 교관의 조건에는 이기고 지느냐 같은 것은 걸려있지 않았으니까.


 기초 훈련 수료식을 마치자마자, 나는 빅터 교관의 금고에 있던 11만 1500 크레딧에 추가로 치료비 명목을 붙여 천 크레딧까지 뜯어냈다.


 -이 지독한 녀석···.


 총 22만 2500 크레딧.


 보통 개척자들이 신예의 둥지에서 두세 달 시간을 보낼 때, 아껴 쓰면 2만 크레딧 정도로도 생활이 가능하단 걸 생각해 보면 굉장한 수익이었다.

 빅터 교관이 약속한 무기는 이후 천천히 받으러 가기로 했다.

 한번 내뱉은 말을 뒤집을 만한 사람은 아니니, 차분히 내 성장에 맞추어 무기를 골라 가야지.


 아무튼 이후 치료소에 들러 자잘한 상처들을 모두 신성력으로 치료받았고, 지금은 식당들을 순회하며 포장으로 받은 음식들을 하우징 안에서 이렇게 먹고 있던 것이다.


 음식이 포장인 이유는, 당연히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대련을 본 같은 기수 수료생들이 나를 무슨 동물원에 있는 동물을 보는 것처럼 따라다니기 시작했었는데, 치료소를 나선 순간부터는 어디서 소문이 퍼졌는지 그 무리가 더 늘어나 있었다.

 식당 어딘가에 앉는 순간 곧바로 얘기를 걸어올 것이 뻔하기에, 포장으로 음식을 챙긴 뒤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하우징으로 도망쳤다.


 ‘파티라.’


 음식들을 차분히 즐기기 시작하면서도, 동시에 나는 파티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레닉수스 시절, 나는 당연히 솔로 플레이어였다.

 파티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시작한 초창기엔 레벨 올리기 바빠 굳이 파티를 하지 않았고, 최상위권에 도달했을 즈음에는 이미 게임이 망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파티를 구하는 시간조차 아깝다고 느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솔로 플레이를 지향하게 됐고, 나중엔 하고 싶어도 못 하게 됐었지.


 그래서 지금 내게 파티가 필요하냐, 필요하지 않느냐를 따진다면.


 ‘있었으면 좋겠는데.’


 무척이나 필요했다.

 이게 뭐, 파티를 짜서 전투하는 게 효율이 높다느니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내게 필요한 건 허드렛일을 할 사람의 존재다.


 지금 내가 있는 이 하우징은 오직 ‘안전 구역’에서만 열 수 있었다.

 처음 섬의 정수를 얻고 유적 안에서 하우징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기능 개방 특전으로 임시 안전 구역이 설정됐기 때문이었다.


 안전 구역은 뭐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피운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한참 나중에는 안전 구역을 만들어낼 수 있는 수단이 생기긴 하지만, 일반적으론 도시나 마을에서만 하우징을 열 수 있다고 봐야 한다.


 이게 게임이었을 때는, 대충 모닥불을 피운 뒤 로그아웃을 해버리면 끝이었다.

 가끔 운 없게 습격을 받아 소지금을 잃을 수도 있지만, 애초에 중요한 물건들은 하우징에 놔두고 다니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이곳은 현실이다.


 하루 종일 몬스터와 싸우고 섬을 탐사한 뒤, 피곤함에 절은 몸을 이끌고 캠프를 세워야 한다.

 텐트를 치고, 불을 피우고, 식사도 준비해야 하고.

 빨래, 장비 손질까지 해야 하는 데다가.


 “알티, 여긴 레닉수스랑 다르게 몬스터 손질도 해야 하는 거 알아?”


 그리고 또, 인터넷에서 보았던 정보에 따르면 몬스터에게서 부산물을 얻는 방식도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 설명이 필요합니다. ]


 “몬스터를 죽였을 때 사라지는 건 똑같은데, 가끔 남아있는 게 정돈된 부산물이 아니라 시체 그 자체야.”


 게임이었을 땐, 몬스터를 잡았을 때 낮은 확률로 그 자리에 손톱, 발톱, 약병에 든 피 같은 것이 남고 그걸 줍기만 하면 끝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냥 시체가 통째로 남아버린다.

 대부분의 마을에서 통째로 매입을 하기도 하지만, 당연히 그 값은 크게 후려쳐진다.


 당연히 파티 입장에선 몬스터 부산물을 처리해 줄 잡일꾼이 필요하다.


 [ 굉장히 번거로워 보입니다. ]


 “그치. 당신을 위한 완벽한 도우미는 손질 기능 같은 건 없나 봐.”


 [ ···. ]


 갑자기 머릿속이 살짝 어지러워지더니, 시야가 약간씩 위아래로 흔들렸다.

 멱살을 잡고 이리저리 휘두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알티, 나 갑자기 시야가 이상한데.”


 [ 참으십시오. 가끔 기능 고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


 “큭, 농담이야, 농담. 미안해.”


 다른 농담 같으면 오히려 받아치며 나를 골려댈 녀석이지만.

 이거 못 해주냐는 식의 농담만큼은 알티를 제법 쉽게 토라지게 할 수 있었다.

 라이트 마법을 쓸 수 있다며 알려온 것도, 내가 실망한 줄 알고 착각하고는 사용했던 것이 아닌가.


 거기에 콤플렉스라도 있는 것처럼.


 아무튼.


 얘기를 원점으로 돌리자면, 같이 싸워줄 동료가 아닌 잡일꾼은 한 명쯤 꼭 있었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요리도 잘했으면 좋겠고.

 이래저래 유능했으면 좋겠지만, 가장 중요한 조건은 하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지.’


 능력 있는 사람보다 더 구하기 어렵다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구해야만 했다.

 나와 같이 섬을 등반하게 된다면, 믿을 수 없는 광경들을 자주 보게 될 것이 뻔했으니까.

 입이 가벼운 사람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뭐,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분명 괜찮은 사람이 있겠지.



**



 식사를 계속하려던 와중, 불현듯 머리에 스친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 하우징의 중심으로 갔다.


 딸랑.


 벨을 울리자 생겨나는 푸른 포탈.


 ‘바로 안 오시네?’


 저번에는 바로 나오셨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시간이 좀 걸리는 듯했다.

 3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그제야 비로소 기다리던 사람이 도착했다.

 안전모와 흰 러닝셔츠를 착용한, 두더지 같은 얼굴을 가진 몰다린 족의 대족장.

 모르반 반장님이었다.


 “이야, 애송이! 거 언제 불러주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런데 이전과 다르게, 꽤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 얼굴로 등장하는 모습에 조금 이상함이 느껴졌다.

 반주라도 하셨나 싶은 찰나, 그의 왼손에 시선이 갔다.


 ‘아.’


 모르반 반장님의 왼손 중지에 마치 핑거아머처럼 길쭉하게 튀어나온 액세서리가 눈에 띄었다.

 본 기억이 있다.

 몰다린 족에서 고위 관료를 맡고 있는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고급 펜이었다.


 옷이야 포탈을 지나면서 저절로 작업복으로 변하니까, 그 말은.


 “일하고 계셨습니까?”


 “뭐야, 봤나? 흐, 그래. 바쁜 와중에 왔으니 고마워하라고.”


 그는 짐짓 너스레를 떨었지만, 내 눈에는 저 포탈 너머의 상황이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분명 몰다린 족 수석 행정관님이 초조하게 서류를 바라보며, 언제쯤 반장님이 돌아올지 전전긍긍하고 있겠지.


 순간 지금은 다시 돌려보내 드려야 하나 생각이 들었지만.


 그 사람 예전에도 되게 깐깐하고 잔소리가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대족장님 앞에서 법도를 지켜야 한다며 3일 동안이나 궁중 예절을 억지로 가르치기까지 했었다.


 음.


 “아~ 이거 참. 죄송해서 어쩌죠? 저번에 주시고 가신 과일도 보답할 겸, 혹시 괜찮으시면 식사라도 같이하시는 게 어떤가 싶어서 불렀습니다.”


 “뭐? 허허, 이거 참. 정성을 무시할 수도 없고! 원래 이렇게 사적으로 부르고 그러면 안 된다, 애송아.”


 “아유, 자, 자, 반장님. 이쪽으로.”


 짜맞춰진 연극처럼 대사가 오고 가고, 그는 성큼성큼 다가와 음식 앞에 앉았다.

 한입 음식을 베어 물더니, 행복해 보이는 듯한 미소를 짓는 반장님.


 그래, 이런 ‘외근’도 있어야 일할 맛 있지 않겠나.


 “저 예전보단 좀 튼튼해져 보인 것 같지 않습니까?”

 “응? 모르겠는데.”


 흘끗하고 나를 쳐다보지만, 고개를 갸웃거릴 뿐, 계속 식사를 이어간다.

 하긴 반장님 시선에서는 여전히 톡 불면 날아갈 만한 생명체일 테니까.

 지렁이가 조금 더 길어졌다고 해서 튼튼해졌구나- 할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때 갑자기 반장님이 무언가 떠오른 듯, 입에 있던 음식을 단숨에 삼켜버리더니.


 “아참, 그래. 이것 좀 봐봐라.”


 팔에 있던 문양이 번쩍거린 뒤, 반장님의 손에는 작은 무언가가 쥐어져 있었다.


 “아, 그거.”


 그건 다름 아닌 서바이벌용 멀티툴, 흔히 맥가이버 칼이라고 부르는 그 물건이었다.

 게이트에 입장하기 전 만난 이사수 씨가 내게 주었던 것.

 또 반장님이 감사하게도 가구값 대신 가져갔던 그것 말이다.


 반장님은 굉장히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를 잡은 채로 내게 멀티툴을 내밀었다.


 ‘뭐지, 뭔가 문제라도 있나?’


 덩달아 나까지 긴장감이 느껴졌다.

 꿀꺽.


 “이거 말이다. 이걸 이렇게 돌리면.”


 달칵.


 “······칼이 돼.”


 “···.”


 ?


 “그런데 심지어 이렇게 하면 말이다.”


 달칵.


 “······톱이 돼.”


 예?


 아니, 순간 무슨 장난이라도 치시는 건가 싶었는데, 반장님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

 동시에 갑자기 머릿속에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 ♬♬♬ ♩♪♩~ ]


 귀에 익숙한 멜로디.

 알티 이 녀석이 갑자기 맥가이버에서 나오던 그 음악을 틀어버렸다.


 넌 이걸 도대체 어떻게 아는데.

 저쪽 세상에도 맥가이버가 있었던가?


 ‘알티. 마음대로 음악 틀지 마.’


 [ 적절한 BGM인 것 같았습니다만···. ]


 머릿속에 울리는 음악을 끈 뒤, 머리를 긁적이며 반장님께 맞장구를 쳐 드렸다.


 “그, 예. 원래 이런저런 기능을 합쳐둔 생존 장비 같은 거라서요.”


 “생존 장비! 이야···. 마법 공학으로 공간을 줄인 것도 아닌데, 이 얼마나 아름답고 정교한 기술인지.”


 “건축 작업하는 데 사용해 보시려고요?”


 몰다린 족이 보기엔 실용성이 괜찮은가 싶어 물어봤는데, 내 말에 오히려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엥? 아니, 뭔 소리야? 이렇게 작은 걸 건축하는데 어떻게 써먹어?”


 “그···러면?”


 “그냥 멋지잖냐!”


 그러고는 주먹을 불끈 쥔다.


 흥분하신 표정으로 ‘이건, 가위! 이건, 자! 이건, 뭐야 코르크 따개인가?’ 거리는 반장님을 잠시 바라보다가, 식사를 계속했다.


 ‘이사수 씨가 준 멀티툴을 이렇게 좋아하실 줄은 몰랐네.’


 흔히 보이는 싸구려 멀티툴은 아니고, 은색으로 꽤 세련되게 만들어진 고급 멀티툴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냥 평범한 물건 아닌가.

 그게 반장님의 그···뭐라고 해야 할까.


 ‘공돌이 본능’을 자극했나 싶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그렇게 한참 동안 맞장구를 쳐가며 식사를 끝냈고, 식후 차까지 끓이고 나서야 반장님을 부른 진짜 의도를 꺼낼 수 있었다.


 “반장님. 이게 뭔지 아세요?”


 잘그락.


 “으응?”


 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크레딧이었다.

 본래 크레딧은 빚으로만 쌓여 형태가 없는 줄 알았는데, 수석 장학금 같은 경우 이렇게 실물 재화로 지급된다고 한다.

 섬의 주민들끼리도 거래하려면 실물 재화가 있긴 해야겠지.


 “뭐냐? 이런 건 처음 본다. 무슨 별사탕처럼 생겨서는.”


 “이것도 돈이거든요. 혹시 대가를 지불할 수 없나 해서.”


 22만 2500 크레딧은 여기서 석 달 동안 흥청망청 사용해도 다 쓰기 힘든 큰돈이다.

 그리고 이건 오직 이 도시 안에서만 통용되는 것이고.

 무기나 포션 같은 것을 살 수도 있지만, 튜토리얼 섬인 만큼 그런 아이템들도 성능이 좋진 않다.

 그렇다고 이 많은 돈을 먹고 노는데 쓰는 것은 당연히 시간 낭비였다.


 그 때 떠오른 것이, 혹시나 이 크레딧을 하우징 개조 비용으로 쓸 수 있나 싶던 거다.

 하지만.


 “안 돼.”


 불가능하다.

 반장님은 그렇게 단언하셨다.


 왠지 그럴 것 같긴 했는데, 그래도 너무 아쉽네.


 “혹시 확인이라도 해주시면.”


 “뭐, 그래. 줘 봐라.”


 미련이 뚝뚝 묻어나 보였는지, 반장님이 크레딧을 일부 가져가셨다.

 그대로 손 위에 작은 마법진이 그려진다.


 “내가 몇백 년 넘게 살면서 본 화폐가 200가지는 넘는다. 그런데 이런 화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마법진 위쪽으로 크레딧을 옮기자, 붕 떠오른 마법진이 돈을 감쌌다.


 “자, 봐라. 가짜 돈 같은걸 넣으면 이렇게 빨간색···이···.”


 띵동!


 반짝.


 그의 말과는 달리, 빨간색이 아니라 초록색으로 변한 마법진.


 “···초록색인데요?”

 “···초록이네?”


 거기에 친절하게 마법진이 커다란 O 모양까지 그려주고 있었다.


 벅벅.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뒷머리를 긁는 반장님.


 “이게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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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진짜 재능이란 (4) +2 24.09.05 1,278 42 19쪽
» 진짜 재능이란 (3) +1 24.09.04 1,287 43 20쪽
17 진짜 재능이란 (2) +2 24.09.03 1,288 44 20쪽
16 진짜 재능이란 (1) 24.09.02 1,320 45 20쪽
15 돌풍을 몰고 오는 (4) 24.08.31 1,307 41 18쪽
14 돌풍을 몰고 오는 (3) 24.08.30 1,334 40 18쪽
13 돌풍을 몰고 오는 (2) 24.08.29 1,433 39 18쪽
12 돌풍을 몰고 오는 (1) 24.08.28 1,508 39 19쪽
11 최초의 특전 (3) +1 24.08.27 1,579 44 20쪽
10 최초의 특전 (2) 24.08.26 1,644 43 20쪽
9 최초의 특전 (1) +1 24.08.25 1,691 42 16쪽
8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3) +2 24.08.24 1,684 45 18쪽
7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2) +3 24.08.23 1,721 44 18쪽
6 튜토리얼? 일단 버그부터 써보자고 (1) +1 24.08.22 1,811 4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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