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축구가 너무 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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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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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9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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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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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 역시. 키워 쓰는 맛은 각별하다

DUMMY

▷ GAME SET

17 21 17 10 – 65 카후쿠

00 00 00 00 – 00 캠벨


***


#. 2016년 9월 4일

#-1. 미국, 하와이 오아후

#-2. 호놀룰루, 카후쿠 CDP

#-3. 카후쿠 고등학교


이번 주말, 나는 할머니 집으로 가지 않았다.

미국사 공부 때문이다.


치카치카-


졸린 눈으로 숙소 밖에서 이를 닦고 있다.

근처에 수돗가가 있다.

이것도 타마티가 만들어 준 거다.


“퉤.”


금요일 갈비 쪽에 입은 타박상은 이제 말끔해졌다.

아직 멍은 조금 남아있지만, 아프진 않다.


오히려 잔디에 쓸린 팔뚝이 따갑다.

들어가서 얼른 연고를 발라야겠다.


부르르-

<어디야?>


메시지는 마르커스가 보낸 것이다.

난 숙소라고 짧게 대답했다.


<키니가 같이 영화 보자는데, 갈래?>


으이구.

이 눈치 없는 녀석.


키니 루아나(Kini Luana)는 마르커스의 요청으로 내가 번호를 따다 준 여자아이다.


같은 신입생이고.

나와는 같은 오후 수업을 듣는다.


솔직히 마르커스보다는 내게 관심이 있는 것 같았는데, 난 친구와의 우정을 가장 중시하고 있다.


<됐어. 둘이 보고 와.>

<그래? 알겠어.>


간단히 거절하곤, 휴대전화를 침대에 던져두었다.

1시간 정도는 보지 않을 생각이다.


그런데.


부르르-

“아- 씨.”


무음으로 해둘걸.

책상 앞에 앉자마자,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이번 메시지는 카일리라는 여자애가 보낸 것이다.


조별 과제를 하게 되어서 연락처를 주고받았었다.

근데 자꾸만 치근덕댄다.

차를 마시자는 제안을 난 가볍게 거절했다.


말했지만.

내 고교 생활에 연애는 없다.

엉뚱하게 코가 꿰이긴 싫으니까.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해두고.

마침내 공부를 시작했다.


미국사.


일명 에이푸쉬(APUSH)로 불리는 고등학교 미국사 표준과정은 작은 글자가 빼곡히 적힌 1,000페이지 분량의 교과서를 달달 외워야 해서 악명이 높다.


처음엔 나도 전생의 고등학교 때 악몽이 떠올라 눈앞에 깜깜해졌었는데, 다행히도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명칭을 외우는 것들만 조금 힘들었다고나 할까?

전체적인 큰 틀은 전생과 거의 같다.


삐빅-

삐빅-


어라.

벌써 시간이.


점심때를 알리는 알람에, 나는 티셔츠를 아무거나 대충 걸쳐 입고 학교 밖으로 나섰다.


근처에 괜찮은 음식을 파는 작은 식당이 있다.

거기에서 끼니를 때울까 한다.


“모이!”

“목사님.”


학교 밖으로 나오자마자, 아는 얼굴을 만났다.

버스 정류장 맞은편 교회의 목사님이다.


“일요일인데, 교회라도 나오지 그랬니.”

“중간고사거든요. 역사예요.”

“오, 이런. 그거 어렵겠구나.”

“외워도 외워도 끝나지 않는 것 있죠.”

“하하. 그건 나도 잘 알지.”


목사님과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지나가던 아주머니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모이. 혹시 키가 더 컸니?”

“글쎄요. 그런가?”

“틀림없이 그런 것 같구나. 나중에 한 번 재보렴.”

“꼭 그럴게요.”

“그나저나, 어디 가니?”

“밥을 먹으러요. 포장이라도 해올까 싶어요.”

“Hell No. 그럴 순 없지.”


아주머니 한 분이 아침에 만들어둔 로코모코가 있으니, 자신의 집으로 와 먹고 가라고 하셨다.


난 한사코 거절했지만.

어느새 아주머니의 집 식탁에 앉아 있었다.

참고로, 오늘 처음 본 분이다.


“어때? 입맛에는 맞니?”

“맛있어요.”

“얼마든지 먹으렴. 지금 새우도 굽고 있으니까.”

“진짜 안 그러셔도 되는데···.”

“괜찮아. 아들을 보는 것 같거든.”

“아드님은 본토로 갔나요?”


하와이에 사는 10대들의 99%는 섬을 떠나 본토에서 정착하는 것을 꿈꾼다.


멋진 자연경관에 훌륭한 인품을 가진 이웃들.

그것만으론, 10대의 혈기를 억누를 수 없다.


“CSU. 올해 3학년이란다.”

“캘리포니아 주립이요?”

“응.”

“와우. 그거 멋지네요.”


점심을 얻어먹은 보답으로 설거지라도 하려고 했는데, 아주머니는 내게 음식을 잔뜩 안겨주고 집 밖으로 쫓아내 버렸다.


그래서 난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


“뭘- 가끔 놀러 와도 된단다.”

“그럴게요.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렴.”

“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인정에 몸도 마음도 배가 부르다.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그나저나.

내일이었던가?


우리 카후쿠 풋볼팀은 이제, 오는 금요일에 있을 래드포드 원정 경기를 준비한다.


평소와 똑같이 훈련하고.

평소와 똑같이 혼나겠지.

또 월요병도 있을 거고.


하지만, 내일이 무척 기다려지는 이유가 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부르르-

<야! 너는 뭘 고를 건데?>


역시나.

내일을 생각하며.

난 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2016년 9월 5일

#-1. 미국, 하와이 오아후

#-2. 호놀룰루, 카후쿠 CDP

#-3. 카후쿠 고등학교

#-4. 풋볼 필드


풋볼을 하면서 언제가 가장 즐겁냐고?

당연히 승리할 때다.


그런데 그 순간을 제외한다면?

단언컨대, 바로 지금이다.

그러니까.


“No. 01 등장이요-!!”


헬멧부터 신발까지 풀 세팅을 한 로이스 파오가 등장하고, 우리는 환호하며 그 모습을 휴대전화에 저장했다.


오늘은.

팀의 새 유니폼이 발표되는 날이다.


유니폼을 후원해주는 ‘언더 아머’에서 갑자기 새로운 헬멧과 유니폼 등을 주겠다고 말해 우리를 흥분시켰다.


첫 번째는 카후쿠를 상징하는 붉은색.

두 번째는 원정용인 흰색.

세 번째도 원정용인 검은색.

마지막 네 번째는.


“댐-! 좆구린데?”

“저건 입기 싫어.”

“대체 저게 뭔 색이야?”

“코발트 색인가?”

“뭔발?”

“코발트, 인간아. 코발트 블루.”

“그래 너 잘났다.”


대체 무슨 색인지 모르겠지만, 파란색 계열로 저렇게 구리게 보이게끔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대단했다.


그래도 다행히.

전반적으로 새 유니폼이 마음에 드는듯했다.

나도 80점은 줄 수 있다.


“얼른 저걸 입고 뛰고 싶지 않아?”

“주전으로 나설 생각이나 하셔.”

“좆까. 그래도 백업으론 나가거든?”

“그러니까 네가 안 되는 거야.”


금방의 말에는 동감한다.

시합에 출전한다는 것.

그것만으로 만족하기엔, 우린 겨우 고등학생이다.


고교 레벨에서 확고부동한 주전으로 나서야 NCAA나 NAIA 진출 가능성이 열려있고, 백업 생활을 청산하지 못하면 NJCAA D1도 아슬아슬하다.


“모이!”

“Yes Sir-!”

“잠시, 날 따라오도록.”

“무슨 일이야?”

“몰라. 아무튼, 다녀올게.”

“알지? 잘못했으면 바로 무릎 꿇어.”

“웃기시네. 내 무릎은 비싸거든?”


마르커스에게 가운뎃손가락을 세운 후.

난 코치님을 따라 걸었다.


향한 곳은 감독실.

안에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앉거라.”

“Oorah.”


일단 의자에 앉아 어리둥절하고 있을 무렵, 날 유심히 바라보던 감독님이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대체, 어떻게 한 거냐?”

“··· 뭐가요?”

“캠벨 전. 세코페가 만든 두 개의 터치다운.”

“그게 문제라도 있나요?”

“아니, 전혀. 그래서 문제인 거야.”

“?”


감독님이 손짓을 보내자, 실내의 불이 꺼졌다.

그러곤 화면에서 영상이 띄워졌다.


구린 화질.

이건 팀에서 직접 찍은 것이다.

어쨌든 분석은 해야 하니까.


“지금까지 세코페가 이런 식으로 움직인 적은 없어.”


확실히 그렇긴 하다.

우린 타이트 엔드를 이런 식으로 쓰진 않는다.


가빈 트래비스 감독님에게 있어 타이트 엔드란, 오펜시브 라인맨들을 보조하는 수비적인 포지션이다.


블록에 힘을 보태어 러닝백들이 뛸 공간을 열어주거나, 아니면 스스로 미끼가 되어서 라인배커가 포켓으로 돌진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런데 나는 어제, 세코페를 공격적으로 활용했다.

두 개의 터치다운은 그 결과물이다.


“어떻게 가능했지?”

“···.”


감독님의 말에 답하는 건 어렵지 않다.

다만, 그 전에 확인해야 할 게 있다.

상황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었으니까.


“혹시 제가 팀 전술에 해를 끼쳤나요?”

“아니. 그런 건 아니야.”

“팀의 공격 전술은 그대로 유지됐던 거죠?”

“모두가 연습한 대로 움직였지.”

“세코페만 빼고요.”

“그래.”


이쯤이면 된 것 같다.

혼내려고 부른 건 아니었다.


그래서, 난 솔직하게 대답했다.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요.”

“뭐?”

“우리가 샷 건을 쓸 때, 타이트엔드가 절대 패스를 받지 않는다는 거요. 코너백과 세이프티가 와이드리시버의 주변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죠. 그래서 중앙을 노렸어요.”


측면 수비가 두꺼워지면.

자연히 중앙은 엷어진다.


풋볼 필드엔 11명의 공격과 수비가 공평하게 서 있고, 한쪽으로 많은 인원이 몰리게 되면 비는 곳은 분명 생겨난다.


나는 그곳으로 세코페를 보낸 것뿐이다.

그래서 연습했고.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듣던 감독님이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며 두 팔을 책상 위에 올렸다.


그러곤 다시 말씀하셨다.


“풋볼팀 감독을 벌써 15년째 하고 있지만, 너 같은 아이는 처음 본다. 플레이 북을 단 일주일 만에 외우고, 보름 만에 졸업반 쿼터백보다 훨씬 자유자재로 쓸 줄 알게 됐지.”

“···.”

“한데 더 나아가 지금은 팀의 전술적 약점을 스스로 분석해서 그걸 보완하는 방법을 찾았다고? 이건 미친 일이야. 모이? 세상의 그 어떤 15살도 그렇겐 하지 못해. 풋볼은 어려운 스포츠거든. 그 어떤 고등학생도 네가 하는 일은 할 수 없어.”


솔직히 말할까?

나 지금 진짜 엄청나게 자제하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전술적인 부분을 건들고 싶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는 데다가 다른 팀과 수준 차도 나서 그냥 참고 있다.


동료들과 따로 훈련하는 것도, 팀 전술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새로운 걸 조금씩 섞는 정도에 불과하다.


실제 내 머릿속엔.

이 팀을 더 나아지게 만들 99가지의 방법이 있다.

어쩌면 100가지인지도 모르고.


그렇지만.

이렇게 말할 수도 없다.


“제가 진짜 대단한가 보죠.”

“대단하지. 비현실적일 정도로.”

“그거 칭찬이죠?”


감독님이 나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한다.

나도 시선을 전혀 피하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감독님은 허탈하게 웃었다.

실내에 머물던 묘한 긴장감도 그와 함께 사라졌다.


“그래. 넌 진짜 대단하구나.”

“하하. 감사해요.”

“그래서 말인데.”

“?”

“전에 네가 두고 간 노트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 적힌 디코이.”

“Yes Sir.”

“내일 그걸로 회의를 좀 할까 하는데, 가능하겠니?”

“내일요? 언제요?”

“3교시가 인문학이지?”

“Oorah.”


인문학은 현재 에세이 제출이 끝났다.


감독님은 선생님께 잘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수업을 빼먹게 되겠지만.

불이익은 없을 거란다.


전에 듣기론 중간고사가 끝나면 하루 영화를 본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마 내일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


“네. 2교시 끝나고 올게요.”

“그래. 그럼 내일 보자꾸나.”


자리에서 일어나 감독님과 악수를 했다.

내일 나는 4교시도 수업이 없다.


즉.


2시간 정도 비는 시간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인데, 그 정도면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라커룸으로 돌아오자, 마르커스가 다가왔다.


“어떻게 혼났는데?”

“내가 넌 줄 알아?”

“낄낄낄. 마치고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조질까?”

“플레이스테이션?”

“응. 솔-제이가 그걸 갖고 있거든.”

“좋지. 가도 돼?”


고개를 끄덕인 솔-제이가 엄마와 동생을 소개해주겠다며, 저녁까지 먹고 가라고 한다.


오예.

식비 굳었고.


오늘은 필드 정비 문제로 추가 훈련을 할 수 없는 날이었기에, 일정이 끝나고 바로 가면 될 것 같다.


“그나저나.”

“응?”

“너 게이라고 소문났더라.”

“풉-!”


아니.

이건 또 무슨 신박한 개소리래?

난 솔-제이를 올려다봤다.


“스테파니 고 계집이 한 것 같긴 한데, 어떤 애들은 진짜로 그걸 믿는 것 같거든? 그도 그런 게, 그렇게나 인기가 많으면서 도통 연애를 안 하니까.”

“댐- 브로. 그건 그냥 코 꿰기 싫은 거거든?”

“하긴. 카후쿠 레벨이 조금 낮기는 해.”

“하와이가 그렇지.”

“큭큭큭. 걱정하지 마. 금세 잠잠해질 거니까.”

“그래도 꼬리나 좀 치고 다닐까 봐.”


망할 계집애가.

은혜도 모르고.

원수로 갚아?


워낙에 소심한 복수라서 화를 낼 필요조차 없다고 느꼈지만, 그래도 괘씸한 건 사실이다.


그래도.

무시해야지.


괜히 쓸데없이 얽힐라.


“Let`s Go. 시간이 거의 다 됐어.”

“응.”


친구들과 함께 팀 훈련을 하러 필드로 나선다.

오늘도 고된 시간이 우릴 기다린다.


하지만.

그렇기에 견딜 가치가 있다.

고통스럽기에 배우는 인내와 규율.

그게 우릴 올바른 길로 이끈다.


그렇고말고.


***

Shot Gun Basic.png

<가장 원초적인 샷 건 포메이션>


1. 여섯 명으로 구성된 스크리미지 라인

2. 여기에 하프백들을 태클에 가담시킴

3. 많은 공격라인 숫자로 쿼터백 보호


4. 쿼터백은 1차로 패스를 노림

5. 2차로 스스로 달림


6. 전술에 따라 타이트엔드 2 혹은 하프백을 2,3명 배치하기도 함

7. 위는 말 그대로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전형


***


#. 2016년 9월 6일

#-1. 미국, 하와이 오아후

#-2. 호놀룰루, 카후쿠 CDP

#-3. 카후쿠 고등학교

#-4. 쿼터백 실


샷 건(Shot Gun)은 현대 풋볼에서 다양한 패싱 전술의 근간이 되는 포메이션을 뜻한다.


금방 말한 그대로, 샷 건은 포메이션이다.

그 자체로 전술이 될 순 없다.


구분하는 방법은 쿼터백의 위치를 보는 건데, 스크리미지 라인에서 뒤로 5야드 이상 물러나 있으면 샷 건이다.


“샷 건의 장점은 뭐지?”

“포켓 보호가 쉽죠.”

“맞았어. 그리고 또?”

“쿼터백이 자유를 얻고요.”

“완벽해.”


금방 말한 것처럼, 샷 건 포메이션은 쿼터백이 뒤쪽에 자리 잡기 때문에 오펜시브 라인맨들의 기동 공간이 넓어진다.


완벽하게 구사되면 가장 이상적인 타원 형태의 포켓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럼 쿼터백이 필드를 관찰할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기에, 판단을 좀 더 여유롭게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뚜렷한 단점 역시도 존재한다.


첫 번째는 예측이 쉽다는 것.

샷 건하면 패스라, 수비는 거기에 대비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스냅 거리.

센터의 스탭 능력이 매우 좋아야 한다.


다행히 이 문제는 괜찮다.

로토의 스냅은 NCAA급이다.

매번 내 입맛에 맞게 볼을 전달해준다.


아무튼.

마지막 세 번째.

또 하나의 약점이 있다.


“기습에 약하죠.”

“하지만, 넌···.”

“네. 그 점을 이용했어요.”


샷 건 포지션에서 스냅이 이뤄지게 되면, 쿼터백은 대부분 포켓에 홀로 남는다.


러닝백이 없고.

하프백과 풀백은 스크리미지에 가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 디펜시브 라인배커나 세이프티가 경로를 만들어 쿼터백에게 달려든다면, 강력한 태클을 허용해 색(Sack)을 당할 위험이 크다.


하지만 이는 다시 말해.


“타이트엔드가 전진할 공간이 빈다는 거죠.”

“··· 세코페와 그걸 연습한 게냐?”

“정확히는 두 개의 움직임만요.”


스크리미지 블록에 가담하는 척만 하고 빙그르르 돌아 앞으로 쭉 달려나가는 루즈 삭스(Lose Socks).


일단 몸을 한 번 부딪혔다가 밀쳐버리고 가운데로 5야드 정도 나아가 쿼터백을 바라보는 스위치 잼(Switch Jam).


복잡한 전술을 공부할 필요 없이.

저 두 개면 충분했다.


왜냐하면.


“어차피 그걸 쓰는 건 저니까요.”

“그거참···.”

“쿼터백답다고요? 네. 저도 알아요.”


쿼터백들은 동료들을 부품으로 볼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 취급을 하라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필드 위에서 복잡하게 작동하는 두 개의 전술(공격/수비) 속에서 빈틈을 찾아내 전진이라는 목표를 이뤄내려면, 상당히 정교한 청사진이 늘 머릿속에 있어야 했다.


상상력은 쿼터백의 중요한 소양이다.

나도 그걸 매번 강조했었고.

그리고 지금은.


“스크리미지를 짤 때, 수비수들의 위치나 눈빛을 봐요. 어떤 애들은 너무 쉽게 티가 나거든요. 캠벨 전에서도 그랬어요. 라인배커 하나가 저만 쳐다보고 있길래, 스위치 잼을 외쳤죠.”

“Holy···.”

“그건, 진짜···.”

“멋진 오디블이로군.”

“감사해요.”


이번 미팅은 전술을 점검하는 것 말고도, 코치님들께 내가 오디블(Audible)이 된다는 걸 확신시켜줬다.


가볍지만은 않은 분위기 속.

나는 계속해서 의견을 밝혔다.


애초에 오늘 내가 이곳에 오게 된 배경인 디코이 전술 자체가 내 설명이 필요해서였다.


그리고 난 옵션(Option)에 관한 생각도 말했다.

러닝백/풀백/하프백을 둘 이상 세우는 것 말이다.


둘이면 더블.

셋이면 트리플.


지구상의 그 어떠한 풋볼 감독도 네 명 이상의 러닝백을 필드에 두는 미친 행동은 하지 않기에, 트리플 옵션(Triple Option)이 내가 아는 가장 극단적인 러닝 전술이다.


트리플은 힘들지만.

우린 더블은 충분히 쓸 수 있다.


“좋아. 여기까지 하지.”

“수고하셨습니다.”


새로운 전술이 정비되려면, 못해도 2주는 필요하다.

그나마 기존 전술과 결이 비슷해서 이 정도다.


코치님들끼리 조금 더 상의한다는 말을 들은 후, 나는 점심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모이!”

“밥 먹으러 가는 거야?”

“응. 같이 가자.”

“그래.”


최근 카오노히가 상당히 밝아졌다.

내심 난 흐뭇해하고 있다.


날래고 빠른 것치고는 힘이 있는 편이라서 최종 수비인 세이프티가 적당하다 봤는데, 요즘 훈련 성과가 나오고 있다.


어제는 디펜시브 엔드 코치님에게 칭찬도 들었다.

그걸 보며, 나는 무척 뿌듯한 감정을 느꼈다.


역시.

키워 쓰는 맛이란.

늘 각별했다.


***


모이가 떠나고 난 뒤.

카후쿠 고등학교 풋볼팀의 코치들이 혀를 내두른다.


“특별한 건 알았지만, 그 이상인데요?”

“감히 말하는데 프로 레벨이야.”

“두뇌, 시야, 판단력. 젠장. 진짜 거물이잖아?”

“가빈. 모이의 말이 옳아요.”

“···.”


가빈 트래비스를 포함한 수없이 많은 고등학교 팀 감독들은 선수들의 수준을 위해 스스로 많은 것을 포기한다.


감독으로서 기발하고 복잡한 전술을 사용하는 건 커다란 쾌감이고 동시에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는 일이지만, 그것들을 쫓아가기에 고등학생은 너무 어리다.


그나마 다른 포지션은 가르칠 수 있지만, 쿼터백은 가르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단순히 타고나야 한다는 말로도 설명이 부족하다.

선택받은?

이 표현이 가장 올바를지도 모른다.


“후우- 나는 내년쯤 대권을 노리려고 했어.”


드웨인 모이라는 전대미문 급의 거물 신입생.

어쨌든 학교에 4년을 머문다.


신입생 시즌을 적응 기간으로 두어도, 이후 3년 동안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출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도전 시기를 앞당겨도 될 것 같다.

모이가 금방, 그걸 꿈꾸게 해줬다.


“한번 굴러보자고. 앞으로 더 바빠질 거야.”


알면 알수록 더 놀라운 드웨인 모이 스톤의 재능.


카후쿠 고등학교는 이제.

전국대회 정상을 노린다.


작가의말

※ 풋볼 용어 설명


스냅(Snap) : 오펜시브라인에서 쿼터백에게 볼을 전달하는 행위.

옵션(Option) : 복수의 러닝백들을 두는 전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1

  • 작성자
    Lv.68 wj****
    작성일
    24.09.12 13:10
    No. 31

    코가 꿰일 걸 걱정하는 건 결국 즐긴 후에 정치질로 넘길 요령이 없다는걸 인정 안하고 자위하는거 같은데...

    찬성: 0 | 반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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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037. 제가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게 해주세요 +38 24.09.16 7,289 418 19쪽
36 036. 나는 줄곧 그렇게 해왔다 +33 24.09.15 8,100 392 18쪽
35 035. 그러게, 좀 더 잘하지 그랬어 +33 24.09.14 8,847 430 18쪽
34 034. 차라리 오토바이에 치이는 게 나았을 걸? +45 24.09.13 9,377 473 19쪽
33 033. 팬티를 적실 만큼 맹렬한 걸로 +82 24.09.12 10,088 482 19쪽
32 032. 우리의 이번 시즌은 정말 대단할 것 같다 +38 24.09.11 10,320 467 18쪽
31 031. Welcome! 신입생과 전학생! +33 24.09.11 10,723 516 18쪽
30 030. 야, 나한테 뛰어와야지 +69 24.09.10 11,129 697 21쪽
29 029. 터치다운 패스를 만들어야 한다 +33 24.09.09 11,084 538 19쪽
28 028. 아주 많이 즐길만했다. +30 24.09.09 11,503 500 18쪽
27 027. 제대로 된 놈이 하나도 없냐? +34 24.09.08 12,078 505 16쪽
26 026. 어떤 일이든 하는 게 옳다 +41 24.09.07 12,166 581 16쪽
25 025. 순수하게 꿈을 좇고 있을 뿐이다 +29 24.09.07 12,441 486 19쪽
24 024. 나쁠 것 하나 없는 거래다 +43 24.09.06 12,917 573 19쪽
23 023. 입맛이 그리 텁텁하지만은 않다 +35 24.09.05 13,182 590 20쪽
22 022. 엄-청 시끌벅적하겠지? +60 24.09.04 13,113 625 19쪽
21 021. 와- 오늘도 보람찬 하루였어 +28 24.09.04 13,078 506 17쪽
» 020. 역시. 키워 쓰는 맛은 각별하다 +31 24.09.03 13,722 497 19쪽
19 019. 지금 여기, 살아 있노라 외치고 싶어진다 +34 24.09.02 13,933 549 17쪽
18 018. 아무 일도 없었지만, 더럽혀진 것 같아 +25 24.09.02 14,231 489 16쪽
17 017. 그 기분, 누구보다 잘 안다면 믿어줄래? +28 24.09.01 14,551 49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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