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회 차 아포칼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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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릉다라
작품등록일 :
2024.08.21 15:42
최근연재일 :
2024.09.0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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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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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

DUMMY

약품과 의료용품까지 챙기자 응급가방은 빵빵해졌다.

가방은 이제 3개나 돼 식량은 나중에 구해야 한다.

다음으로 이동할 곳은 사람들을 만나 잠시 기거할 학원 건물이다.


‘오랜만에 젊어진 친구들을 만나겠네.’


학원 건물에서 삶의 마지막까지 함께할 동료들과 만나게 된다.

그들 모두는 용맹하고 헌신적이었다.

물론 지금은 모두 공황상태를 겪고 있을 것이다.

제 정신을 갖기가 더 어려운 시기다.


준기는 수도 파이프를 들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지금 시점이면 집안에 갇혀있던 감염체들이 문을 더듬어 열거나 창문을 뚫고 떨어질 때쯤이다.


와장창! 쿠웅~!


벌써 한 마리가 창문을 밀어 깨뜨리며 밖으로 떨어졌다.

너무 높은 높이에서 떨어져 즉사하는 감염체도 있었지만 어떤 개체는 뼈가 부러져도 돌아다녔다.

부러진 다리로 절뚝이며 걷거나 덜렁대는 팔을 휘두르면서도 통증을 느끼지 않아 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의 활동과 닮은 점도 있었다.

등교하고 출근하고 볼일을 보러 나올 시간이었으니.


벌컥!


골목을 지날 때 단독주택 문을 밀고 나온 감염체와 마주쳤다.


“허허, 이런!”


출근 복장을 갖춘 중년 남자였던 감염체는 몇 번 만나지 못했던 개체다.

가방을 손에서 놔버린 후 수도 파이프를 바로 치켜들었다.


크와아아!

휘잉, 쩌억!


일격에 보내버린 후 시계를 확인하니 조금 늦었다.

조금만 더 빨리 이 길을 지났으면 마주치지 않았을 개체였다.


‘아는 게 많아지니 챙기는 것도 많아져서 이 모양이네.’


아무래도 약국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쓴 모양이다.

200년 동안 쌓여진 지식은 생존에 유용했지만 때로는 아는 게 병이다.

준기는 한가득 짐을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작은 실수가 생사를 좌우하니 처진 속도는 만회해야 한다.


*


<아고라 입시학원>


학원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골목 모퉁이에서 확인한 5층짜리 입시학원 주변은 감염체들이 쓸고 지나간 흔적으로 가득했다.

인간의 피와 살점과 뼈와 머리카락과 찢겨진 옷가지와 소지품들 말이다.

피비린내로 가득한 이면도로는 많은 감염체들을 유혹한다.

바람의 방향은 그래서 중요했다.


‘그래서 내가 이쪽 길로 돌아온 거지.’


감염체는 냄새를 따라 움직이고 냄새가 옅어지면 방황을 시작한다.

준기는 가방을 꽉 쥐고 달리기 시작했다.

재빨리 학원의 주차장 입구로 들어간 준기는 셔터를 내려버렸다.


촤악!


셔터에 자물쇠를 걸었고 잠기지 않은 창문 앞에 섰다.

이 창문이 잠기지 않은 건 이미 알고 있다.


턱! 터덕!


가방을 먼저 던져 넣고 창문을 타 넘은 후 다시 닫았다.


“후우! 석세스!”


5층짜리 학원 건물엔 아무도 없다.

잠시 물을 마시며 쉬는 시간을 가졌다.

감염체의 피가 튄 스카프는 벗어던졌고 스포츠 고글에 묻은 피도 닦았다.

26회 차 막바지와 지금의 체력 격차는 확연했다.

강하게 단련됐던 신체와 판이하게 다른 몸은 스스로도 안쓰러웠다.


‘200년 전의 내가 운동을 좀 더 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생각도 늘 반복적으로 해왔던 바다.

감염체 무리에 쫓겨 한없는 질주를 하다보면 결국 지치는 게 사람이다.

준기의 지난 생에서도 비슷한 경험은 늘 있어왔다.

둔기를 휘두르다 놓쳤을 때도 있었고 칼을 쓰다 손을 심하게 벤 적도 있었다.

총기 오발, 차량 추돌과 전복도 있었고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다 엎어져 감염체의 식사가 됐던 일도 있었다.

그 수많은 실수는 처음 겪는 상황이거나 극한의 위기에서 일어났다.

실수의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안전한 사회였다면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을 거다.

누군가 쓰러지면 우르르 몰려들어 괜찮은지 살피고 걱정해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지금도 우르르 몰려드는 건 마찬가지지만 감염체들은 식사가 목적이다.


가방을 학원 복도에 두고 화장실로 향했다.

세면대의 수전을 올리니 물이 나왔다.

정전은 단수로 이어지지만 건물이 중력낙하 방식이라면 물은 나온다.

옥상의 물탱크가 비기 전까지는 말이다.

고로 화장실도 당분간은 쓸 수 있다.


가볍게 손과 얼굴을 씻고 다시 복도로 나온 준기는 가방에서 프로틴 바를 하나 꺼내 먹었다.

27회 차의 첫 식사였지만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과거 10회 차 이전에선 굶주림이 일상이었다.

도시에서 음식을 구하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 했다.

굶주림에 익숙하지 못한 많은 이들이 아사했었다.


‘이제 사람 만날 준비를 해야겠네.’


시계를 확인하고 생각을 해봤다.

누구를 받아들이고 누구를 배척해야 이번 삶을 편하게 살아낼 수 있을지를 말이다.

불 꺼진 복도는 밖에서는 안이 잘 안 보인다.

반대로 안에서는 밖이 잘 보였다.

이제부터 만날 사람들을 제각각의 특성을 갖고 있었다.

모두 준기가 아는 사람들이다.

각각의 사람마다 구해주는 일이 훗날의 재앙이 될지, 많은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지 알고 있다.

오늘의 겁쟁이가 용맹한 전사로 거듭나고 선했던 이가 악한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일단 1번 타자부터 받자.’


시계가 9시 2분을 가리킬 때 준기는 복도에서 일어나 학원 정문으로 향했다.

학원 현관은 2중 유리문이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자 유리문 밖으로 숨을 몰아쉬며 배회하는 한 남자가 보였다.

공포에 질린 그는 숨을 곳을 찾기 위해 애쓰는 중이었다.

등산복 차림이었고 40대였으며 이름은 부정환으로 제주도 출신이다.


벌컥!


준기는 학원 정문을 열었다.

그는 문이 열리는 순간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바쁘게 손짓으로 불러들이자 그는 다급하게 학원 건물로 뛰어 들어왔다.


“허억! 허억! 고, 고맙습니다. 하악, 하악!”


그는 준기가 2중 유리문을 전부 닫아걸자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대로 주저앉았다.


“여기 앉아 있으면 곤란합니다.”

“네?”

“혹시 저 이상한 사람들이 유리문을 뚫고 들어오면 바로 당할 것 같아요.”

“그, 그러면 어쩌죠?”

“일단 옥상으로 올라가 문을 걸어 잠그고 구조를 기다리면 어떨까요.”

“으으, 네.”


부정환은 준기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그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혼이 났는지 온몸에 생채기가 가득했고 땀에 젖어 있었다.


벌컥!


힘겹게 올라온 옥상은 화분 몇 개와 구석의 물탱크를 제외하곤 텅 비어 있었다.

일단 큰 화분으로 옥상 문 앞을 막았다.

준기는 가방을 입구에 내려놓고 그에게 말했다.


“일단 앉아서 쉬고 계세요. 주변 상황 좀 살펴보고 있을 테니까요.”

“저기 그런데, 혹시 전화 없으세요? 통화 연결이 아무데도 안 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전화가 터져야 112든 119든 도움을 청할 텐데······.”


위기를 스스로 극복해왔던 인류는 문명을 이룩하며 의존적으로 변해버렸다. 전화로 도움을 청해왔던 습성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일단 쉬고 계세요. 보고 오겠습니다.”

“네. 살려주셔서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돕고 살아야죠.”


준기는 옥상 끄트머리로 가서 밑을 내려다봤다.

넓은 시야에 들어오는 도시 정경은 여전했다.

곳곳에 피와 불과 연기로 가득했고 죽음이 휘몰아쳤으며 소망은 없어보였다.

앉아서 숨을 고르던 부정환도 궁금했는지 준기 옆으로 다가왔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죠? 사람들이 왜 저렇게 변했을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빨로 물어뜯고 할퀴고 심지어 잡아먹다니요. 전부 미친 것 같아요. 여기 오다가 뭘 봤는지 아세요? 분명 아기 엄마였던 것 같은데, 유모차 앞에서 자기 자식을 뜯어먹고 있었습니다.”


준기는 묵묵히 그가 느낀 공포를 청취했다.

어떤 심정일지 잘 알고 있다.

공황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는 충격적인 장면은 너무 많았다.


압도적인 공포 앞에 사람은 발을 떼기도 힘들다.

그나마 걸음을 걸을 수 있는 것조차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내 추측으로는 전에 유행했던 코비드 X인가 하는 게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그의 말에 준기가 호응했다.


“코비드 X요?”

“네. 너무 많은 사람이 전염돼서 통계도 더 뽑지 않았잖아요. 그게 어떤 요인이 돼서 사람들을 미치게 한 것 같아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이제 어쩌죠? 구조대가 올까요? 아니지, 군대가 와야 정리될 상황 같아요.”

“그렇죠. 군대가 와야죠. 하지만 올 수 있을까요? 전국적인 현상이라면 쉽지 않을 것 같네요.”

“하아!”


그는 절망에 빠진 얼굴로 다시 주저앉으며 얼굴을 감쌌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장은 길이 없는 것 같았으니.

준기는 묵묵히 그를 내려다봤다.

절망과 좌절은 그를 밟아대고 있었다.


잠시 혼란을 겪던 그는 다시 일어났다.

그러더니 주변을 살피다가 문득 말했다.


“제 추측으로는 이틀이면 구조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틀이요?”

“네. 제가 감이 좋거든요. 근거는 댈 수 없지만 분명 정부에서 뭔가 수를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입니까. 전시 대비는 다 돼있습니다.”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그래서 우리가 살려면 여기서 버틸 준비부터 해야 합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아까 저 구해준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살리고요.”

“그것도 옳습니다.”

“일단 통성명부터 좀 할까요? 나는 부정환이라고 합니다.”

“저는 성준기입니다.”


준기는 그가 내미는 손을 맞잡았다.


“일단 내가 연장자인 것 같습니다만 편하게 대해주세요. 나이 따지고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무리 세상이 망해도 지킬 건 지켜야죠.”

“아무튼 그건 차차 하시고 준기 씨, 일단 물하고 식량 좀 있어요? 이 건물에서 그런 걸 좀 구해야 할 것도 같고 그보다 계단을 좀 틀어막을까요? 1층 유리문이 뚫리면 다른 층을 못 쓰잖습니까.”

“좋은 생각입니다.”


준기는 그가 하는 말은 전부 호응했다.


“말이 잘 통하는 분 같아서 좋네요.”


정환은 준기가 말을 잘 듣자 조금이나마 얼굴이 밝아졌다.


“아무튼 어떻게든 살아남아요.”

“그래요. 그러면 일단 다시 내려갈까요?”


준기는 그와 함께 다시 옥상 문으로 향했다.

그때 부정환이 다리를 살짝 절기 시작했다.


“다리 다치셨어요?”

“아무래도 아까 달리다가 접질린 것 같아요. 긴장이 풀리니 이제 아프기 시작하네요.”

“저런! 그러면 일단 여기 계실래요?”

“아뇨. 사람이 둘인데 혼자보다 둘이 낫죠. 저도 도와야죠.”

“그러지 마시고 옥상에서 주변만 잘 살펴주세요. 혹시 구조대나 군대가 보이면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겁니다.”


준기가 권하자 그는 슬며시 웃었다.


“생각해보니 그게 더 중요한 일 같네요.”

“그럼요. 저는 내려갔다 올 테니까, 여기서 주변 상황 좀 살펴보고 계십시오.”

“알았어요.”


내려가려던 준기는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저 물탱크에 물이 얼마나 있는지도 좀 확인해주시면 좋겠는데, 가능하실까요?”

“어? 저거요? 뭐, 그러죠.”

“부탁합니다. 다녀올게요.”


그렇게 부정환을 혼자 둔 준기는 옥상 문 앞의 화분을 다시 치웠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면서 그가 물탱크 옆의 사다리로 올라가는 모습을 쳐다봤다.


척!


준기는 품속의 권총을 잡았다.

그리고 문을 살짝 닫은 후 틈으로 옥상을 살폈다.

물탱크를 밟고 선 그가 뚜껑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벌컥!


권총을 조준하며 문을 열고 나가자 그는 의혹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뭐, 뭡니까. 거기 손에 그거 뭐예요?”


준기는 대답 대신 거리를 좁혔고 스탠스를 단단히 잡았다.

가늠자와 가늠쇠를 일치시켰고 경악한 채 몸이 굳은 부정환의 복부 대동맥을 노렸다.


탕!


38구경은 약간 빗나갔다.

감각이 돌아오자 않아 중심 대동맥이 아닌 간에 적중했다.


“커억! 왜, 왜······.”


부정환은 총을 맞고 버티다 옥상 난간 밖으로 추락했다.

물탱크가 벽에 바짝 붙은 탓이다.


“그럭저럭 굿 샷인 걸로! 추측은 니미 좆인 거다.”


나름의 리더십을 소유했던 부정환은 많은 이들을 죽게 했다.

그 빌어먹을 추측은 간혹 들어맞았다.

좌측 아니면 우측이었고 앞이 아니면 뒤와 같은 50% 확률상의 판단들 말이다.

그 바람에 타인을 위험에 앞세워 죽게 하는 일이 계속 벌어졌다.

준기는 교활한 방식으로 금쪽같은 생존자들을 죽게 만든 그를 미리 없애버렸다.

회 차를 반복하며 부정환을 여러 차례 만났지만 그 야비한 성미는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지금도 다리를 다친 척하며 준기 혼자 일하도록 은근히 유도하는 꼼수를 부렸다.

다른 생존자를 구하자는 말도 이용대상이 필요해서다.

지금 구하지 않아도 독자로 생존해 다시 만날 인간이다.

이것이 그를 만나자마자 죽인 이유다.


‘망한 세상에서는 낯선 사람이 제일 무섭단 말이지.’


바뀐 세상에선 이걸 가장 주의해야 한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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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이 작품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2 24.09.01 54 0 -
14 장거리 사격술의 귀재 24.09.01 54 2 13쪽
13 부유하는 유령처럼 24.09.01 58 1 16쪽
12 멀쩡한 정신 24.08.31 68 2 13쪽
11 죽은 세상을 비추는 빛 24.08.30 71 3 15쪽
10 신선한 식재료 24.08.29 78 2 14쪽
9 용기와 동지애 24.08.28 80 4 16쪽
8 선을 넘는 순간 +1 24.08.27 100 4 16쪽
7 공포와 용기 24.08.26 109 4 16쪽
6 웃음 그리고 죽음 24.08.25 126 5 16쪽
5 망한 세상의 몸과 마음 24.08.24 131 5 14쪽
» 낯선 사람 +1 24.08.23 149 5 13쪽
3 200년의 지식 24.08.22 171 5 14쪽
2 걸어 다니는 재앙 24.08.22 196 4 13쪽
1 27회 차 아포칼립스 프롤로그, 1화 +1 24.08.22 263 7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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