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회 차 아포칼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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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릉다라
작품등록일 :
2024.08.21 15:42
최근연재일 :
2024.09.0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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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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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사격술의 귀재

DUMMY

파출소 정문은 잠겨있지만 뒷문이 있어 문제될 일은 없었다.


‘뒷문을 왜 안 잠갔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란 말이지.’


정신이 없어서였는지, 부주의함 때문인지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다.

준기는 신발을 발에 끼운 후 권총을 뽑았고 파출소 뒷문을 강하게 열었다.


뻐걱!


오래된 파출소 건물의 구조변형 때문인지 문이 뻑뻑해서 소리가 컸다. 슬쩍 밀어봐선 잠긴 걸로 착각할 여지는 있었다.


뒷문을 닫고 내부를 살펴보니 어둠속에 몇 구의 시신이 보였다.

경찰관과 민간인으로 보이는 시신들은 한바탕 아수라장을 만들고 죽어 있었다.

무기고는 열려 있었다.

얼마나 다급한 상황이었는지 알만한 그림이다.


‘이제 기어 내려와라.’


계단이 보이는 책상에 숨은 준기는 청각을 곤두세웠다.

문 열린 소리에 놀란 놈이 내려오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


불과 3분 전, 파출소 옥상에서 2층 숙직실로 내려온 박은석은 어깨를 쭈물거렸다.

FPS 게임 말곤 총을 쏴본 적이 없던 그는 견착이 서툴렀다.

은석의 총기 오발로 죽은 동네 아저씨에게 간략하게 배운 것이 전부였다.

1층 무기고에서였고 총을 받자마자였다.


“에잇! 병신 새끼. 그러게 왜 내 총구 앞에서 어른댔냐고.”


반성이나 후회는 없었다.

그러면서도 아깝다는 생각도 했다.

총은 아예 배운 바가 없는 이들에겐 다소 어려운 물건이기 때문이다.

탄창교환도 낑낑거리며 겨우 해냈고 장전도 헤맸지만 간신히 해내긴 했다.


“뒈지려면 더 가르쳐주고 뒈지든가. 쯧!”


파출소까지 오면서 두 명이 죽었고 이름도 모르는 동네 아저씨와 단 둘이 이곳에 왔었다.

하지만 장전을 배우는 과정에서 총기오발 사고가 났고 혼자가 됐다.


주르륵!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심장을 조이는 긴장감에 가슴도 아팠다.

유일한 위로는 총과 총알이 있다는 점뿐이다.

길가에 돌아다니는 인간 아닌 것들을 죽이고 또 죽이면 되리라 믿었다.

어쩐지 숫자가 더 늘어난 것처럼 보였지만 상관없다.

파출소 2층 숙직실에 약간의 식량과 물도 있으니 당분간은 버틸 수 있다.


‘엄마!’


그날, 갑자기 이상하게 변한 엄마가 생각났다.

학생 때부터 사고만 치다가 퇴학당하고 무위도식하며 친구들과 놀기만 했었다.

그런 은석을 돌봐주던 엄마는 이제 없다.

대신 엄마의 체크카드를 몰래 훔쳐 새겨놓은 문신만이 은석의 팔에 남아있었다.

엄마가 식당 설거지 일로 모은 800만원이면 친구들이 부러워할 만한 문신을 새길 수 있음에 후회는 없었다.

그 일로 잔소리를 듣고 가출했다가 경찰서에서 다시 만난 엄마는 울기만 했었다.


“씨발!”


대상도 없이 욕이 나왔다.

송두리째 바뀐 세상은 너무나 불편하고 무서웠다.

밥을 차려주던 엄마도 없었고 평소 놀던 친구들과 연락한 수단도 없었다.

혼자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공포를 이겨내자니 욕만 나왔다.


“씨발, 씨발, 씨발······.”


그렇게 혼자만의 파이팅을 외치던 은석은 수상한 소리를 들었다.


뻐걱!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뭐야.’


하마터면 놀란 나머지 총을 발사할 뻔했다.

다급하게 계단을 살폈지만 올라오는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무슨 소리야.’


평소와 다른 상황에 입술이 바짝 말랐다.

분명 뭔가 들렸는데 여기선 확인도 안 된다.


덜덜!


총을 들고도 손이 떨렸다.

마음 한구석에선 확인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잠겨있는 건물에서 밖으로 총을 쏠 때는 이렇게 무섭진 않았다.


‘내려가 봐? 아니면 더 기다려야 하나?’


깜깜한 계단을 플래시로 비춰볼까 생각했지만 그마저도 두려웠다.

누군가의 침입인지 잘못 들은 건지, 아니면 환청?

혼자만의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며 초조함은 더 진해졌다.


“뭐야!”


혹시 사람이면 답이 있을 터. 무턱대고 아무 말이나 해봤다.

하지만 아무 답도 없다.


“누구 왔어요?”


다시 불러봤다.

하지만 정적만 흘렀다.


팟!


죽은 경찰이 갖고 있던 플래시로 계단을 비춰봤다.


“씨발 거, 뭔데?”


잘못 들었나?

아니면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였나?

은석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기다리기만 했다.


하지만 기다림의 시간이 30분, 1시간으로 길어지자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뭔가가 안으로 들어왔다면 확인해야 한다.


‘그래, 게임에서 하던 대로······.’


1인칭 슈팅 게임에서 보던 대로만 따라하면 되리라 생각했다.

은석은 플래시를 잡은 팔위에 총열을 걸고 계단을 서서히 내려갔다.

계단에 반사되는 불빛이 눈이 부셨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한발 또 한발씩 내려가며 총구를 올린 자세를 유지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계단 위에서 살펴본 1층은 조용했다.

하지만 마지막 발을 바닥에 내디뎠을 때,


꽝!


굉음과 동시에 허벅지에 엄청난 통증이 일어났다.


“으갸악!”


쓰러지는 은석의 총은 누군가 낚아채버렸다.


“끄어억! 아악!”


비명을 지르는데 누군가의 두 다리가 보였다.


빠악!


그때 뭔가가 강하게 입을 때렸고 앞니가 뒤로 쑥 밀려나는 느낌이 들었다.


“조용히 해야지. 이 시끄러운 새끼야.”

“꺼어억!”


음산하고 차분한 음성이었다.

은석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엄청난 통증을 유발한 연이은 공격은 일체 자비가 없었다.


“끄윽, 누누누, 누구세요.”


떨어진 플래시 불빛에 하반신만 노출된 남자는 너무나 여유로웠다.


“누구긴 누구야. 동네 아저씨지.”

“으헉! 그런데 왜······.”

“너무 시끄러워서.”


얼음처럼 냉정한 답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뜻인지 모르겠다.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몰라도 돼. 다만 지금부터 네가 어찌될지 알려주마. 넌 지금 허벅지에 입은 총상 때문에 계속 피를 흘리고 있어.”

“으윽! 아파요.”

“그래. 아플 거야. 아프라고 쐈으니 아파야지. 아무튼 통증보다 위험한 게 바로 출혈이야. 지금 보니까 1리터 정도 흘렸네. 이제 서서히 의식이 사라지며 정신착란에 빠져들 거다. 이제 삶을 마무리할 시간이니 엄마 생각이나 하렴.”


아니나 다를까 정신이 띵하면서 몸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구역질도 나고 호흡도 가빠졌다. 죽는다 생각하자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 미안해요.’


은석의 마지막 의식은 그렇게 사라졌다.


*


화려한 문신을 팔에 그린 놈이 죽어가는 모습을 내려다본 준기는 담담했다.


“착하게 살진 못했겠지만, 죽음으로 착해졌으니 됐다.”


준기는 놈이 들고 있던 소총 약실에서 탄을 빼냈다.


철컥!


탄알집도 제거하고 개머리판도 접었다.

총기 손질을 했을 가능성이 없는 놈이라 이 총은 일단 넣어둬야 맞다.


‘이제 수거해볼까?’


첫 날 파출소를 선택하면 강력한 무장을 갖게 되지만, 반대로 어설픈 사람들과 함께 시작해야 한다.

초반에 매 회 차마다 고민하던 주제였었다.

삶을 반복하며 내린 결론이 있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강한 무기는 동료이자 전우라는 점이다.


‘신뢰하기 힘든 사람들은 많이 곤란하지.’


단지 총기를 부주의하게 다뤄서 오발 사고가 일어나는 것만 문제가 아니었다.

살상력을 갖춘 칼이든 둔기든 동료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다.

준기 역시 무기를 함부로 다루는 생존자들 때문에 다치기도 많이 다쳤었다.


“이제 챙겨보자.”


시신이 누워있는 무기고로 들어간 준기는 욕심 낼 생각이 없었다.

소총과 권총, 탄약도 딱 적정량만 있으면 된다.


‘너무 많이 챙기면 무겁거든. 이 동네 사람들도 써야하고.’


무게가 화력이 되는 화약무기는 관리를 위한 소도구도 필요했다.

총기 손질을 제때 하지 못해 죽은 사람도 한 트럭은 될 거다.

필요할 때 잼 현상이 나면 죽는 게 다반사다.


*


가방에 소총 4정과 권총 8정을 넣었고 탄약도 각각 수백 발씩 챙겨 넣었다.

경찰관들이 갖고 있는 플래시와 수갑, 삼단봉도 몇 개 챙겼고 책상 서랍의 건전지도 충분히 담았다.

가방의 묵직한 무게가 신경 쓰였지만 가는 길이 험난하진 않을 것 같았다.


‘이 놈이 총만 안 쐈어도 참으로 쉬운 동네인 것을······.’


이 지역 생존자들의 가장 큰 화근은 이렇게 처리했다.


*


파출소 밖으로 나와 조금 걷자 공사현장 주변에 쓰러진 시신들이 보였다.

그들은 도로 보수 작업자들이었다.

안전모와 무전기는 여기서 구했다.


‘건전지로 쓸 수 있는 무전기가 유용할 때지.’


리튬 배터리 무전기는 전기가 있어야 충전이 가능해 차라리 생활형 무전기가 더 편리한 시기다. 무전기와 안전모를 챙겨간 봉투에 담자 모든 물자 획득이 끝났다.


‘이젠 꽤 무겁네.’


병원과 파출소, 길에서 얻은 물건까지 가지고 가려니 바퀴 달린 게 필요했다.

물론 바로 눈앞에 수레는 준비돼 있다.


‘개꿀이 아닐 수 없단 말이지.’


도로 포장공사에 사용하던 손수레는 고무 타이어라 소리도 거의 안 난다.

피는 좀 묻어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


학원에서 준기만 눈이 빠져라 기다리던 세 사람은 옥상과 1층을 오가며 발을 동동 굴렀다.


“너무 오래 걸리는데, 혹시 잘못되신 건 아니겠죠?”

“설마! 자신감이 얼마나 넘치셨는데요. 그럴 리가 없어요.”


경일과 희찬은 준기의 생사를 걱정하면서도 옥상에서 주변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여차하면 달려 나갈 생각도 갖고 있었다.


“헙!”


경일의 경악성에 희찬이 옥상 반대편을 보다가 빠르게 달려왔다.


“뭡니까.”

“저, 저기······.”


어둠속이라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준기 같았다.

수레를 끌고 오면서 달려드는 감염체들을 너무 손쉽게 처리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갑시다.”

“네.”


두 사람은 무기를 챙겨들고 계단을 날듯이 내려갔다.

계단 바리케이드 일부를 허물어 둔 덕에 내려가는 일에 거침은 없었다.


“신애 씨. 왔어요.”


1층에서 문을 지키던 신애는 재빨리 열었고 두 사람은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이 주차장 뒤편 담을 넘자마자 감염체 몇 마리가 보였다.


“퉤! 덤벼.”


더 이상 예전의 그들이 아니다.

벌써 몇 마리를 때려죽였는지 숫자도 가물거릴 정도로 많이 죽였다.

더 이상의 두려움은 없었다.


휘잉, 쩌억!


경일이 휘두른 파이프에 감염체 한 마리가 일자로 굳은 채 아스팔트와 하나가 됐다.


푹, 드드득!


희찬이 찌른 단창도 감염체의 목에 깊은 상흔을 냈다.


철퍼덕!


두 사람은 한결 부드러운 몸놀림으로 감염체들을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소중한 동료를 구하기 위하여 모든 힘을 다 쏟아내는 두 사람은 이제 거칠 것이 없었다.


휘잉, 빠각! 푹푹!


재빨리 학원 뒤편의 감염체들을 제거한 두 사람은 건물을 끼고 돌아 이면도로로 나섰다.

멀리서 수레를 끌고 다급하게 걸음을 옮기는 준기가 보였다.


-빨리!


손짓으로 표시한 경일은 주변에 얼쩡거리는 감염체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휘잉, 뻐억!


쇠파이프가 휘둘러질 때마다 감염체들의 머리가 휙휙 돌아갔다.

경일의 뒤편에 있던 희찬도 좌우로 달라붙는 감염체들을 효과적으로 죽이기 시작했다.


반대편에서 두 사람의 활약을 지켜보던 준기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 포텐 터졌네.’


잠재력을 일깨워준 준기 덕분이다.

복잡한 생각을 더할 폐급 인간들이 없어서도 그렇다.

세 사람은 이면도로에서 감염체 수십 마리를 빠르게 제거하기 시작했다.


*


학원으로 복귀한 뒤 네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목숨이 오가는 상황을 이겨냈다는 감격 때문이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너무 애쓰셨어요.”

“못 오시면 어쩌나 걱정돼서 죽는 줄 알았어요.”


마지막 신애의 말로서 이들의 감정을 알 수 있었다.


“나도 여러분 생각하며 힘을 냈습니다. 이제 가방 챙겨서 올라가죠.”


네 사람은 준기와 함께 침실로 쓰는 강의실로 올라갔다.


*


챙겨간 물건을 정리하기 전 준기가 주의를 줬다.


“이 가방에 총이 있어요.”


총이라는 말에 세 사람은 눈에 띄게 동요했다.


“혹시 파출소라도 터셨습니까.”


경일의 물음에 준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경찰들도 다 죽었더군요.”

“하! 그럴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공권력이 끝장난 건 맞군요.”

“일단 총기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경일 씨와 희찬 씨는 아시죠?”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상적인 군 생활 경험이 있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신애 씨는 ······.”


준기의 물음에 신애는 머뭇대더니 답했다.


“사격 선수였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요.”


신애는 경일과 희찬을 아득히 능가하는 장거리 사격술의 귀재였다.


‘이제 슬슬 시작해야지.’

총을 쓰기 시작하면 개인의 생존 이상의 일을 해내야 한다.

바로 내일부터 말이다.


작가의말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중 공지를 올려놨습니다.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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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거리 사격술의 귀재 24.09.01 55 2 13쪽
13 부유하는 유령처럼 24.09.01 59 1 16쪽
12 멀쩡한 정신 24.08.31 68 2 13쪽
11 죽은 세상을 비추는 빛 24.08.30 71 3 15쪽
10 신선한 식재료 24.08.29 79 2 14쪽
9 용기와 동지애 24.08.28 81 4 16쪽
8 선을 넘는 순간 +1 24.08.27 100 4 16쪽
7 공포와 용기 24.08.26 109 4 16쪽
6 웃음 그리고 죽음 24.08.25 128 5 16쪽
5 망한 세상의 몸과 마음 24.08.24 131 5 14쪽
4 낯선 사람 +1 24.08.23 150 5 13쪽
3 200년의 지식 24.08.22 171 5 14쪽
2 걸어 다니는 재앙 24.08.22 196 4 13쪽
1 27회 차 아포칼립스 프롤로그, 1화 +1 24.08.22 263 7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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