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회 차 아포칼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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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릉다라
작품등록일 :
2024.08.21 15:42
최근연재일 :
2024.09.0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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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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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세상의 몸과 마음

DUMMY

총성은 제법 컸지만 이내 터진 굉음에 큰 문제는 없었다.


쿠쿠쿵!


비록 먼 거리지만 엄청난 폭음이었다.


‘구룡산에 떨어진 여객기였지.’


오늘 하루 민항기가 추락하는 일은 계속 발생하며 지금도 그러했다.

산 정상에서 거대한 불길이 치솟으며 검은 연기가 하늘로 올라갔다.

방금 전 총성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준기는 계단을 통해 1층에 내려가 부정환이 떨어진 위치의 창문까지 걸어갔다.

창밖으로 보니 죽으려면 조금 더 있어야 할 모양이다.


“오! 아직 살아 있었나? 총 맞고 그 높은 위치에서 떨어졌는데도 용하네.”


얼마나 강한 충격을 받았는지 말하나 마나다.

가쁜 숨을 내쉬며 죽음을 맞이하는 그는 부릅뜬 눈으로 하늘만 올려다봤다.

눈도 못 돌리는 그에게 준기가 말을 걸었다.


“죽으면서 들어. 너를 왜 쐈는지는 말해주겠다. 넌 말이야. 좆같은 새끼라서 뒈지는 거야. 알겠냐?”


건물 외벽의 간판에 걸리면서 속도가 떨어진 탓에 아직 살아 있는 모양이지만, 조금만 지나면 감염체들이 올 것이다.


“넌 타인을 너보다 못하게 여겼어. 사람 좋은 척 하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을 위험에 처하게 했는지는 내가 증인이다. 원인이 뭘까 항상 생각해봤다. 그건 너 자신이 집요하게 스스로를 속인 교만 때문이라는 결론이다. 사람들은 네게 이용대상에 불과했어. 너는 너를 도우려는 사람들을 깎아내리고 자의식을 붕괴시키는 간교한 혀를 쉬지 않았지. 은밀하고 교묘한 술책으로 타인을 조종하는 건 네 습관이지. 네 혀로 목숨을 잃게 만든 그들은 대개 순수한 이들이었다.”


본인이 아직 저지르지도 않은 일을 듣고 있는 부정환은 경악과 불신 속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내가 200년을 살아가면서 깨달은 건 사람의 본성은 절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거다. 너는 그중에서도 늘 일관됐지. 항상 누군가를 죽게 한다는 점에서.”


그때 창가로 감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에도 꼭 죽여주마.”


준기는 창가에서 멀어지며 생각했다.


‘초장에 죽여 버리는 게 최선이지.’


저 자는 준기가 유인해 죽이지 않으면 독자적으로 살아남는다.

반복된 삶에서 부정환을 몇 번이나 죽였는지 모른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가장 빠른 속도였다.

회 차 초반에는 인명 살상을 꺼렸지만 그건 실수였다.

실수는 그때로도 충분했다.


*


옥상에서 내려다보니 10분도 걸리지 않아 부정환은 흔적만 남은 채 사라졌고 인육을 즐기던 감염체들도 떠났다.

시계를 확인한 준기는 북쪽을 향해 섰다.

이제 다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날 시간이다.


콰콰앙! 우르릉!


여객기 한 대가 또 추락했다.

떨어진 위치도 알고 가본 적도 있었다.

오늘 전 세계적으로 많은 비행기와 헬기가 추락한다.

안전하게 착륙한 경우는 희소했다.

감염체는 물론 항공기 내부의 문제, 항공관제 시스템의 마비 등 요인은 많았을 거다.


‘항상 같은 시간이지.’


오랜만에 돌아온 반복된 삶이다.

지겹다는 느낌은 점차 희미해져갔다.

의식이 돌아올 때 지겹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습관일 뿐 실제로 삶을 살아가면 늘 설렜다.

이 무한의 삶속에는 항상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매번 약간씩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준기는 그걸로 만족했다.

사람들과 함께 희망을 일궈나가는 삶은 언제나 즐거웠다.

특히나 이번 27회 차는 편하고 재밌게 살고 싶었다.


*


‘이제 올 때가 됐네.’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이제는 또 손님을 맞을 시간이다.

거대한 폭음은 감염체들을 유혹한다.

다수의 감염체가 한 방향으로 몰려가면 약간의 공백이 생긴다.

이때 생존자 일부가 이동하는 일이 발생한다.

시계를 확인하며 기다리던 준기는 바깥쪽 유리문 안에서 밖을 살폈다.

그러던 중에 드디어 보행 보조기를 잡은 감염체가 어적거리며 지나갔다.

80대 노인이었던 감염체가 지나가는 일은 일종의 신호다.

학원 정문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 밖을 살피는데 인근 건물 앞의 승용차 뒤로 사람들이 보였다.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었다.

준기는 그들을 향해 손짓했고 이내 반가운 얼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 봐도 반갑다.’


이 생각 역시 반복적으로 해왔다.

준기의 손짓에 공포에 질린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 빠르게 다가왔다.

남자들은 캐주얼 복장과 작업복 차림이었고 여자는 정장 스커트에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자! 빨리 빨리.”


세 사람이 허겁지겁 들어올 때 건너편 골목에서 나온 감염체 넷이 문으로 달려왔다.

준기는 간발의 차이로 문을 잠그는데 성공했다.


크와아아!

덜컹, 덜컹!


문을 밀어대며 이빨을 들이대는 감염체들은 먹잇감을 놓친 맹수들처럼 연신 소리를 질렀다. 항공기 추락지점으로 뒤늦게 합류하던 개체들이었다.


덜컹, 덜컹!

크와아아!


하지만 학원의 강화 유리문은 활발한 아이들을 의식해 제작했는지 아주 튼튼했다. 위아래 고정 장치를 잠근 준기는 두 번째 유리문 안으로 들어와 다시 문을 걸었다.


철컥!


그때가 돼서야 사람들이 인사를 건넸다.


“하아! 덕분에 살았습니다.”

“죽는 줄 알았는데,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남자들의 인사였고 여자는 겁에 질려 오돌오돌 떨어대느라 작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물론 겁에 질린 건 모두 마찬가지였다.

준기는 반가운 얼굴들을 보며 하마터면 미소를 지을 뻔했다.

너무 잘 아는 이들이 부쩍 젊어진 모습으로 등장할 때마다 느끼는 반가움 때문이다.


“반갑습니다.”


준기는 그들에게 인사했다.

감회는 늘 새로웠다.

같이 나이 들어가던 친우를 젊은 시절의 얼굴로 다시 만난다면 이런 기분일 거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없었다.

세 사람은 지금 당장 치료부터 해야 했다.


“일단 옥상으로 모두 올라가시죠.”


준기의 권유에 상체가 굵직한 김경일이 물었다.


“안에 저런 사람들, 그러니까 이상하게 변한 사람들은 없는 거 맞습니까?”


조심성과 치밀함을 겸비한 경일은 늘 의문을 가졌고 확인하려 들었다.

매사 꼼꼼하며 선량한 기질을 가진 그는 준기에게 언제나 힘이 돼준 인물.


“제가 전부 확인했습니다.”


이번에는 작업복 차림의 남자, 강희찬이 물었다.


“호, 혹시 말입니다. 저 유리문이 박살나면 어떻게 하죠? 물건을 가져와서 막는 게 좋지 않을까요?”


감염체들은 아직도 문을 흔들고 있었다.

당연한 걱정이다.

신들린 듯 감염체를 죽이던 희찬의 모습은 처음에는 이랬다.


“괜찮을 것 같아요. 시야에서 사라지면 금세 흥미를 잃더라고요. 오면서 경험했습니다.”

“아! 그러면 빨리 올라가야겠네요.”


준기는 다리에 피를 흘리는 조신애를 쳐다봤다.

가슴에 손을 얹고 불안에 떨고 있는 모습이 비에 젖은 새처럼 애처로웠다.

이랬던 신애가 어찌 변할지도 잘 알고 있다.


“이제 괜찮아요. 여긴 우선은 안전합니다. 남자 셋이서 여자분 하나 못 지키겠습니까? 모두 안 그래요?”


경일과 희찬에게 동의를 구하자 두 남자는 암묵으로 동의했다.

그러자 신애는 긴장이 다소나마 풀렸는지 눈물을 쏟아냈다.


“고맙습니다. 흐흑! 제가 너무 놀라서······.”


그러더니 본격적으로 운다.

울음이 터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신애의 두려움은 금세 없어지지 않는다.

이건 경일과 희찬도 마찬가지다.


“가시죠.”


네 사람은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갔다.

혼란 속에 있는 이들에게 확신에 찬 음성은 안도감을 준다.


*


하지만 옥상에 올라온 세 사람은 울거나 멍해있거나 정신을 가다듬으려 애를 썼다.

극단적인 공포에 짓눌린 심정이 오죽할까 싶었다.

준기는 묵묵히 응급가방을 챙겼고 무균 면포를 바닥에 깔았다.

의료처치의 시간이라 약제와 도구를 꺼냈다.

준기는 먼저 소독약으로 자신의 손을 소독했다.

멸균장갑을 낀 후 의혹어린 시선들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일단 치료부터 받으시죠. 상처가 심한 여성분부터 시작할까요?”


차분한 권유에 김경일이 물었다.


“고마운 말씀인데 어떻게 응급처치 준비를 다 하시고······.”


의사가 아닌가 하는 시선이었지만 이럴 시간이 없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고 먼저 여기 가방 깔고 앉으시죠. 빨리 치료해야 감염되지 않습니다.”


신애는 잠깐 주저했지만 이미 다리에서 피가 많이 흐르고 있어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다.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뭘요. 일단 다리부터 볼까요?”


정장 스커트 아래의 스타킹은 피에 젖어 있었고 무릎과 정강이와 종아리에 찰과상과 물린 자국도 보였다. 준기는 가위를 잡고 물었다.


“먼저 스타킹을 잘라야 합니다. 괜찮죠?”

“네, 네.”


스타킹을 잘라내 환부를 드러냈다.

먼저 생리식염수를 환부에 들이부었고 거즈로 닦아가며 소독을 시작했다.


“으읏!”

“조금 아프시죠? 이건 꿰매야 합니다. 다른 상처는 소독하고 연고만 바르면 되고요. 그런데 제일 문제는 여기 이 부위입니다. 물리셨습니까?”


종아리 뒤편의 이빨 자국은 피가 맺혀있었다.


“다리를 얼른 빼기는 했는데, 워낙 정신이 없어서 모르겠어요.”

“물린지 얼마나 지났죠?”

“모르겠어요. 10분인지 15분인지, 여기 두 분이 안 도와주셨으면 그대로 붙들렸을 것 같아요.”


아직은 물림으로 변이되는 현상을 모르는 시기라 술술 답해준다.


“그렇군요. 우선 감염이 퍼지는 것부터 막도록 하죠. 괜찮죠?”

“네, 고맙습니다.”


준기는 주사기를 준비해 항생제와 항바이러스제를 준비했다.

주사를 준비하는 모습에 세 사람에게서 질문이 날아들었다.


“저기 그런데, 혹시 의사신가요?”

“그 주사는 어떤 종류인지······.”

“주사까지 맞아야하나요?”


준기는 약병에 주사기를 꽂으며 답했다.


“의사 맞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분은 항생제와 항바이러스제를 꼭 맞아야 합니다. 제가 목격한 바로는 물리면 감염되고 저것들과 비슷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광견병도 침에 감염인자가 존재합니다.”


의사라고 하니 모두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잘 부탁드립니다. 의사 선생님.”

“마침 의사라니 정말 다행입니다.”

“저, 괜찮겠죠?”


준기는 신애를 안심시켰다.


“결과는 봐야 알겠지만 너무 심하게 물린 건 아니니 어떻게든 효과는 있을 겁니다. 이제 시작할게요.”


준기는 주사를 놓기 시작했다.


“흡!”


신애는 주사가 꽂히는 걸 보기 힘들었는지 고개를 돌렸다.


“됐습니다. 이제 항생제 놔드릴게요.”

“고맙습니다.”


준기는 또 주사했고 거즈와 소독약을 이용해 다른 상처부위도 닦아냈다. 반복되는 회귀 중에 신애를 만난 것은 이번까지 열여섯 번째다.

어떨 때는 준기가 먼저 죽었고 다른 때는 신애가 감염돼 만나지 못했다.


“다 됐습니다.”


상처를 꿰매고 거즈를 대고 붕대로 마무리하자 신애의 치료는 끝났다.

다른 찰과상은 소독과 반창고 등으로 해결했다.


“이제 다음 분 오세요.”


먼저 희찬이 가방을 깔고 앉았다.

감염체들이 붙드는 통에 할퀸 상처도 있었고 넘어지며 찢긴 상처도 보였다.


“음, 이건 열 바늘 정도는 꿰매야겠군요. 마취부터 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준기는 묵묵히 그러면서도 숙련된 솜씨로 상처를 모두 치료해줬다.

의사가 아니라면 할 수 없을 법한 능숙함에 누구도 의구심을 갖는 사람은 없었다.


세 사람의 치료가 끝나자 김경일이 인사를 건넸다.


“정말 고맙습니다. 살려주시고 치료까지 해주셔서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준기는 담담히 답했다.


“환자를 치료하는 건 의사로서 당연한 겁니다.”


희찬과 신애도 고마움을 표했고 잠시 어떤 경로로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은 감염체에 쫓기던 신애를 구출한 후 셋이서 안전한 곳을 찾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다.

이야기를 들은 후 준기가 세 사람에게 당부했다.


“혹시 다른 분들을 만나게 된다면 제가 의사라는 말씀은 안하셨으면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이 당부는 아주 중요했다.

의사라는 걸 드러내야 할 때도 있지만 숨겨야 할 때도 있다.

세 사람은 부탁에 기꺼이 호응했다.


“쓸데없이 떠들지는 않겠습니다.”

“피곤한 일이 생기면 곤란하죠.”

“입 꼭 닫고 있을게요.”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말을 하고 난 후였다.


쿠콰아아앙!


화들짝 놀란 세 사람은 폭음이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았고 검은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헉! 주유소라도 폭발한 모양입니다.”

“저, 저 정도면 엄청 큰 불이 날 텐데······.”

“무서워요.”


정확히는 주유소로 향하다 전복된 유조차가 폭발했다.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대단히 심각한 화재임은 누구나 알만한 정도였다.


“불길은 여기까지는 오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다행히 바람이 저쪽으로 부네요.”


오직 준기만 평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겁먹은 채 혼란에 빠진 세 사람은 아직도 불안감을 벗지 못했다.

이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충격은 결코 작지 않다.

기존에 알던 모든 상식과 삶의 기반이던 사회가 한꺼번에 뒤집힌 날이다.

어린 아이가 부모를 잃은 것과 같았고 하늘이 무너진 느낌에 필적한다.

이들의 심리적 충격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평정을 찾지 못한 이들은 스스로를 사지로 몰았다.

공포가 사람을 죽게 하는 걸 무수히 봐왔다.

이겨내면 살겠지만 공포에 지면 죽는다.

망한 세상의 싸움은 몸과 마음 모두를 필요로 했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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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장거리 사격술의 귀재 24.09.01 56 2 13쪽
13 부유하는 유령처럼 24.09.01 59 1 16쪽
12 멀쩡한 정신 24.08.31 68 2 13쪽
11 죽은 세상을 비추는 빛 24.08.30 71 3 15쪽
10 신선한 식재료 24.08.29 79 2 14쪽
9 용기와 동지애 24.08.28 81 4 16쪽
8 선을 넘는 순간 +1 24.08.27 100 4 16쪽
7 공포와 용기 24.08.26 109 4 16쪽
6 웃음 그리고 죽음 24.08.25 128 5 16쪽
» 망한 세상의 몸과 마음 24.08.24 132 5 14쪽
4 낯선 사람 +1 24.08.23 150 5 13쪽
3 200년의 지식 24.08.22 172 5 14쪽
2 걸어 다니는 재앙 24.08.22 196 4 13쪽
1 27회 차 아포칼립스 프롤로그, 1화 +1 24.08.22 263 7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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