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보니 무림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판타지

무늬산
그림/삽화
무늬산
작품등록일 :
2024.08.21 19:51
최근연재일 :
2024.09.16 13:57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421
추천수 :
4
글자수 :
89,301

작성
24.08.23 17:52
조회
37
추천
0
글자
13쪽

눈 떠보니 군막이었다.

DUMMY

눈 떠보니 군막이었다.


단유운은 자신의 기척에 자기가 놀라 잠에서 깨었다.

높다란 천장엔 대나무 장대가 얼기설기 얽혀있고, 그 위로 짐승의 가죽들이 낯익은 지붕을 이루고 있었다.


‘무사히 복귀한 모양이군.’


그는 무거워진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가부좌를 틀고 천원일기공(天元一氣功)과 혼원일기공(混元一氣功)을 번갈아 불러오며 운기조식에 빠져들었다.


원래 형문양은 독고구패의 혼원일기공을 연마하려고 했지만, 그의 기질과 상성이 맞지 않아 주화입마에 들고 말았다.

그때 그가 주화입마를 풀기 위해서 창안한 것이 천원일기공이었다.

천원일기공은 우주 만물의 기운을 받아들여 강하고 뭉친 것을 부드럽게 풀어내는 묘리를 가진 것이었다.

장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도 천원일기공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다만 천원일기공은 정순한 만큼 공력을 쌓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기연이 없는 한, 적공량도 많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혼원일기공은 패도적인 만큼 단시간에 많은 내공을 축적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지만, 기질이 맞지 않거나 육기(肉器)가 부실하면 내공이 폭주하면서 주화입마에 들기 십상이었다.


그러니까 패도적인 혼원일기공을 부드럽게 다스려 체내 곳곳에 공력을 저장할 수 있게 조절해 주는 것이 천원일기공인 셈이었다.


약 반 시진 정도 집중하자, 그의 몸 주위로 기막(氣膜)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운기조식 도중 공격당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일종의 보호막인 셈이었다.

그것이 조금씩 일렁거리더니 갑자기 주위의 공간이 이지러져 보였다.

그러면서 마치 불꽃이 타오르는 것처럼 그의 정수리 위로 알 수 없는 기파(氣波)가 치솟았다.

그리고 그것은 눈꽃처럼 떨어지며 온몸으로, 피부 곳곳으로 스며들어 갔다.


“후~ 이제 좀 살 것 같군. 대체 사조님은 복귀하면서 뭔 짓을 하신 거야? 뭘 하셨길래 몸이 이렇게 천근만근인지······. 이놈의 사조님을 하루라도 빨리 쫓아내던가 해야지, 이러다간 나도 모르게 내가 죽을지도 몰라. 사조님! 듣고 계쇼?”


그때 마침 연주리가 다과상을 든 채, 군막을 열고 들어왔다.


“네? 뭐라고 하시는지 못 들었습니다만? 아참, 내 정신 좀 봐. 상공, 이제 기침하셨나요?”

“아, 아닙니다. 소문주께 한 말이 아니라······.”


당황한 유운이 얼버무리는데 그를 바라보는 연주리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갔다.

그녀는 밖에서 인기척을 내도 대답이 없자, 유운이 아직 잠들어 있는 줄 알고 들어왔다가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은 것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린 채 곁눈질을 하며 낮은 웃음소리를 냈다.

그런 그녀의 눈가에 왠지 물기가 묻어 있었다. 유운은 더욱 당황해하며 두 눈만 끔뻑거렸다.


“저······. 상공, 옷이라도 입고 계시면······.”


그러고 보니 유운은 운기조식을 하느라고 상의를 온통 벗은 상태였다.

그나마 속곳 차림의 하의는 입고 있었던 것이 다행이랄까?


유운은 다급하게 곁에 놓인 협탁 위에서 옷을 찾아 입었다.

그러면서도 빤히 자신을 쳐다보던 연주리가 어처구니없게 생각되었다.


‘아니, 나야 이제 막 일어났으니 그렇더라도, 이 여자는 왜 남의 몸을 빤히 훑어보는 거야?’


“흠, 흠, 제가 못 볼 꼴을 보여드렸군요. 근데, 연 소저(小姐)께서 직접 차를 내오시다니······.”

“란주는 상공(上公)께서 깨어나면 바로 드실 수 있도록 식사를 준비하라고 일러두었습니다. 차 마시고 나면 식사를 올리겠습니다.”

“아니······, 소문주께서 자꾸 상공이라고 저를 존대하시니 좀, 거북합니다. 그냥 예전처럼 이름을 불러주시거나, 대주로 부르시지요?”


봉미검(鳳尾劍)으로 불리는 연주리는 호북의 작은 문파인 연검문(燕劍門)의 남겨진 혈육이었다.

아버지 연묵정이 죽은 후, 그녀를 지켜준 유일한 사람이 단유운이었다.

그녀는 유운에게 입은 은혜 때문이라도 그를 결코 하대하고 싶지 않았다.


“제가 상공이라고 부르는 것이 부담스러우시면 문주(門主)로 부르겠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호북의 땅을 되찾고, 검문을 다시 세우더라도 상공께선 문주가 되셔야 하니······.”

“그, 그건 나중의 일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전 검문이나 세가(世家)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저는 평범하게 잘 사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이미 상공께선 많은 이들을 거느리고 계십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 주변이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겁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전 호북으로 돌아가면 전처럼 연검문의 위사(衛士) 노릇이나 하며 살 생각입니다. 그러니, 소문주께서 문주의 위에 오르셔야지요.”

“휴~ 알겠습니다. 상공께서 그토록 부담스러우시다니 당분간은 대주라 칭하겠습니다. 하지만, 곧 혈랑대도 해체될 테니, 그땐 무어라 부르지요?”

“그, 그건······, 그때 생각해 보겠습니다.”


단유운은 이럴 때는 말주변이 뛰어난 형문양이 아쉬웠다.

이상하게도 연주리만 마주하면 알 수 없는 벽이 느껴졌다.

비록 혈랑대원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도 대원들과 가까운 사람이 그녀였다.

특히 유운에게는 각별한 감정을 가진 그녀였다.


유운이 어색한 분위기에서 찻잔만 홀짝거리고 있을 때, 군막 안으로 대장군 휘하의 전령이 들어섰다.

위소평이었다.


“단 대주, 이제 정신이 좀 돌아오셨나? 대장군께서 찾으시네.”

“정신이 돌아오다니요. 제 정신이 어디 집 밖으로 나가기라도 했었나요?”

“몰랐나? 모두들 자네 걱정을 태산같이 했을 텐데······.”


위소평이 연주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차 싶었던지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대주께서는 꼬박 이틀을 잠에 드셔서 깨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말씀드린다는 것을 깜빡했습니다.”

“네? 이틀, 씩이나요?”


단유운이 형문양에게 몸을 맡기고 이틀이나 깨지 못한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아니, 최근 들어서는 내공이 상승해서 그런지 형문양과의 신기교환(神氣交換)이 자유자재로 이루어지곤 했었다.

물론, 형문양이 몸을 가져간 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자신이 볼 수 없다는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튼 단 대주가 이번 작전에 성공하면서 사실상 전쟁을 끝내셨으니, 큰 상을 내리실 모양이오.”


위소평의 말에 의하면, 하르칸을 죽임과 동시에 정가군이 대대적인 공격에 나섰고, 주둔지가 발각된 데다, 지휘관마저 잃은 아루나찰 부대는 사분오열하면서 극소수만이 살아서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혈랑대가 복귀하면서 적의 주요 부대에 타격을 주어서 우리 군은 손쉽게 진군할 수가 있었다지 뭐요?”

“네? 제가 주력 부대들을? 전, 그런 적이······.”


순간, 단유운은 자신이 왜 이토록 피곤하고, 오래 잠들었었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형문양이 장난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럼 그렇지. 항상 유운의 몸을 이용해서 자신의 무공 능력을 확인하고 싶어했던 형문양이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일곱 살 난 아이에게 잠자리를 쥐어준 꼴이었다. 그는 새삼스럽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제 사조님과 신기교환을 할 때는 조심해야겠군.’


“자, 대장군의 뜻을 전했으니 난 이제 돌아가 단 대주가 무사히 깨어났다는 소식을 전달하겠소. 그럼······.”

“네, 곧 뒤따라가겠습니다.”


전령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군막 앞에서 전령의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연 소저께서도 그만 의방(醫方)으로 돌아가시지요. 대장군의 명이 떨어지면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함께 있는 것이 싫으신 겁니까?”


연주리가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단유운이 괜히 섭섭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뭐, 할 말도 없고······. 그러니까······. 식, 식사하려구요.”

“······네, 식사부터 하세요. 지금쯤이면 란주가 준비를 마쳤을 겁니다.”


유운은 그녀와 같이 있으면 너무 어색해질 것 같아 바쁘게 군장을 챙겨 도망치듯 막사를 나섰다.


유운이 막사를 나서자 연주리는 가볍게 한숨을 내뿜었다.

방금 전, 그녀가 보았던 유운의 상처난 몸이 아른거렸다. 수백 개의 상처와 흔적이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녀는 의방 소속이었기 때문에 전투가 끝나면 상처입은 환자들을 돌보는 것이 임무였다.

그때마다 그녀는 유운의 상처를 봐왔다.

때론 창에 찔리기도 하고, 수십 개의 검상을 입어 피로 목욕을 한 것만 같은 적도 있었다.

그 덕분에 유운은 불패풍랑(不敗瘋狼)이라는 별호를 얻었고, 유운의 부대는 혈랑대라는 이름으로 거듭났다.


언젠가 한 번은 등 뒤에 다섯 개의 화살을 박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워낙 깊이 박힌 데다, 화살이 미늘처럼 파고 들어가 생살을 도려내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덕분에 파전식(破箭式)을 어떻게 응용해야 하는지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오늘은 아주 통쾌한 날이었습니다. 하하하!”

그렇게 말하고는 웃는 얼굴로 기절해 버렸다.


연주리는 그의 몸에 새겨진 수많은 전투의 흔적과 상처가 자기 때문인 것만 같았다.

그가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했더라면······.

애당초 연검문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면, 그는 자신의 소원대로 평범하게 잘살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아니다. 내가 그에게 부담되지 않을 만큼 고수였으면 좋았을 것을······.’


그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식사를 마친 단유운은 곧장 대장군의 처소로 향했다.

대장군 유위청은 마침 논공행상 문제로 휘하의 장수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어서 오시오. 대주!”

“제3 공격대 대주 단유운, 대장군을 뵙습니다!”

“하하하! 그렇지. 혈랑대가 아니라 제3 공격대였지?”


단유운이 양쪽 팔을 털고 포복지례(匍匐之禮)를 행하려 하자, 유위청이 팔을 휘둘러 무형의 힘을 가해왔다.

허리를 굽히려던 유운은 잠시 멈칫했다.


“과례(過禮)는 비례(非禮)라 했네. 우리 사이에 포권이면 충분하지.”


대장군 유위청은 그런 사람이었다.

전임 황제의 막내아들로, 그것도 서자로 태어나 갖은 타박과 위협에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사람을 포용할 줄 아는 도량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장군께서 그리 원하시면 과례치 않겠습니다.”


단유운은 포권으로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은 시종이 내온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었다.

유운은 주변에 상당한 고수들이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자칫하면 이곳에서 살아나가기가 수월치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장의 목을 벤 단 대주의 공이 컸네. 그래, 아직도 군을 떠나겠다는 결심은 변함이 없는가?”

“전쟁이 끝났으니 저와 같은 용병들이야 더 이상 쓸모가 있겠습니까? 저희가 남아봤자 불필요한 오해만 살 뿐입니다.”

“그러면, 용병이라는 굴레를 벗고 정식으로 군문(軍門)에 들어오면 될 것이 아닌가? 내 물심양면으로 자네를 돕겠네.”

“마음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장군께는 장군의 길이 있고, 제게는 저의 길이 있겠지요.”


막사 너머에서 두 사람의 환담을 몰래 듣고 있던 군사(君師) 진휘경이 은밀하게 유위청에게 전음을 보냈다.


--지금 단유운을 붙잡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환이 될 수도 있습니다. 대장군,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나의 길이라······. 사실 난, 길을 잃은 지 오래네. 전쟁을 치르는 10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

황상께서 나를 전쟁터에 내보낸 것도, 단지 5천의 유가군만으로 10만의 적을 상대하라 하신 것도 다 뜻이 있는 건데.

난 결국 황상의 뜻을 어기고 전공을 세우고야 말았네. 앞으로 내 앞에 또 무슨 일이 닥칠 것인지······.

사실 난 두렵네.”


백성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폭군 황제를 형으로 둔 유위청의 고뇌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단유운은 자신이 찾아야 할 길이 더 절박했다.


“저 역시 귀가 있고 눈이 있는데 어찌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대장군께서 어떠한 역경이라도 이겨내시리라 믿습니다. 걱정하지 마시지요.”

“그런가? 자네가 그렇게 믿어준다니 어떻게든 힘을 내야 하겠군. 하하하······. 굳이 떠나겠다니 이별주라도 한잔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별주라면 사양하겠습니다. 아직은 이별할 때가 아니니까요. 제가 찾고자 하는 바를 찾는다면, 그때 돌아와 이별주를 들겠습니다.”

“재회하는 날 이별하겠다······. 그것 참으로 아리송한 말이로군.”

“지금 이별하기엔 날이 너무 좋지 않습니까? 오늘 저를 보내셔야 저와 이별하실 수 있을 겁니다.”


“크하하하! 역시 자네는 괴짜야. 그래, 언제일지 모르지만, 자네와 이별주를 들 날을 기다리지.

내 듣기로 무림이라는 곳이 그리 호락호락한 곳은 아니라더군.

언제고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기별하게. 내 기꺼이 한 팔을 내어줄 것이네.”


마침내 유위청이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아침 햇살에 안개가 걷히듯 유운을 압박하던 살기가 불현듯 사라져 버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눈 떠보니 무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눈 떠보니 객잔이었다. 24.09.16 9 1 14쪽
14 눈 떠보니 핏빛이었다. 24.09.13 17 1 14쪽
13 눈 떠보니 칼날이었다. 24.09.11 21 0 14쪽
12 눈 떠보니 송림이었다. 24.09.09 19 1 13쪽
11 눈 떠보니 약방이었다. 24.09.06 18 1 13쪽
10 눈 떠보니 연주리였다. 24.09.04 19 0 13쪽
9 눈 떠보니 비명이었다. 24.09.02 23 0 14쪽
8 눈 떠보니 미명이었다. 24.08.31 25 0 15쪽
7 눈 떠보니 어둠이었다. 24.08.30 27 0 14쪽
6 눈 떠보니 소형제였다. 24.08.28 26 0 14쪽
5 눈 떠보니 산적이었다. 24.08.24 34 0 13쪽
» 눈 떠보니 군막이었다. 24.08.23 38 0 13쪽
3 눈 떠보니 적들이었다. 24.08.22 36 0 13쪽
2 눈 떠보니 적진이었다. 24.08.21 45 0 13쪽
1 눈 떠보니 무림_프롤로그 24.08.21 65 0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