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 아이 스코프 : 1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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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밀빵
작품등록일 :
2024.08.25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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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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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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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DUMMY


골드 럼


'골드 럼'이라는 간판이 건물의 중앙에 박혀있다. 로건이 스윙도어를 열고 들어가자 분주한 사람들의 얘기가 허공에 떠다닌다. 그가 고개를 연신 좌우로 돌려가며 살롱 내부를 살펴본다.

근육질의 우락부락한 남성미 넘치는 사내가 있는가 하며, 자신의 미와 색기를 마음껏 자랑하는 여인도 있었다. 그들은 탁자 위에 올라가 노래와 동요를 부르고 있었고 홍당무처럼 빨개진 두 뺨과 딸꾹질하는 여러 남성이 바닥에 고꾸라져 있었다.


유타 마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2층 주점은 언제나 사람이 득실거린다. 10년 전에는 벌레들이 테이블 위를 나돌아다니고 술통을 보관할 곳이 없어 밖에다가 전시하듯 내놓은 곳이 1년, 또 1년, 해를 건널수록 주인장이 자꾸 무언갈 바꾸었다. 맨 처음에는 테이블의 배치와 깔끔함을, 그다음에는 매음굴처럼 보이게 하던 칙칙한 촛불을 샹들리에로, 그렇게 하나씩 바꾸어 온 '골드 럼'은 이젠 마을에서 가장 멋지고 세련된,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주점이 되었다.


"오, 리암이 아닌가?! 오랫동안 보이지 않아서 죽은 줄만 알았다네."


카운터에 유리잔을 닦고 있는 주인장 윌리엄 제임스의 낮고 깊은 목소리가 시끄러운 대화 사이에 은은하게 들려온다.

그가 입은 흰색 셔츠와 검은색 슈트는 먼지 하나 얼룩 하나 져 있지 않았고 그의 몸에 맞춰 딱 붙어 있었다. 그리고 주름진 얼굴을 장식하는 콧수염은 반듯하게 깎여 그의 중년미를 더해주었다.


리암은 그를 향해 손을 가볍게 흔든다.


"오랫동안 여행을 다녀왔거든. 당신한테도 줄 선물을 가지고 왔어. 아, 술집에 술을 선물로 주는 건 그다지 의미가 없으려나?"


리암이 배낭에서 진을 꺼낸다. 유리병 안에 든 갈색 액체가 자신을 마시라며 유혹한다.

제임스가 싱긋 웃으며 대답한다.


"상대를 생각한다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거 아니겠나? 나야 무료라면 얼마든 좋지."


빌이 딸꿀질을 하며 테이블에 얼굴을 파묻는다.


"흥, 그것도 맞지만 술이라고. 공짜에 술? 이건 미쳤어!"


"자네도 미친것 같다만?"


그들은 리암이 가져온 테킬라 병의 마개를 딴다.

뽁, 소리와 함께 걸쭉한 갈색 액체가 유리병 안에서 흔들린다. 제임스가 반듯하게 닦은 유리잔을 한 번 더 닦고 그들에게 내어준다. 그가 로건을 발견하고는 눈썹을 들썩거린다.


"흠? 이거 못 보던 손님이군. 꽤 멀리서 온 양반 같은데?"


"아직 소개를 못 해줬군. 여긴 내···"


리암은 말을 길게 늘어뜨리며 로건을 쳐다본다.


"그러니까··· 동료야. 그래, 동료. 그런데 아직 술은 마시면 안 되는 어린아이지."


리암은 로건 앞에 놓인 유리잔을 손바닥으로 슬쩍 밀어 놓는다. 그리고는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며 제임스에게 눈치를 준다. 그런걸 알턱 없는 빌이 중간에 끼어들며 소리친다.


"아니! 나는 열다섯 살 때부터 술을 마셨다고! 술 정도는 거뜬하지! 자 마셔라!"


"빌? 네가 그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나?"


리암의 말에 빌은 눈을 내리깔고 입을 꾹 닫으며 자기 자리에 앉는다.


"그렇다고 하는군? 꼬마 양반."


제임스가 싱긋 웃으며 유리잔에 오렌지를 갈아 만든 주스를 따라 붓는다.

로건은 입을 삐쭉 내밀며 조용히 오렌지 주스를 벌컥 들이켠다. 한 모금, 한 모금 마실수록 그의 표정이 점점 풀린다.


빌이 술잔을 둥그스름하게 흔들며 리암을 쳐다본다.


"그런데 정작 물어볼 건 못 물어봤네. 네 딸은···?"


그의 말에 리암은 입을 열다가 굳게 닫아버리며 입술을 깨문다. 그의 행동에 빌은 고개만 위아래로 끄덕인다. 어색한 침묵이 맴돈다. 술잔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리암이 유리잔에 담긴 테킬라를 한 모금 쭉 들이키곤 침묵을 깬다.


"인사는 이쯤하고 이제 말해봐. 조금 전 매복, 잘못 했으면 죽을 뻔 했다고. 그리고 그리폰이 살아있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이야?"


"우리가 하나 알아낸 게 있어. 최근에 연방 보안관에서 수배지가 날아온 게 있어. 여기, 석 달 전에 우리 마을에 놀러 온 '그리핀'이라는 녀석이야. 그리핀, 그리폰, 이름도 비슷하지."


빌은 자신의 옷 안 주머니에서 반듯하게 접혀 있는 수배지를 펼쳐 그에게 건네준다.

그 수배지에는 '그리핀'이라는 이름이 필기체로 쓰여 있었고 현상금의 액수가 적혀있는 칸에는 '당신이 상상하는 만큼'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인물의 얼굴이나 몽타주가 그려있어야 할 공간에는 오직 검은색 물감을 몇 방울 떨어트려 놓은 것 같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잠깐, 네가 말한 '그리핀'이라는 녀석이 분명 네놈의 돈을 전부 가져갔다고 하지 않았나?"


"아픈 기억을 또 꺼내는 구만... 하지만 그 녀석은 딱히 우리 마을을 습격하려고 온 것 같진 않아 보였어. 진짜 호기심 많은 잡상인 같은 느낌이었지. 이곳 2층에서 포커하고, 저기 매음굴에서 희희덕 거리더니 떠나버렸어.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심지어 그는 혼자였다고. 그런 사람을 누가 무법자라고 생각하겠나?"


빌은 테킬라 한 모금을 쭉 들이킨다. 그의 이목구비가 한곳에 모이더니 목구멍에서 삐져나오는 탄식을 내뱉는다. 그리곤 얘기를 이어간다.


"우리가 이렇게 매복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이때까지 다녀갔던 마을들이 전부 타락했다는 거야. 유타의 헬켄 마을부터 네바다의 풍차 마을, 앙코르, 데이번··· 셀 수도 없을 정도야. 사람들은 미신이라고 하더군. 그런데 하나씩 사라져 가는 마을을 보니 어찌 안 무서울 수 있겠나?"


'헬켄'이란 단어에 로건의 귀가 쭈뼛 선다. 그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진다. 그가 들고 있는 유리잔이 덜덜 떨리더니 손등에 연한 초록색 힘줄이 튀어나온다.

제임스는 카운터 아래에 놓인 낡은 신문을 툴툴 털고는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신문에서는 그를 역병이라고 하더군. 다른 얘기로는 그가 예전에 '그리폰'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어. 참, 웃기지도 않아. 6년 전이야. 심지어 연방 보안관에서 '그리폰'은 데드 아이 스코프가 사살했다고 공식 보도했어. 그 사이에 아무런 소식 없이 그가 되살아났다고? 여기에 행상인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소문이 진작에 떠돌았으면 신문사에서 낚아챘을 거라고. 어찌 됐건 난 믿지 않네."


"···그래서 헬켄이 그렇게 된 게 전부 그리핀 때문이라는 거죠?"


로건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억눌려진 목소리를 내뱉는다. 그의 지도위에 새로운 선택지가 내리꽂힌다. 리암이란 선택지에 이어서 최종목표가, 그가 그토록 갈망하던 복수의 대상이 명확해졌다.


"그건 모르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이때까지 그가 다녀간 마을에서 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목격자가 있어야 뭐라도 알아내든 하지."


제임스의 말에 로건은 고개를 좌우로 젖는다. 리암은 그의 모습에 입꼬리를 올린다.


"아니, 제임스. 자네 말이 맞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단 한 가지 틀린 건 확실하군. 있어, 생존한 사람이."


"자네 제정신인가? 농담 한번 진솔하게 하는구먼. 그렇다면 그게 누군가? 저기 옥살이 하고 있는 브래드 형제인가?"


제임스의 얘기에 리암이 로건 어깨 위에 손을 가볍게 얹힌다.


"네 눈앞에 있잖냐? 이 녀석. 2년 전 헬켄 타락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야. 마을에서 좀 떨어진 오두막에 살아서 겨우 살아남았지."


리암의 얘기에 제임스는 유리잔을 닦다 말고 카운터의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치며 걸걸한 목소리로 시원하게 웃는다.


"꽤나 웃겼네. 당신이 이런 농담도 할 줄 알고 말이야. 역시 여행은 견문을 넓혀 준다더니 진짜였구먼."


빌이 검지손가락으로 로건을 가르키며 거든다.


"진짜야. 나와 리암이 구해준 녀석이지. 그리고 리암은 농담 같은 거 못해. 세상이 뒤집어지는 한이 있어도."


그의 말에 제임스는 리암과 로건 그리고 빌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제임스가 눈을 가늘게 뜨며 모두를 노려본다.


"어허··· 이거 셋이 작정하고 나를 속이려고 하는군. 어림도 없지!"


"정말···"


"됐네, 됐어. 내가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 치자고. 하하!"


그의 말에 리암과 빌은 서로의 눈을 마주친다. 짧게 한숨을 내뱉고선 잔에 든 술을 모두 마셔버린다. 한잔 더 라는 짧은 말과 함께 유리병 속에 든 갈색 액체가 그들의 식도를 타고 사라진다. 점점 빨개지는 콧등과 두 뺨, 어눌해지는 그들의 혀마디가 그들을 강아지로 만든다.

마침내 유리병 속에 들어있던 술이 비워지자 그제야 빌은 눈을 감고 그 자리에 엎드린다. 로건이 그의 어깨를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았다.


"됐어. 어차피 제임스가 알아서 처리하겠지."


"아니? 우리 주점의 서비스 중에 강아지를 돌봐준다는 건 없다만."


리암은 빌의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달러를 한 움큼 꺼내어 카운터 위에 놔둔다.


그는 비틀거리는 다리를 힘겹게 끌고 가며 '골드 럼'을 나간다. 세상은 암흑에 잠겨있고 모든 불이 꺼져 있다. 홀로 밝게 빛나는 골드 럼도 이제는 자신을 꺼트리려 한다. 그는 풀린 눈으로,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둠을 걸어간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먼지 덮인 간판이 있는 허름한 집이었다. 달빛을 가린 구름이 서서히 몰려가자 그 간판의 글씨도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바로 '데드 아이 스코프의 관망하는 망원경'이였다.


작가의말

통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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