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 천재는 걸그룹이 너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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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람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6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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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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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에서 돌아온 천재 (3)

DUMMY

#3화



취중진담.


술이라는 건 가끔 사람에게 자신이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진심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게 만드는 용기를 준다.


맨 정신이었다면 절대 말하지 않았을 속내를, 술 때문이라는 핑계를 주면서 털어놓도록 허황된 용기를 주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술이 깨고 나면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를 하게 만들고 말이다.


지금 이 순간,


서린은 바로 그 술기운을 빌려, 그 옛날 회사를 나오며 받았던 재이의 연락처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70만 원짜리 보컬트레이닝과 칭찬을 받았던 그날.


서린은 밤잠을 설쳤었다.


SJ가 바로 그 서재이라고 너무나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이 다시 내 방송에 찾아올까?

왜 내 방송에 찾아왔는지 물어볼까?


만약 그가 다시 방송에 나타난다면 어떻게 이야기를 할까.


그렇게 고민하며 밤을 지새웠는데, SJ는 그날 이후 서린의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제대로 된 물증도 없고 그저 심증뿐이지만, 서린은 SJ가 자신에게 과거 재이가 했던 말처럼, 맛있게 들었다는 말을 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를 서재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서재이는 다시 깜깜 무소식이 되어버렸으니.


그로 인해 마음속에 희미하게나마 희망이 싹텄었는데, 그렇게 사라져버리다니.


그날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재이가 조금씩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하던 어느 날.


서린은 에센스 7주년 다큐멘터리에서 다시 한 번 재이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라 매도를 당하는 것을 발견했다.


“정말··· 멤버들이 아니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시간이었죠.”


그와 함께 있었던 모든 시간이 지옥 같았다며,

자신이 가치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며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멤버의 가증스러운 모습을 바라보며 서린은 욕지기가 치미는 걸 느꼈다.


자신은 그저 피해자라며,

죄 없는 소녀인 척 연기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니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너 때문에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회사를 나오게 됐는데, 헛소리도 정도껏 해!’


그 구역질나는 거짓말을 보고 있자니 화가 치밀어 오른 서린.


그렇게 그날, 그녀는 평소에 잘 마시지도 않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대낮부터 말이다.


“나쁜 새끼들···.”


서린은 술잔을 계속해서 기울였다.


저런 인간들 때문에 진짜 하고 싶은 아이돌도 못하고 있는 내 인생이 너무 불쌍해.


그런 생각에 화도 나고, 취기도 차오른 서린의 머릿속에,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분도 너무 불쌍해.

절대 그럴 분이 아닌 걸 나는 아는데.

처음으로 내가 완벽하게 가창을 해냈을 때, 나보다 더 기뻐하면서 하이파이브를 했던 그 사람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얼마나 억울할까.”


지금 그 사람은 어떨까. 화났을까?


그렇게 생각이 미친 지금.

서린은 재이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


[우으··· 프로드셔님은 화 안나세여?]

“···.”


재이는 잔뜩 술에 취한 서린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린은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저는요··· 진짜 억울해요···. 저 학폭 지인짜 안 했거등요? 근데 그때 아니라고··· 진짜 아니라고, 서지혜가 거짓말 한 거라고 더 크게 말 못하고 더 안 싸운 게 너무 화가 나요. 그래서··· 그래서 하, 하고 싶은 아이돌도 못하고 이러고 있는 게 너무 화가 나요. 저 대신 걔가 에센스에서 메인보컬을 하고 있다는 게 화가 나요. 프로듀서님은 화 안 나세요?]


술에 취해 발음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서린의 목소리는 갈수록 점점 물기가 어리더니,

어느새 그녀는 묵은 한을 토해내듯 그렇게 울먹이며 말을 이어갔다.


“하아···.”

[전 아직도 이해가 안 가요··· 걔가 왜 저한테 그런 짓을 했는지. 근데 이제는···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냥 화가 나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재이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몰랐다.

학교 폭력 관련해 일이 생겨 서린이 소속사를 나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왜 그런 실수를 해서··· 라고 생각하며, 그녀를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런 그녀의 결과가 당연한 거라 생각했던 그때가 떠오른다.


‘지혜가 그랬다고···?’


에센스의 메인보컬인 서지혜.

그 아이가 서린이를 그런 방식으로 밀어냈다고?


만약 서린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은 얼마나 아이들을 몰랐던 것일까.


아이들이 자신을 배신하고, 자신을 쓰레기로 몰아가는 증언을 서슴없이 내뱉을 때.


저 아이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래서 절망했는데.

서린도 그 감정을 똑같이 겪고 있었다.


그런 아이가 지금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넌 화가 안 나냐고.


그제야 재이는 그녀의 물음에 대답할 수 있었다.

자신이 이 말이 그나마 그녀에게 작은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화났지··· 화났어.”

[···그으럼 복수하면 안 돼요?]

“뭐?”

[복수해요. 같이 해요, 프로듀서님. 저요···저, 진짜 아이돌 하고 싶거든요? 진짜 엄청 대박 나서··· 걔들한테 복수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프로듀서님이 나 도와주면 안 돼요?]

“나랑 하면 복수하기 더 힘들어질 수도 있어.”

[아아뇨? 프로듀서님은 할 수 있어요. 서재이잖아요. 저어는 알거든요. 프로듀서님 진짜··· 진짜! 천재인거 알거든요? 저 진짜 노래하고 싶단 말이에요···!]


취기가 더 올랐는지 이제 정말 강짜를 부리기 시작하는 서린.

그런 서린을 진정시키기 위해 무어라 말을 할까 고민하던 찰나,


다시 이어지는 서린의 말에 재이는 정곡을 콕 찔리고 말았다.


[프로듀서님도 다시 일 하고 싶잖아요··· 그러니까 나··· 방송에서 도와준 거잖아요. 치, 치십 만원 도네 한 거잖아요.]

“···.”

[저 진짜 노래 잘 하는데··· 진짜 잘할 수 있는데.]


그녀의 말에 가만히 생각에 잠긴 재이.


그때, 그녀의 방송에서 도네이션을 보내며 훈수를 하고, 변화한 그녀를 바라보며 느꼈던 작은 기쁨.


아이돌을 프로듀싱하며 느꼈던 크나큰 기쁨의 아주 작은 편린을 맛봤을 뿐인데도 그때 얼마나 진심으로 신이 났던가.


그녀의 넋두리에 재이는 저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건네고 말았다.


너 아직도 이 일이 하고 싶은 거냐고.


그리고 그 답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너무나 명확하기 떠올랐으니.


재이는 복잡한 눈으로 수화기 너머, 서린을 향해 말했다.


“일단 술 깨면 다시 이야기 하자.”

[에? 에에?]


뚝-.


그렇게 통화를 마친 재이.


재이는 그 순간부터, 해가 지고 하루가 바뀌어 아침이 되는 그때까지. 단 한숨도 자지 않고 고민에 고민을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재이는 자신만의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


다시 한 번 2년 전 논란에 불을 지핀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일주일이 흘렀다.


며칠 전까지 그 어처구니없는 다큐를 보며 분노를 숨기지 못했던 남자, 리바이브 엔터의 대표 성욱현은 사뭇 긴장한 얼굴로 여의도에 소문난 더덕구이 백반집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후우···!”


떨리는 숨을 내뱉으며 긴장을 푸는 욱현.


그는 얼마 전, 재이를 향해 늘 일방적이었던 자신의 메일에 처음으로 답장을 받았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같이 드시죠. 더덕구이.]


단 한 줄이었다.

그런데 그 한 줄을 보고 자신은 신이 나 대표실에서 그만 환호를 지르고 말았다.


2년 만이다.

온 세상과 담을 쌓고, 뭘 하는지도 모르게 살아가던 천재가 자신에게 응답을 하고, 처음으로 외유를 결심한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나.”


과연 그는 무슨 이유로 자신과 만나자고 답장을 보낸 것일까.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어쩌면··· 복수를 위해서?


그 무엇이 되었든 욱현은 재이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었다.


그는 재이가 정말 결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의 은퇴에 진심으로 분기탱천했던 사람이었으며,

그로 인해 이 업계에 발을 들이고 꿈을 꾸게 된 한 사람이었으니까.


진짜 자신의 꿈을 위해, 연예계 사업을 하겠다고 후계 경쟁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할 수 있게 만든 것이 바로 재이 덕이었으니,


그는 서재이를 위해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그 어떤 요구도 들어줄 생각으로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이었다.


그렇게 오만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


드르륵-


백반집의 미닫이문이 열리며, 2년 전보다 훨씬 해쓱해지고, 창백한 피부의 재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재···! 아, 프로듀서님.”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온 반가움에 그의 이름을 부르려다, 황급히 목소리를 낮춘 욱현.

그런 그를 향해 재이가 낮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 대표님?”

“아휴, 그럼요. 프로듀서님은···.”


되묻던 욱현, 헙 하고 입을 다물음.

얼마 전 그의 이름이 에센스와 자칼에 의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던가. 잘 지낼 리가.


하지만 그런 욱현의 반응에도 재이는 그저 덤덤하게 웃으며 물을 마실 뿐.


그렇게 잠깐 불편한 침묵이 이어지던 그때.

재이의 입이 먼저 열렸다.


“그동안 제가 너무 무례했죠? 2년 동안 꾸준히 안부를 물어주셨는데,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고맙습니다. 챙겨주셔서.”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요. 오히려 원치 않으신데 제가 계속 결례를 범하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래도 또··· 안 보낼 수는 없겠더라고요.”

“변명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늘 메일은 확인했어요. 하루도 쉬지 않고 보내셨던데.”

“아하하···!”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 군침 돌게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더덕구이 정식이 식탁에 펼쳐지며 두 사람은 식사를 시작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대화와 식사.

재이는 너스레를 떨며 사람 좋게 웃는 욱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리바이브 엔터테인먼트 대표. 성욱현.


그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땐 저런 타이틀이 아니었다. 재이는 그를 처음 만났던 때를 기억했다.


대한민국의 대들보, 국내 재계서열 1위 유성그룹의 막내아들로 불리던 그때.


그는 뉴욕대 재학시절 타지에서 자기 앞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며 자살까지 생각했던 그 최악의 시절, 재이가 만든 곡으로 인해 희망을 찾았다며 그를 찾아왔었다.


그 덕에 꿈을 찾았다고.

정말 세상에 즐거움과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시작부터 결말까지 완벽하게 아름다울 수 있는 아이돌그룹을 만들고 싶게 됐다며 그는 리바이브라는 이름의 연예 기획사를 세울 거라고 했다.


후에 알고 보니 그러기 위해 그는 후계 경쟁에서 스스로 물러나기까지 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한순간에 나락에 떨어지던 그때.


그는 진심으로 자신보다 더 분통해하며 말했었다.


당신이 결백하다는 것을 안다.

난 당신을 믿는다. 그러니 내가 당신을 도와 그 억울함을 푸는 것을 돕겠다.

당신을 배신한 그들이 벌을 받게 하자.

무엇이든 말해라. 도울 테니.


재이는 그런 욱현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저 이 바닥에서 벗어나는 것을 선택했다. 그 모든 멍에를 지고서 말이다.


그 이후로 2년 만에 그를 만나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었다.


그 옛날과 다르지 않은 눈빛을 한 채, 자신과 시선을 마주한 욱현을 향해 재이가 입을 열었다.


빙 둘러 이야기할 시간은 끝.

이제 본론을 이야기 할 시간이었다.


“전에 그러셨죠? 무슨 일이든 제가 요청하면 도와주시겠다고요. 그 말, 아직도 유효한가요?”

“···물론입니다.”

“다행이네요. 사실 지금 제가 도움이 좀 필요하거든요.”

“뭐든 말하십쇼.”

“복수를 하려고 해요. 그런데··· 대표님이 생각하는 그런 복수는 아니에요. 진상 규명이니, 진실 공방이니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거든요. 이제 하고 싶은 걸 참진 않으려고 해요.”

“그럼···?”

“제가 제일 잘하는 걸로 복수를 할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대표님 도움이 필요하고요.”


재이의 말에 저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욱현.


그는 이어질 재이의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재이의 말이 이어졌다.


“에센스는 물론이고 그 누구도 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진짜 우상. 최고의 걸그룹을 만들 생각이에요.”

“···!”

“같이 만들어 보실래요?”


질문과 함께 자신을 응시하는 재이의 시선을 마주보며, 욱현은 환희를 느꼈다.


그걸 질문이라고!


지금껏 그가 자신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날을 기다려오지 않았던가.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렇게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입꼬리를 씰룩이던 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만듭시다, 최고의 걸그룹!”


천재가 다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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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녹음실의 마왕 24.09.12 538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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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서재이가 그럴 리가? 24.09.09 618 10 14쪽
14 데뷔하자 24.09.08 588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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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어서 와 (1) 24.09.04 636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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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반전의 순간 (1) 24.09.02 639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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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알고보니 작곡 천재 24.08.31 695 1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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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REVIVE (1) 24.08.29 783 15 12쪽
» 나락에서 돌아온 천재 (3) +1 24.08.28 842 18 13쪽
2 나락에서 돌아온 천재 (2) 24.08.28 869 16 14쪽
1 나락에서 돌아온 천재 (1) 24.08.28 1,097 1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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