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 천재는 걸그룹이 너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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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람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6 06:45
최근연재일 :
2024.09.1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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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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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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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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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즈

DUMMY

#19화



“대표님이 이런데도 아실 줄은 몰랐네요.”

“아하하! 재벌 3세라고 뭐 다르지 않아요. 맨날 위스키에 와인에··· 그런 것만 먹진 않으니까요. 제가 여길 참 좋아합니다. 고민 많을 때는 늘 여기 와서 혼자 한 잔 하곤 하죠. 밤늦게까지 영업하는 데가 흔치 않기도 하고요.”

“그런가요···.”

“네. 대표님 목소리에 고민이 많은 것 같아서 여기로 오시라고 했습니다.”


재이가 욱현과 2년만의 해후를 했던 더덕구이 백반집.


유성그룹 막내아들 성욱현이라는 이름과는 잘 매치가 되지 않는 이곳의 풍경과 그를 번갈아가며 바라보던 한중식.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고민이 많은 것 같았다던 욱현의 말에 씁쓸한 웃음과 함께 소주잔을 들었다.


“더덕구이도 맛있는데, 소주에 곁들여 먹을 땐 이 도라지무침만한 게 없더라고요.”

“그러네요. 새콤한 게 술이 계속 들어갑니다.”


그렇게 서로 몇 잔을 따라주고, 기울이고, 부딪히기를 십여 분.


욱현의 입이 먼저 열렸다.


“예전에 모임에서 번호 드린 이후로 단 둘이는 처음 뵙는 건 같은데··· 단지 제 더덕구이 맛집을 소개받고 싶어서 연락주신 건 아닐 텐데 말이죠.”

“···예.”

“저한테 뭔가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 거겠죠?”

“맞습니다. 하아···.”


그렇게 대답을 한 한중식은 그 이후로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자리에 앉아 실제로 성욱현의 얼굴을 마주하니 그제야 제정신이 든 것인지.


내가 왜 이 사람에게 연락을 한 걸까?


윤명중이 제일 질투하고 경계했던 인물이 서재이이고, 욱현이 그와 함께 일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일까.


그는 홧김에 성사된 이 자리에서 자신이 욱현에게 과연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과연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는 게 맞는 것인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쩌면 자신이 이곳에서 욱현을 만나는 것조차 윤명중이 알아낼지도 모른다.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하지만 그 침묵의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더 이상 못 견디겠죠? 윤명중 대표.”

“···! 그건 어떻게.”

“지금 그 사람 많이 급하잖아요. 해명해야할 것도··· 감춰야할 것도 많아서.”


자신을 바라보며 덤덤한 웃음을 짓는 욱현의 모습.

한중식은 그런 욱현의 모습을 보고 직감했다.


‘투데이패치··· 이 사람의 작품이다. 지금 이 사람, 윤명중을 노리고 있어!’


윤명중의 추리 중 하나는 확실히 맞았다.


투데이패치를 움직인 것은 성욱현이라는 사실.


한중식은 꿀꺽 침을 삼켰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재벌 3세. 이 사람은 과연 윤명중을 무너뜨리기 위해 어디까지 갈 생각인걸까.


윤명중에게서 자신을, 코드 미디어를, 소녀제국을 지키기 위해 성욱현을 선택한 내가 과연 옳은 것일까.


한중식은 짧지만 너무 긴 고민의 끝, 그 마지막에 아련하게 떠오르는 소녀제국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홧김에 그런 게 아닐까 스스로 자문했지만, 이미 알지 않은가.


저장한 뒤 단 한 번도 연락한 적 없던 성욱현의 번호를 찾고, 전화를 건 건 자신이다.

그 이유가 뭔가. 바로 소녀제국을 위해서였다.


‘성욱현이라면 가능할지도. 나는 죗값을 치러도, 애들은 지켜줄 지도 몰라.’


이미 윤명중에게 약점이 잡혀버려 운명 공동체가 되어버린 자신 때문에 소녀제국이 이대로 저물어버리는 것을 그는 원치 않았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한 한중식.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드디어 허심탄회하게 말을 이었다.


“예, 맞습니다. 그 인간과 더 이상 같이 일하는 게 죽기보다 싫어졌습니다. 이대로 있다간 내가 모든 걸 걸고 만든 애들까지 다 잃겠다 싶더군요.”

“그렇군요. 흠, 근데 싫다고 그냥 떠날 수 있는 관계는 아니지 않나요? 대표님과 윤 회장 말이에요.”


한중식의 시선이 욱현을 향한다.

그는 자칼의 레이블로 소속된 코드 미디어. 그 회사끼리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리라.


“예, 더럽게 엮였지요. 오히려 성 대표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황대규 기자의 그 기사··· 딥하게 파신 것 같은데.”

“아하하- 제가 제 사람 구하는 데는 좀 과할 정도로 진심이라서요. 그러다보니 생각지도 못하게 많은 걸 알게 되더군요. 아무튼, 그렇게 더럽게 엮이셨음에도 저한테 연락을 하신 게 그냥 도와달라고 읍소하시려는 건 아닐 테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연갈색의 눈동자, 욱현의 시선이 한중식에게 꽂힌 순간.


‘이제 떠보는 건 그만 해야겠네.’


욱현은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라온 한중식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저에게 뭔가 거래를 제안할 만한 게 있으시군요? 소녀제국을 두고.”

“···!!”

“그런데 제가 응할만한 물건이어야 할 테니 그건 아마도 윤명중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서재이 프로듀서의 누명을 벗길만한 것···.”


계속해서 이어지는 욱현의 추리에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떨리는 한중식의 동공.


미미한 호선을 그린 욱현의 입술이 다시금 달싹이고,


“대표님이 가지고 계시죠? 2년 전 연습실 폭언 녹취록.”

“···어, 어떻게.”

“아, 정확히는 ‘조작된’ 폭언 녹취록이라고 해야겠지만.”


영혼까지 탈탈 털린 얼굴로 아연실색하는 한중식.

그는 어느덧 두려움까지 깃든 눈빛으로 욱현을 바라봤다.


자신이 쥐고 있는 비장의 패가 무엇인지까지 이미 다 파악을 하고 있다니.


자신이 윤명중의 꼬드김에 넘어가 무너뜨린 서재이가 손을 잡은 사람이 누구인지, 그는 이제야 실감이 났다.


“제가 출신이 출신인지라··· 푸흐, 주변에 좀 눈과 귀가 많아요. 너무 걱정마세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저한테 필요한 것만 듣고, 보니까.”


이걸 과연 거래라고 할 수 있을까.

이미 욱현이 알고 있는 이상,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서 그 패를 내놓지 않는다면 아마 욱현은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그 어떤 수도 마다하지 않으리라.


한중식은 지금이 자신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진정 폭군이 되어버린 윤명중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자신의 자식과도 다름없는 소녀제국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


그는 재고 말 것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신이 욱현의 번호를 누른 그 순간부터, 이미 눈앞에 펼쳐진 선택지는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있습니다. 조작된 녹취록도, 원본도. 그리고 당시 녹취록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CCTV영상. 맞죠?”

“···예.”


그것까지 알고 있구나.


이젠 놀랍지도 않다.


한중식은 가만히 욱현의 말을 기다렸다.

자신은 이미 가진 패를 모두 내보인 바, 이제 욱현이 이 거래에서 어떤 것을 제안할지 들을 차례였다.


물론, 자신이 거부할 수는 없겠지만.


“아시죠? 제가 대표님을 구해드리진 못한다는 거.”

“그것까지 염치없게 요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내가 저지른 일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으니까. 애들만 무사하면 됩니다.”

“그건 걱정마세요. 자··· 그럼 이야기가 길어지겠네요. 한 잔 더 하시겠어요?”

“···그러죠.”


그렇게 자정을 넘어가는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두 사람의 대화.


수많은 이들의 명운이 오간 깊은 밤이 흘러가고,


어느덧 소녀들의 데뷔와 재이의 화려한 귀환의 날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


재이가 만든 아침 테마의 곡 <Run!>과 <City Lullaby>의 녹음이 모두 마무리 되고 어느덧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데뷔는 데뷔이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정체를 알려주지 않는 아주 신비하기 그지없는 데뷔였기에,


소녀들은 곡을 녹음한 이후 지금까지 늘 그러했듯 쉼 없는 연습에 매진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소녀들이 모여있는 연습실에 나타난 재이의 손엔 Aurora 라는 단어가 새겨진 종이 가방 네 개가 들려 있었으니.


“자, 이게 시제품이야.”

“와아-!”

“공짜에요?”

“흠, 서린이 너는 돈 받을까?”

“헙.”


드디어 자신의 목소리와 노래가 담긴 핸드폰이 완성되었다는 사실에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하나씩 핸드폰을 집어드는 소녀들.


망설임 없이 바로 전원을 킨 소녀들은, 바로 설정에 들어가 자신들이 직접 녹음한 AI 보이스를 확인했다.


[Hey! It's already morning! You know you can't sleep in, right?]


옆집에 사는 소꿉친구의 인사를 연상시키는 쾌활하고 장난기 가득한 서린의 목소리.


[The morning sky is very clear. Do you want to watch it together?]


차분하면서도 묘한 두근거림을 안겨주는 다정한 다빈의 목소리에 이어


[Morning coffee and bagels. Are you going to miss this?]


“완전 원어민같다 너.”

“나 원어민 맞아···.”


살짝 도도하면서도 묘하게 끌리는 미아의 보이스.

마지막으로···.


[I don't speak twice. It's morning.]


너무나 단호하지만 그래서 절대 실망시켜선 안 될 것 같은 미성에, 서린이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진짜 똑똑한데 진짜 예쁘게 생겼을 게 분명한 목소리네. 하늘 언니 하드웨어 무슨 일이야?”

“평소 말투대로 말한 건데··· 다행이네.”

“근데 진짜 영어로 말하니까 우리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아요. 약간··· 톤도 좀 다르게 들린다고 해야 하나?”

“맞아요. 사람들이 바로 알아차리면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괜찮을 지도···?”

“사람들이 추측하게 하는 것도 전략 중 하나니까. 너희라는 추측이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린 끝까지 그런 추측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하지 않을 테고. 그렇게 기대감과 궁금증을 계속해서 자극하는 거지.”


재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소녀들의 다음 목표는 바로 곡에 내장된 두 개의 곡.


기본 음악 플레이어를 여는 순간, 바로 플레이리스트에 떠오른 두 개의 곡을 확인한 소녀들의 얼굴에 작은 환희가 떠올랐다.


비록 모든 정체를 공개하는 본격적인 앨범은 아니었지만, 그녀들의 목소리가 하나로 뭉친 최초의 결과물이자, 연습생의 신분이 아닌 가수의 신분으로 처음 세상에 공개되는 그들의 곡이었으니까.


떨리는 마음으로 곡을 누르려던 그 순간,


<Run!>과 <City Lullaby>.

두 개의 곡 아래에 적힌 이름을 발견한 다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이거···.”


답을 찾으려 자연히 자신에게 향한 다빈의 시선을 발견한 재이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다빈에 이어 곡 아래 적힌 아티스트의 이름을 발견한 소녀들.


“피디님 설마 이거··· 우리 그룹 이름이에요?”

“맞아.”

“이게··· 우리 이름!”


재이의 긍정에 수많은 감상이 뒤섞인 눈으로 가만히 그 이름을 응시하는 소녀들.


“되게 많은 의미가 담겨있는 이름이네요.”

“역시, 하늘이는 바로 알아차리는구나.”


하늘이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고 평한 이름.

앞으로 세상에 네 명의 소녀들이 자신들을 소개하며 소리내 말하게 될 그 이름.


그건 바로.


페이즈(FAZE&PHASE)


마음껏 꿈을 펼치지 못했던 소녀들과 재이의 새로운 인생의 막을 여는 의미의 PHASE.

그녀들의 성공을 의심하고, 방해했던 수많은 이들에게 당황을 선사하고, 대중들에게 즐거운 충격을 안겨준다는 의미의 FAZE.


두 가지 의미가 융합된 그룹의 이름을 조용히 읊조리는 소녀들의 얼굴 위로 웃음이 번졌다.


직접 소리 내 읽으니, 비로소 실감이 나는 데뷔.


재이는 그런 아이들을 향해, 자신의 새로운 페르소나가 될 걸그룹. 페이즈를 향해 말했다.


“이제 시작이야, 얘들아.”


작가의말

이제 속도 팍팍 붙여서, 데뷔서사로 달려봅니닷!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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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왜? 쫄려? 24.09.16 438 10 13쪽
21 역대급 데뷔 앨범 24.09.15 501 9 12쪽
20 City Lullaby 24.09.14 515 11 14쪽
» 페이즈 24.09.13 539 9 12쪽
18 녹음실의 마왕 24.09.12 538 9 12쪽
17 좋은 소식 24.09.11 534 7 13쪽
16 아침은 서재이가 엽니다 +1 24.09.10 576 8 16쪽
15 서재이가 그럴 리가? 24.09.09 619 10 14쪽
14 데뷔하자 24.09.08 588 12 12쪽
13 공략 (2) +3 24.09.07 596 9 12쪽
12 공략 (1) 24.09.06 591 8 13쪽
11 어서 와 (2) 24.09.05 616 12 13쪽
10 어서 와 (1) 24.09.04 638 10 12쪽
9 반전의 순간 (2) +1 24.09.03 673 13 13쪽
8 반전의 순간 (1) 24.09.02 641 11 12쪽
7 천재와 일진과 도둑 +1 24.09.01 672 12 17쪽
6 알고보니 작곡 천재 24.08.31 696 13 15쪽
5 REVIVE (2) +1 24.08.30 709 15 12쪽
4 REVIVE (1) 24.08.29 783 15 12쪽
3 나락에서 돌아온 천재 (3) +1 24.08.28 842 18 13쪽
2 나락에서 돌아온 천재 (2) 24.08.28 870 16 14쪽
1 나락에서 돌아온 천재 (1) 24.08.28 1,097 1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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