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욕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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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휘(消諱)
작품등록일 :
2024.08.31 23:25
최근연재일 :
2024.09.2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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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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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DUMMY

「그럴 리가 없어!」


상대는 남자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호통을 치며 그를 노려본다.

그건 아마도 남자의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자신을 바보 취급하는 거냐고, 숨기는 것이 있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짐작하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그것은 틀렸다.

남자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한다.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존재가 아니라면 굳이 경시하지 않는다.

굳이 서로가 적이 될 이유를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럴 리가 없단 말이다!」


하지만 적은 그 간단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남자의 도끼보다도 무거운 몽둥이를 휘두르며 달려든다.

그 모습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하는 괴물 같았다.

그래, 숲의 괴물이다.

남자는 그 호칭을 되뇌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은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 보며 한숨만 내쉬는 노인같았다.


「네놈, 네놈! 쓰러져라, 쓰러지란 말이다!」


남자의 복잡한 마음을 알 길 없는 숲의 괴물은 다시 한 번 거세게 매를 휘두른다.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내장을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날렵하게 공격한다.

그러나 그가 상대하고 있는 자는 닳고 닳은 사냥꾼.

단 한 번의 도끼질로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노련한 전사다.


「쓰러져라, 이놈!」


숲의 괴물은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나 보다.

무게가 담긴 매질이 이어지면 뭐하나.

적에게 닿지 않는 한 이 모든 것은 의미없는 버둥거림일 뿐인 것을.

그 모습이 남자에게도 안쓰럽게 보였나 보다.

수많은 적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강력한 한 명의 적을 상대하는 것이 더 나은 자는 완전히 안정을 찾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묻는다.


「어째서 그렇게 분노하나?」


「사실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걸 그대가 어떻게 판단하지?」


「그렇지 않다면 살아있을 수 없으니까!」


남자의 말에 괴물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에게 다시 한 번 몽둥이를 휘두른다.

이번에야말로 끝장내겠다는 듯이, 사정없는 몽둥이질이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그러나 그런 걸로는 남자를 이겨낼 수 없다.

그를 이기기 위해서는 더 강한 힘이 필요하다.

더 빠른 속도도 필요하다.

더 나은 기술도 필요하다.

그 어떤 것도 지금의 자신으로는 부족하다.


「으아아아아아!」


그 사실을 알아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계속 공격하던 괴물은 자신의 움직임에 맞춰 방어하는 남자를 쳐다보곤 하던 매질을 멈춘다.

그는 단 한 번의 타격도 허용하지 않았다.

뒤로 물러서 관망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막아낼 뿐.

그 움직임에 약이 바짝 올랐는지 숲의 괴물은 화가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목소리를 내지른다.


「대체 네놈은 뭐 하는 놈이냐! 뭐 하는 놈이길래 나를 이렇게 희롱하는가!」


「당신이 이 숲의 주인인가?」


「나는 이 숲을 지키는 자! 주인이라니, 터무니없다!」


괴물의 목소리가 온 세상을 덮을 듯이 울려 퍼진다.

괴성에 그의 수하일 무법자들조차도 귀를 막고 무릎을 꿇는다.

그러나 남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뿌리를 내리고 가만히 듣고만 있는 고목처럼 서 있다.

모든 평지풍파를 맞으며 그 자리에 서 있는 고목처럼 서 있다.

그런 남자의 모습이 보기 싫었는지 괴물은 다시 한 번 괴성을 지르며 그를 위협한다.


「내 이름은 훔반이다! 숲에 들어온 이유가 무엇이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왔다.」


「어디로 가기 위함인가!」


「말하고 싶지 않군.」


그러나 위협이 통할 리가 없다.

알량한 재주가 통할 거라면 이렇게 있지도 않았다.

훔반 또한 그것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러니 더욱 화가 날 수밖에 없겠지.

듣고 싶은 것을 들을 수 없다는 것과 자기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적을 상대한다는 것은 꽤 부아가 치밀어오르는 일이다.


「이 자식이!」


그렇기에 상대는 매서운 기세와 함께 남자에게 달려든다.

이번에야말로 마음에 들지 않는 저 자를 쓰리겠다는 듯이 돌진한다.

살을 찢어발겨 자기 만찬으로 하겠다는 듯이 맹진한다.

그리고 날카로운 파열음이 그 뒤를 따른다.


「죽어라, 이놈! 죽어!」


몇 번이고 대지가 흔들리고 공기가 요동친다.

그 바람에 불안에 떨며 나무 속에 숨어있던 새들이 텅 빈 하늘로 솟구쳐오른다.

그렇게 날아오른다고 해도 평화를 찾을 수는 없을 터다.

삶이란 그런 거다.

날개가 있어도 결국 지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남자는 천천히 하늘에서 고개를 돌리고 자신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는 괴물을 쳐다본다.

얼굴에는 털이 덥수룩하고, 가슴팍에는 진흙이 잔뜩 묻어 흉측한 모습이었으며, 골반 아래는 얼기설기 엮은 풀잎으로 겨우 가려 민망하기 그지없다.


「내가 죽기를 바라나?」


「당연하다! 네 녀석은 분명 숲을 더럽히는 자들이 보낸 사람일 터!」


「더럽힌다라...」


「이 숲은 나의 고향이다! 은빛 갑옷의 약탈자에게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속은 여리고 무른 자인가 보다.

고향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한 작은 존재인가 보다.

남자는 그를 쳐다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숲의 괴물이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아무런 의미 없이 이곳에 들어온 것이 된다.

운명의 인도에 따라 헛된 발걸음을 한 것이 된다.

그 한숨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훔반은 남자를 향해 다시 몽둥이를 휘두른다.

그리고 그 공격은 보기 좋게 남자에게 먹혀들었다.


「음?」


제대로 한 방 먹였으니 기뻐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숲의 괴물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이 자신의 몽둥이를 쳐다보더니 남자가 서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무언가 잘못된 것일까.

그 답은 곧이어 들린 남자의 목소리로 분명해졌다.


「이번에는 내가 물어야겠군.」


낮고 우울한, 깊은 심연에서부터 올라온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에 숲의 괴물마저도 한기를 느꼈다는 듯이 표정을 굳힌다.

그리고 다음 순간, 훔반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야생의 겉모습을 아직 벗지 못했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울부짖는다.

그와 함께 깊은 숲 속에서 맹수의 울음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남자에게는 부질없는 것.


「묻는 말에 성실히 대답해주길 바라네.」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발버둥치는 남자 자신처럼 헛된 메아리일 뿐이다.


「무엇을 물으려 하는가!」


그렇기에 답하는 목소리가 파도처럼 울렁이고 있다.

흔들리는 이유를 훔반이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알게 되었을 것이다.


「답하라! 무엇을 묻고자 하는가!」


숲의 괴물에게는 애석하게도, 남자는 그보다 몇 배는 강하다.

어쩌면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남자는 훔반이 이 숲의 수호자인지는 알 바가 아니다.

그는 그저 원하는 것을 얻어내야 할 뿐.

그렇기에 남자의 도끼가 하늘을 가르는 별빛처럼 사선으로 내려꽂힌다.

그 공격을 맹수는 막을 수 없다.


「컥!」


그 공격을 막던 훔반의 몽둥이는 부서졌고, 돌가루는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그의 몸에 꽂힌다.

남자에게는 단 한 번도 내리꽂히지 않던 날카로운 촉이 부서진 마카후이틀과 함께 괴물의 몸을 사정없이 파고든다.

그와 함께 수많은 상처가 몸에 아로새겨진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대로 절명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상흔에서 다량의 피가 흘러나온다.


「윽!」


하지만 훔반은 살아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표정으로 살아있다.

금방이라도 눈에서 핏기가 사라질 것 같은 표정으로 살아있다.

그런 괴물의 목에 남자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도끼를 들이민다.

두 사람의 싸움을 그저 멍하니 구경하고 있던 무법자 몇몇이 달려와 보았지만 괜한 도발일 뿐이었다.

모든 무법자가 그에게로 달려든다면 모를까, 이 정도의 수로 그를 이겨내기에는 한참 역부족이다.


「네놈...」


늘 그렇듯 용감한 자는 승리한다.

승리하고 승리하여 자신을 유일한 자로 만든다.

단 하나의 존재.

남자는 피를 흘리며 천천히 죽어가는 자를 쳐다본다.

이 숲을 목숨과 함께 지키는 이 자도 아마 단 하나의 존재이리라.

그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던 것일까, 남자의 입에서 뜬금없다면 뜬금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상처가 깊군. 치료해도 되겠는가?」


「어째서.」


남자의 말에 숲의 괴물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말하며 그를 쳐다본다.

죽음을 주어야 할 자가 삶을 선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거겠지.

그 모습에 남자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돌가루가 촘촘히 박힌 괴물의 몸을 살펴본다.

꽤 깊은 상처가 여럿 있었지만, 빠른 치료를 받는다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다행인 일이다.

이 자가 죽는다면 가장 손해를 보는 것은 남자 자신이다.

그렇다면 운명은 조소를 지으며 그의 생명을 빼앗아가겠지.

남자는 그것을 원치 않는다.

소중한 사람을 다시 한 번 잃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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