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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성
작품등록일 :
2024.09.01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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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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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4

DUMMY

6. 오디션 4






대본책을 읽고 또 읽었다.

정확히 세 번 읽고나자, 내 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세 번?’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대본을 세 번 읽으면 늘 내 몸에 난 털이 쭈뼛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대본 속 인물에게 들어가고자, 몰입을 하는 순간.


휘릭.


나는 내가 아니게 된다.

누군가 이런 말을 듣는다면, 과장이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깨달음의 순간이 아니라, 순간적인 빙의의 순간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 조선 독립은 당신들 몫이지. 그리고 당신 목숨은 내 몫이고. 고마워할 거 없어. 쥐뿔 조선이 내게 해준 게 뭐 있다고.”


감독과는 꽤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어서서 천천히 감독에게 다가가 감독의 눈을 그윽하게 바라봤다.


미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을 해버렸다.


하필, 다른 곳도 아니고 감독의 턱을 모욕적으로 잡았다.


“그대가 아니더라도 올 독립이라면 조선은 독립을 거머쥐게 되겠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도 모자라 부모 형제에 이어 이젠······.”


소품으로 가져온 총이 없어 손가락으로 권총 모양을 잡고는 감독의 머리에 겨뒀다가 감독의 머리 뒤 창가에 발사했다.


탕!


그 소리에 감독의 몸이 움찔했다.


나는 또다시 감독을 내려 꽂듯 바라봤다.


“뭐 하는 겁니까? 그만둬요.”


Z 드라마 제작사 직원이 상대 대사를 맞춰 줬다.


“허공에 대고 암만 총을 쏴 봐. 백 번이든 천 번이든 하늘은 꿈쩍도 하지 않아. 지금 당신이 하는 게 그렇단 말이야. 알아! 그대가 그토록 추앙하는 조선이 대체 뭐길래, 당신을 이렇게 만신창이로 만드느냐 말이야. 허공에 대고 총질을 하는 것 마냥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하면서!”


대사를 멈추고 담담하게 대사를 맞춰준 직원을 바라봤다.

주르륵.


소리를 지르지도, 흥분하지도 않았다.

지문엔 ‘광인의 눈을 한 베르체노프 박’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나는 ‘광인’에 대한 해석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했다.


“컷.”


말없이 숨죽여 지켜 보던 직원은 그제야 숨을 쉬겠다는 듯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아직 베르체노프 박에서 나오지 못한 나는 이 소름이 풀릴 때까지 그대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앞선 아홉 번의 오디션과 마찬가지로 감독은 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고생했어. 했는데······. 하아.”


어차피 좋은 대답은 기대도 안 했다.

이제는 과연 왜 이렇게까지 감독이 나를 배역 없이 지속해서 불러서 오디션을 봤는지 속 시원히 평이라도 좀 해 줬으면 싶었다.


‘됐고, 안 쓸 거면 그냥 ‘탈락’을 시키세요.‘


하마터면 감독 면전에 말할 뻔 했다.


“돌아가 앉아도 좋아.”

“예.”


겨우 정신을 차려 조금 전 내가 했던 행동을 떠올리니 얼굴이 화끈 거렸다.

연기가 문제가 아니라......

마치 복수하듯 감독에게......


알아서 연습해오라기에 대사 한 줄도 없는 배역부터 시작해서 주인공까지 차근차근 오디션 봐 왔다.

천 번 떨어져도 맥주 두 캔으로 마무리했던 나다.

아무렇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감독은 빈 커피잔의 몇 방울 안 남은 커피를 허공에 훅훅 불어 날름날름 받아 마셨다.


아직 마시지 않은 내 잔을 가져다드리려 했지만, 거리가 다소 있었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감독은 내게 이렇다 저렇다 평도 없이 오디션 장을 나섰다.


“나 잠깐 전화 좀.”


감독이 나가자, 들어와 있던 또다른 Z 드라마 제작사 직원도 숨을 크게 내 쉬었다.


“답답하시죠.”

“제가 혹시 무슨 실수라도······?”


직원은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건 비밀인데, 실은 배역이 거의 정해지긴 했어요.”

“아······.”

“신문 보도도 나간 상태고.”


입으로는 공감의 ‘아······.’를 내보내고 있었지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제작도 하기 전부터 유명세를 탄 작품에 고작 나 같은 쌩 신인한테 돌아올 배역이 얼마나 있겠는가.

초가을부터 시작했던 오디션이다.

이제 낼모레면 눈발도 슬슬 날릴 것 같은 시긴데.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사람을 오라가라.

와서 연기를 해 보라 마라.


그런데 결국 대부분 배역이 확정이 됐다?

이건 배신감을 넘어 당장 달려나가 ‘나이 있는 감독과 싸워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내가 주인공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럼 전 이만 가 봐도 될까요?”

“아니요. 오늘은 감독님께서 사생결단을 낸다고 하셨거든요.”

“사생결단이요?”

“실은······.”


내게 뭔가 말을 하려는 직원에게 다른 직원이 눈짓으로 ‘하지마’라는 사인을 줬다.


“학생이라 바쁘죠?”

“그렇게도 한데, 원래 드라마 오디션은 이렇게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건가요?”


그럴 리가.

몇 달 안 되는 시간이지만, 엄마 하미애가 일하는 걸 보니, 무슨 일이든 일사천리였다.

물론 노련한 글로벌 배우와 나같이 입문도 못 한 생초짜를 비교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이건 경우가 아니었다.


“어차피 알게 될 텐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실은 감독님께서 최선준씨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세요.”


몇 달 만에 듣는 개소리였다.

지금까지 아홉 번이나 만난 감독은 한 번도 내게 긍정적인 눈빛을 보낸 적이 없었다.

이래 봬도 내가 탈락 전문 오디션 전문가였다.

사람 눈빛만 봐도 나를 쓸 건지 말 건지에 대한 계산기 딱딱딱 두드려 진다.

그런데 뭐시가 어째?

나를 마음에 들어 한다고?


“원래 쌩 신인한텐 비중 있는 단역도 안 주기로 유명한 분이세요.”

“선준씨 처음 거지1 연기하던 눈빛이 잊혀지질 않는다고 대본 회의 때마다 작가님께 말씀하셨거든요.”

“작가님께서도 보셨는데, 그러면 조연 중에 배역 하나를 바꾸자고 하셨는데, 감독님께서 자꾸만 베르체노프 박의 얼굴이 선준씨 얼굴에 보인다고······.”

“그럼 지금 긍정적인 건가요?”


직원 둘은 대답을 망설였다.


“중요한 프로젝트에 무척 개념 없이 들리시겠지만, 오후에 수업이 있습니다. 오전 수업은 교수님께 양해를 받고 온 상황이고요.”

“아······. 그러시죠. 그런데 저희도 밑에서 시키는 일이나 하는 직급이라 뭐라 말씀드리기가 힘들어요.”


그때, 나갔던 감독이 다시 들어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직원 둘은 긴장한 듯 자리에서 번쩍 일어났다.


“김 실장, 나 다른 핸드폰 좀. 급해. 지금 이 작가랑 싸우다 배터리 나갔어.”

“여···. 여기요. 작가님께 연결해 드렸어요.”

“그래, 땡큐. 선준이 딱 기다려. 내가 담판 짓고 올 테니까.”

“예? 예.”


얼결에 대답했지만, 상황을 보니, 감독이 작가와 상당한 문제가 있어 보였다.


“...... 학교에 연락을 좀 부탁드려요. 저희도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지 몰라서 미처 공문을 만들지 못했어요.”

“아닙니다. 친구에게 연락해 두겠습니다.”


급한 대로 나는 주혜성에게 메시지를 넣었다.


[나 아직.]

[곧 수업.]

[대출 좀···.]

[고객님은 신용 거래 불가.]

[잘 좀 부탁]

[굿 럭]


한 시간 정도 더 지났을까.

그 사이 직원들이 복도쪽 유리문 밖으로 감독을 엿봤지만,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감독님 대단하시네.”

“그러게요. 오늘 일 년 치 통화 다 하시는 거 같은데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감독님 10초맨으로 유명하시거든요.”

“10초맨이요?”

“전화 통화하는 거 정말 귀찮아하셔서 무조건 10초 안에 끊으신다고 해서 10초맨이에요.”


그래 보였다.

전화뿐만 아니라, 말 자체를 오래 하는 걸 무척 싫어하는 사람 같았다.

오디션 올 때마다 자기 할 말만 두세 마디 하고는 나가 버리기 일쑤였으니까.


또다시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감독이 입은 회색 티셔츠의 목덜미와 겨드랑이가 흥건하게 젖어서 돌아왔다.


“내일 시간 좀 있나?”

“예?”


직원들의 눈치를 보니 긍정의 눈빛을 보냈다.


“예.”

“그럼 내일 작가 미팅하자고.”

“작가 선생님 미팅이요? 그럼 저 캐스팅 된 건가요?”

“아니.”

“아······.”

“일단 내일 보자고.”

“저는 그럼 따로 뭘 준비하면 될까요?”

“눈빛. 기왕이면 대본을 아주 씹어서 갈아 마시고 와.”

“제가 연구해서 와야 할 캐릭터가 누구인지 아우트라인이라도 말씀해 주시면 제가 좀 더 알차게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베르체노프 박.”


감독의 말에 직원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허업.”

“내가 자넬 캐스팅하면, 서운후보다 예상 5프로 더 끌어모을 수 있다고 장담했거든.”

“저...저를...그러니까.”

“두 시.”


감독은 그대로 나가버렸다.


감독 들어오고 겨우 3분도 안 돼서 벌어진 일이다.


“제가 제대로 들은 거 맞나요?”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직원들에게 조금 전 상황을 확인하려는데, 감독이 다시 들어왔다.


“자네. 바지.”

“예?”

“다리 좀 보게 바지 좀 올려 보라고.”


이유라도 한 번 더 물었다간 감독이 와서 바지를 걷을 기세였다.

나는 와이드 팬츠를 위로 걷어서 다리를 보여주었다.


“낼 작가가 자신 있냐고 물으면, 딴 대답 하지 말고, 그냥 무조건 시켜달라 그래. 무조건.”

“예.”


감독은 아까 직원에게 빌렸던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주고는 다시 나가버렸다.


“예. 베르체노프 박 역할이 맞다고 하셨어요.”

“다리는 왜 보자고 하신 건가요?”

“극 중에 여장하는 일이 많아서 그러셨을 거에요.”

“아······.”

“그런데 원래 예정된 배우가 서운후씨라고······.”


서운후는 최근 5년간 신인에서 단박에 주연으로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배우다.

이국적인 외모에 워낙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이기 때문에 중고등학생 역부터 삼사십대까지를 눈빛과 발성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연기폭이 굉장히 넓다.

하이틴 물은 물론이고 시대극에서까지 러브콜을 받는 전천후.


톱배우를 무조건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걸 계약 조건으로 내걸 정도로 배우 프리미엄을 성향이 짙은 작가였기 때문에 아무리 감독이 팍팍 민다 해도 그리 쉬워 보이는 게임은 아니었다.

상대는 서운후.


“보도 자료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작가님께서 아예 서운후씨 보고 베르체노프 박을 쓰셨다고 하셨어요.”

“저도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사실, 다른 조주연급 오디션을 오래 보신 거지, 서운후씨는 백 퍼센트 내정된 배역이긴 해요.”

“그런 배역을 제가 작가님 한 번 만난다고 과연 가능할까요?”

“감독님께서 전작에서도 그러셨지만, 워낙 그림에 맞는 인물이다 싶으시면 짚어서 드라마 자체를 성공시키는 분이거든요.”

“워낙 작가님 성향도 강하시고 감독님도 배우에 대한 신념이 짙은 분이라 지금으로서는 저희도 확답을 드리기 힘들어요.”

“고맙습니다.”


Z 드라마 제작사 사무실을 나와서 보니, 마침 맞은 편 건물 전광판 광고에서 서운후가 나를 보며 ‘어림없지’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변비약 광고 카피였지만, 나도 모르게 허공에 대고 손가락 욕으로 응수했다.


“너야말로 어림없지.”





작가의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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