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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성
작품등록일 :
2024.09.01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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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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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요정 1

DUMMY

16. CF요정 1






“고생하셨습니다. 선배님.”


위기는 모면하는 게 아니라 부딪히는 거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쭈뼛쭈뼛할 바엔 차라리 무시당하더라도 인사 먼저 건네는 게 수다.


“선준씨도요.”


오케이. 여기까지가 딱이다.

이제 두 층만 더 내려가면 된다.


“그런데, 선준씨도 같은 학교였네요?”

“예. 올해 입학했습니다.”

“아까 선준씨 오기 전에 김병수 교수님께서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하시더라구요.”

“워낙 좋은 말씀만 하시는 분이시라 그런가 봅니다.”

“김병수 교수님께서요? 설마.”

“예?”

“정반대에요. 수업 시간에 어지간한 남학생 눈에서도 기어이 눈물을 뽑아내시는 분으로 유명하잖아요.”

“아······.”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방향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냥 서로 고생했다 한 마디면 깔끔하게 끝날 텐데, 굳이······.

이미 지하 주차장에 도착해서 문까지 열렸구만.


“어제는 미안했어요.”

“......?”

“이 나이에 벌써부터 꼰대 짓 하면 안 되는데 그쵸?”

“아닙니다. 선배님.”

“열심히 하는 모습 정말 보기 좋아요. 그럼 내일 봐요.”

“예. 선배님.”


유리안은 의외로 쿨한 성격의 소유자 같았다.

이래서 겉으로 보고 사람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말이 진리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엄청 싸가지라고 소문났는데, 의외네요.”

“그래요?”

“인기가 깡패라고 선배들 앞에서도 어지간하면 고개 숙이는 법이 없다고 말이 많잖아요.”

“그래도 좋게 마무리됐으니 다행이죠.”

“앞으로 촬영 들어가면 점점 더 선준씨 진면목에 뒷말하던 사람들 많이 반성할 겁니다.”

“형, 전 이미 다 잊었어요.”

“사실 이 바닥에서 그러는 게 가장 마음 편하긴 하죠. 잘 생각했어요···.”


자기 프라이드가 엄청난 연예계에서 이렇게 빛의 속도로 사과를 받게 되다니.

확실히 사람이 뭐 하나는 제대로 하고 볼 일이었다.


“그나저나, 오늘 미팅은 예정에 없던 거 아니었나요?”

“1차 콘티가 나오긴 했는데, 선준씨와 2차 콘티 제작 전에 보완할 것을 논의하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


꽤 늦은 시간인데도 K 스타 애드의 피치스 광고 전담팀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나요? 어!”

“피치스 광고 콘티 문제로 왔습니다.”


아직 나와 만나보지 않은 직원인듯했다.

대본 리딩 때문에 식사도 거른 터라 피곤으로 몰골이 말이 아닌 상황인데도 두 손으로 입을 가릴 정도로 화들짝 놀라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나와 매니저를 안내하는 복도를 따라가는 내내 나를 흘끔흘끔 보았다.


“저도 GPS 팬카페 회원이에요.”

“아. 반갑습니다.”

“어머. 선준씨 GPS 알고 계시는 거죠?”

“예? 예.”


그때 매니저가 나와 자리를 바꿔 걸었다.


“아직 신인이라 회사 내에서는 대외적인 활동을 피치스 광고 정도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피치스 카페엔 어떤 것도 흘리지 않겠습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당연하죠.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우리가 들어가는 도중에도 GPS 팬카페 회원이라는 K 스타 애드 직원은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도 나를 보느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선준씨 외부인들에게 당분간 인사 외엔 함부로 대화 나누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좋겠어요.”

“그럴게요. 형.”

“이게 새로운 콘틴가 봐요.”

“그렇네요.”

“근데 커버라 그런가, 굉장히 분이기가 달라진 것 같아요. 보완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콘티가 나온 거 같은데요?”


매니저와 나는 급하게 책상에 놓여있는 피치스 핸드폰 광고 콘티를 살펴봤다.


“이런 의상도 있나요?”

“이건······.”

“천지창조도 아니고. 분위기가 묘하긴 한데, 이게···. 하아···. 어디선가 본 거 같은 이미진데···.”


충격적인 콘티의 모습에 나는 생각이 멈춘 것만 같았다.


확실히 몽환적이고 환상을 자아내는 분위기인 걸 보니, 피치스 핸드폰 출시 직전 광고가 맞는 것 같긴 했다.

그런데, 도통 광고 속 주인공이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급하게 재조정하느라 의상까지 신경 쓰지 못한 거라 믿고 싶었지만, 가슴골과 배, 그리고 다리의 선명한 잔 근육을 나타내는 선이 도통 무얼 설명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잠시만요.”


매니저는 급하게 회사로 전활 걸었다.


“최선준씨 매니저 박광복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실장님 아직 회의 전이라 명확하진 않은데, 혹시 오늘 콘티에 대해서 자료 받으신 것 있으신가요?”


아무리 CF는 광고주의 마음을 대변한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 어디에도 데뷔도 하기 전인 신인의 이미지가 이 첫 광고로 굳어질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예? 예. 그런데 이건 거의 전라에 가까운 노출인데 괜찮을까요?”


전화를 하는 내내 매니저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떨떠름한 매니저의 목소리에 오 실장이 화가 났는지, 버럭 소릴 지르는 게 들렸다.


“죄송합니다. 회의 끝나고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예.”


평상시에 화 나는 일이 있어도 어지간해선 속마음을 들키는 일이 없는 매니저였기에 지금처럼 얼굴이 붉어지는 걸 처음 봤다.


“회의에서 설명 먼저 들어보고 다시 실장님이든 Z 엔터의 다른 담당자든 대화를 해보도록 합시다.”

“회사에선 뭐라고 합니까?”

“어린 사람한테 이런 얘기 해도 되나?”

“괜찮아요.”

“뻔하죠. 일단 까라면 까라는 거.”


나는 말을 아꼈다.

피치스 광고주의 의도야 최대한 광고 모델을 이용한 수익 창출일 것이고.

Z 엔터는 소속 배우를 통한 수익 창출일 테니.

어찌 보면, 오 실장이 버럭하는 게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다만, 매니저의 분노도 이해할 수 있었다.


매니저도 매니저 나름의 속이 있긴 하다.

쌩 신인 하나 잘 키워서 업계의 미다스 손이 되고 싶은 꿈.

여기에 MSG로 자신이 관리하는 배우에 대한 의리와 의협심까지.


그렇기에 회사가 아직 싹을 제대로 틔워보지도 못한 나를 소모품처럼 여기는 게 아닌가 하는 언짢음이 고스란히 표정과 전화 톤에 나타난 것이다.


“오셨습니까.”

“안녕하십니까. 최선준입니다.”


피치스의 광고는 미국 본사 홍보부서와 직계약 광고회사팀과 한국의 K 스타 애드의 공동작품으로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콘티를 위한 설명에 미국인 감독과 한국인 감독 그리고 각 관계자와 통역이 함께 했다.


조금 전까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던 매니저는 세상 마음 좋은 사람 표정을 하고는 그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저희가 기다리면서 책상 위의 새로운 콘티를 보게 됐는데, 실례가 아니라면 콘티 속 모델이 최선준씹니까?”

“맞습니다.”

“본 콘티에선 그리스 로마 시대의 드레이프를 걸치기로 했는데, 너무 다른 데요?”

“그게······. 광고주께서 이번 피치스 전 제품의 이미지를 극 자연주의로 잡길 바라세요.”


극 자연주의를 표방하느라 사람을 이렇게까지 벗겨야 하나?

겨우 웃음을 참으려는 순간 새로운 콘티의 모티브와 비슷한 영화를 떠올렸다.


“터미네이터.”


아뿔싸.

속으로 생각한다는 걸 그만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회의실 사람들은 뜬금없이 ‘터미네이터’라고 외치는 나를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그 영화 보셨어요?”

“어릴 때, 케이블에서 잠깐 봤었습니다.”


설마.

극 자연주의를 표방하는데 터미네이터가 모티브일 리는 없었다.

터미네이터는 자연과 상관없이 온갖 기술이 적용된 사이보그는 물론이고, 시간까지 이동할 수 있는 첨단 물리학적 이론까지 도입된 영화다.


“정확히 맞추셨습니다.”


나도 매니저도 순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콘티의 그 장면이 바로?


세상에 다시 없을 이미지 광고로 유명한 피치스가 초심을 잃었나 싶을 정도였다.


“제가 알고 있는 그 터미네이터가 맞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최선준씨 이미지 파악 능력이 대단하시네요.”


오래된 영화이기에 내가 영화 내용 자체를 잘못 알고 있나 의심까지 들었다.


“태고의 자연으로 돌아간 지구. 그 안엔 자연과 순수의 인간이 어우러져 있는 거죠.”


여기까지 들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꿈보다 해몽’이었다.

결국은 순수 인간이니까, 홀라당 벗고 자연을 어필해라 아닌가?

광고와 순수 영상 예술의 벽을 허물었다는 공로로 세계적인 아트 디렉터 상을 휩쓴 감독의 아이디어가 맞나 싶었다.


“제가 아직 표현에 대한 이해와 배움이 짧아서 도저히······.”

“자신 있습니다.”

“찍으시는 감독님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제 능력이 부족해서······.”


말로는 표현 능력이 부족하다였지만, 바보가 아니고서야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할 수가 없었다.


한 마디로 ‘못 벗겠다’ 이말이니까.


“자칫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가 저 때문에 코미디가 될까 걱정됩니다.”

“선준씨 아무래도, 멍석 깔아야 할 거 같아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희도 처음에 이미지 메이킹 필름이랑 콘티 보고 지금까지 쌓아 올린 피치스 이미지가 애매해질 수 있다고 우려를 했었어요.”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여길 좀 보세요.”


한국인 감독과 미국인 감독이 콘티를 보며 뭔가 대화를 하더니, 내게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티브는 터미네이터지만, 그렇다고 없던 게 생기고, 갑자기 원시인들 앞에 전라도 나타나는 게 아니에요.”

“......?”

“어디까지나 이미지를 중시하기 때문에 마치 고흐의 작품에 나온 ‘해바라기’나 ‘별이 빛나는 밤에’처럼 초록의 유화 이미지를 배경으로 하고 자연인 선준씨가 그런 자연의 일부가 되면서 유화의 한 장면으로 그려지는 이미지 메이킹으로 이뤄질 거에요.”


한국인 감독의 설명을 듣고, 처음 콘티를 보며 화를 냈던 매니저는 세상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두 분 감독님을 믿고, 이번 CF 성실히 촬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작가의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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