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톱스타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윈난성
작품등록일 :
2024.09.01 23:05
최근연재일 :
2024.09.19 22:30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8,463
추천수 :
209
글자수 :
93,262

작성
24.09.13 22:30
조회
309
추천
6
글자
10쪽

처음이라고? 2

DUMMY

15. 처음이라고? 2






“동서양 윗동네 아랫동네 할 것 없이 하여간 이런 얼굴이 무조건 통한다니까.”


특유의 절제된 눈웃음으로 사교댄스장을 찾은 베르체노프 박.

등장하면서 귀부인들이 칭송하는 가운데, 총독의 애첩을 찾아 접근한다.


“여기 처음이신가 봐요?”

“이런 아름다움 또한 처음입니다, 레이디.”


일부러 베르체노프 박은 타켓인 유미코와는 짧은 인사만 남기고, 사교계에서 통 보기 힘든 미남자에 목마른 귀부인들 사이로 유유히 사라진다.


똑똑.


다음 씬을 잊고 대사를 놓친 배우들이 나타나면, 작가는 가차 없이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소리는 가볍지만, 그런 작가의 표정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주혜성 말이 맞았다.

대본을 씹어 먹듯 여러 번 본 것도 있겠지만, 분위기에 젖어 들면, 머릿속에선 자연스럽게 씬마다 녹아있는 대사와 지문들이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그리고 그 안에 베르체노프 박이 들어가게 되는 되면, 리딩실의 분위기 자체를 흠뻑 내 쪽으로 끌어당길 수 있었다.


“신부님. 저는 진정 소중한 걸 빼앗겼습니다.”

“흠······.”

“항상 빼앗기는 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이제는 더이상 빼앗기지만은 않으려 합니다.”

“같은 방법으로 복수를 하려다 더 큰 화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인데······. 당분간 고해성사를 보지 못할 것 같아 인사드리려고 왔습니다.”


갑자기 고해소의 사이 문이 열리고 미카엘 신부가 베르체노프 박 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노아야. 때가 좋지 않구나. 조금만 기다리거라.”

“조선인이 다 죽어 나가지 않는 이상 좋은 때는 절대 호락호락 나타나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그래도 이 녀석아 기다려야 해.”

“남은 고해성사는 다녀와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건강하십시요. 신부님.”


베르체노프 박이 고해실을 나서자, 미카엘 신부는 읊조리듯 내뱉는다.


“부디 살아 돌아와야 한다. 노아야.”


미카엘 신부는 한참이나 베르체노프 박이 나간 빈 의자를 바라봤다.


미카엘 신부 역을 맡은 배우는 다름 아닌 김병수 교수였다.

교수는 무대 세팅이 되지 않았기에 빈 의자 대신 나의 눈을 꽤 오랜 시간 응시했다.

그 눈빛이······.

전쟁터에 아들을 내보내는 아버지의 눈빛 같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씩씩하다 못해 다소 장난스런 고해소의 씬이 끝나자, 김병수 교수와 나 사이에서 흐르는 묘한 애잔함의 눈빛 교류에 작가는 훌쩍훌쩍 거렸다.


감독의 씬별 교통정리와 작가의 감정 지도로 화기애애함과 살벌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시간이 지나자, 다들 경직이 풀어져 지친 모습이었다.


“배우분들 그리고 주요 스텝분들.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께서 지금 계속 착각하고 연기를 하시니까, 극 분위기가 작중 의도와 너무 다르게 흘러가고 있어요.”


작가의 돌발 발언에 풀어졌던 분위기가 다시 꽁꽁 얼었다.


“드라마 주제가 무거운 건 맞아요. 일제 치하 조선에서 핍박받은 민중이 작심하고 빼앗긴 것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 절대 가벼워선 안 되겠죠.”


이쯤에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분명 내가 보기에도 30화 중에서 4화까지는 비교적 밝고 코믹한 부분에 대해 공을 들인 게 확실했다.

작정하고 웃기려 하는 장면을 무겁게 분위기를 처리해 버리니 이런 지적이 나올 수밖에.


하지만, 분위기의 문제라서 그렇지.

배우들의 연기엔 좀처럼 구멍을 찾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작가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배우들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칭찬의 어휘를 사용하여 언짢음을 표현했다.


‘역시. 괜히 국보급 작가라는 말을 듣는 게 아니구나.’


날 출연시키네마네 하며 감독과 옥신각신하던 날엔 영락없는 중년의 수다스러운 아줌마 같았다.


지금은 아니다.

시쳇말로, ‘배우들이 그 정도 분위기 파악도 못 합니까?’ 하는 말을 어느 갑이 이렇게 품격있게 돌려 깔까 싶었다.


“아직 잠수함을 탈 때가 아니라는 걸 꼭 마음에 새겨주시고, 당분간은 유람선 타는 기분으로 가볍게 붓 터치하듯 부탁드립니다.”


세상에, 야단맞고 이렇게 감동적인 적은 처음이다.


“최선준씨? 잠깐 볼까?”


‘2차전인가?’


대본 리딩을 마치면서 전체적으로 언짢은 내색을 했던 작가의 호출이라 나도 매니저도 적잖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네, 선준씨 진짜 좋았거든요.”

“형은 저한테 너무 주관적인 분이라······.”

“따로 혼날 정도였나?”

“어쨌든 저는 작가님께 좀 더 배우고 오겠습니다.”

“역시 프린스는 혼나러 가는 자세부터도 다르네요.”

“진짜 형!”

“오케이 농담. 긴장할까 봐 농담한 거예요. 자자, 파이팅 있게 다녀와요.”


작가의 휴게실엔 감독과 김병수 교수, 그리고 여주인공 유리안도 함께 있었다.


“어. 선준씨.”

“최선준이가 김병수 교수 제자였어?”

“하아. 염 감독. 여기 김병수가 어딨어?”

“알았어요. 알았어. 조나단 교수님 제자였어?”

“예? 예.”

“내가 같이 작품 하고 싶은 제자가 있다고 자랑했었잖냐. 우리 선준이야 선준이.”

“감사합니다.”

“앉아. 멀뚱멀뚱 서 있지만 말고.”

“예.”


그런데 분위기가 유리안을 앞에 두고 감독과 작가의 표정이 그렇게 밝지만은 않았다.


“리안이는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무색할 정도로 발음이나 전달력이 훌륭해. 오디션 때보다 훨씬 기대 이상이야.”


작가는 절대 곧장 쓴소리하는 법이 없는 사람이 확실했다.

누가 봐도 지금 얼굴에선 활화산이 이미 폭발하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입에선 시종일관 유리안의 칭찬 일색이었다.


“내가 다채로운 얼굴 톤을 좋아하는데, 역시. 충무로의 샛별답다니까.”

“그런데······. 지금 이틀째 대본 리딩하면서 조금 아쉬운 게 있는데 말이지.”


이쯤 되니 유리안도 이 자리가 칭찬이 아닌 질책을 위해 마련됐음을 눈치 챈듯했다.


“아까 내가 무겁다고 했던 말 기억하지?”

“예.”

“리안이가 가장 심해. 방방 뜨라는 건 아닌데, 최소한 같은 미소라도 슬픔이 묻어나는 밝음과 그냥 경쾌한 밝음은 천지 차이잖아?”

“연습하고 연구해 오겠습니다.”

“그래요. 유리안씨 한국 예술대 나왔다고 그랬나?”

“예.”

“나는 대학이 문제가 아니라, 인기 절정의 아이돌이 억척스럽게 공부하고 힘든 학문인데도 제힘으로 해내는 모습에 큰 점수를 준 거거든.”

“고맙습니다.”

“유리안이 나랑 두 과목 같이 했지?”

“예.”

“내가 기억하거든. 대본 파악이 굉장히 남다른 친구였어.”

“역시, 뭐든 똑 부러진 친구인 줄 알았어. 나는 유리안 연기 선 정말 다 마음에 들어.”

“감사합니다.”

“오늘 내가 부탁한 것만 꼭 잘 생각해 보고. 촬영 가기 전에 이런 시간 가지려고 대본 리딩하는 것도 있으니까.”

“예, 작가님.”

“내가 리안이 오디션 때부터 팬이라고 밝힌 거 기억하지?”

“작품에 좀 더 녹아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좋아요. 오늘 긴 시간 정말 고생했어요.”

“예.”


유리안은 필사의 노력으로 눈가에 고인 이슬이 중력과의 승부에 패배하지 않도록 붙잡았다.


나는 그제야 왜 김병수 교수가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주연배우를 감독과 작가가 심하게 몰아가면, 너무 위축돼 버리기 때문에 일종의 병 주고 약 주고 상황에 유리안의 편 하나 정도를 만들어 주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유리안이 나가기 위해 돌아서자, 작가는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선준이. 너 연기 정말 처음이야?”


이것으로, 유리안이 내게 보냈던 떨떠름함은 완전히 날려버릴 수 있었다.


작가가 조금 전까지 유리안을 부르던 톤과 나를 부르는 톤 자체가 완전히 냉탕과 온탕의 수준으로 달랐기 때문이다.


“제일 반대하더니.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어험.”

“그러게 말이에요. 다들 잠수함 타고 심해로 향하는데, 유일하게 선준이 혼자 유람선 타고 있더라구요.”

“연기 때문에 외모가 안 보일 정도라고 내가 여작가한테 그렇게 침을 튀기며 말하지 않았습니까.”

“인정할게요.”


‘설마 이렇게 끝난다고?’


이미 두 번이나 작가의 분노 표출 패턴을 보았기에 나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자리에서 감독, 작가, 교수의 이야길 경청했다.


“내가 선준일 보자고 한 건······.”


‘그럼 그렇지.’


자가는 목청까지 가다듬으며 준비를 했다.


“소문 들어서 알겠지만, 나는 대사는 물론이고 지문에 대해서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가는 걸 선호해.”

“선호가 아니라, 작가님같이 대본에 적힌 글이 절대적인 양반도 드물지.”

“조나단 교수님도 참.”


하나 걸리는 게 있긴 했다.

아까 총격전을 벌이다 도망치는 도중에 남의 신혼집 지붕으로 떨어졌던 순간이 있었다.

한참 격정적인 순간에 부부 사이로 떨어진 씬이었는데, 지문엔 ‘부부 사이에서 멀뚱멀뚱 눈으로 상황 정리하고 사라진다.’였는데, 내가 애드리브로 대사를 친 것이다.


제대로 깨지겠다 각오하고 있던 찰라, 작가는 뜻밖의 허락을 해주었다.


“과하지 않을 거란 걸 믿고 하는 말인데.”

“예, 도발 행동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아니. 선준인 여명의 동쪽에서 하고 싶은 거 다 해.”

“예?”

“작두 타다 말고, 찬송가를 부른다고 해도 상황에만 맞으면 선준이 애드리브는 쓰기로 결정했어.”


애드리브를 하고 안하고가 문제가 아니었다.

배우는 백 마디 천 마디 말보다 연기로 승부를 해야 한다는 걸 몸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


“선준씨. 선준씨?”

“아. 형. 죄송해요. 잠시 딴 생각하면서 걷느라.”

“정신이 나갈 정도로 배우고 오셨구만.”


다음 주에 있을 광고 촬영 때문에 야간에 급하게 잡힌 미팅을 위해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매니저는 내가 완전히 깨지고 왔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죠. 정말 많이 배우고 나왔습니다.”

“경력만 봐도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일 겁니다.”

“예. 정말 그랬어요.”


매니저와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던 중 엘리베이터에서 유리안을 만났다.


하필. 아까 같은 일이 있을 때 서로 피해 가지도 못할 이런 좁은 공간에서 마주하게 되다니······.


작가의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시작부터 톱스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제목을 변경할 예정입니다. [시작부터 톱스타] 24.09.11 46 0 -
공지 제목 변경 합니다. 24.09.09 142 0 -
21 미친 존재감 3 NEW 4시간 전 58 5 10쪽
20 미친존재감 2 24.09.18 169 5 10쪽
19 미친 존재감 1 24.09.17 267 7 10쪽
18 CF요정 3 24.09.16 271 5 10쪽
17 CF요정 2 24.09.15 299 6 10쪽
16 CF요정 1 +1 24.09.14 321 9 10쪽
» 처음이라고? 2 24.09.13 310 6 10쪽
14 처음이라고? 1 24.09.12 313 8 11쪽
13 돌발 인기 4 24.09.11 323 10 10쪽
12 돌발 인기 3 24.09.10 330 8 11쪽
11 돌발 인기 2 24.09.09 344 7 10쪽
10 돌발 인기 1 24.09.08 369 7 10쪽
9 계란으로 바위 치기 3 24.09.07 373 10 11쪽
8 계란으로 바위치기 2 24.09.06 382 11 11쪽
7 계란으로 바위치기 1 24.09.05 406 12 10쪽
6 오디션 4 24.09.04 439 11 11쪽
5 오디션 3 24.09.03 475 13 9쪽
4 오디션 2 +1 24.09.02 557 15 8쪽
3 오디션 1 +1 24.09.02 644 19 9쪽
2 스물? +2 24.09.01 815 18 10쪽
1 딱 두 캔 +2 24.09.01 980 17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