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머슬 근손실 회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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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괭이
그림/삽화
그림 작가 있었으면 좋겠다
작품등록일 :
2024.09.02 02:40
최근연재일 :
2024.09.19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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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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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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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새벽 헬스장에서 고중량 운동하지 마세요

DUMMY



대흉근이 찢어졌다.


바벨을 들어올리고 있던 두 손의 균형이 깨졌다. 움직일 수 있는 팔에 급히 힘을 줘보지만, 어림도 없다. 벤치가 내 이마 위로 떨어진다. 짧은 순간 매우 큰 고통이 느껴졌고, 이어서 나는 정신을 잃었다.


바라건대, 최초로 날 발견한 사람이 내 바벨에 원판 두 개씩만 더 끼워주기를.


...


벤치에 깔렸다고 무조건 죽는 건 아니다. 떨어지는 위치, 각도, 운동을 수행하기 전에 설치해놓은 안전 장치, 사고 발생 후 타인의 긴급한 응급 조치, 후속 의료진의 조치. 기타등등. 하여간 많은 것들이 바벨에 깔린 헬창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문제는, 내가 그 어떤 것들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였다는 점이다.


렉을 쓰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이유로 낡고 외진 헬스장을 골랐고, 마찬가지로 렉을 쓰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이유로 새벽 운동을 골랐으며, 이 헬스장의 관장님은 경영난에 배달 부업을 뛰시느라 새벽 헬스장을 비워두고 관리 인원도 고용하지 않았다. 그래, 경제가 어려운데 관장님이 그럴 수도 있지. 근데 관장님, 최소한 벤치에 안전 장치 점검은 하셨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다, 누굴 원망하고 앉았냐. 결국 위험한 짓인 거 뻔히 알면서 아무 생각없이 고중량 벤치를 박은 내 탓이다.


-기어코 윤희가 말했던 것 마냥 벤치에 깔려서 죽었네. ...에휴, 그냥 나가뒈지자, 뒈져.

-그건 어려우실 것 같네요.

-네?


옆에서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대답하며 고개를 돌렸다.


-주인님의 육신은 뒈질... 크흠, 죽을 수가 없는 육신이거든요.


주인님? 살아생전 들어보지 못한 단어도 어이가 없었지만, 상대의 모습이 주는 충격이 더 심했다. 선홍색 살점들이 뭉쳐 사람의 형상을 하고 메이드복을 입고 있었는데, 얼굴만은 대단한 미인이였다. 아니, 분명 미인이기는 했지만 그의 얼굴은 아니였다. 얼굴과 머리(선홍색 살점이 머리 모양으로 뭉친 것을 머리라고 할 수 있다면)의 연결 부위가 대단히 인위적인 것이, 마치 다른 미인의 얼굴 가죽을 벗겨 자기 머리에 붙여놓은 듯한 느낌이였다.


-표정을 보아하니... 설명이 좀 필요한 상황이시군요?


여인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가죽을 자유롭게 조종할 수 있는지 매우 자연스러운 형태의 미소였지만, 분위기가 주는 꺼림칙함은 지울 수가 없었다. 아니, 근데 지금 그게 중요한가? 나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거지? 그러니까, 왜 살아있는 거지? 분명 벤치를 맞고 쓰러졌는데? 낯선 천장에 소독 알코올 향이 나는 것도 아니고, 왜 아무렇지 않은 듯이 이상한 살덩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냐고?


나는 무언가를 깨달으려는 사람처럼 주변을 둘러봤다.


차가운 분위기의 석실이였다. 나는 고인돌 같은 제단 위에 올려져있었고, 칙칙한 색이라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굉장히 복잡한 디자인의 로브를 입고 있었다. 제단을 중심으로, 기이한 글자들이 빼곡히 적혀 여러 개의 원을 이루었다. 저런 모양의 글자들을 어디서 봤더라. ...반지의 제왕? 왕좌의 게임? 그도 아니면 언젠가 봤던, 웹툰, 웹소설 표지에 나왔었나?


-...이거 혹시 이세계 전생 같은 건가요?

-네, 정확한 표현이에요.


나는 물끄러미 상대를 바라봤다. 정확한 표현이라. 보통 이럴 때 나오는 반응은 "이세계 전생?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따위가 아닌가. 상대는 내 표정을 읽기라도 하듯이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살점 뭉치치고는 꽤 맑은 웃음 소리였다.


-저는 주인님의 참모장. 스텔라 월점퍼 락테아라고 합니다.

-영어식 이름이군요.

-라틴어도 섞였어요. 좀 있어보이잖아요.

-...이거 로우판타지인가요? 영어랑 라틴어를 아시네요?

-이거, 라는게 정확히 뭘 지칭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이 세계에 대 브리튼 왕국과 로마를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아요. 다른 세계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은 대단히 고차원적인 마법이거든요.


스텔라는 그렇게 말하고 가만히 웃었다. 여전히 소름끼치는 웃음이였지만, 공손한 말투와 몸가짐 때문일까.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라스트 네임은 솔직히 벌써 까먹었지만, 미들 네임은 기억에 남았다.


-월점퍼... 라는 게 혹시?

-맞아요. 저는 특별한 마법으로 만들어진 존재로, 차원을 넘어 다닐 수 있답니다. 주인님이 계시던 곳의 이야기를 아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제 4의 벽에 갇혀 살지도 않지요.

-제 4의 벽?

-이를테면... 아, 왜 주인님이 머리만 남은 형태의 리치로 전생되어있는지 아시나요? 그건 작가가 주제를 모르고 미디어화를 염두에 두고 설정을 짰기 때문인데요. 웹툰이나 애니화, 풋, 애니화래. 웃겨, 정말. 아무튼 미디어화되었을 때, 주인공의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상업적으로 좋지 않기 때문이에요.


뒤에 이어지는 말들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실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머리만 남았다고? 나는 조금은 급한 손짓으로 스스로의 몸을 만져보았다. 다 있다. 아니, 애초에 머리 말고도 손과 팔이 있으니까 만져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가슴, 배, 다리, 다 있는데? 내게 익숙한 체형은 분명 아니고 묘하게 힘이 없는 느낌이지만, 분명 내 몸은 멀쩡히...


...아니, 정말 다 있는 것이 맞나?


나는 그제서야 제대로 내 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로브로 가려져 있어서 한 번에 눈치채지 못했는데, 머리를 제외한 모든 부위가 천으로 감싸져있었다. 마치 미이라 같았다. 나는 설마, 하는 눈으로 스텔라를 바라봤다. 스텔라는 주인님이 생각하는 그게 맞다,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손가락 하나의 천을 풀어보았다. 천이 벗겨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이게... 무슨...

-주인님은 현재 리치 상태세요. 대부분의 신체는 훼손당했고, 현재는 머리만 남아있습니다. 주인님의 마력으로 육체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그 위치에 자신의 몸이 존재한다고 느낄 수는 있지만요.


나는 설명을 듣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내 손을 바라봤다. 아니, 손이 있어야 하는 허공을 바라봤다. 자세히 보니 감각도 묘하게 둔했다.


-...리치면, 그... 언데드요?

-네, 마법사 언데드죠.

-...죽지 않는?

-늙지도 않고.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는 손의 형태를 한 마력 덩어리에 천천히 얼굴을 묻었다. 근손실도 정도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양변기도 없는 시대로 날아왔다고 하더라도 헬스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처음엔 맨몸 운동부터, 이후에 생활이 안정 되면 대장간 같은 곳에 쇠붙이를 만들어달라고 하면 되잖나. 그런데 내가 리치라니? 말도 안 돼. 말도 안된다고. 시발! 이럴 거면 차라리 죽는게 낫지! 아니,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무산소 운동을 조지지 못하는 삶에 대체 무슨 가치가 있지?


부모님은 운동을 싫어하셨다. 이유없이 땀을 흘리는 일은 야만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셔서, 내가 어린 시절부터 야외에서 뛰어노는 것조차 못하게 하셨다. 그리고 운동하고 싶어하는 내가 집중력이 부족한 타입이라고 생각하셨고, 나는 체질에 맞지도 않는 피아노, 서예, 바둑 따위를 배우며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다. 심지어 비디오 게임을 하루 종일 하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환경은 축복이였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그 모든 시간들이 고통이였다. 나는 근육이 사라져가는 내 몸이 혐오스러웠고, 힘이 나지 않는 몸뚱아리가 저주스러웠다. 그래서 피아노 학원에서 푸쉬업을 하다가 걸려서 혼나고, 서예 학원에서 스쿼트를 하다가 걸려서 혼나고, 서원 출입구에 풀업봉을 설치하다 걸려서 혼났다. 결국 성인이 되어 참지 못하고 독립하여...


-저, 주인님. 혹시 독자님들은 별 관심도 없을 것 같은 유년 시절 회상을 몇 문장이나 더 쓰실 예정이신가요?


...독립하여 자취를 했다. 억지로 시킨 공부 덕분에 그럭저럭 성적은 괜찮았지만 대학은 가지 못했다. 학벌이 없어 변변찮은 직장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했다. 헬스장을 가는 설레는 걸음, 워밍업을 하며 차오르는 기대감, 중량이 올라갈 때의 성취감, 에너지가 고갈된 몸에 물과 프로틴을 넣어주면 차오르는 만족감. 나는 몸을 움직이고 성장하는 근육을 지켜보는 그 모든 과정을 통해...


-그만, 그만! 독자님들 떨어지는 소리가 티디디딕, 하고 들리거든요. 그만하세요, 주인님!

-...저기요, 무슨 말씀하시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저 지금 굉장히 혼자 있고 싶거든요.

-몸, 되찾으실 수 있어요.


나는 순간 눈을 번쩍 떴다. 하지만 이내, 몸을 되찾아봤자 언데드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시체 쪼가리를 찾아서 대체 뭘 하겠냐는 말이다. 내 눈빛이 다시 죽어가기 시작할 때 쯔음, 스텔라가 말을 이었다.


-제가 특수한 마법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주인님 역시 특수한 마법으로 만들어진 리치세요. 그 몸은 말씀드렸다시피, 늙거나 죽지 않지만, 먹거나 자거나 운동하지 않으면 근손실이 와요.


나는 다시 눈을 떴다. 이번엔 아까보다 크게 뜬 눈이였고, 아까차럼 금방 죽지도 않았다. 근손실이 오는 몸이라고? 근육의 이화 작용이 일어난단 말이야? 그렇다는 건? 마치 살아있는 인간 마냥 이화 작용이 일어난다는 건 다시 말해? 스텔라는 내 표정을 읽은 것처럼 씨익 웃으며 답했다. 여전히 징그러운 움직임이였지만, 어쩐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물론, 잘 먹고, 잘 자고, 적당히 조져주면, 근성장이 오는 몸이지요.


나는 감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지옥 밑바닥으로 떨어졌다가, 그 바닥을 차고 올라 천당으로 오르는 기분이였다. 아니, 정말로 그랬다. 단순히 헬스를 다시 할 수 있는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늙지도 죽지도 않는 몸으로 영원히 헬스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기상처럼 다양한 관절을 사용하는 움직임을 하고 나니, 내 몸이 일종의 덩어리로 이루어졌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순간적으로 우울해졌지만, 금방 떨쳐냈다. 우울감 따위나 느끼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어떻게 되찾을 수 있나요? 제가 뭘 하면 되는 거에요?


스텔라는 말 없이 석실의 한 벽면을 가리켰다. 벽면의 테두리는 해골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있었는데, 정작 벽면 자체는 심심한 편이였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벽면 위쪽에 사람의 해골 하나가 그려져있는 것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소리쳤다.


-저 벽의 그림이 제 몸 상태를 의미하는 거군요! 머리만 남아있어서 머리만 그려져 있는 거에요!

-눈치가 빠른 편이시군요. 저기에 주인님의 몸을 그려넣으면 주인님의 몸을 복구할 수 있어요.

-빨리 좀 말씀해주시지, 당장 그려넣을래요. 뭘로 그리죠? 도구는 있나요?

-그렇게 쉽게 슥슥 그릴 수 있는 거면 소설 분량은 누가 뽑아주나요?

-네?

-아니에요. 우선, 벽면 앞에 서서 미켈란을 불러주세요.


미켈란? 미켈란젤로? 이 세계 사람들은 로마는 몰라도 피렌체는 아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이 급했으므로 군말없이 시키는 대로 했다.


-미켈란 씨? 미켈란 님? 미켈란 나으리? 제 말이 들리시...

-미켈란으로 충분합니다, 주인이시여.


벽 전체에서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테두리에 있는 해골들이 하나로 엮여 거대한 팔 모양을 이루었다. 스텔라처럼 기괴하긴 했지만, 그래도 핏기가 살아있는 선홍빛의 살점보단 낡은 뼈가 보기 편했다. 손은 어디선가 가져온 붓을 들고 그림 앞에 멈추어섰다. 석실을 가득 채운 침묵. 내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려던 순간, 미켈란이 먼저 말을 꺼냈다.


-어느 부위부터 그리기를 원하는지 말씀해주시면, 필요한 물감의 소재를 말씀드리겠나이다.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소재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앞으로 꽤나 긴 고생을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스텔라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는 다소 비릿한 미소로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후, 그래. 늙지도 죽지도 않고 영원히 쇠질하는 삶을 준다잖냐. 큰 근육에는 많은 무게가 필요한 법이다. 나는 다시 미켈란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스쿼트 조져야 하니까, 우선은 대둔근...

-잠시만요, 주인님!


갑자기 끼어든 스텔라 때문에 다시 몸을 틀 수 밖에 없었다. 할 말이 있으면 진작에 하면 좀 좋을까. 내가 눈빛으로 추궁하자 스텔라는 계면쩍은 듯이 웃었다. 남의 얼굴 가죽을 저렇게까지 섬세하게 조작하다니. 역시 기이해.


-주인님의 육신이 복원되고 성장할 때마다, 주인님의 권능 역시 복원되고 성장해요. 무엇부터 복원할지는 결국 주인님의 선택에 달린 문제지만, 최대한 빠른 전신의 복원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권능을 잘 따져가며 선택하는 게 유리하지요.

-권능이요?

-마법책일 수도 있고, 군단일 수도 있고, 혹은 귀중품일 수도 있어요. 제가 가장 우선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건, 저와 같은 참모진의 복원이지만요.


대강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물감 소재를 구해 육신을 복원하고, 권능을 복원해서 그 권능으로 다시 물감 소재를 구하고. 매커니즘이 어렵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불안이 점점 커져만 갔다. 마법에, 군단이라고? 도대체 스케일이 얼마나 크길래? 얼마나 걸려야 이 몸을 다 되찾을 수 있는 거냐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어, 입술을 깨무는 느낌과 비교해보니 새삼 목 아래의 감각이 얼마나 둔탁한 것인지 비교가 되었다. 마음을 다잡아야지.


-왜 참모진을 추천하시나요?

-차원을 넘나드는 마법은 워낙 고난이도의 마법이라, 참모장이라는 거창한 직책을 가졌음에도 제게는 별 다른 기능이나 지식이 없어요. 기껏해야 지금처럼 우리 여명회와 관련된 핵심 내용에 대해서만 조언해드릴 수 있는 정도지요.

-여명회?

-지금부터는 주인님이 관리하시게 되는, 일종의 종교 집단이에요. 외부에서는 사특한 사령술사의 무리들이라고 물리지만, 그건 우리의 본질과 거리가 멀어요. 아, 지금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니 일단은 넘어가지요.


사특이 어쩌고하는 부분에서 스텔라의 목소리는 상당히 격앙되어있었지만, 표정은 무표정했다. 흥분하면 얼굴 조작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일까.


-주인님께서 신체를 복원하기 위해 소재를 모으실 때, 마법, 군사학에 대한 조언, 이 세계의 첩보 등 다양한 정보가 필요할 거에요. 단순히 전투력이 높은 수행원도 필요하실 수 있고요. 그런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자들이 바로, 여명회의 참모들이에요.


과연. 그렇다면 우선적으로 참모들을 복원하라는 스텔라의 주장은 일 리가 있었다. 뭣보다 참모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다른 신체 복원의 순서를 효율적으로 정할 수도 있을테니.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없어도 보이긴 하는 것인지(하긴 귀도 없이 잘만 들었으니까) 미켈란은 내 끄덕임에 답하듯 말했다.


-골격참모는 갈비뼈에, 신경참모는 중추 신경에, 근육참모는 대흉근에, 혈액참모는 심장에 연동되어 있나이다.

-참모들 직책이 왜 그 모양, 아니, 잠깐, 그보다 뼈랑 신경이랑 장기까지 따로 복원해줘야 한다고요?

-그것들 모두 주인님의 신체이옵니다.


미켈란은 당연하듯이 답했다. 슬쩍 스텔라를 바라봤다. 역시나 묘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그는, 눈이 마주치자 소리내어 웃고는 답했다.


-직책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데스 나이트, 벤시 퀸, 구울 킹, 뱀파이어 로드 같은 클래식한 호칭으로 불러도 상관없어요. 다 알아듣거든요.

-선대 주인님께서 정하신 칭호를 그리 쉽게 바꾸시면...

-외람된 발언이에요, 미켈란. 선대는 선대. 이름을 짓는 사소한 일에 있어서도 지금 주인님의 권한이 선대 주인님보다 높지요.


할 말이 없었는지 미켈란은 더 이상 답변하지 않았다. 붓을 쥔 손의 움직임이 다소 퉁명스럽게 느껴졌지만, 그저 내 기분 탓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네이밍 센스가 워낙 별로라서 자연스럽게 지적이 튀어나오긴 했지만, 정작 신경이 많이 쓰이는 건 그 부분이 아니라고. 내가 기억하기로, 인체의 근육만 600개, 뼈의 숫자는 200개에 가깝다. 각종 내장이랑 신경은 숫자도 모르는데, 그것도 한 두 개가 아닐 테고... 이것들을 다 하나하나 복원해야 하는 거면 도대체 얼마나 시간을 들여야 하는 거지?


나는 '영원한 쇠질'을 다섯 번 정도 읊조려 스스로를 달래고 나서 대답했다.


-근육참모, 그러니까 대흉근을 선택하겠어요.


미켈란은 자신을, 그러니까 벽면의 테두리를 슥 훑다가 어느 지점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그 종이를 펼쳐 내가 보기 편한 위치에 펼쳐주었다. 적혀 있는 것은 생전 처음 본 글자였지만, 어쩐 일인지 아무렇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아니, 읽을 수 있는 게 맞나? 그러니까 내가 지금 제대로 읽은 게 맞아?


-좀비 티라노사우루스의... 농양?





작가의말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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