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기사의 가족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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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소년
작품등록일 :
2024.09.03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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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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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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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명예와 별명

DUMMY

마법사와 주술사는 달랐다.


한쪽이 신비한 힘으로 사람을 돕는 자라면, 다른 한쪽은 사람을 저주하는 자였다.


법이 없는 이 세상에서 법을 대신하는 것은 바로 정교의 교리.


교리에 따라 주술은 범죄, 주술사는 범죄자, 혐의자는 높은 확률로 범죄자였다.


"영주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거 증명이 까다롭습니다."


교리보다 전투에 해박하고, 성경은 사람 팰 때나 쓰는 마르센이 물어왔다. 정교의 사제지만 주술사 증명에 자신이 없어 보였다.


"걱정할 필요 없다. 일단 사람부터 모아라."


"진짜 어떻게 하시려고요?"


"들어보면 답이 나오겠지."


"맙소사..."


마르센이 답답해했다. 마법사도 주술을 증명하려면 시간이 한참 걸리고, 신성력을 쓰는 성녀도 주술을 감지하기 어려워했다.


결국, 당사자의 증언을 들어보고 하나하나 따지는 수밖에 없었다. 지안은 연회를 중단하고 마을 광장에 사람을 모았다.


저주를 받았다는 자.

주술사로 의심받는 자.

끼리끼리 모인 구경꾼들.


지안은 자신의 사람을 둘러보았다. 그중 가장 집중해선 본 이는 사건의 당사자였다.


"각자 증명하라."


한줄기 목소리에 고발자가 일어섰다. 그는 눈 밑이 검은 사내였다.


"존경하는 영주님. 저는 영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우도라고 합니다. 한때 떠돌이였지만 전대 영주님의 자비로 고향을 얻었습니다."


"본론."


"예. 저는 옆집에 사는 주이스가 주술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교의 땅과 가까운 동쪽에서 이주해왔다고 했습니다."


"동쪽에서 왔다는 것은 증거가 될 수 없다."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그럼 다른 증거가 있는가?"


"물론 있습니다. 주이스가 제 체력을 빼앗아 갔습니다. 치료사도 제가 체력이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우도가 자신의 눈 밑을 가리켰다. 피로에 찌든 모습이 그럴싸했다.


"주이스는 할 말이 있는가?"


"저는 주술사가 아닙니다."


"왜 아니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군."


어려웠다.

어려운 문제였다.

답이 안 나올 정도로 어려웠다.


"어쩔 겁니까? 둘 다 설득력이 있습니다."


"어째서 설득력이 있다는 거지?"


"있으니까요."


마르센의 말은 우문현답인지 현문우답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주이스가 주술사인지 아닌지도 구분되지 않았다.


지안은 어쩔 수 없이 필살기를 꺼내 들었다. 눈을 감고 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 집착 강한 색골 ]


▶음탕, 집착, 기만, 허약한 체력.

▶우도는 찍은 여자는 놔주질 않습니다. 비록 오래 붙잡는 일은 없지만요.



눈을 감으면 더 강하게 발현되는 능력으로 우도를 파악했다.



[ 욕심 없는 바보 정력가 ]


▶우둔, 만족, 팔팔한 거시기.

▶주이스는 바보라고 놀림 받지만, 아내에겐 사랑받습니다.



주이스는 지안이 가지고 있는 '괴력'의 마이너 카피 특성이 있었다.


'주이스는 주술사 따위가 아니다. 우도는 허약한 몸으로 색을 밝혀서 눈 밑이 그리되었고. 그런데 왜 모함했지?'


결론을 내리고 이후를 생각했다. 우도가 주이스를 모함한 이유가 분명하지 않았다.


'우도의 의도를 알아야 한다. 무작정 주술사가 없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을 테니까.'


눈을 감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수많은 정보가 뇌리를 파고들며 두통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고통을 참았다.


두 사람의 정보만으론 이번 일의 진위를 알 수 없었다.



[ 겁 많은 일편단심 미녀 ]


▶겁쟁이, 신뢰, 반반한 외모.

▶주이스 아내 실라는 남편을 사랑합니다.



답을 가지고 눈을 떴다. 정보가 보인 자리에 한 여인이 덜덜 떨고 있었다.


"저 여인은 누구인가?"


"주이스의 아내 실라입니다."


촌장이 급히 답했다.

그는 새로운 영주가 시골 여인치곤 아름다운 실라를 탐내리라 여겼다.


"주이스의 아내는 왜 떨고 있지? 남편이 주술사로 몰려서 그런가?"


날카로운 질문이 있자, 병사들이 실라를 앞으로 나오게 했다.


"말을 하라. 왜 떨고 있는가."


"저, 저는..."


"어떤 말을 하든 내가 보호할 것이다. 여기엔 정교의 사제도 있다. 설령 네가 죄를 지었더라도 과하지 않다면 사해줄 것이다."


"들으시면 안 됩니다!!"


소리친 자는 우도였다. 그는 필사적으로 실라의 증언을 막으려 하는 낌새였다.


"그녀는 주술사의 아내입니다! 말을 허락한 순간 영주님을 해코지하려고 할 겁니다!"


"문제없다. 난 네가 주술사라고 한 주이스의 발언도 허락했다."


"아..."


설득력이 있었다.

우도와 주이스의 발언이 설득력 있는 것처럼 지안의 발언도 그러했다.


"영주님! 우도, 저 나쁜 놈이 절 유혹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잘되지 않자 남편을 괴롭히고 주술사라고 모함한 것입니다!"


순간,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유혹이 안 통하자 그 남편을 주술사로 모함했다? 이는 악마가 칭찬할 범죄였다.


"실라, 너는 유혹받았다는 불명예를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불명예는 주이스를 확실히 주술사로 몰아갈 수도 있지. 아마 그 상황이 무서워서 입을 닫고 있었겠지?"


"맞습니다! 영주님 말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안심해도 된다. 너의 불명예는 내가 없애줄 것이다. 남편과 서로 믿으며 행복하게 살도록 하라."


"감사하옵니다!"


실라는 남편 주이스의 품에 쓰러지듯 안겨 울었다. 주이스 역시 울음을 터뜨리며 아내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아내의 불명예가 남편을 주술사로 몰아갈 수도 있다는 추측.


이해가 안 되었지만, 아직 현대의 사고방식이 남은 지안의 생각에 불과했다. 그 증거로 이쪽 사람들은 내려진 판결에 감탄하고, 또 두려워하고 있었다.


"영주님! 요, 용서를!!"


"우도는 죄 없는 사람을 모함했다. 그것도 주술사라는 모함을 말이다. 우도를 영구히 추방하라. 그는 내 영지의 어떤 곳에도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다."


"영주님! 살려주십시오!"


추방이란 극형을 받은 우도는 마을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이 나쁜 자식! 늑대한테나 잡아먹혀라!"


"곰한테도 먹혀라!"


온갖 저주의 말이 추방된 우도에게 쏟아졌다. 그만큼 주술사 모함은 중죄였다. 한 사람의 인생이 완전히 끝날 뻔했다.


"영주님 감복했습니다. 이토록 현명하게 진위를 가려내시다니요."


"과찬이다."


"과찬이 아닙니다. 영주님의 지혜는 옛 성왕에 못지않습니다. 이 촌것은 그리 확신합니다."


촌장이 침을 튀겨가며 칭송의 말을 쏟아냈다. 만약 지안이 실라를 지목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계속 입을 닫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주민 중에서 가장 늦게 들어온 주이스와 실라는 마을에서 발언권이 거의 없었다.


'위신이 올라가는구나!'


지안이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소시민 최지한이 과거를 잊고, 칭송받는 귀족 지안 에스테론이 되어갔다.


'나는 귀족이다! 귀족이니까, 귀족답게!'


귀족, 오직 귀족.

귀족의 언행을 다짐하는 와중에 촌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영주님, 실라를 품으시겠습니까? 아주 반반한 여인네입니다."


끔찍한 한마디였다. 촌장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지안은 악마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듯 깜짝 놀랐다.


"NTR은 죄악이다."


"에, 엔티... 뭐라고 하셨습니까?"


"모르면 영원히 모르도록 하라."


"예. 따르겠습니다."


흔히 일어나는 초야권을 거부하고, 나이든 촌장을 들여다보았다.



[ 유연한 꼰대 ]


▶타협하여 일을 잘하지만, 가끔 어이없이 고집부릴 때가 있습니다.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실라는 결혼한 몸임에도 초야권의 대상이 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촌장이 초야권을 권한 것이다.


'초야권을 쓰면 위신이 떨어진단 말이다!'


귀족답게 판단한 지안은 귀족다운 관대함을 보이고자 했다. 보이는 돈도 중요했지만, 보이지 않는 위신도 중요했다.


"마을에서 결혼은 했는데 결혼식을 못했거나 곧 결혼할 자들이 있는가?"


"예. 있습니다."


"그렇다면 합동결혼식을 열도록 하라. 내가 그들을 위해 자금을 대줄 것이다. 그리고 난 초야권을 행사하지 않겠다."


지안이 남은 금화 2개를 풀었다.






얼마 후.


사제 마르센이 소문을 가지고 왔다.


"사랑백?"


"예. 그때 주이스 부부를 구하고 합동결혼식도 열었잖습니까?"


"그랬지."


"그 일이 쫙 퍼져서 음유시인들이 노래를 부른다고 난리랍니다."


"어떤 노래?"


"영주님이 사랑을 수호하는 백작이라고요."


"그래서 사랑백?"


"예."


사랑백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




어째서 사랑백인가?


용담백이 있고 관용백도 있다. 이렇게 멋진 별명이 있건만 어째서 사랑백?


사랑이라곤 짝사랑만 겨우 해본 지안은 얻은 별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통행세를 받으러 가겠다."


"드디어 활동하는군요."


"그렇다. 돈이 떨어졌다."


"과연 나의 영주님이십니다."


로우드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의 영주는 관대한 사람이었다. 관대한 사람이기에 베풀 줄 알았고, 베풀 줄 알기에 돈이 떨어졌다.


"준비하겠습니다."


로우드가 떠난 자리.

지안이 결의를 다졌다.


사랑백이란 별명을 지우기 위해선 강력한 모습이 필요했다. 산텐 협곡의 주인으로서 압도적인 강함을 보여야 했다.


행상인들은 자신의 이름만 들어도 겁을 먹고 말리라.






산악에 자리한 에스테론 백작령.


지안의 영지는 산텐 협곡이라 불리는 대륙 간 육상 교역로를 곁에 두었다.


비록, 두 대륙 사이에 왕래는 적었지만 길이 하나뿐이라 통행세는 잘 나왔다.


그런 산텐 협곡의 어떤 곳.


궁수 세 명과 도끼병 다섯, 기사 둘로 이루어진 강도기사 무리가 길을 막았다. 지안과 그를 따르는 에스테론 백작령의 병사들이었다.


"영주님! 손님입니다!"


"정중하게 모셔라!"


"예!"


가져온 마차로 임시 목책을 만들게 한 지안은 궁수를 마차에 태워 잘 보이게 했다. 도망치면 뒤통수를 쏴버리겠다는 협박이었다.


"어서 오너라!"


"어떤 분이십니까?"


"나는 에스테론 백작이다! 산텐 협곡의 주인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고자 한다!"


"사랑백?!"


"닥쳐라!"


지안이 분노했다. 사랑백이란 별명이 위신에 좋지 않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행상인의 반응은 생각과는 달랐다.


"자비로우신 백작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얼마를 원하십니까?"


"얼마까지 알아보았느냐!"


"일단 이 정도는 어떻겠습니까?"


행상인 무리의 수장은 협조적이었다. 지안은 얼떨결에 그를 들여다보았다.



[ 부지런한 영웅 흠모가 ]


▶열심히 살아가는 행상인 도반은 영웅적인 사람과 소문을 흠모합니다.



할 말이 없었다. 합동결혼식이 왜 영웅적인지 몰랐고, 열심히 살아가는 행상인을 핍박하기도 곤란했다.


"통과!"


결국, 받을 건 받고 곱게 보내주었다. 처음의 결의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다음 손님이 왔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통과!"


"역시 사랑백이십니다!"


"좀 닥치도록 하라."


"예. 사랑백이시여."


"......"


사랑백은 울고 싶었다.




***




"사랑백이라고 들어보셨어요?"


"네. 물론 들었어요. 정말 정의롭고 낭만적인 기사분이라 하더군요. 게다가 대단한 미남이란 소문까지 있던데..."


한 여인이 소문에 귀를 기울였다. 수녀의 베일을 쓴 그녀는 제국 변경의 에린스 대주교구가 처음으로 낸 성녀였다.


"성녀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무엇을 말인가요?"


"에스테론 백작님 말이에요. 정말 대단한 미남이라 하시던데."


남작가 출신의 시녀가 멍한 얼굴로 에스테론 백작을 상상했다. 그 모습에 성녀는 자신의 시녀가 못 미더워졌다.


귀족의 허명이 얼마나 과장된 것인지 잘 아는 까닭이었다. 본인도 귀족이면서 귀족에 대한 생각은 냉정하기 그지없었다.


"저는 에스테론 백작보단 그 사람이 다스리는 땅에 더 흥미가 있네요. 산텐 협곡과 원혼의 숲 말이에요."


"헉! 성녀님 원혼의 숲은...!"


시녀가 말하다 말고 입을 막았다. 성녀의 목소리보다 자신의 목소리가 더 컸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원혼이 돌아다니긴 하지만, 그냥 숲일 뿐이에요."


"그래서 무섭다고요."


"후후."


가볍게 웃은 성녀가 무언가를 상상했다. 시녀와 달리 그녀가 상상한 것은 가본 적 없는 에스테론 백작령의 풍경이었다.


강도기사들이 난무하는 산텐 협곡과 말을 꺼내는 것조차 불길한 원혼의 숲.


성녀 루네아의 목적은 그곳에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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