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기사의 가족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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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소년
작품등록일 :
2024.09.03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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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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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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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혼의 숲

DUMMY

저녁 무렵의 노을로 원혼의 숲은 노란빛이 섞인 핏빛에 가까웠다.


숲이 미래를 예고하는 듯했으나 지안은 그러지 않길 바랐다. 미나도, 병사들도 마검 따위로 잃고 싶지 않았다.


숲으로 들어가기 전.


병사들은 수색대와 숲 바깥에서 기다릴 대기조로 나뉘었다.


대기조는 야영지를 만들고 물자를 준비하며, 만약을 대비해 치료사도 불러들였다.


지안은 나무꾼 출신 병사들과 수색 경로를 계획했다. 루네아와 다시 이야기를 나눈 때는 모든 준비가 끝난 후였다.


"발견은 우연이었어요."


미나와 만난 순간을 떠올린 루네아.

그녀는 영주성 후원에서 쉬다가 성녀를 궁금해하는 미나와 친분을 나누었다.


"우연히 만난 미나에게 그런 자질이 있을 줄 몰랐어요. 가까이서 본 순간에 알았죠."


미나의 자질을 알아본 루네아는 이후로 여러 번 고민했다.


"미나에게 성녀가 되길 권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어요. 성녀가 된 순간부터 평범한 삶은 불가능할 테니까요."


개인적인 연민으로 결정을 미뤘다. 에린스 대주교구에 알리지도 않았다. 그것이 마검 도난 사건과 겹쳐 사달을 일으켰다.


"일이 잘 끝나면 미나는 제가 데리고 갈게요."


"알겠다. 그게 미나를 위한 길일 테지."


"운이 좋으면 미나는 성녀가 될 거예요."


"건강히만 살면 된다."


"자상하시네요."


"기본이지."


감상은 딱 여기까지. 지안은 실종자를 찾을 실질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어떻게 미나를 찾을 거지? 미나가 가진 자질을 이용할 건가."


"예리하시네요."


"성녀쯤 되면 생각하고 말했겠지."


"칭찬 고마워요."


의외의 고평가에 루네아가 눈가를 곱게 접었다. 순한 강아지 같은 인상이었다.


"방법은 어렵지 않아요. 미나... 아니 마검은 제가 접근하면 나타날 거예요."


"어째서지?"


"마검은 항상 더 좋은 기생체를 찾는 성향이 있어요. 제가 가까이 가면 저에게 들러붙으려고 할 거예요."


"조심해야겠군."


"백작님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요."


"무슨 근거로?"


"잠깐 귀를 빌려주세요."


말소리를 낮추며 야릇하게 미소짓는 루네아.

지금의 그녀는 성녀답지 않았다.


그 모습에 지안은 확신했다.

성녀는 신성력 쓸 줄 아는 여자일 뿐, 성격 좋은 여자를 뜻하진 않는다고.


"중요한 내용인가?"


"네. 성물의 사용법이니까요."


"나보고 성물을 사용하라고?"


"같이 사용해주세요. 비밀로 해드릴게요."


루네아가 손목에 감긴 사슬을 보여주었다. 외부인이 함부로 손대선 안 될 물건이었다.


"성직자답지 않군."


"어쩔 수 없답니다?"


루네아는 끝내 귀를 빌려갔다.




***




해가 지기 전에 숲에 들어왔다.


인원을 최정예만으로 제한한 덕에 이동은 오히려 빨랐다.


"정신력이 약한 사람은 마검에 더 쉽게 지배될 거예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말이군."


"겉으론 정신력이 드러나지 않으니까요."


지안은 루네아의 말에 눈을 감았다. 아주 잠깐의 일이었다.



[ 충성스러운 도전자 ]


▶용맹, 신뢰, 성급, 공정.

▶로우드는 충직하지만, 대련에서는 누가 상대라도 진심입니다. 특히 비겁자와 대련할 때는 누구보다 진심이 됩니다.



[ 세속적인 불신자 ]


▶용맹, 절제, 탐욕, 자애.

▶마르센은 먹고 살기 위해 성직자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신은 개뼈다귀와 같습니다. 거둬가기만 할 뿐 베풀지 않기 때문입니다.



[ 분석적인 전술가 ]


▶용맹, 침착, 고집, 인내.

▶제론은 지는 싸움을 자청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가끔 지는 싸움을 고집할 때가 있습니다.



기사들을 들여다보았다. 어떤 누구도 용맹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나무꾼 출신 몇몇과 최선임 병사들도 결점이 있을지언정 다들 용감했다. 가장 걱정되는 사람은 지안 자신이었다.


빙의하기 전은 게임을 좋아하는 직장인, 지금은 위신에 집착하는 귀족. 그리고 평범하게 겁 많은 사람이었다.


'참아보자. 위신 떨어진다.'


지안은 있는 용기, 없는 용기 다 끌어모아 선두에 섰다. 위신을 위한 행동이지만, 수하들의 눈엔 솔선수범하는 귀족으로 보였다.


'역시 나의 주군이시다!'


충성스러운 로우드.


'돈 없어도 저런 점은 인정해야지.'


세속적인 마르센.


'의도가 있지만 필요한 행동이다.'


분석적인 제론.


'아이 하나를 위해 저렇게 나선단 말인가요? 당신은 정말...'


감동하는 성녀 루네아까지 모두가 지안의 뒤를 따랐다.


세상도 아니고 나라도 아닌, 아이를 구하려는 일에 숭고함이 담겼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나무꾼 출신 병사 하나가 자신의 주제를 잊고 간언을 올릴 정도로...


"영주님, 이 천것이 감히 말하고자 합니다. 이 숲에서 너무 앞서시면 위험합니다."


"앞서지 않는다면? 내가 앞에 없다면 누가 나를 따르겠느냐."


"영주님 하지만―"


"너는 나를 따르라."


"영주님..."


"내 말을 들어다오."


"알겠습니다."


병사는 시종을 자처했다. 지안을 따르며 그를 위해 횃불을 들었다.


주황색 불빛이 가리키는 길은 용감한 자들이 가장 용감한 자를 따르는 길이었다.






밤이 깊었다.


어둠을 밝힌 횃불이 줄지어 일렁였다.


몰아치는 바람이 불을 꺼뜨리려는 가운데, 사람이 숲을 헤쳐나갔다.


"으스스하구만."


"그러게. 낮과는 다른 느낌이야."


나무꾼 출신 병사들이 말했다. 모두에게 들린 그 목소리는 사기를 저해하는 목소리였다.


그럼에도 제지하는 이는 없었다. 현재 필요한 것은 천박한 윽박지름이 아닌, 묵묵히 걸어나가는 자세였다.


한참을 이동하며 숲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오래된 건물을 발견했다.


"사원이군. 버려진 건 아닌 듯한데?"


"깊이 들어오면 잠시 쉬어가던 곳입니다."


"어떤 곳인지 알고 있나?"


"그게..."


나무꾼 출신 병사가 말하기를 주저했다. 그러자 답을 한 사람은 사슬갑옷과 철퇴로 무장한 마르센이었다.


"이교의 사원입니다."


"이교?"


"예. 과거 이 땅은 북방신앙이 성행했으니, 이런 사원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지요."


"그런데 왜 원혼의 숲에 있지?"


"영주님은 잘 모르실 수도 있을 겁니다. 원혼은 숲은 원래 큰 규모가 아니었습니다."


"확장된 거로군."


지안은 더 묻지 않았다. 과거보다 훨씬 커진 원혼의 숲을 한번 둘러보기만 했다.


"사원에서 쉬어가겠다."


명령이 떨어지자 수색대가 움직였다. 밤은 깊었고 일행에겐 휴식이 절실했다.


사원에 들어온 일행은 각자 맡은 일을 했다. 불을 피우는 병사와 주변을 경계하는 기사들, 지시를 내리는 지안, 사원 곳곳에 축성 받은 소금을 뿌리는 루네아.


지안은 루네아의 축성의식을 지켜보고, 추가 지시를 내렸다.


"안쪽에 벽을 쳐라. 잠깐이면 끝날 일이다."


병사들이 입구 근처에 벽을 쌓았다. 사원 안의 집기가 마구잡이로 동원되었다.


"다들 열심히 하네요."


"그쪽은 잘 되고 있나?"


"다 끝났어요. 원혼이 이 안으로 침범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수고 많았다."


루네아는 격려의 말에 쓴웃음으로 답했다. 이교의 사원에서 축성의식을 벌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늘 가지고 다니는 냄비를 꺼냈다.


"스튜를 끓여드릴게요. 축성 받은 소금을 넣은 스튜예요."


"귀한 걸 먹겠군. 내 보상하도록 하겠다."


"괜찮아요. 전에 드셨던 스튜에도 같은 소금이 들어갔거든요."


"......"


지안이 입을 닫았다. 굳게 닿고 다시 열지 않았다. 축성 받은 소금은 귀한 물건이었다.




***




달이 기울며 새벽이 온 시각.


전날 고된 일을 겪은 수색대는 몇몇 불침번만 깨어있는 채로 잠들어 있었다.


-흐흐흐...


수상한 소리에 불침번 하나가 고개를 돌렸다. 창문 밖으로 희끄무레한 것이 지나갔다.


"누구냐!"


-흐흐흐흑... 흐흐흐...


"모두 일어나! 적이다!"


사원이 소란스러워졌다. 모든 불침번이 창문으로 보이는 원혼을 목격했다.


몸이 찢긴 젊은 남녀.

피부가 불어터진 소년과 소녀.

목과 팔다리가 괴상하게 꺾인 노인.


온갖 원혼들이 일행을 먹음직스럽다는 듯 지켜보았다. 하나둘씩 일어나는 병사들 또한, 차례대로 원혼을 보게 되었다.


"젠장! 뭐야 저건!"


"활로 쏴버릴까?!"


"되겠냐!"


기겁할 만한 광경에 일순간 혼란이 생겼다. 그렇지만 대처가 빨랐다.


"시끄럽게 굴 필요 없다! 생긴 것만 저럴 뿐이니 무시해라!"


"진정하세요! 저 원혼들은 사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해요!"


지안과 루네아가 일행을 다독였다. 지안은 엄하게, 루네아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둘 다 겁먹지 않은 듯했다. 성녀인 루네아는 원래부터 원혼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지안은 타고난 용기가 대단해 보였다.


'나는 귀족이다! 나는 귀족이다! 나는 귀족이다! 나는 귀족이다! 나는 귀족이다! 나는 귀족이다! 나는 귀족이다! 나는 귀족이다!'


실상은 조금 달랐다.


오직 위신.

위신을 위해 겁을 짓눌렀다.


위신을 향한 강한 마음으로 귀신을 무서워하는 본성을 이겨냈다.


한편, 사제 마르센은 원혼을 본 병사들에게 전혀 사제 같지 않은 말을 했다.


"이것들아! 저놈들 별것 아니야! 제깟 놈들이 무서워 봤자, 돈보다 무섭더냐!"


성난 멧돼지 같은 로우드는 병사들을 다그쳐 공포를 잊게 했다.


"전원 준비해! 몬스터가 올 수도 있다! 어이! 너! 빨리 움직여!"


"예! 알겠습니다!"


병사는 모의전 때 악귀 같이 굴던 로우드를 기억하고 용기를 되찾았다.


지안과 루네아, 마르센과 로우드.

이 네 사람의 활약 덕에 수색대는 공포에 무너지지 않았다.


그사이 제론은 지안의 곁으로 갔다. 침착하게 필요한 조언을 준비해뒀다.


"이 근방에는 웬디고가 출몰합니다. 수는 많지 않지만 강한 몬스터입니다."


"웬디고라면..."


"목을 자르지 않으면 죽지 않아서, 불멸귀라고까지 불리는 놈입니다."


"알겠다. 그땐 나와 성녀가 나서겠다. 제론, 너는 병사들을 지휘하라."


"예. 맡겨주십시오."


제론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원혼은 사원 바깥을 빙빙 돌기만 했다. 아직까진 어떤 사고도 없었다.


그때, 쿵쿵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소리와 함께 진동도 일어났다.


무언가가 사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사람보다 힘이 강한 존재인 듯했다.


-콰아앙!


문이 버티지 못하고 부서졌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존재는 사람의 몸에 수사슴의 머리가 달린 웬디고였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말라붙은 몸과 칙칙한 회색 피부는 약해보였지만, 손가락만은 길고 날카로워 만만치 않은 느낌을 주었다.


"쏴라!"


제론의 지시에 궁병이 당긴 활시위를 놓았다. 몇 발의 화살이 웬디고의 몸에 박혔다.


-그륵?


웬디고는 주저함 없이 접근해왔다. 고통은 느끼지도 못하는 모양이었다.


"모두 물러서라."


지안의 한마디에 병사들이 벽 뒤로 이동했다. 명령을 따르는 모습에 절도가 있었다.


"웬디고의 악명은 들어봤다.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볼까."


"저도 함께할게요."


"사양하지 않겠다."


루네아가 전투 망치를 쥐고 옆에 섰다.

말려도 붙어있을 기색이었다.


웬디고는 단 하나.

다만, 적은 웬디고만이 아니었다.


-키헤헤헤!


창문으로 몸집이 작은 그렘린 떼가 넘어왔다. 이빨로 적을 물어뜯는 소형 몬스터였다.


제론과 로우드, 마르센은 일선에서 그렘린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렘린은 웬디고의 먹이예요."


"지금은 협력관계인 모양이군."


"마검이 조종하고 있겠죠."


"사람만 조종하는 게 아니었군."


"덕분에 몬스터만 상대하면 될 거예요. 우리까지 조종할 여유가 없을 테니까요."


"좋아. 그럼 움직이지."


지안이 천천히 나서자 루네아가 먼저 뛰어나갔다. 시선을 끌려는 의도였다.


전투 망치를 단창처럼 사용해 첨단의 칼날이 웬디고의 어깨로 향하도록 했다.


웬디고는 긴 다섯 손가락을 모았다. 송곳처럼 뾰족해진 손으로 루네아의 상체를 노렸다.


그 순간, 신속한 검격이 웬디고의 손가락을 가르고 지나갔다.


전혼이 담긴 지안의 내려치기였다.


-그륵?


웬디고가 자신의 손가락을 보았다. 이미 잘려버린 손가락은 사원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좋네요!"


"뭐가 좋지?"


"우리 두 사람요!"


루네아는 지안이 마음에 들었다. 호흡을 맞춰본 건 처음이지만 평생의 동료 같았다.


"일단 집중하도록."


"네. 그럴게요."


시선을 돌리자 분노하는 웬디고가 보였다.

상처 입은 맹수처럼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때 그걸로 가겠다."


"그거라뇨?"


"다리."


"아...!"


루네아가 지안의 의도를 읽어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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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혼의 숲 24.09.04 1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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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바람과 호수 24.09.03 14 0 11쪽
3 성녀님의 야망은? 24.09.03 13 0 11쪽
2 불명예와 별명 24.09.03 12 0 12쪽
1 입양아의 계승 24.09.03 2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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