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기사의 가족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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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소년
작품등록일 :
2024.09.03 07:57
최근연재일 :
2024.09.0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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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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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과 재회

DUMMY

웬디고는 쉽게 당해주지 않았다.


잘린 손가락에서 검은 피가 멈추더니 기괴한 살덩이가 부풀기 시작했다. 살덩이는 촉수처럼 늘어나 다시 손에 와서 붙었다.


"역시 웬디고네요."


"반쯤은 언데드라지?"


"그 정도까진 아니에요."


루네아가 고개를 저었다. 언데드는 성수나 성물이 있어야 퇴치할 수 있는데, 웬디고는 무력만으로 가능했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군."


"와요!"


경고한 루네아가 한걸음 옆으로 피했다. 지안 역시 반대쪽으로 피했다. 웬디고의 길고 날카로운 손가락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여기다!"


지안이 소리치며 전혼을 일으켰다. 검에 깃든 산들바람이 폭풍이 되자 웬디고가 지안만 주시하기 시작했다.


웬디고는 전혼에 눈이 팔려 등 뒤가 무방비한 상태였다.


루네아는 그 틈을 노렸다.


지안이 시선을 끌고 안다리 걸기를 쓴다면, 루네아가 뒤로 넘어진 웬디고의 머리를 부술 작정이었다.


'잘 돼야 할 텐데요...'


전혼이 은밀히 일어났다. 전투 망치에 깃든 전혼은 루네아의 것이었다.


하지만...


웬디고는 당해주지 않았다. 지안이 검격을 쏟아내며, 시도한 안다리 걸기를 재빠른 움직임으로 피해버렸다.


-그르?


웬디고는 알고 있었다는 듯했다. 사람만큼 똑똑한 몬스터였다.


"재미있는 친구였군."


"재밌지 않아요. 일은 쉬운 게 좋거든요."


"그 말엔 동의한다."


지안과 루네아가 웬디고를 상대하는 사이, 나머지는 그렘린을 몰아내고 있었다.


"이 귀찮은 놈들!"


"마르센, 이 자식! 그렇게 굼떠서 되겠냐!"


"로우드 좀 닥쳐! 너 지옥 갈 줄 알아라!"


"하하! 지옥 좋지!"


마르센과 로우드가 철퇴와 도끼로 그렘린을 박살 내고 있다.


"단병접전으로 들어가라! 사각을 조심해!"


제론은 그렘린을 상대하면서도 병사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지안은 부끄러워졌다. 원혼이 나타날 때만 해도 느끼던 두려움은 사라졌다.


"미안하지만 죽어줘야겠다."


'위신을 위해'란 말은 빠졌지만, 웬디고는 위신을 위한 제물이 분명했다.


-그륵?


웬디고가 의문을 드러냈다. 갑자기 상승한 적의를 이상하게 여겼다. 하지만 지안이 돌진하자 전투에 집중했다.


지안은 단단히 화가 난 듯 정면공격에만 집착하는 모습이었다.


단번에 목을 노려 끝내고자 했으나 웬디고는 민첩하기로 유명한 몬스터.

들어오는 칼날을 어렵지 않게 피했다.


"좋은 일격이에요!"


-그륵?!


웬디고가 기겁했다. 눈앞의 지안을 신경 쓰느라 조용히 있던 루네아를 놓치고 말았다.


루네아는 웬디고의 뒤에서 다리를 노렸다. 걷어차기에 가까운 유사 안다리 걸기였지만 효과가 있었다. 웬디고의 자세가 무너진 것이다.


"바로 지금이에요!"


신호에 맞춰 지안이 공격을 시도했다. 이미 일으켰던 전혼이 실타래처럼 꼬여 본래보다 큰 칼날을 만들었다.


몰아치는 폭풍의 칼.

형태 없는 거친 일격.


무형의 검기가 날아갔다. 창백한 피륙을 향해 예리한 적의를 드러냈다.


일렁이는 횃불이 거친 바람에 파닥였지만, 빛은 적의의 대상이 아니었다.


-툭! 데구루루...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




짙은 검푸름이 옅은 푸름으로 물들어갔다.


새벽이 지나 해가 뜰 때가 되었다. 원혼은 물러갔고, 그렘린과 웬디고는 시체만 남겼다.


"모두 수고했다."


-와아아아!


수색대의 병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임무는 끝나지 않았지만, 고비 하나를 넘겨 잠깐의 기쁨을 맛봤다.


"웬디고마저 쉽게 잡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로우드가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제론과 마르센도 마찬가지였다.


"너희들이 그렘린을 상대해준 덕분이다."


"아닙니다. 영주님이 웬디고를 맡아주시지 않았다면 희생자가 발생했을 겁니다."


"그 점이라면 성녀에게도 감사해야겠지."


지안이 루네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의 감사 인사였다.


"백작님보다 백작님 부하들이 더 기뻐하는 것 같네요."


"어쩔 수 없지. 박제해서 팔면 영지 재정에 보탬이 될 테니까."


"여기서도 금전의 논리네요..."


루네아가 한숨을 푹 쉬었다. 무언가 다른 말을 기대한 모양이었다.


"영주님, 저는 가보겠습니다."


로우드가 자리를 피했다. 성녀의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마르센은 들어올 돈에 기뻐했고, 제론은 병사들과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미나의 행방은..."


"곧 올 거예요. 숲의 몬스터를 이용했으니 이번엔 진짜가 나타날 차례죠."


"더 강한 게 온다는 소리군."


"생각 외로 쉬울 수도 있어요. 백작님이 도와주신다면요."


"알았다. 그리 한다고 했으니까."


"고마워요. 일이 잘 되면 그 공은 꼭 전해드려 오해가 없도록 할게요."


"필요 없다."


지안은 마음에도 없는 소릴 했다. 귀족 체면에 대놓고 공을 주장하려 했다간 위신이 깎일 수도 있었다.


"영주님! 미나가 나타났습니다."


한 병사가 알린 소식에 사원 밖으로 나갔다. 미나는 마검을 쥔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몸... 몸을 내놔..."


"마검이여. 내 백성을 돌려다오."


"몸을 내놔..."


"말이 안 통하는군."


보이지 않는 답에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루네아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축성 받은 소금을 몸에 뿌리고, 교회의 성물을 손목에 칭칭 감았다.


지안도 루네아를 따라나섰다. 미나와 접촉하려는 루네아의 한쪽 손목을 잡은 채였다.


"정말 이걸로 되겠나?"


"문제없어요. 아니... 없을 거예요."


"확신은 아니군."


"아하하..."


"그래도 무시할 수 없지."


"맞는 말이에요."


루네아가 미나의 빈손을 잡았다. 성녀의 몸을 뺏는 것이 목적인 마검은 어떤 공격행위도 하지 않았다.


"크으윽!"


미나가 빠져나가는 기운에 고통스러워했다. 마검은 임시로 얻은 두 번째 몸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이제 세 번째 몸이자 제대로 얻을 몸이 될 루네아를 지배할 차례였다.


"착하지? 이제 돌아와요."


마검은 농락당하고 있었다. 지안이 성물에 전달한 전혼 때문이었다. 루네아의 손목에 감긴 성물은 전혼을 신성력으로 바꾸는 종류였다.


"끄윽! 싫어! 살려줘! 하지 마!"


마검이 미나의 입을 빌려 말했지만 루네아가 자비를 베푸는 일은 없었다.


끝내 마검은 봉인되고 말았다.


"이제 끝났어요"


루네아가 미나를 안아 들었다. 마검에 기운을 빼앗긴 몸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미나는 괜찮아요. 한동안 쉬면서 잘 먹이면 회복될 거예요."


"......"


"안심하세요."


"그러지."


지안이 모두를 돌아보았다. 위험한 일에도 불만 없이 나서준 사람들이었다. 당장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지만 나오는 말은 달랐다.


"돌아가자."


무덤덤한 목소리로 귀환을 알렸다.




***




시간이 흘러 아침.


원혼의 숲을 나오자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영주님!"


"월터."


"영주님!"


"왜 그러는가?"


"감사합니다!"


월터는 목이 잘린 웬디고 사체에 감격했다. 어디 가기만 하면 돈을 가지고 오니, 충성심이 절로 생겨났다.


한편, 보육원 아이들은 정신을 잃은 미나를 둘러쌌다. 교회에서 죄를 고하고 미나를 보기 위해 온 참이었다.


"미나! 잘못했어! 용서해줘!"


-엉엉엉!


아이들은 울면서 잘못을 뉘우쳤다. 진정한 사죄와 반성의 순간이었다.


그때, 케일이 다급히 나섰다. 어린 동생들에게 질 수 없었다.


"미나! 다음부턴 내가 널 지켜줄게!"


"케일 형! 갑자기 그러면 안 되지! 미나는 우리가 먼저 봤단 말이야!"


"맞아! 우리가 먼저 만났어!"


"조용! 너흰 반성하고 있어!"


잘못한 것이 있는 아이들은 케일을 이기지 못했다. 이번은 케일의 승리였다.






마검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지안은 영민을 지키고 부수입을 얻었으며, 루네아는 마검을 회수했다.


배교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마검에 기운을 다 빼앗겨 죽었으리라 생각했다.


그 와중에 다른 희생자는 없으니 여러모로 의문만 남은 일이었다.


모든 과정이 끝나자 루네아는 돌아갔다. 가는 길에 미나도 함께 데리고 갔다.


성녀의 자질이 있고 그걸 좌시할 수 없으니 옳은 선택이었다.


미나를 좋아하는 보육원의 아이들, 지안의 활약을 도용한 케일이 울면서 말렸으나 미나의 태도는 확고했다.


'나 도시로 가서 멋진 사람이 되어 돌아올게. 모두 기다려줘.'


어린 소녀가 태도만큼 확고한 꿈을 밝혔다. 마검 사건을 겪고 변화가 생긴 듯했다.


그리고 지안은...


"웅담백?"


"예. 그때 아울베어를 잡은 일이 이제 퍼진 모양입니다."


"곰을 잡았다고 웅담백?"


"아니요. 영주님이 마치 곰의 담력을 가진 것 같다는 뜻입니다."


"어쨌든 웅담백?"


"왜, 왜 그러십니까..."


어지간해선 위축되지 않는 마르센이 어깨를 잔뜩 움츠렸다.


"회의감이 드는군."


"......"


"왜 말이 없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웃어."


"예?"


"그냥 웃으라고."


"하하하하."


"나가."


"예?"


"나가."


"알겠습니다."


마르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떠나자, 지안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웅담백.


나쁜 뜻은 아니지만, 싫은 별명이었다. 지안은 웅담이 아닌 용담을 바랐다.


"가자. 위신을 위하여."


또 한 번의 강도기사행이 시작되었다.






가을이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


숙련병과 신병들, 그리고 두 명의 기사가 협곡을 막았다.


기사는 지안과 제론이었다.


"신병이 숙련병과 어울리게 하는 수로군요."


"그렇다."


"이익도 얻으려는 목적이겠고요."


"바로 그렇다."


"좋은 계획입니다."


"바로 그러하다. 이것이야말로 화살 하나로 세 마리의 새를 잡는 전략이지."


"둘은 알겠습니다만 셋은 무엇입니까?"


"밝힐 수 없다."


지안 대충 얼버무렸다. 멋진 별명이란 속셈을 밝혔다간 위신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영주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정중히 모셔라!"


"예!"


명령을 받든 신병이 다가오는 행상인 무리에 소리쳤다.


"이 비루한 것들아! 당장 무릎을 꿇어라! 여기 산텐 협곡의 주인이신 에스테론 백작님께서 오셨노라!"


"오오오! 에스테론 백작님?!"


"무릎을 꿇지 못하겠느냐!"


"꿇겠습니다! 웅담백이시여!"


정중한 모습이었다. 분명 정중했지만 지안의 눈에는 그리 보이지 않았다.


정중히 협상하고 통행세를 냈어도 정중한 느낌은 없었다.


물론 느낌만 그랬다.


"웅담백이시여! 산텐 협곡의 안전을 수호하는 분이시여!"


"웅담백 만세! 만세!"


"웅담백께서 계시니 저희 같은 것들이 먹고 삽니다."


돈이 모였다. 자발을 넘어 경쟁적으로 바쳐진 통행세였다.


"사랑백 때보다 많이 번 것 같습니다."


"그만."


"예?"


"거기까지."


지안은 말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저 다음 손님을 기다리기만 했다. 그러던 중 신병이 다시 소리쳤다.


"영주님. 손님이 왔는데 한 명입니다."


"그냥 보내줘라. 한 명이라면 여행자다."


"알겠습니다."


신병이 지안의 명령을 전달하자, 마차로 된 목책이 열리며 길을 만들었다.


돈 있는 상인에게 통행세를 받는 건 세금 징수지만 가난한 여행자에게 통행세를 받는 건 부당한 약탈.


지안은 모범적인 귀족이라 권리 없는 약탈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안을 알아본 여행자가 약탈당하길 자처했다.


"안녕하세요. 백작님."


"그대는?"


"네. 성녀입니다."


"어쩐 일이지?"


"통행세 내러 왔어요."


"가도록 하라."


"왜요?"


"여행자니까."


"여행자라도 통행세를 내면 안 될까요?"


"안 될 건 없지만 보기가 안 좋다."


직접 걷진 않겠지만 알아서 주면 받겠다는 뜻이었다. 루네아는 돈주머니를 건네며 가볍게 투덜거렸다.


"손이 많이 가는 백작님이네요."


"귀족이니까."


지안이 슬쩍 미소지었다. 루네아가 넣어준 돈주머니가 묵직한 덕이었다.


"에린스 대주교구는 언제든 환영하겠다. 자주 이용하면 조금 깎아줄 수도 있지."


"너무 적극적이신 거 아니에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손님이 느는 법이지."


"후후. 맞는 말이에요. 그럼 다음에 봬요."


루네아가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몇 걸음 걷다가 흔들고.

다시 걷다가 뒤돌아서 흔들고.

또 몇 걸음 걷다가 손을 흔들흔들.


"꼭 다음에 봐요!"


해맑게 웃는 얼굴이 보기 좋았다.


"진짜로 다음에 봐요!"


목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리지 않았다.


"모르겠군."


루네아는 미묘하게 변한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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