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기사의 가족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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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소년
작품등록일 :
2024.09.03 07:57
최근연재일 :
2024.09.0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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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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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의 여정

DUMMY

군사 훈련이 있었다.


추수도 이미 끝난 시기라, 각 마을에서 뽑은 병사들이 영주성 밖 주둔지로 모여들었다.


인원은 총 50명.


최대는 아니더라도 영지에서 동원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병력이었다.


'잃었다간 영지가 망한다.'


지안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눈앞의 50은 잃어선 안 될 숫자였다. 영지의 힘이자 희망이며 생명줄이었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병사들은 수군대기에 바빴다. 지안과 루네아를 향한 수군거림이었다.


"딱 붙어 계시지?"


"그렇네."


"뭔가 있을 거야."


"뭔가가 뭔데?"


병사가 잠깐 멈칫했다.

뭔가가 뭔지 예상은 되는데 뭔가를 직접 해본 적은 없었다.


"몰라."


쉬운 답을 내뱉고 대열에 섰다. 그는 막내 지위에 있는 젊은 병사였다.


루네아는 병사 50명을 전부 눈에 담았다. 전혼을 다룰 줄 알아 감각이 뛰어난 그녀는 50명의 특징을 금방 발견했다.


"젊은 병사들이 많네요."


"그리 보내라고 했으니까."


"보통은 안 보내려고 하거든요."


"주는 게 없으니 그렇겠지. 병사든 충성이든 공짜는 없다."


지안이 자신 있게 답했다. 문제의 답을 아는 듯한 말투였다.


이어지는 훈련도 답을 아는 것처럼 열과 행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하지만 병사들은 열과 행 자체를 몰랐다.


"병사들이여! 잘 들어라! 열은 세로줄! 행은 가로줄이다!"


간신히 열과 행을 이해시키고 천사와 악마를 불러들였다. 내면세계의 천사와 악마였다.


"본 백작은 그대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천사도 될 수 있고, 악마도 될 수 있다."


-......


"만약 내가 실망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 뒤는 나도 모른다."


훈련이 시작되자 천사와 악마가 서로에게 선전포고를 날렸다. 지안의 내면세계는 전쟁으로 난장판이 되어갔다.


"오른쪽으로 돌아!"


"왼쪽으로 돌아!"


"그대들은 방향도 모르는가!"


"본 백작은 실망했다! 실망하고 말았다!"


끝내 승리한 자는 악마였다. 천사의 목소리는 희미해졌고, 남은 것은 훈련뿐이었다.


"돌아라! 돌아라!"


"다시 시작한다! 마지막엔 분명히 소리치지 말라고 했다!"


"힘내라! 너흰 할 수 있다."


그렇게 땀 흘리는 과정이 계속되며 지안의 표정이 부드럽게 변해갔다. 아주 천천히 생겨난 변화였다.


"휴식!"


한차례 훈련이 끝나고, 지친 병사들이 물을 나눠마시고 있었다.


"크으으! 살겠네!"


"이거 소금물이구만."


"그러게 귀한 소금을 타다니."


이곳 사람들은 소금물의 효용을 알고 있었다. 근거는 없어도 땀을 많이 흘렸을 때, 소금물이 좋다는 것을 전통으로 알았다.


짠 물맛에 식욕이 생긴 일부가 소금물을 더 요구했다. 몇 번은 물잔이 건네졌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적당히 마셔. 아껴야 한단 말이다."


보급병이 손을 내저었다. 그는 귀한 소금을 관리하는 자리에 있었다.


달라는 쪽과 못 준다는 쪽 사이에 실랑이가 생겼지만, 사소한 일이었다. 루네아에게도 사소한 일에 불과했다.


"소금은 왜 타신 건가요?"


"다들 귀한 몸이니까."


"귀하니까, 귀한 소금을 먹였단 말이네요."


"그렇지"


"......"


루네아가 보는 지안은 귀족다우면서도 귀족답지 않았다. 마치 기사 소설 속에는 등장하는 명예로운 귀족 같았다.


지안은 루네아를 뒤로하고, 단상 앞에 섰다. 소금물로 기운을 얻은 병사들은 훈련 준비가 끝나있었다.


"자! 힘내도록!"


손을 들었다. 손짓에 맞춰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움직임이 조금씩 나아지며 한참이 지났다.


"본 백작은! 실망하지 않았다!"


-우와아아아!!


천사의 외침과 병사들의 환호성에 긴 훈련이 끝을 맞이했다.


일주일 훈련의 첫날이었다.




***




병사들이 훈련에 한창일 시각.


보육원의 아이들은 뜻밖의 외로움을 견뎌야 했다. 평소에 자주 놀아주던 고참 병사들이 자리에 없었다.


대신, 지안의 은혜로 살아난 케일이 자신보다 어린 동생들과 놀아주고 있었다.


"성스러운 힘으로 아울베어의 사지를 분해한 기사님은 성녀님과 결혼했습니다. 두 분은 행복하게 살며, 아이도 열 명이나 낳아 가문은 오래오래 이어졌답니다."


"......"


"왜 그래? 재미없어...?"


"케일 형. 그 이야기는 영주님의 활약을 베낀 거잖아."


"그렇긴 한데 음유시인들은 다 이러더라고."


"도둑질이야."


"미안..."


케일의 동화는 아이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사제들의 가르침을 받은 아이들에게 도둑질은 해선 안 될 비윤리적인 행위였다.


다만, 지안의 강도기사행은 영주로서 가진 당연한 권리라고 배웠다.


"도둑질은 하면 안 돼. 마르센 사제님도 도둑질한 돈은 멀리하라고 하셨어."


"미나, 너마저!"


"그래도 재밌었어. 영주님의 활약이잖아."


"흑...! 고마워!"


"케일 오빠! 갑자기 울면 어떡해!"


미나가 황급히 케일을 달랬다.

둘은 재밌게 놀고 있지만, 나머지 소년들은 지루해하기만 했다.


"뭐 재밌는 거 없을까?"


"숲에서 담력 시험하자."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했잖아."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바깥에서 하는 건데 뭐 어때?"


"...그렇겠지?"


담력시험이란 말에 미나가 귀를 쫑긋거렸다. 그녀는 예전부터 겁을 몰랐다.


'나중에 같이 가야지.'


손은 케일의 등을 토닥거렸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이후로 일주일.


보육원의 아이들은 원혼의 숲 주변에서 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위험한 일에 빠져있을 무렵, 영주성 주둔지는 군기로 들어찼다.


명령이란 수행하는 것.

단순하지만 명확한 원칙이 병사들의 뇌리에 자리 잡은 결과였다.


이제 명령이 들리면 몸부터 반응했다. 그래도 휴식시간이 되자 여유를 되찾았다.


"내 생각이 맞아."


"뭐가?"


"영주님이 부인감을 데려온 거야."


"부인? 부인이 어디에 있다고 그래?"


"영주님 옆에 있잖아."


"헛소리하지 마. 우리 영주님도 대단하지만 성녀님 이름값이 너무 크다고."


"잘 어울리는데..."


그때 루네아는 지안의 곁에서 시녀가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백작님. 물수건 가져왔어요."


지안이 그녀가 준 물수건을 받자, 병사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설마...?"


이후의 훈련은 열정을 넘어 열기에 휩싸였다. 미래의 안주인에게 믿음직한 모습을 보이려고 한 것이다.


제멋대로 한 오해지만 훈련 결과는 좋았고, 지안도 만족했다.


어느덧 일주일째였다.


훈련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수고한 병사들을 위한 대회의 장이었다. 구경꾼이 많은 가운데, 잘 구운 고기 냄새가 허공을 진동했다.


"닭꼬치 팝니다! 하나에 동화 1개!"


노점을 연 주민들이 모이는 돈에 기뻐하고, 궁술을 수련한 병사들은 대회에 걸린 상금에 눈이 벌게졌다.


"명중이오!"


궁술대회의 승자가 가려지자, 기병들을 위한 승마대회가 이어졌다.


기사를 제외한 영지의 기병은 총 4명.

모두 경기병인 그들은 속도보다는 곡예 쪽에 관심이 많았다.


"끼요요옷! 봤냐! 봤냐고!"


"정찰이 뭔데!!"


"나는 약탈이 좋다!"


"젠장! 더럽게 잘하네!"


승자는 조금 얌전하게 달린 기병이었다.

곡예가 화려하지 않아 인기는 적었지만 최종 승리는 그의 차지였다.


"난 저러라고 한 적 없다."


"재밌으면 된 거 아닐까요."


지안이 이마를 잡은 사이, 루네아는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다들 즐기고 있었다.


마지막인 모의전은 제론과 로우드의 대결.

두 기사의 밑에 모인 병사들이 해맑은 얼굴로 욕설을 해댔다.


"어이! 어머니 잘 계시냐!"


"형. 우리 어머니 집에 있잖아."


서로 적이 된 형제는 훈련용 장비를 들고 싸움을 벌였다. 제론과 로우드가 무서워서라도 싸워야 했다.


마르센은 지갑을 열었다. 그는 성경보다 돈을 좋아했고, 전투보다 돈을 좋아했다.


"제론! 난 너한테 걸었다!"


"이 배신자야!"


분노한 로우드가 병사를 데리고 중앙으로 들어갔다. 재미없는 제론을 상대로 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뚫어라! 뚫어! 못 뚫으면 다 집에 못 갈 줄 알아라!"


"측면을 노려라. 완전히 비었다."


제론는 침착하게 지시를 내렸다.

성난 멧돼지가 돌진할 때 정면으로 달려드는 건 바보짓이었다.


"정면이 뚫렸습니다!"


"상관없다."


승자는 제론이었다. 로우드가 병사를 이끌고 중앙을 뚫었지만 제론이 측면을 노려 로우드의 본진을 점령했다.


"내가 이겼군."


제론이 로우드의 군기를 들었다.

평소 재미없게 사는 그도 승리만큼은 즐거워할 줄 알았다.


그사이, 루네아는 성녀가 아닌 신분으로 에스테론 백작령을 평가했다.


'모두들 강해. 소개하기 딱 좋겠어.'


그녀의 야망이 말하고 있었다.

에스테론 백작 지안과 그의 수하들이 필요한 인재라는 것을.






모든 훈련이 끝났다.

또다시 해가 질 시기였다.


노점이 하나둘 철수하고 병사들도 밤을 보낼 준비에 들어갔다. 내일이면 그리운 마을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때 영주성에서 사람이 왔다.

보육원을 담당하는 하녀였다.


"영주님 큰일 났습니다! 미나가! 미나가 사라졌어요!"


그녀의 뒤로 우는 아이들이 있었다.




***




원혼의 숲.


악령과 괴물이 나온다고 알려진 숲이자 에스테론 영지의 주요 목재 생산처.


나무꾼들은 일찍부터 원혼의 숲 경계를 드나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까지 허락된 공간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가지 말라고 했는데...!"


"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다. 경과를 말하라."


"네! 어찌 된 일이냐 하면..."


이야기는 뻔했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원혼의 숲에 들어갔다는 것.


사고만 안 났다면 꾸짖음으로 용서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무사히 돌아온 건 잘한 일이다. 빨리 소식을 알린 것도 잘한 일이고."


"여, 영주님..."


"하지만 경솔했다. 너희는 교회에 가서 죄를 고하도록 하라."


처벌이 약했지만, 아무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실종된 미나를 수색하는 일이었다.


지안은 급히 수색대를 편성했다.


훈련이 부족한 신병을 제외하고 경험이 있는 병사를 위주로, 특히 원혼의 숲에 드나든 적이 있는 나무꾼들을 중심으로 했다.


"너희들에겐 미안하단 말밖에 할 수가 없다. 힘을 빌려다오."


"알겠습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몇몇 병사들이 지안의 결정에 앞다투어 동의했다. 고아 출신이거나 어린 자식이 있는 부모들이었다.


설령, 공감하지 않는 병사들이라도 미나를 외면하지 않았다. 어차피 서로 돕고 살아야 할 운명이었다.


한편.


루네아는 교회로 떠나기 전의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실종자가 하필 미나라는 것이 꺼림칙했다.


"미나가 이상했어요. 뭐에 홀린 듯이 달려가 버렸어요."


"무슨 목소리가 들린다고 했는데, 검이 자기를 부른다고 했어요. "


"맞아요. 정말로 그랬어요. 너무 빨라서 쫓아갈 수도 없었어요."


검이라는 증언에 루네아는 얼마 전의 소란이 생각났다.


에린스 대주교구에 보관되어 있던 마검을 내부의 배교자가 훔쳐간 사건을.


배교자는 산텐 협곡에서 소식이 끊겼고, 루네아는 그 흔적이 에스테론 영지로 이어졌으리라 생각했다. 험한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몸을 숨기기에 좋았다.


마검은 사람을 홀리는 위험한 물건이었다. 정신이 약한 사람은 지배될 수도 있기에 성녀인 루네아가 직접 움직였다.


혼자서 행동하는 이유도 마검이 가진 지배력 때문이었다.


"미나는 받아들일 자질이 있어요. 저처럼 될 수 있는 자질이..."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수색대를 편성하는 지안에게 다가갔다.


"백작님 잠깐 이야기 좀 할까요?"


"바쁘니까 나중에 하지."


"미나가 위험해요."


짧은 한마디에 지안이 뒤돌아봤다. 루네아가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무슨 뜻이지?"


"미나가 사라진 일은 무언가가 꾸민 것일지도 몰라요."


"무언가가 뭐지?"


"마검이에요. 마검은 마성을 가지고 있죠."


"마검이 왜 미나를 노렸지?"


"제가 본 미나는 마성을 받아들일 자질이 있었거든요."


"그 말은 마녀가 될 수 있다는 소린가?"


"네. 성녀가 될 수도 있다는 소리고요."


성녀와 마녀는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영혼에 신성이 깃들면 성녀고, 마성이 깃들면 마녀라 불리었다.


루네아는 대주교구의 배교자도 알려주었다. 협조를 얻기 위함이지만 지안을 믿고 털어놓은 면도 컸다.


"그 사건이 왜 알려지지 않았지?"


"알려지면 망신이니까요."


"성직자도 귀족과 다를 바 없군. 그래서 지금 미나는 마검에 지배되어 있다?"


"제 생각은 그래요."


"확신이 아닌데?"


"네. 확신까진 아니죠."


"무시할 말도 아니겠고..."


지안은 막 편성한 수색대를 보았다. 마검이 적이라면 이대론 위험했다.


"수색대를 재편하겠다."


명령은 곧 이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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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녀님의 야망은? 24.09.03 14 0 11쪽
2 불명예와 별명 24.09.03 13 0 12쪽
1 입양아의 계승 24.09.03 26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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