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기사의 가족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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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소년
작품등록일 :
2024.09.03 07:57
최근연재일 :
2024.09.0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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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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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호수

DUMMY

영주성이 가까워졌다.


발걸음이 빨라지고 말고삐를 쥔 손이 느슨해지는 지금, 지안의 옆에서 말을 모는 로우드는 실실거리고 있었다.


"마르센 녀석이 알면 놀랄 겁니다. 역시 전대 백작님이 선택하신 분답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전합을 사용하실 정도면 자신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런 자신은 자만인 법이지."


지안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위신아! 올라가라!'


속내는 위신뿐이었지만 겉은 근엄한 영주의 표상이었다.


"이럇!"


말을 몰아 야트막한 언덕을 넘었다. 영주성이 크게 보이는 곳까지 오자 망루에서 손을 흔드는 병사가 보였다.


"영주님이다! 영주님께서 돌아오셨다!"


성벽 위가 분주해지는 가운데, 도개교를 건네 몇 사람이 마중 나왔다. 돈 좋아하는 마르센과 수입을 기다리는 수석 서기관 월터였다.


"어서 오십시오. 영주님."


"별일 없었나?"


"마르센 사제님이 세금을 안 내셨습니다."


"언젠가 내겠지."


"알겠습니다.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월터가 마르센을 대놓고 물 먹이자, 마르센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금화를 씹다가 이가 깨진 사람 같았다.


"안 낸 세금으로 돌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 앞으로도 분발하도록."


지안은 교회의 면세를 관대하게 넘겼다. 마르센은 교회의 재산으로 구빈소와 보육원을 운영하고 치료사도 양성하고 있었다.


험한 산길과 맹수 때문에 다치고 죽는 사람이 자주 나왔다.


"마르센, 내가 중요한 소식을 말해주지."


"또 무슨 헛소릴 하려고."


"아니야. 이번엔 진짜야."


로우드가 그간의 일을 말하는 사이, 월터가 아울베어의 사체를 목격했다.


월터는 곧바로 눈치챘다.

지안의 강도기사행이 통행세 외에도 엄청난 수입을 남겼다는 것을.


"영주님."


"왜 그러지?"


"사랑합니다."


"......"


지안은 침묵했다. 월터가 무두장이와 짐꾼을 불러내는 와중에도 침묵했다. 위신이 이상한 쪽으로 오르고 있었다.


"이제 들어가자."


어쨌든 위신은 올랐다. 그 증거로 영민들이 허리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아울베어의 사체를 본 일부는 아예 절을 하며 주님과 영주님을 부르짖기까지 했다.


반대로 지안은 허리를 폈다.

힘을 가진 자의 의무였다.


"영주님!"


갑자기 한 여인이 다가왔다. 그녀는 병사들의 제지에도 포기하지 않고 소리쳤다.


"제 아이가 아프옵니다! 제발! 제발 축복을 내려주십시오!"


"들여보내라."


지안이 접근을 허락했다. 근거 없는 치유의 축복을 내리고자 했다.


원래 황제나 왕에게 허락된 치유의 축복은 황위가 30년 넘게 비면서 일개 백작마저 손대는 권리가 되어있었다.



[ 성실하고 꿈많은 시인 ]


▶케일은 음유시인의 자질이 있습니다.



장갑을 벗고 소년에게 축복을 내렸다. 손이 땀으로 흠뻑 젖은 이마에 닿았다.


"전능하신 주님의 축복이 네게 있기를. 주님의 자애로 너의 몸과 영혼이 치유되리라."


축복을 내린 지안은 그걸로 끝내지 않았다. 마르센을 곁으로 불렀다.


"이 아이는 구호가 필요하다. 치유사에게 보내도록 하라."


"예. 시행하겠습니다."


마르센이 아이와 어머니를 교회로 인도했다. 내지 않은 세금이 힘을 발휘할 때였다.


"다시 가지."


여정을 재개했다. 지안이 가는 길 주변으로 기쁨과 희망이 피어났다.


"영주님 만세!"


누군가가 소리쳤다. 평범한 인상의 그는 끓어오르는 마음을 그대로 표현했다.


-우리 영주님 만세! 만세!


다른 주민들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성녀 루네아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과연 자비로운 사랑백이네요."


그녀는 지안을 따라 영주성으로 들어갔다.




***




사랑백 지안의 일과는 단조로웠다.


업무적인 영역이 아닌, 개인사로 본다면 분명 그런 느낌이 있었다.


연회나 사냥은 위신을 위한 것. 종교행사도 위신을 위한 것. 근엄한 겉만 보면 이런 활동을 즐기는 면은 없었다.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성녀를 위해 연회를 열었지만, 풀어진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위신에만 신경 썼다.


'위신이 올랐다.'


연회에서 낭송한 시에 호응이 있었다. 저쪽 세상에서 알던 시를 이쪽 말로 외워보자 모두 감탄한 것이다.


'위신은 달콤하구나.'


보이지 않는 위신에 집착하며 흐뭇한 얼굴을 했다. 누가 봐도 기분 좋은 얼굴로 후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미나는 형제분들과 함께 사는 거네요?"


루네아의 목소리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멀지 않은 곳에 그녀와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뭐 하는 거지?'


지안이 의문을 가진 그때, 여자아이 미나가 힘차게 말했다.


"네! 성녀님! 다들 오빠, 언니들이에요!"


"아버지는 마르센 사제님이고요?"


"네!"


미나의 대답은 활기찼다. 부모가 없어도 사랑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루네아는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지안을 다시 판단했다.


'대책 없이 자비롭지만은 않네요.'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후원해서, 나쁜 결과는 없을 듯했다.


아이들이 병사가 된다면 소속감이 강한 정예병이 되는 것이고, 첩자로 쓴다면 충성심이 보장된 첩자일 것이며, 그냥저냥 살게 되더라도 키워준 은혜를 기억할 터였다.


지안이 입양되어 백작이 되기 전까지 두 달 동안 준비한 정책이었다.


"그나저나 미나는 자질이 있네요."


"무슨 자질요?"


"저처럼 예뻐질 자질?"


루네아는 꽃으로 만든 화관을 미나의 머리에 씌워주었다.


"우와! 예뻐요!"


"그렇죠?"


"네! 하나만 더 만들어 주세요. 영주님께도 드리고 싶어요."


"어머나..."


고운 마음씨에 감동했다. 하지만 꼭 지키는 철칙이 있어 더는 무리였다.


"미안해요. 두 번째는 공짜론 안 돼요."


"안 돼요?"


"네. 호의가 계속되면 안 되니까요."


"왜 계속되면 안 돼요?"


"호의를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니까요."


루네아의 가르침은 8살 소녀에겐 어려웠다. 미나는 그 말을 이해하기보다 비슷한 말을 떠올리는 정도에 그쳤다.


"우우움... 호의는 권리가 아니다?"


"권리? 그런 말은 누가 했나요?"


"영주님이요. 가끔 오시거든요."


미나가 뜻 없이 내뱉은 말이 지안이란 사람을 보여주었다.


"평범한 사람이 아니네요."


"뭐가 아니에요?"


"아이는 몰라도 된답니다."


자비와 책임감, 그리고 단호함.

루네아는 지안의 일면을 엿봤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어제도 봤다."


"그러니까 오랜만이죠."


어느새 두 사람은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




루네아는 영주성을 비우곤 했다.


대주교구에서 받은 일을 수행하고자 한 번에 며칠씩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녀가 영주성에서 받는 혜택은 따뜻한 잠자리와 목욕물 정도.


요리는 익숙한 모양인지 먹을 것은 영주성에 신세 지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루네아가 후원 구석에서 손을 흔들었다.

산책이 일상인 지안은 그녀와 마주치는 날이 잦아졌다.


"한 그릇."


"네! 여기 있어요!"


안 마주쳤다면 모르겠지만, 마주친 김에 스튜를 얻어먹었다.


스튜는 여전히 맛있었다.

한 입 떠서 먹고, 또 먹기를 반복하니 그릇이 깨끗이 비어 있었다.


"맛있군. 한 그릇 더."


"정말 맛있어요?"


"그래. 정말이다."


"후후후. 여기 있답니다."


두 번째로 스튜마저 다 먹자, 루네아가 음흉하게 미소지었다.


"사실 스튜에 독을 탔어요."


"무슨 독이지?"


"부탁의 독이에요."


그녀가 두 손을 모았다. 맞댄 양 손바닥이 간절해 보였다.


"부탁할게요. 저와 대련해주세요."


"나는 지도 대련 같은 건 할 줄 모른다."


"괜찮아요. 저 때리셔도 상관없어요. 원래 맞으면서 강해지는걸요?"


정말 간곡한 부탁이었다. 하나를 얻자 둘을 바라게 된 사람처럼 루네아 역시 전혼을 넘어 전합을 바라고 있었다.


"좋아. 그렇게까지 각오했다면 대련하지."


"네! 고마워요!"


루네아가 전투 망치를 꺼내 들었다. 십자 모양의 전투 망치는 머리 반대쪽과 윗부분에 짧은 날이 달린 다용도 무기였다.


"저 먼저 갑니다?"


"얼마든지."


"그럼."


자루를 짧게 잡고 전혼을 일으켰다. 고요한 호수 같은 기운이었다. 바람처럼 유연하고 거친 지안의 전혼과는 달랐다.


-사뿐.


땅을 박차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수녀의 베일조차 펄럭이지 않을 정도였다.


-카아앙!!


반면, 담긴 힘은 만만치 않았다.

호수같이 고요한 전혼은 무거웠다.

깊이 알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호수였다.


지안도 전혼을 발산했다. 발산한 전혼을 실타래처럼 꼬아 검신에 씌웠다. 일대의 공기가 검신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른쪽 상단."


"네!"


공격을 예고하고 전합을 발동했다. 강철도 꿰뚫는 찌르기가 루네아를 피해갔다.


지안은 그다음도 예고하고, 전합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같은 과정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하악... 학..."


"더 하겠나?"


"네. 조, 조금만 더요."


다시 한번 전혼을 일으켰다.

검신에 느릿느릿 덧씌우는 과정을 세심하게 보여주었다.


전합은 형식이지만, 전합의 근본은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대련 한 번으로 성과를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성녀라는 사람에게 위신 떨어지는 꼴은 보이기 싫었다. 그녀가 입을 잘못 놀리지 않게 할 필요는 있었다.


"역시 대단하세요. 검 쓰는 솜씨만 보면 검호백이란 별명이 더 어울리겠어요."


검호백.

검술이 뛰어난 백작.


사랑백.

사랑을 수호하는 백작.


사랑백이 부끄러운 지안은 검호백이란 말에 기뻐했다.


"이번엔 제대로 가주지."


"네? 그것까지는?!"


루네아가 당황했다.

예고도 없이 달려드는 지안을 맞이해 전혼을 일으킨 전투 망치를 들었다.


"잡았거든요!"


공격을 막고 전투 망치를 핑그르르 돌린다. 망치 머리와 자루에 걸린 검신이 위태롭게 휘어질 듯했다.


하지만 몸이 멈춘 지금, 치맛자락을 일그러뜨리는 다리가 있었다.


"―?!"


지안의 안다리 걸기였다. 뜻밖의 기습에 루네아가 뒤로 넘어갔다. 뒤통수가 흙바닥과 부딪히려는 찰나였다.


"아앗?!"


순간, 허리를 받쳐 든 손이 있었다. 급하게 대응한 지안의 손이었다.


"괜찮나?"


"괘, 괜찮아요. 놓아주시면..."


"그러지."


팔을 당겨 루네아를 일으키자,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지안의 얼굴을 가까이서 본 결과였다.


"흠흠! 제가 졌어요!"


몸으로도 지고, 마음으로도 졌지만 루네아는 애써 태연한 척했다.


"그나저나 어렵네요. 전합이란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 그래도 내 검을 뺏으려는 시도는 훌륭했다."


"고마워요."


"꾸준히 정진하길 바란다. 내가 할 말은 이게 전부다. 그리고... 땀을 흘렸으니 목욕물을 준비하라고 하겠다."


"......"


"다음에 보도록 하지."


지안이 자리를 떠났다.

아침을 얻어먹고 운동까지 했으니 업무에 들어갈 시간이었다.


'잘했다! 진짜 잘했다고!'


대련은 훌륭했다. 너무 봐주지도 않았고, 사정없이 몰아붙이지도 않았다.


지도보다 접대에 가까운 대련에 위신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신앙심 오르는 소리도 들렸다. 들릴 리가 없지만 들었다고 믿었다.




한편, 루네아는...


"무례한데 멋있네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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