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의사는 영원한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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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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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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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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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노, 발을 담그다 (5)

DUMMY

감정이 고조되며 몸에서 신성력이 터져나온다. 신성력이 나의 분노를 연료삼아 불타오른다. 부제들의 오금이 떨리는게 느껴진다.


“마지막이다. 비켜라.”


부제들은 비키지 않았다. 아니, 비키지 못했다. 공포에 질려 입을 열지도 못하지만 차마 움직이지 못한다. 강력한 무언가가 그들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평소에 행해진 카림 주교의 심리적인, 혹은 육체적인 압박일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움직이고자 하는데 그런 것들을 신경써야할까? 나는 신성력을 움직여 그들의 기도를 쥐어챘다.


“컥!”

“사,사제님!크윽!”


공기의 흐름을 제한할 정도로만 수축시킨다. 인간은 몸에 산소가 들어오지않으면 본능적으로 극한의 공포심을 느끼게 된다. 눈 앞에 다가온 죽음. 그 앞에서는 다른 어떤 것도 소용없다.


부제들은 모두 정신을 잃고 자리에 쓰러진다. 몸에 이상은 없을 것이다. 정말로 죽이려는 것은 아니었으니 신성력으로 적당히 기도를 보강해준 뒤 다시 걸음을 옮긴다. 아니, 옮기려고 했다.


“유노 사제.”


이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어느새 카림 주교의 마차가 지척에 와 있었다. 문이 열리고 카림 주교가 손짓한다.


“타게. 신의 기적을 행하는 자가 발에 흙을 묻혀서 되겠는가. 내가 데려다주지.”


그래.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다. 나는 마차에 올랐다.


-----


“걱정하지 말게. 자네를 미행한게 아니니.”


카림 주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방금 내가 신성력을 사용하는 걸 봤을텐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 하다.


“아랫마을로 가고있겠지?”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카림 주교는 마차의 의자 아래에서 술병을 꺼냈다. 거리에서 흔히 보이는 싸구려 술이 아니다. 제대로 된 유리병에 담겨있는 고급스러운 독주다.


“말했지만 자네를 미행한건 아닐세. 그저 칼란 부제의 어미가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이지. 그렇다면 칼란 부제가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안봐도 뻔한 일 아닌가.”


카림 주교는 잔에 술을 따른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독주의 향기에 코가 아찔해졌다.


“그대의 걸음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이건 말해야겠네. 자네가 하올라의 자비를 누구보다 앞서 실천하는 사람인건 알고있네. 하지만 그것이 이 곳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충분히 이해한 후에 신의 뜻을 행해주게.”


난 카림 주교가 말한 것처럼 자비롭거나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다. 그저 내가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치료하고픈 한 사람의 의사일 뿐. 사람을 치료하려고 할 때마다 이것저것 따지라고 하는 것들이 싫을 뿐이다. 화가 난다. 화가 나자 머리가 차가워진다. 동시에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도대체 카림 주교는 왜 이렇게 나를 막아서는가. 제국은 공식적으로는 유목민들까지도 자신의 백성이라 천명하였으며 하올라는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라 하였다. 물론 사람이 사는 곳에서 평등이란게 있을리가 없지만 그는 신의 말씀을 전하는 자. 신의 말씀을 왜 따르지 않는걸까.


카림 주교가 만지작거리는 술병이 눈에 들어온다. 미트리가 말했었지. 이득이 된다면 아랫마을 사람들도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미트리 혼자만 이득을 본다고 이런 구조가 유지될 수 있을까? 지금의 상황이 힘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득이 되기 때문에 유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을 지닌 사람이 내 앞에 앉아있다.


“아랫마을 사람들이 신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는건 누가 정했습니까?”


내 물음에 술병을 쓰다듬던 카림 주교의 손가락이 멈췄다.


“말씀해주시죠. 칼스타드의 대주교께서 정하신겁니까? 아니면 황제께서?”


카림 주교는 술잔을 새로 꺼내 술을 따른다.


“대주교도 아니고 황제도 아닐세. 카디즈의 사람들이지. 카디즈의 사람들이 원했기에 그렇게 정해진걸세. 아랫마을 사람들이 이 곳에 정착하기 위한 대가라면 이해하겠나?”

“결국 주교님이었군요. 그들에게 낙인을 찍은 사람이.”


카림 주교는 나에게 술잔을 내민 뒤 손짓했다. 입을 꾹 닫은 게 술을 마시기 전까지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투다. 나는 술을 입에 털어넣었다. 식도를 따라 뜨거운 기운이 올라온다. 오랜만의 독한 술에 벌써 취기가 도는 듯 하다.


“그래. 맞네. 내가 그리 했지. 하지만 그 방법이 아니라면 그들을 보호할 수 없었다네. 그들이 제국민 이하의 존재가 되어야 미트리의···음···뭐라고 표현해야할까. 그래. 재산이 될 수 있었거든. 재산이 되는 대신 안전을 얻은거지. 카디즈의 평범한 사람들이 쉬이 깔보고 침 뱉을 수 있는 대상을 얻은 것은 덤이고. 모두가 좋은 것 아니겠는가.”


그래. 시작은 선의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만들어놓은 구조때문에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게 그들을 치료하려는 저를 막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막는다니. 지금 이렇게 자네를 아랫마을에 데려다주고 있지 않나. 그대의 뜻이 그러하다는데 내가 어찌 막겠나. 하지만 이렇게 되면 카디즈의 시민들에게는 더 이상 아랫마을 사람들이 신께 버림받았다고는 말할 수 없겠군.”


카림이 한숨을 푹 쉰다.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들의 안전은 누가 보장할지. 하올라시여.”

“안전이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당신이 받고있는 상납금이 줄어드는게 문제지.”


다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카림이 말한 모든건 내 감정을 자극하기 위한 얄팍한 술수에 불과했다. 정말로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고자 하였으면 더 나은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트리는 카림주교에게 들어가는 뒷돈이 더 좋은 방식보다 더 싸다고 생각했기때문에, 카림 주교는 뒷돈이 너무나도 달콤했기에 이 구조를 만들고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내 차가운 말에 카림 주교는 가면을 벗듯 씩 웃었다.


“그것 또한 문제지. 암. 문제야. 내가 어찌 그대에게 거짓을 고할 수 있겠는가? 고귀하고 깨끗하신 신의 대리자께 말이야.”


카림 주교는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길게 한숨을 내뱉는다. 마차 안의 공기가 독해진다. 방금전까지 꼿꼿했던 카림 주교의 자세가 흐트러지더니 지금까지 나에게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카림 주교가 된다. 이 모습이 부제들이 공포에 질려하던 진짜 카림 주교의 모습이겠지.


“평범한 부제가 주교의 자리에 오르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지 아는가? 자네같은 축복받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 신성력을 조금 흩뿌려주면 바로 사제의 직위가 턱하니 나오고 떼를 좀 쓰면 수행사제의 위도 얻을 수 있으니. 아, 물론 자네가 이해하기를 바라는게 아니야. 각자에게는 각자의 삶이 있는거니까.”


카림 주교의 목소리가 커진다. 눈이 야망으로 번뜩인다.


“이게 내 방식일세. 그리고 그리 큰 피해자도 없다네. 누가 크게 잘못되었는가? 칼란의 어미는 운이 좋지 않을 뿐이야. 아니, 오히려 운이 좋은 편이지. 자네를 만나지 못했다면 진작에 죽었을 걸 며칠 연명이라도 했으니. 자네는 충분히 했어.”


더 들어줄 필요도 없다. 이 이상은 술주정일 뿐이다. 나는 마차에서 내리기 위해 마차 밖을 보았다.


“카림 주교. 여기가 어디지?”


아랫마을이 아니다. 오히려 아랫마을의 정 반대편. 데려다 줄 생각이 없었던 것인가. 애초에 그를 믿은 내 잘못이었다. 너무나도 순진했던 나를 저주한다.


“하하. 방금 자네에게 수행사제의 위를 내리겠다는 서신이 왔네. 정식 절차가 필요하겠지만 어찌됐건 지금부터 수행사제라고 봐야하겠지.”


카림은 내 말을 무시하고 자신이 하고싶은 말만 하더니 이내 낄낄거리며 웃는다.


“딱 한번만 눈을 감아주게. 말했지만 자네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어. 이 곳에서는 자네의 선의만으로 해결되는 일은 없다네. 더 이상 이곳에 신경쓰지 말고 칼스타드로 가게. 대주교께 안부 전하는 것 잊지말고.”

“무슨···!”


순간 머리가 핑하고 돈다. 몸을 가눌수가 없다. 마차의 바닥에 얼굴로 다가온다. 아니, 내가 쓰러지는건가?


“혹여나해서 말하는 거지만 절대로 돌아올 생각은 말게. 그대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칼란 부제와 동생들은 신께 맹세코 잘 돌보도록 하겠네. 혹시 살아남는다면 그 어미까지.”


카림의 말이 윙윙 울린다. 그 술이었나. 아니, 술은 그도 마셨으니 잔에 독 같은 것이 묻어있었을 것이다. 나는 황급히 신성력을 끌어올린다. 하지만 몸처럼 신성력도 내 말을 듣지 않는다. 힘의 편린만이 내 몸 주위를 어루만질 뿐이었다.


“하지만 그대가 돌아온다면 칼란 부제가 어찌 될지는 그대의 상상에 맡기지. 잘 가게. 수행사제 유노.”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카림 주교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나는 정신을 잃었다.


-----


“안 돼!”

“어이구야!”


메스껍고 속이 울렁거린다. 눈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지만 손을 짚어 바닥으로 보이는 곳을 찾은 뒤 속에 든 걸 모두 토해냈다.


“우웨엑. 컥. 컥. 웩.”

“아이고 나리, 갑자기 이게 무슨 일입니까.”


누군가가 와서 등을 두드려준다. 이 사람이 누군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정신부터 차려야한다. 하늘이 빙빙 돌아서 내가 앉았는지 누워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신성력을 사용했다. 집중이 안되지만 최대한 빠르게 내 몸을 정화한다. 메스꺼움은 빠르게 사라졌지만 머릿속이 뿌옇게 느껴지는건 끈질기게 남아있다. 망할. 카림 이 자식. 약을 얼마나 쓴거야.


간신히 몸을 추스르자 내 앞에 사람이 서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등을 두드려줬던 걸 봐서는 내게 해코지를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여긴 어디고 당신은 누구지?”

“나리. 이제 좀 괜찮아지셨군요. 다행이네요. 방금 전에는 토하다가 돌아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고마운데 그래서 여긴 어디지?”

“여기요? 어디랄게 딱히 없습니다요. 나리께서 계셨던 카디즈에서 하루 거리 정도 떨어진 곳이지요.”


하루 거리? 황급히 하늘을 보았다. 해가 중천에 떠있다. 내가 카림 주교의 마차에 탔을 때가 낮이었으니··· 제기랄. 아마 쓰러지기 전에 신성력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며칠은 잠들어있었겠지만 그걸 가지고 기뻐할 상황이 아니다. 한 시가 급하다. 당장 달려가서 젤라를 치료해야한다. 분명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것이다.


“나으리. 수레에 다시 오르시죠. 칼스타드로 가려면 길이 멉니다.”

“칼스타드로는 가지 않는다.”


정신이 맑아지는 만큼 신성력의 회전이 빨라지면서 몸을 회복시킨다. 내가 카디즈로 돌아오면 칼란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카림은 내게 협박을 했었다. 그러나 칼란은 모든걸 감당한다고 나에게 말했었지. 그렇다면 칼란이 어찌되건 신경쓰지 않겠다. 카림에게 이렇게 당하고 그냥 떠난다는건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한다.


“돌아가지. 아, 그래서 당신이 누구라고?”

“돈만 주면 어디든지 간다! 태양물류의 직원입니다. 저는 그저 돈을 받고 나리를 칼스타드로 데려다주고 있었을 뿐입니다요. 그런데 여기서 돌아가면 계약이··· 손해가··· 어휴···”


능청을 떠는 사내. 나는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다행히 카림 주교가 넣었는지 약간의 돈과 내 앞의 편지가 나왔다. 편지는 바로 박박 찢어버린 뒤 돈을 모두 그에게 건냈다.


“카디즈로. 최대한 빨리.”


작가의말

좋은 주말 되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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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유노, 발을 담그다 (2) 24.09.11 19 0 12쪽
8 유노, 발을 담그다 (1) 24.09.10 28 0 11쪽
7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5) 24.09.09 24 0 12쪽
6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4) 24.09.07 24 0 12쪽
5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3) 24.09.06 24 0 12쪽
4 유노, 전염병을 마주하다 (2) 24.09.05 2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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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은호, 유노가 되다 (2) 24.09.04 28 0 12쪽
1 은호, 유노가 되다 (1) 24.09.03 4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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