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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로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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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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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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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오랜 친구에게

DUMMY

브란트의 수하들이 술집 앞에 널찍한 공간을 빙 에워싸고 있었다.

나와 브란트는 그 한복판에서 대치했다.

브란트의 어깨너머로 팔짱 낀 채 머리카락을 배배 꼬는 넬라가 보였다. 내 뒤편은 이리저리 가엾은 처지가 된 형제가 나란히 차지했다.

칼을 어깨에 걸친 브란트가 씩 웃더니, 제 왼쪽 귓불을 톡톡 건드렸다.


“나도 너처럼 은색 외이환을 자랑스레 차고 다닐 때가 있었지. 돌이켜보면 무서울 게 없던 시절이었다. 제국제일검도 조만간 거머쥘 것 같았거든.”


스릉.


나는 대답 대신 검을 뽑았다. 대꾸할 가치가 없었기 때문인데, 이번엔 브란트가 나를 삿대질하며 말했다.


“그래, 그런 패기 말이다. 나한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말씀이야.”

“나불나불⋯ 뭐, 어쩌라고 인마.”

“낄낄. 안타깝다고. 미리 예절 교육을 받았더라면, 이런 사달은 나지 않았을 거 아니냐. 차라리 운이 좋다고 생각해라. 만용이 길어지면 보기 추해진다.”


타- 앗!


더는 들어주기 역했다. 지면을 박차며 단숨에 간격을 좁혔다.


키잉!


내 검이 허공을 갈랐다. 브란트는 제법 노련하게 대처했다. 응수로 막아서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찰나에 판단하고 회피한 것이다.


“⋯⋯!”


브란트가 경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유는 두 가지일 터.

첫째, 방금 참격의 위력이 본인 예상을 한참 벗어나서. 둘째, 회피 후 반격할 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격의 차이다.”


내가 입꼬리를 당기며 말했다.

브란트의 낯빛이 점점 창백해지고 있었다. 이것도 그나마 놈이 일류 경지라 상황 파악이 가능한 거다. 둘러싼 용병 놈들은 저들 우두머리가 왜 헛질 한방에 주눅이 든 건지 이해를 못 하고 어리둥절한 상태였으니까.


“어, 어떻게⋯ 뭐, 뭐냐, 너⋯!”

“야, 방금 내가 운이 좋다고 그랬지? 내가 볼 땐⋯ 너는 너무 운이 없는 것 같아.”


실로 그랬다.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기 전엔, 목숨을 거두기보다 놈의 발목 정도만 잘라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죽기 전에 수하들에게 유언이나 똑바로 전달해놔라.”


말은 금방 끝낼 것처럼 했지만, 나는 브란트를 최대한 괴롭히다가 죽일 작정이다.

가학적 성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귀안이라 이름 붙인 새 왼쪽 눈의 실전 적응을 위해서다.


‘거리감.’


일상 생활에서 인지하는 거리감과 생사가 오가는 실전에서의 거리감은 밀도의 차이라고 치부하기도 힘든 어마어마한 간극이 존재한다. 단어만 같을 뿐, 아예 다른 개념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척.


감았던 왼쪽 눈, 귀안을 치켜떴다.

삼십 가까이 외눈 칼잡이로 살았다.

지금 나는 재활 훈련 따위를 치르는 게 아니다. 목검을 버리고 처음으로 진검을 손에 쥐었을 때를 떠올리자, 카발.


‘모든 감각을 활짝 열어라.’


이 두 눈에 완벽히 적응해야만 다음 성취를 노릴 수 있다.


채앵!


내가 사선으로 내리친 검을 브란트가 막았다. 귀안을 얻은 후 사실상 처음으로 살의를 담아 내질러 본 일격이었다. 반향처럼 울리는 떨림이 기분 좋게 느껴진다.


휙.


칼자루를 왼쪽 옆구리까지 힘껏 당겼다가 수평으로 뻗고.


채앵!


반동으로 올라간 칼날을 내리치고.


카- 앙!


재차 튕겨 나온 위치에서 비틀지 않고 곧바로 찔렀다.


푹!


“커⋯⋯ 헙.”


투두둑.


브란트의 양 뺨이 부풀더니 그대로 피가 쏟아졌다.

고작 세 합이라니.


“겨우 일류 초입 정도로 기고만장했던 거냐? 나 참.”

“너⋯ 는⋯”

“내세엔 부디 주제 파악을 하길 바란다.”


촤악!


검을 뽑자, 브란트의 몸뚱이가 지면에 처박히듯 고꾸라졌다.


쿵.


나는 손목만 비틀어서 검날의 핏물을 털어낸 뒤에 납검했다.

별안간 주위가 조용해져서 보니, 둘러싼 용병 놈들이 죄다 창백한 얼굴로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브란트 부단장님이⋯ 다, 당하다니⋯”

“마, 말도 안 돼. 어, 어떻게⋯”


이놈들을 어떻게 다그쳐야 할 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대뜸 넬라가 용병들을 향해 소리쳤다.


“뭐, 뭐해, 이 새끼들아! 다들 좆되고 싶어? 저 새끼 죽여! 죽이라니까? 애새끼 하나 가지고 쫄고 지랄들이야!”


삽시간에 저 미친년의 선동이 먹히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이놈들을 전부 상대한다는 건 계획에 없었다.

내가 눈알을 좌우로 굴리며 신중히 놈들을 살피고 있을 때⋯

이번엔 용병들의 방진 밖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 무기를 버리고 얌전히 투항하라!”


무장한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투구를 눌러쓴 그들이 장창을 겨누며 용병들을 천천히 조였다.


‘영지병들이군.’


두리번거리던 용병들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무기를 버리고 미련없이 무릎을 꿇는 용병들이 하나둘씩 속출했다.

그제야 나도 맥이 풀렸다.


‘휴.’


소심하게 저항하는 용병들이 퍼붓는 욕지거리가 사방에서 들려오는 가운데, 그야말로 광녀에 빙의한 넬라의 발악은 압권이었다.

어쨌든 시기적절하게 등장한 영지병들 덕분에 사건은 일단락됐다.


“카발 벤코우.”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데졸이었다. 영지병들을 숨겨놨다가 깜짝 등장하게끔 기지를 발휘한 인물이 바로 이 친구일 터.

제국 관례에 따라 그에게 적당히 고개를 숙이는 걸로 예를 취했는데, 그 역시 내게 정수리를 내보였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요.”


아무리 배다른 형제라지만, 어쩜 이리 분위기가 천양지차란 말인가.

데졸과 데졸의 뒤쪽에 여태 넋이 나간 얼굴로 주저앉아 있는 덜떨어진 친구 놈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


한 거에 비해 받은 대접이 지나치게 과분했다.

브리언 영지의 가장 호화로운 여관에서 얼마든지 마음껏 머무를 수 있는 혜택을 받았다.

이래 봬도 브리언은 제국 서부의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관광 도시다. 이곳에서 근사한 휴양을 즐기는 게 일생일대의 꿈인 사람들이 제국에는 수두룩하다.


다음날 아침.

조식이 준비됐다고 해서 홀로 내려갔다.


팅.


식기들마저도 쓰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화려한 호사품이었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그릇에서는 나이프가 닿을 때마다 영롱한 소리가 났다.


‘헤르만 놈. 이런 호사를 마다하고 가출을 해?’


분명 기억에는 아버지 후계가 정해지기도 전에 저택을 나왔다고 했다.


‘넬라 사건을 포함해서 헤르만이 가문을 나온 사연에 관해선 깊게 아는 바가 없어.’


그 말 많은 수다쟁이 놈이 정작 자기 과거는 좀처럼 말을 아꼈으니,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해서 캐묻지 않았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된 마당에 드러난 정황들을 가지고 내 생각대로 헤르만의 사연을 재구성해봤다.


‘전생에는 이 사건이 녀석의 트라우마가 됐겠군.’


그 이상은 굳이 더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의 헤르만 브리언은 진실을 알았고, 제 동생에게 오해도 풀린 상태다.


‘이거면 됐지, 뭐.’


나는 고기 조각을 입에 넣고 무심히 턱을 우물거렸다. 널따란 홀에는 나 혼자였다. 안으로 들어온 햇살이 대리석 탁자 표면에 닿아 눈부시게 부서지는 광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저벅, 저벅.


복도 끄트머리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가오는 사람들을 확인하고 식기들을 한쪽으로 정리했다.


“카발 벤코우. 간밤은 평안하셨습니까.”

“예. 뭐, 덕분에.”

“다행입니다.”


그리 말한 데졸이 내 맞은편에 앉았다. 대동한 사용인들이 멀찌감치 떨어진 걸 확인하곤 그가 입을 열었다.


“어제는 경황이 없어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솔직히 놀랐습니다. 제가 검술엔 문외한이라 잘은 모르지만, 브란트는 일류 검사라 하여 그 경지가 대단히 드높다고 들었습니다. 일대엔 당해낼 자도 없을뿐더러, 영지병 열댓 명은 홀로 상대할 수 있을 정도라고요.”

“등위를 조금 더 세분화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겠지만, 얼추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대체 얼마나 강한 겁니까?”


데졸의 눈빛이 순수한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내가 은근슬쩍 시선을 회피하자, 데졸은 자기가 실례했다고 생각한건지 고개를 꾸벅였다.

데졸이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은 뒤 말했다.


“넬라는 영내 지하 감옥에 구금했습니다. 붉은개 용병들은 적당히 타협을 봐서 영지 밖으로 추방할 예정이고요.”

“하룻밤 만에 일사천리군요. 괜찮습니까? 넬라는 영주님과 관계가 있는 여잔데.”

“아버지가 병상에 앓아누우신 지 꽤 됐습니다. 사실상 제가 섭정 노릇을 하고 있죠. 회복을 마치셨을 즈음엔 모든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을 겁니다.”


말을 마친 데졸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표정이었다. 다소 유약해 보였던 첫인상은 온데간데없고 전형적인 냉철한 고위 귀족의 면모를 풍기고 있었다.


“다행히 헤르만 형님은 기운을 차리셨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는 걸 보고 나왔거든요.”

“녀석이야 큰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워낙 산만한 놈이라 다른 데 몰두할 게 생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잊을 거라서요.”


입에 잔을 가져가던 데졸이 슬며시 눈을 치켜떴다.


“형님과 친분이 깊으신 모양입니다. 제가 당신을 모르고 있었다는 게 의아하군요.”

“아, 뭐⋯ 그게⋯”

“당황하실 필요 없습니다. 방금 발언은 그냥 잊어주시죠. 아무리 혈육이라도 사적인 부분까지 관여하는 건 실례니까요.”


잔을 도로 내려놓은 데졸이 피식거렸다. 어쩐지 웃는 모습이 어색해 보였다.


“제가 생각해도 우스워서요. 이번 일도 결국 가족의 추문을 들춰내다가 이 꼴이 난 건데 말이죠.”

“⋯⋯.”

“⋯저는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압니다. 조용히 처리하고 싶어서 용병 쪽에 손을 댄 것도, 최후의 최후까지 영지병들은 동원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도요.”


데졸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출렁였다. 잔을 붙든 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그래 봐야 뭐하겠습니까. 결국 결과는 이렇게 되고 말았는데요. 이제 브리언 영지민들은 아버지와 형님의 가십을 뒤에서 물고 뜯으며 수군덕거리겠죠. 이런 생각마저 했습니다. 그냥 나서지 말고 잠자코 있을걸, 차라리 그냥 모른 척하고 있을걸⋯ 하고요. 그랬다면 적어도 가족들이 추악한 불명예로 시달리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요.”

“죽는 것보단 훨씬 낫죠.”


나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말했다. 데졸의 시선이 느껴졌다.

원래 나란 인간은⋯ 말을 오밀조밀 조리 있게 뱉는 요령이 없다. 적당히 정제하는 정도가 최선이다.


“살아서 기회가 생겼잖아요. 저라면 그것만으로 감사하며 남은 생을 미친 듯이 살 겁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지금 이렇게 푸념을 늘어놓던 시간조차 아쉬워지는 날이 오겠죠.”

“⋯⋯.”

“뭐,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처한 상황인지라 진심으로 술술 내뱉을 수 있었다.

데졸이 작게 웃음소리를 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카발 벤코우. 검술만 뛰어나신 줄 알았는데 달변가셨군요.”

“태어나서 처음 듣는 말입니다.”

“원래 적성이란 게 진흙 속에 묻힌 진주와도 같죠. 평생 자기 적성을 모르고 사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아무튼 도움이 되었다면.”

“예. 무사수행 중이시라고요. 보상은 넉넉히 치르겠습니다.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왕국으로 가는 마당에 제국 통용 주화가 무슨 보탬이 될까.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그런 걸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에요.”

“은혜를 받았으면 반드시 보답하는 것이 우리 가문의 신조입니다. 무사 가문의 계율과 비슷하죠. 게다가 근본이 상인 집안인지라 셈은 정확히 치러야 뒤탈이 없다는 미신을 철석같이 믿기도 하고요.”

“⋯정 그러면 저 말고 우리 가문에 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데졸이 눈썹을 추어올렸다. 감정이 도통 얼굴에 드러나지 않는 사람인지라 사소한 변화도 눈에 쉽게 띄었다.


“벤코우 가문과 연을 틀 좋은 기회가 되겠군요. 이제 보니 카발 씨는 탁월한 거래 감각까지 갖추신 분이셨습니다.”


데졸이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헤르만이 나를 찾아온 건, 다음 날 정오였다.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사내가 나다.”


딱히 못난 면상도 아닌데 보면 일단 웃음부터 나오는 희한한 녀석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이유가 있었다. 전생에 죽어가면서도 유부녀와 한 약속을 못 지켰다며 구시렁거리던 꼴이 떠올라서였다.


항구는 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우리 둘 다 고삐를 천천히 당기고 있었다.

한동안 말이 없다가 녀석이 물었다.


“왕국에는 미녀가 많겠지?”

“제국보다는.”

“하긴. 거긴 땅덩이도 넓으니까. 한데, 넌 그걸 어찌 아느냐. 일전에 가본 적이 있나?”

“⋯아니.”


우린 항구 어귀에 다다라서 말을 세웠다. 녀석을 따라 골목을 걷다 보니 그늘이 드리운 으슥한 곳에서 한 중년인이 우릴 맞이했다.


“아, 공자님. 오셨군요. 이분입니까?”

“카발 벤코우요.”


내가 먼저 소개를 했다. 중년인이 자기 이름과 하는 일을 주절주절 밝혔는데, 딱히 귀담아듣지는 않았다.


“마침 항해 기일이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운이 좋았죠. 핫핫.”


이때, 헤르만이 품에서 두둑한 꾸러미를 꺼내더니 중년인에게 건넸다. 중년인이 헤벌쭉 웃으며 우릴 안내했다.

부두에는 거대한 범선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었다.

중년인이 정중앙의 배를 가리키며 낮게 속닥거렸다.


“제국 해군에는 남해를 거쳐 동부 솔즈베리 항으로 가는 배로 신고되어있죠. 실제로는 남해로 가다가 서쪽으로 항로를 변경합니다. 솔즈베리에는 우리 쪽 사람들이 알아서 수속을 위조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 그럼 이쪽으로⋯”


곧바로 중년인을 따라가지 않고 헤르만을 쳐다봤다.


“간다.”

“그래.”


돌아서서 몇 발짝 안 갔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 잠깐만!”

“⋯?”

“내 정신 좀 봐라. 준다고 챙겨왔는데 깜빡할 뻔했다.”


녀석이 건넨 건 고급 재질로 양장 된 책이었다.


‘엘더우드의 기사⋯?’


제목을 훑어본 뒤 고개를 들었다. 헤르만이 거드럭거리는 자세로 코웃음까지 쳤다.


“내 말 하지 않았나. 들어본 적 있는 것 같다고. 기사도 말이다. 그거, 왕국의 기사도 문학 번역본이다.”


기사도 문학? 무슨 말인지 몰라서 고개를 기울였다. 설명을 바라는 식으로 쳐다봤는데, 녀석은 해맑게 웃을 뿐이었다.


“아아, 물론 읽어보진 않아서 내용은 나도 모른다.”


⋯뭐, 가는 동안 눈요깃거리로 적당하겠네.

책을 집어넣고 곧장 돌아섰다. 닭살 돋게 작별 인사 같은 걸 주고받고 싶진 않았다.

몇 발짝 걷다가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서 돌아섰다.


“너 말이다.”

“왜, 뭐. 할 말 있나?”


나는 깨문 입술을 튕기듯 놓았다.


“가주는 그냥 일찌감치 포기해라.”

“뭐라고?”

“너는⋯ 아니야. 이제 보니 애초에 될 운명이 아니었어.”

“이런 미친놈이.”

“대신 너, 은근히 재능있다. 검술.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봐라. 적성은 빨리 찾을수록 좋다.”


곧장 홱 돌아섰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잰걸음으로 달아나기로 했다. 뒤에서 쏟아지는 욕지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가운데⋯

정작 중요한 말을 빼먹었다는 걸 깨달았다.


“유부녀는 절대 가까이하면 안 된다!”


그렇게 외치며 손을 흔들어줬다.

뭐, 이 정도면 됐겠지. 나도 충분히 해줄 만큼 해줬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친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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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검의 길은 무덤까지 이어진다 24.09.05 158 4 12쪽
2 검의 길은 무덤까지 이어진다 24.09.04 160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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