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소 탈출 천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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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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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5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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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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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4화_여우 짓?

DUMMY

**


“조금 쉬었다가 가실까요?”


이게 회의구나.

진이 다 빠진다.

좆 오브 좆에서는 주먹구구식으로 ‘야, 너 00해.’ 이런 식이라서 회의가 힘들지 않았는데.

역시 대기업이라서 그런가 디테일이 다르네.

특히 김구준 대표의 회의 참여도가 특별한 경험이었다.


내가 있던 회사의 사장과 대가리들과는 다르게 적극적이었다.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이런 장면에서는 일본의 만화와 비슷한 분위기가 나서 표절 시비에 걸릴 수 있다면서 의견을 냈다.

생각했던 것보다 서브 컬처 지식이 많아서 놀랄 따름이었다.


“작가님?”

“아.”


회의실에 석장미 대표와 둘 뿐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이게 대기업의 회의인가 싶어서요.”

“아.”

“제가 있던 곳은 주먹구구식에 가 족 같은 회사여서 진짜 눈치 싸움이거든요.”

“크크.”


커피잔을 든 석장미 대표가 고개를 저었다.


“어디나 눈치 싸움은 마찬가지일 거예요. 다만, 형태가 조금 더 세련됐다뿐이지. 작가님이 경험한 일들과 많이 다르지 않아요.”

“아.”

“그런데 작가님.”

“네.”

“그림 작가들 포트폴리오를 한참이나 보고 계시던데, 마음에 드는 분이 없으셨나 봐요?”

“네.”


돌려 말하지 않았다.

사적인 자리에서나 돌려 말하면서 그 사람 기분을 살피는 것이 예의겠지만, 지금은 회의 중이었다.

빠른 결론을 내야 하는 자리에서 돌려 말하다가 곡해하고 착각을 일으키면 그것대로 시간 낭비고.

만약 내가 ‘지양’하는 바를 ‘지향’한다고 오해해 버려서 지양하는 쪽으로 결정이 나면 참 곤란하다.


조금 씁쓸한 이야기지만, 이전 회사에서 돌려 말하다가 골드 미스 총무부장이랑 커플이 될 뻔했었다.

······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네.

그때 내 나이가 스물일곱이었다.

신입이라고 아무것도 모르다가 눈탱이 제대로 맞을 뻔했었지.

그때 꿈에서 웬 흰소복을 입은 할머니가 나와서 나가지 말라며 도리깨로 머리를 깨는 통에, 안 나가서 총무부장의 관심을 돌릴 수 있었다.

관심을 돌릴 수 있었는데···. 한동안 지랄 맞은 부장들의 괴롭힘 때문에 힘들었었다.


나 때문에 결혼을 못 했니 어쩌니 하면서.

미친 시발.

아휴! 그때만 생각하면.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계좌 잔고를 떠올렸다.

진짜 몇 년을 개처럼 숨만 쉬고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 아직도 남아 있다.

1억 몇천 이긴 하지만, 그래도 순수 1억을 모으려면 얼마나 아끼고 아껴야 하나.

임금이 높은 곳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 7년은 적금을 부어야 하지 않을까?

월급 212만 원.

아찔하네. 진짜.

예전에 일요일에 한 번씩 이사 알바가 있으면 갔었는데, 그때 팀장 형님이 그랬었다.

그냥 이사로 넘어오라고 용달도 몰 줄 아니까. 달에 4~500만 원은 금방 번다고.

하지만 도전할 욕심이 선뜻 나지 않았다.

전에도 말했지만, 노예근성이 뿌리내려서 그냥 주는 돈 따박따박 받는 것이 좋았다.


“당장 오늘 그림 작가를 안 정해도 되니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돼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외모 품평은 아니지만, 석장미 대표는 잡지에서 나오는 모델처럼 옷을 입는다.

게다가 골드 미스 총무부장은 내 입술을 탐하려고 달려들었었지만, 석장미 대표는 깔끔한 사람이었다.

물론 상황이 다르지만, 같이 일하는 입장에서 사적인 감정은 배제하는 것이 좋으니까.


“그런데 작가님.”

“네.”

“어땠어요?”

“어떤?”


이 사람 왜 눈동자가 반짝거리는 거지?

나를 좋아하나? 이런 오해가 아니다.

광기가 살짝 흘러나오는 기분이 들어서다.


“아까 제가 은영기 1권 각색한 내용 말이에요.”


아, 평가를 받고 싶은 모양이네.

나는 먼저 엄지를 치켜들었다.

너튜브에서 뭐만 하면 엄지를 들고 브이 하면 아저씨라고 했는데.

이러지 않으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라서···.

쯧.


“좋았습니다. 몇몇 장면에서 디테일을 살리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전반적으로 너무 좋아서 지금 대표님이 안 물어보셨다면 각색 스케치를 전문으로 하는 직원이 맡아서 했다고 믿을 정도였어요.”

“진짜요!”


-팡팡


음, 그래.

이 정도는 인정이지.

내 여사친 중에서도 웃으면 사람 때리는 애가 이해했다.

물론 고치라면서 충고는 했지만, 사람이 자기가 겪기 전까지 잘못했는지 모른다고.

한 번은 동창회 자리에서 그랬다가 고백을 받아서 울었던 적이 있었다.


“크크.”

“응? 작가님?”

“아, 죄송합니다. 전에 있었던 일이 기억나서요.”

“전에 있었던 일요?”

“여사친 중에서 대표님처럼 웃으면 옆에 사람 때리는 애가 있는데.”


석장미 대표를 봤다.

TMI라서 듣기 싫을 수도 있지 않나.


“그래서요?”


눈동자가 반짝였다.

말해도 되겠지.

혼자 작업하다 보니까. 말할 기회가 생기면 막, 말하고 싶어서 근질거렸다.

진짜 내가 어렸을 때, 동네 평상에서 아줌마들이 쉬지도 않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서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을까 싶었는데.

지금 내가 딱 그런 꼴이라고 생각하니까.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졌다.

쯧.

아무튼!


“동창회 때 제가 옆에 안 앉고 다른 애가 앉았었는데, 걔 때렸다가 고백 공격받아서 엉엉 울었거든요.”

“······!”

“아, 제가 고백 공격했다는 게 아니라.”


갑자기 분위기가 변했다.


“저기 대표님?”

“아···. 여기가 좀 덥죠? 제가 나가서 마실 거 좀 가져올게요!”

“같이 가시죠.”

“아, 아뇨! 작가님 피곤하시게! 제가 케어해드린다고 했잖아요!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어···. 네.”


석장미 대표가 자리를 박차고 회의실을 튀어나갔다.


뭐지?

지금 오해하는 거 아니지?


**


회의실을 나온 석장미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탕비실에 음료수가 있겠지만, 남의 회사까지 와서 탕비실을 축 내는 대표로 보이기 싫었다.

그리고.


아···. 진짜 큰일 날 뻔했네···.


석장미는 손으로 부채질했다.


야, 석장미. 팬심이랑 헷갈리지 말라고!


승찬을 오해해서가 아니었다.

자신 때문이었다.

승찬이 지적해주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웃으면서 승찬을 때렸다는 것을 몰랐으니까.


나한테 이런 버릇이 있었나?


엘리베이터에 탄 석장미는 기억을 더듬었다.

한 층, 한 층을 내려가면서 이전으로 돌아갔다.

대학교,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이렇게 무방비하게 웃어본 적이 없었다.

선머슴처럼 웃은 기억은 있어도 여우처럼 행동한 기억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지. 작가님이 말해주셔서 인지했잖아?

흠···.


석장미가 스마트폰을 켰다.

전화부를 열었다.

리스트 옆에는 400명이라고 적혔지만, 친구 목록에는 하나뿐이었다.

‘★’기호가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 신호음이 가고 나서 전화가 걸렸다.


“여보세요.”

-왜~

“바빠?”

-지금 외주 밀려서 죽겠다. 나 살려주라. 장미야.


중저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지배. 아주 돈을 쓸어 담으려고?”

-쓸어 담기는 기술 노동자인 내가 너만 할까?

“치.”

-치는 무슨. 약한 척하지 말고 무슨 일 때문에 연락했어. 별일 아니면 끊고. 나 바쁘다.

“아, 야야!”

-응.

“나 있잖아. 예전에도 그랬었어?”

-뭘?

“웃으면 옆에 사람 막 때리고 하는 거.”

-어.


석장미는 소름이 돋았다.

자신 안의 여우가 있었는데, 이제껏 몰랐다니.

혼돈의 카오스였다.


“지, 진짜?”

-크크크. 까마귀 고기를 자셨나. 왜 그러는데? 기억 안 나냐? 껄껄 웃다가 선머슴이라고 놀려서 남자애 때려서 기절시킨 거.

“······”

-크크크. 이제 생각났나 보네.

“그, 그거뿐이지?”

-뭐야? 너 무슨 일 있는 거냐? 웃다가 사람 팼어?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응.

“내가 여우 짓을 했나 봐.”

-여우 짓? 여, 엽때여~ 시발 수신이 잘 안 되는데요~ 이 미친 사람아. 누가 그래? 여우 짓? 여우 사냥하는 사냥꾼이 아니고?

“응?”

-어떻게 했는데?


석장미의 친구가 어처구니없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웃으면서 가볍게 옆 사람 어깨나 팔 때리는 거 있잖아.”

-와.

“이번에 계약한 작가님한테 내가 계속 그랬나 봐···. 다행인 건 그 작가님이 여사친 중에 비슷한 사람이 있어서 오해는 안 한다는데, 조심하라고 하더라고.”

-응? 크크크.


수화 부분 너머에서 코를 먹는 수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야아~ 나 지금 무지 심각하거든?”

-우리 선머슴한테 평강 공주가 찾아왔나 보네.

“평강 공주?”

-그 작가 말이야.

“그 작가님 남잔데?”

-네가 선머슴 같은데, 반대는 공주님 아니겠냐?

“야!”


───띵!


석장미가 소리를 지르는 순간 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서 있었다.

시선을 바닥으로 내린 석장미가 황급히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크크크. 엘베 앞에 사람들 있더냐?

“아아.”

-아아는 지랄. 커피 마시고 정신 차려.

“안 그래도 사러 가는 중이었거든?”

-근데 장미야.

“응.”

-이번에 너희랑 계약한 작가 누구냐?

“아, 이번에 남성향이야.”

-아아. 그래.

“왜?”

-요즘 여성향 쪽이 많이 시끄러워서 괜찮나 했지.

“그래서 남성향으로 런하려고 물색하던 중에 이번 작가님을 만나게 됐지.”


석장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어딘가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누구길래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지?

“은영기 알아?”

-은영기? 줄임말로 하면 내가 어찌···. 아네? 은퇴한 영웅은 기둥서방. 그거?

“응! 대박이지? 처음 봤을 때 이거다 싶어서 10화 전에 후원 공세 퍼부었거든.”

-헐···. 얼마나?

“500만 원 정도.”

-이야. 역시 장사꾼 집안은 다르긴 다르네.

“뭐가?”

-오백으로 그 작품 계약했으면 완전히 남는 장사지.


석장미의 친구는 일러스트레이터였다.

특히 웹소설 표지를 주업으로 삼는 작가였는데, 웹소설 시장은 남성향, 여성향 할 가릴 것 없이 돌아가는 상황을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번에 유료 전환하는 거 봤는데, 대박이던데.

“그렇지. 쩜오라도 계약에 넣을 걸 하고 후회 중이긴 해.”

-쩜오? 그럼 그 작가 눈피아 파이는 다 먹는 거야? 플랫폼 수수료 빼고?

“그렇지.”

-와···. 미쳤다. 진짜 작품 하나에 인생이 180도 달라졌네. 당장 뇌절 쳐도 다른 작가들 몇 년 수익은 거뜬하겠더만.

“진짜 다행인 점은 작가님이 작업 속도가 빨라서.”

-연참하시겠다고?

“응. 오늘 웹툰 미팅 있어서 왔는데, 눈치를 보니까. 회의 내용 픽스되면 빠르게 연재하실 생각인가 봐.”

-그럼 100화까지 금방이겠네.

“그치. 그 뒤가 이제 우리도 노나 먹으니까.”

-부럽다. 이뇬아!

“야, 부럽기는 우리가 얼마나 영업 다니는데.”

-그 작가 성적이면 영업 안 뛰어도 되겠구만.

“그전에 영업 뛰어서 배너 자리 받아놓은 거 있다고.”

-아아. 난 또 뭔 소리인가 했네.

“당연히 우리 작가님 성적이면 트릴로지, 캐캐페 배너 다 뚫어버리지!”

-크크. 우리 작가님이란다.

“그럼 느그 작가님이냐!”

-아니아니. 우리라는 워딩이 조금 마음이 있는 느낌이 들어서.

“야! 아니거든!”


치,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러네.

번뇌 작가님이라는 거 알면 바로 달려올 애가.


-아무튼, 외부 유통 풀리면 바로 흑자 전환하겠네. 크크.

“그랬으면 좋겠다~”

-아, 지금 웹툰 미팅 왔다고 했지.

“응.”

-혹시 그림 작가 리스트에 걔 있었어?

“누구?”

-미리내라고.

“음.”


석장미가 기억을 더듬었다.


-걔 있으면 꼭 잡아. 스킬이나 체력이 좋아서 은영기 같은 판타지에 특화된 애니까.

“그렇게 좋은 작가면 이미 작품 하는 거 아냐?”

-음, 단점이 명확해서.

“뭔데?”

-사람이랑 잘 못 어울려.

“아.”


석장미가 안타까움에 탄식할 때.

그녀의 옆으로 후디를 뒤집어쓴 작은 체구의 사람이 지나갔다.


“일단 알겠어. 나는 올라가기 전에 작가님 드시게 빵도 좀 사서 가야겠으니까.”

-어어. 고생하고. 나중에 한 번 다리 좀 놔주라.

“무슨?”

-번민 작가.

“꺼져.”

-아유, 미친년.


석장미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카페 점원에게 조각 케이크를 주문했다.


작가님은 어떤 케이크를 좋아하시려나?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풍성한 추석 하루가 되셨으면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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