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을 꿰뚫는 총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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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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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6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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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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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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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

DUMMY

우리 집은 대대로 주점을 운영하고 있어 마을의 여러 소문이나 외지인들의 소식을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외지인이 오는 일이 많지 않지만, 오늘은 행상인들이 들러 주점이 북적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부모님을 도와 음식과 술잔을 나르며 상인과 아버지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 소식 들었나?”

“하하, 구석진 곳이라 제국 소식에 그렇게 밝지 않아서. 무슨 일 있었나요?”

“선라이즈라고 알고 있지?”

“상인 연합 아닙니까?”


오늘도 저 행상인이 허풍이나 늘어놓지 않을까 싶었는데,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맞지. 얼마 전에 상인 연합에서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마법사들에게 선전포고했어.”

“네? 그게 무슨···. 아무리 그래도 마법사에게 통할 리가 없잖습니까.”

“가능해. 이미 승리하고 테발란을 점령했어.”

“그, 그게 가능한 겁니까? 테발란이 상업 도시라 사실상 상인 연합의 본거지이긴 해도··· 그 도시엔 마법사도 상당히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마법사와 일반인의 싸움이라니.

마나를 다룰 수 없는 우리가 마법사와 싸우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제아무리 병기를 수련한 인간 백 명이 있다고 해도 마법사 한 명에게 당해낼 수는 없다.


“마법사가 제국을 지배하고 천 년도 넘는 시간이 흘렀지. 마법이 없다고 우리가 열등한 건 아니야. 인간은 항상 기술과 정보를 가지고 발전한다고.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릴 거야.”

“이야기로만 들으니 와닿지 않네요···.”


아버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런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 무기 이름이 뭐예요?”

“아들. 어른들 얘기하는 데에 갑자기 끼어드는 거 아니야. 얼른 들고 있는 그 음식이나 드려.”

“여기서 시킨 음식이에요.”

“그랬구나. 얼른 식탁에 놓고 돌아가라.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라.”

“아냐, 아냐. 괜찮아. 자네 아들이었나? 생긴 게 자네를 아주 쏙 빼닮았군.”


얘기하는 두 사람 사이로 불쑥 끼어는 나를 나무랐다.

잠시 놀란 기색을 내보였던 행상인이 나서서 분위기를 풀어줬다.

상인으로 살아오며 익힌 것인지, 그는 내 눈빛을 얼추 읽은 모양이다.


“이 얘기에 관심이 많은 것 같구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너도 제국의 체계가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겠지.”

“···네. 그래서 궁금해요. 그 무기라는 게 뭔지.”


분명 처음 맞이하는 익숙할 수 없는 하루인데, 어딘지 모르게 이 광경, 그의 대화가 익숙했다.

그가 말하는 무기라는 게 무엇인지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호기심이 많군. 좋은 눈이야. 나도 어렸을 때는 자주 그런 눈을 했었지.”

“···.”

“그래, 긴말 말고 본론이 듣고 싶은 모양이군. 아마 곧 다 알게 되겠지만, 그 무기는 총이라고 부른단다. 검이나 활 같은 무기로는 전혀 따라올 수 없는 화력을 지녔지.”

“총···.”


총이라는 무기.

원통형 금속 막대 안에 화약과 총알을 다져 넣고, 심지에 불을 붙여 화약과 불이 닿으면 빠른 속도로 총알을 발사하는 장치다.


왜 이런 무기의 이름이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언젠가 보고 들은 적이 있다.


“왜 내가 저걸 알고 있는 거지? 그리고··· 안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아.”



테발란에서 일어난 상인 연합의 전투는 빠르게 제국 전체로 퍼져나갔다.

기세를 이어 상인들은 총을 필두로 수도로 진격했다.


마법사와 마법사가 아닌 자.

마법사가 한 명이라고 할 때 아닌 자가 천 명이라 할 정도로 인구수는 차이가 났다.

마법이라는 무기는 그런 차이를 무시하고 권력을 독점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다.


이런 사회의 근간을 뒤집는 상인 연합 테발란 혁명의 물결은 빠르게 카시오스 마을까지 찾아왔다.


“마법사는 나와서 투항하라!”

“안 돼, 이 상인 놈들아! 모나카 님은 건들지 말라고!”

“이거 놔! 마법사는 없어져야 한다고.”


영주 모나카의 저택 앞.

상인 연합에서 파견한 인화 부대가 총을 들고 찾아왔다.

모나카 님을 잡아가려고 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군인들을 막아섰다.


“왜 우리를 방해하는 겁니까! 우린 같은 사람들 아니오?”

“같은 사람이지. 그리고 저 저택에 있는 분도 우리와 같은 사람일 뿐이야. 한 번도 우리를 수탈한 적이 없다고!”

“그런 건 제 알 바가 아닙니다. 확실한 건, 마법 제국의 권력자 놈들은 다 죽여야 한다는 사실 뿐이야. 그러니 저리 비켜!”

“이익···! 다들 막아!”


상인 연합의 부대는 우리의 얘기를 제대로 믿어주지 않았다.

연합에 합류한 평민들은 대부분 마법사에게 복수심과 악의를 품은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를 마법으로 세뇌된 사람처럼 취급할 뿐이었다.


“칫···. 이 악랄한 마법사 자식들. 오늘은 이렇게 물러나지만 내일은 다를 거요. 이미 조종당하고 있다면··· 우리도 더 이상 가볍게 넘어갈 수는 없다고요.”

“조종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왜 다 우리의 말을 믿지 않는 거야!”


같은 제국에 사는 사람이었지만, 카시오스 마을과 도시 사람들의 생각은 절대 통할 수 없었다.


영주 카시스 모나카.

그녀의 가문은 대대로 이 마을을 다스리며 평민과의 차별을 엄격하게 금지해 왔다.

덕분에 마법사에 대한 적대심이 없었다.


상인들의 부대가 물러간 뒤, 모나카 님이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다들··· 고맙고 죄송해요.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이고, 영주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잘 막아보겠습니다.”


모나카 님은 카시스 가문 영주 중 가장 온화하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다.

좋게 말하면 이렇지만, 다르게 본다면 가장 유약하고 소심한 사람이었다.

긴 평화가 유지되고 있었기에 게인 님이 첫째 아들이 아닌 모나카 님을 선택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영주를 돕기 위해 나섰다.

몇 명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카시오스 마을은 외지인을 배척하지 않았고, 범죄 기록 같은 게 없다면 대부분 받아주었다.

다른 곳에서 마법사에게 피해 입은 이주민 중엔 상인 연합의 편을 드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

그날 저녁.

마을 주민들이 방심한 틈을 타 병사들은 소수의 정예병을 이끌고 카시스 저택으로 향했다.


“정신을 차린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군요.”

“뭐··· 이주민으로 살아오며 저도 마을 사람들을 항상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 마을은 지나치게 평화로워요.”

“진짜라고 해도 그건 다 모순일 뿐이니까요. 저희가 살아온 곳을 생각해 보십시오. 수많은 평민이 수탈당하고 있는데, 이 마을 하나 평화롭다고 제국의 체계가 괜찮은 건 아니란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보가스는 어렸을 적 마을로 이주 온 상인 바말의 아들이었다.

바논은 아내와 아들, 그리고 동생을 데리고 카시오스 마을로 도망쳐 왔다.

마을에 알리지 않았지만, 그들이 도망친 이유는 바논의 동생, 바말의 범죄 때문이었다.


“도착했군요. 그러면 부탁합니다, 바말 씨.”

“맡겨주십쇼.”


바말은 저택 앞으로 다급히 뛰어갔다.

문을 지키던 영주의 사병은 그를 막아섰다.


“멈추십시오! 당신은··· 바말? 늦은 저녁에 무슨 일입니까.”

“도, 도와주시오! 지금 보가스가 위급합니다!”

“바논 씨 아들 말하는 겁니까?”

“애가 사냥하러 숲에 갔다가 짐승에게 다리를 물려 쓰러졌소···. 제발 도와주시오.”

“제길···. 기다려요. 얼른 영주님에게 말해서 치유사를 파견하겠습니다.”


문지기 한 명이 급하게 영주의 저택안으로 들어갔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백발의 노인과 집사로 보이는 사람이 마차를 몰고 급하게 나와 문을 열었다.


“이보게 바말. 얼른 자네도 타게! 자네 집으로 가면 되겠나?”

“아, 게인 님이 직접···. 네. 부탁드립니다.”


마차가 완전히 밖으로 나와 길을 달리기 시작할 때, 잠복해 있던 병사들이 모두 뛰어나와 마차를 덮쳤다.

갑자기 나타나 위협하는 사람에 놀란 말은 이리저리 날뛰어 마차가 옆으로 쓰러지며 안에 있던 사람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나왔다.


“크흑···. 이, 이게 무슨 일인가···. 테즈, 바말··· 괜찮은가···.”


게인은 허리를 부여잡고 일어나 주변 사람들을 살폈다.


“끄아아악! 아파!”

“이런··· 크게 다쳤군. 조금만 기다리시게. 지금 바로 마법을···.”


바말이 넘어지는 마차에 깔려 다리가 부러져 고통에 몸부림쳤다.

치유 마법을 사용하려 다가간 게인의 등으로 병사 중 한 명이 무언가를 들이밀었다.


“···조금만 기다리시게. 아무리 그래도 다친 사람은 구해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말하고 마법으로 우리를 죽여버리겠지. 이미 늦었어.”


긴 쇠막대 뒤에 달린 심지의 불꽃은 점점 줄어들었다.

곧이어 탕! 하는 큰 소리와 함께 발사된 총알은 단숨에 게인을 관통했다.


털썩.

백발의 노인은 그 자리에 쓰러져 숨을 거뒀고, 새하얗던 머리와 옷이 검붉은 피로 물들었다.


“이, 이 새끼가! 내 다리 좀 보라고. 이건 고치고 죽였어야지!”

“자네도 알지 않나. 마법사와 싸울 땐 방심하면 안 되는 것을. 치유 마법을 쓰는 척하며 우리를 공격했다면 어떻게 할 건가.”

“이 늙은이는 그런 마법 못 쓴다고! 으윽···. 다리가 부러졌다고···.”

“뭐, 나중에 붕대는 감아주지. 지금은 거기에 누워있어. 우리는 일을 마무리 짓고 올 테니까.”


지휘관은 별 감정 없이 총을 세워 준비해 둔 화약과 총알을 넣기 시작했다.


“아직 총이 많지 않아서 위험하단 말이지. 이렇게 장전도 오래 걸리는 무기 하나 믿고 맞서니 어쩔 수 없어.”


상인 연합이 총을 만들기는 했지만, 아직 생산량이 많지 않아 부대당 한두 정밖에 보급되지 않았다.

간부나 지휘관이 총으로 마법사를 노리고, 나머지 병사는 어떻게든 마법사의 시선을 끌어야 한다.


“부대! 방어 진형을 갖춘다. 장전을 완료할 때까지 경계를 계속한다. 전령은 빠르게 소식을 전하고 본대를 데려오도록.”

“알겠습니다!”

“쳇.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군. 화력 말고는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는 무기야. 제대로 장전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심지에 불을 붙여 화약을 점화하는 총기.

상인 연합의 건스미스들은 이 총을 매치락이라 불렀다.

화력은 이전에 쓰던 검과 활에 비해 압도적이었지만, 한 발을 쏘기 위한 장전 시간이 매우 오래 걸렸고, 불발률도 매우 높았다.


초기엔 총기의 사용법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많아 제대로 발사하지 못하는 경우는 더 많았다.


“후···. 장전은 완료했다. 저 멀리 보이는 건 본대인가? 이곳도 곧 점령할 수 있겠어···. 선발대는 이제 방어 진형을 해제하고 주위를 경계하도록. 너랑 너. 둘은 저택 안에 침입해 동태를 살핀다.”


마차에서 떨어진 등불에 어렴풋이 길 너머로 다가오는 사람들의 형체를 보며 지휘관은 긴장감이 조금 가셨다.


누군가 검게 보이는 무리보다 빠르게 달려오는 듯, 발소리가 흙길에 울려 퍼졌다.

전령이 먼저 다가오는 것이라는 판단과 다르게 불빛에 점점 보이는 옷은 천으로 되고 조금 헤진 옷이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지휘관의 가슴엔 이미 칼이 박혔다.


“커헉! 누, 누구냐···.”

“왜 저런 짓을 벌인 거야. 이 마을은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잖아. 우리의 말을 왜 듣지 않은 거냐고!”


쓰러진 지휘관은 위에서 소리치는 그 모습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옆에 다리를 붙잡고 몸부림치던 사람이 하는 말이 나지막이 들렸을 뿐이었다.


“혀, 형···. 도와주러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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