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당한 해결사가 돌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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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도과수
작품등록일 :
2024.09.09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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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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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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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전체로

DUMMY

“지금 현실적으로 가장 높은 격의 의뢰는 이것이다. 마약의 주성분이 되는 주재료를 탈취하는 것. 삼합회와 관련된 거라 극심하게 위험한 건데....”


설명하는 켄서스는 이런 의뢰를 거의 처음으로 주선하는 듯 사뭇 진지해 보였다.


이해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기업화된 삼합회는 일반적인 범죄조직과는 체계가 좀 달랐다.


그림자 정부가 걸맞은 표현일까. 경제부터 뒷골목까지, 이 구역에서 놈들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은 전무했다.


그런 놈들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결국 RZ구역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것과 다름없다.


루드에게 문제 될 것은 당연하지만 없었다. 다른 게 아니라 이미 삼합회 놈들을 무참히 살해해버린 전적이 있기 때문에.


신상이 밝혀지면 이판사판 놈들과는 견원지간으로 돌변할 것이 지금으로선 명백했다.


그는 새 신상이 언제까지고 지속하리라 생각지 않았다.


본래는 루드. 용병업계에 발 조금이라도 담갔다면 누구나 각인하고 있을 어렴풋한 이름.


자기과시 따위가 아니라 진정으로 그렇다.


그딴 놈이 어디도 아니라 바깥 땅에서 돌아와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댄다? 연방정부 말고도 척을 졌던 그 무수한 세력의 추적도 그가 보기엔 곧이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뭣보다 각칸의 본 목적을 헤아리는 것뿐이었다.


부수적으로 놈에게 닿을 기회를 만드는 것까지. 어둠을 통해 엿본 것들은 확연히 정상적이지 않았으므로.


“그러니까, 경비가 열이 넘는 삼합회의 작업장에서 뇌파증폭제를 탈취해 오라고?”

“그래. 의뢰인은 익명인데 아마 바이오솔루션 관련된 중소기업 같더군. 구역도 멀리 떨어진 것 같고. 보수는 위험할증까지 3배로 붙어서... 약 7,700만 크레딧. 이거 받고 RZ 떠라 이 소리지.”

“실패하면 뼈째로 갈리겠네. 너까지.”

“이미 수주한 입장으로서 어쩔 수 없는 입장이지. 악마랑 계약한 건 어쨌든 나다.”


처음 보는 놈한테 목숨을 거는 이 도마뱀도 루드가 보건대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적합했다. 밑바닥에서부터 일정 경지까지 함께하기에.


“흠. 당최 믿지를 못하겠는데 말이지.”


더불어 무슨 사인진 모르겠으나 켄서스의 말이라면 철석같이 믿노라는 이 의문의 작은 드워프도.


“지원해줄 수 있는 건 모두 지원해주지. 필요한 거라도 있나?”

“아니. 챙길 거면 저 드워프나 안 죽게 챙기던가.”

“허! 어이없는 놈.”


루드가 벗어두었던 점퍼를 챙겨 입으며 밖으로 나가려던 차에, 무언가 떠오른 듯 발을 멈춰 세웠다.


“아. 담배.”


문서를 정리하던 켄서스가 고개를 돌렸다.


“무슨?”

“담배 한 갑 있나? 있으면 좀 가져가게.”


전자담배가 아닌 궐련이자 연초.


작은 불씨로도 극심한 공포를 쉬이 어르고 달랠 수 있는 연초가 필요했다.


* * *


삼합회의 작업장은 외곽 중에서도 외곽이었다. 이쯤에서 여기가 진사도 내인지 아닌지 그 경계조차 모호했다.


폐허만이 자리한 썰렁한 공업지대.


뇌파를 좌지우지하는 마약의 주재료는 이곳에서 은밀히 사용되고 있었다.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루드와 드워프는 1시간 전부터 자동차도 버려둔 채 걸어왔다.


불빛이 번쩍이는 드론도 간간이 날아다니는 게 어쩌면 마피아와의 갈등이 심화해서 그런 건 아닐까 싶었다.


“이거, 제대로 진입할 수 있을지도 의문인데... 몇이 있는지도 가늠이 안 되는군.”


드워프가 작업장을 멀찍이 내다보며 말했다. 작업장은 어슴푸레 푸른빛으로 감돌고 있었다.


루드가 점퍼 속 안감을 가다듬었다.


단검 세 개를 하나로 묶은 단검대가 점퍼 속 오른쪽에 부착돼있다.


다시, 내다보며 말했다.


“입구에 총 여섯. 보니까 모두 마탄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네.”

“뭐?”

“러닝셔츠나 청바지... 셔츠... 옷차림은 다 다르고.”

“지금 저게 보이는 건가?”

“하나는 꽁지머리. 허리에 무전기랑 이어폰 달린 보니까 저놈이 감독관이겠고만.”


RZ구역 깊숙한 곳에 관여하는 간부를 제외한 삼합회의 일당은 그리 전문적이지 않다.


머릿수가 좀 많다뿐이지 개별은 그저 성격 좀 난폭하고 총 쥔 노상강도 수준에 그쳤다.


삼합회와 관련된 의뢰의 거북한 점은 바로 보복에 있었다. 감히 삼합회에 대들었다는 치명적인 결손이 인생에 낙인처럼 찍히는 것.


갈가리 찢어 죽이기 전까지 평생을 집요하게 따라다닐 것이다.


그게 바로 간부의 주요 과업 중 하나이기도 했으니까.


점퍼를 탁 턴 루드는 드워프를 제치고 조용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턱, 턱, 드워프의 발걸음 소리가 서둘러 뒤따랐다.


“너, 마력안(魔力眼)이라도 개안한 놈인가? 아니면 신체개조?”

“아니.”

“그럼 어떻게 그리 훤히 볼 수 있는 거지?”


마력안은 드래곤이나 악마의 후손들이 드물게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고 안구개조는 불필요하게 큰 비용이 든다.


그저 살아남기 급급한 놈들의 능력이었다. 이런 건 흔했다. 바깥 땅에서만큼은.


탁탁탁, 다리를 떠는 경비의 움직임까지 상세히 들려올 정도로 숙련된 이 청각보단 못한 존재이기도 했다.


황량하게 바람이 불었다. 해골 두건이 조금씩 펄럭이고 있었다.


“어, 어디까지 가는 거야? 어이...!”


점점 작업장에 다가갈수록 드워프의 발걸음도 덩달아 조급해졌다. 어투나 조성도 그렇고.


데려오긴 했으나 살려서 보내긴 해야 한다. 명성은 아군에 의해서나 적군에 의해서나 똑같이 퍼지는 법이었다.


드론의 불빛이 루드를 마주쳐 삐용삐용- 거리며 번쩍일 무렵이었다.


뒤따라오는 발소리가 멎고야 말았다.


필시 이만큼 따라오기는 겁나는 것이다. 결국 사방에 총이 겨눠질 때까지 루드는 혼자서 적적하게 걸어야 했다.


“뭐야 씨발?”


꽁지머리에 감독관으로 보이던 남자였다.


루드가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능청스레 대답했다.


“아, 검문 검문.”

“검문? 뭔 개소리야?”

“못 들었나? 관리 차원에서 나온다 했잖아. 야차 중 한 분께서 직접 명령하셨는데, 몰랐나?”


꽁지머리의 까만 눈이 의아함을 머금었다.


점퍼나 카고 팬츠. 명백히 도시 부랑아의 옷차림이나 말하는 내용이 꼭 반대로 상반되었다.


루드는 들어 올린 손을 찬찬히 내리며 고개를 옆으로 작게 까딱였다.


고개는 은은히 빛이 감도는 작업장을 가리켰다.


삼합회엔 사실 비밀이 있다. 최고위 4인 간부를 일컫는 ‘야차’라는 말에 끔뻑 죽는다는 비밀.


“야차께서?”

“그래, 요즘 마피아니 뭐니 통 난리가 아니잖아? 혹시 추가병력을 위해서라도 잠시 검문하라 하셨지.”

“아니. 야차께서 별달리 내린 말씀은 없었는데. 너 이 새끼, 뭐야?”

“하 나 참, 이 새끼들. 이 자식들 가만 보니 기강이 꽤 많이 해이해진 것 같은데. 이대로 보고라도 올리라는 거지?”


역으로 낸 작은 윽박에도 꽁지머리의 의구심 품은 낯빛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검문을 혼자서도 오나?”

“마피아와의 전쟁을 뭐로 보는 거야? 본진엔 그리 여유가 있지 않아.”

“그럼, 장갑을 벗어 보여봐. 우리 표식이 있는지 볼 테니까.”


참나, 볼멘소리를 낸 루드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옆쪽의 드럼통 위로 손을 올리러 다가갔다.


마침 가로등이 불규칙하게 점멸하는 곳이었다. 여러 드럼통 위.


꽁지머리가 정말인지 진위를 파헤치기 위해 루드를 따랐다. 몇 걸음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루드는 손을 올려두고 따라선 꽁지머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경고하건대 문신이 있으면 너희 모두 상부에 지시 올리는 거야. 알겠어?”


고개를 끄덕이며 꽁지머리가 턱짓했다. 얼른 장갑을 벗어 보이라는 뜻이었다.


루드가 그에 찬찬히 장갑을 벗어 보였다.


드럼통 위로 올려둔 손 위로, 뽀얀 피부. 뽀얀 손등.


“......?”


당연히, 어떤 문신도 그려져 있지 않다.


꽁지머리가 슬며시 루드를 올려다보았다. 루드는 꽁지머리를 내려다보았다.


싸늘히 내려앉은 시선.


한순간 같은 지점에서 교차 될 시각.


꽁지머리가 앞으로 몸을 굽히며 자빠졌다.


워커 끝으로 놈의 정강이를 똑 가격했기 때문이다.


“으악!”


놈의 몸 전체가 무너지듯 쓰러져 내리기 시작했다.


루드도 동시에 허리를 숙이며 소매 속으로 무언가 미끄러지게 두었다.


팔에서부터 스르륵 내려오는 서늘한 감각.


권총이었다.


곧바로 손으로 잡았다. 장갑을 벗긴 뽀얀 손등의 그 손으로.


찰칵!


단숨에 방아쇠가 당겨졌다. 겨눈 곳은 발등.


타앙! 반동에 팔이 잠시 흔들렸다가 금세 제자0리를 유지했다. 터져 나오는 피를 무시하고 곧바로 옆을 보았다.


찰칵!


타앙!


피가 튀긴다. 한 번 더 옆을 보았다. 당혹하며 마탄소총을 급히 고쳐 쥐는 놈의 머리.


찰칵- 타앙!


찰칵- 타앙!


삽시간에 머리 세 개가 터졌다.


대놓고 실행한 급습이었다. 수풀에 몸을 숨기고서도 소리를 내는 어둠개처럼이나 당돌하다.


놈들은 그 앞에 며칠 차 생존자도 되지 못했고.


루드가 달리 옆을 조준하는 순간이었다.


푸른 불빛이 일순에 일자를 그리며 반대쪽 경비의 마탄소총에서 뿜어져 나왔다.


끄드드드득!


쇠와 쇠가 갈리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순간에 루드 주변으로 푸른색 결이 울렁거리며 탄환을 막아냈다. 순수한 마력으로 감싼 자동방어체계였다.


루드가 꽁지머리가 떨군 바닥의 소총을 발로 멀찍이 차며, 드럼통 뒤로 내려앉았다.


“이런 미친 새끼가! 야, 쏴! 죽여!”


푸른빛 탄환이 드럼통에 무수히 격발되기 시작했다.


드드득- 철사가 찢겨나는 소리와 함께 곧 터지기라도 할 듯 드럼통에서 불길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딸깍, 딸깍. 루드가 조정간을 아래로 옮겼다가, 위로 옮기며 잠시 생각했다.


저 멀리 작업장 내에서 지원 오는 발소리가 들려온다. 그마저 선명히 들려오는 판에 어디서 쏘는지 모를 수가 없다.


하나는 문 앞. 하나는 나앉은 드럼통에서 대각선. 또 하나는 그 둘 사이.


탄창이라도 가는지 소총의 격발이 점차 멎을 무렵이었다.


루드가 드럼통 너머 총을 기울였다. 보이진 않으나 소리로서 보였다. 철컥, 소리 그다음에 탕.


그리고 꾸드득!


탄환이 살점을 파헤치는 소리. 다만 목이 아니라 어깨로.


“악, 끄악!”


비명이 울려 퍼지는 동시에 루드가 드럼통 하나를 등 뒤로 쳐 쓰러뜨렸다.


대자로 드러누운 몸을 곧바로 돌려 엎드렸다.


어둠을 겨냥해 또 한 번 방아쇠를 당겼다.


찰칵! 탕!


똑같이 대가리 하나가 분쇄되는 소리. 그와 함께 어둠이 새빨간 피로 물든다.


그다음, 고개를 돌리자 탄창을 갈아 끼우는 놈과 눈을 마주쳤다.


떨리는 손은 움직이고 있는데 그게 생각보다 빨리는 안 되나 보다. 놈의 장전은 언제고 끝나지 않았다.


루드가 불쑥 몸을 일으켜 터벅터벅 걸어나가다가, 세 발자국도 안 되는 시점.


“어, 어어어. 어.”


타앙!


외마디 비명도 없이 이마에 새빨간 점이 새겨진다.


바닥에 자빠지는 소리만 들릴 뿐 그 외는 일단 조용했다.


하지만 본래 돌연변이의 습격 전이 가장 조용한 법이다. 폭풍전야와도 같이.


현 상황도 적잖게 위협적이란 뜻이었다.


“흠.”


한차례 숨을 고르며 루드는 고개를 비틀어 작업장의 문 쪽을 보았다.


지원을 위해 내부에서도 황망히 달려오고 있었다.


루드가 아래를 내다보았다. 꽁지머리가 신음을 내며 제 발을 부여잡고 있었다.


딸깍, 딸깍. 조정간을 옆으로 옮겼다가, 위로 옮겼다가.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꽁지머리의 손을 조준했다.


짧은 총성과 함께 영락없이 처박힌 탄환.


“끄, 끄악! 학, 끄윽!”


고통으로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총열에서 흰 연기가 육안으로 보일 듯 모락모락 새 나왔다.


다시 한번 방아쇠를 당겨보자 찰칵 소리만 날 뿐, 더는 슬라이드가 뒤로 당겨나 발사되는 일이 없었다.


루드는 권총을 땅에 버렸다. 그러고 점퍼를 펼쳐 들었다. 단검이 속속 자리해있다.


하나 뽑아 들며 터벅터벅 문가로 다가갔다. 엄지를 파고드는 따끔한 감각.


파지직, 거리며 이내 손잡이부터 날까지 모든 곳에 전기가 깃든다.


벽에 붙어있던 차였다.


벌컥!


문이 열렸다.


눈앞이란 새빨간 시체뿐이라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는 놈.


목을 낚아채고 두어 번 빠르게 칼을 찔러넣었다.


“-웁! 웁웁!”


마력 앞에선 뭐든 두부처럼 연약할 뿐이다.


단숨에 축 늘어진 몸체를 문 뒤 편으로 던져 보냈다. 다리에 차인 건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에 남은 놈은 총 여섯. 한 놈이 거기서 고꾸라졌다.


그 즉시 문 앞으로 모습을 보이며 넘어진 놈에게 단검을 던졌다.


끅, 소리와 함께 이마에 명중한 걸 목격해서야 곧바로 펼쳐진 문을 끌고 왔다.


팅-


단검을 맞은 놈이 단말마가 희미해지려는 찰나, 문 모서리에 총알이 빗나간다.


팅팅- 팅, 콰앙!


철문이 곧이곧대로 닫혔다. 그다음 문에 마탄이 세례로 박히기 시작했다.


싸구려 마탄소총은 그냥 소총과 별다를 게 없는데, 그저 가격이 값싼 정도. 파괴력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뜻이다.


루드가 문 바로 옆 벽에 다시 붙어 단검을 하나 더 꺼내고 역수로 쥐었다.


방금 작업장의 내부를 대략 보았었다. 어차피 놈들은 나와야 했다.


선점을 잡을 수 있는 건 여기, 다수보다 홀수였다.


팅, 팅팅팅, 킹킹킹!


빗발치는 소리가 점점 거세졌다. 문짝이 끝내 화력을 이기지 못하고 찌그러져 나가떨어질 순간.


“화, 확인해! 나가라고, 씨발!”


겁도 없이 머리를 작업장 밖으로 들이민 놈을 낚아채고 허리에 곧장 쑤셔 넣었다.


“...힉!”


목을 팔로 휘감으며 뒤에서 한 번 더, 한 번 더. 움찔, 움찔. 그러다 축 늘어졌다. 절명한 것이다.


사체를 방패 삼아 작업장 안으로 서서히 진입했다.


“미, 미친 새끼! 쏴! 쏘라고! 죽여!”


놈들은 대부분 아드레날린에 절여있었다. 움찔움찔 시체에 박히는 반동이 몸까지 전해져 온다.


그렇기에 자기가 쏘는 것이 직전 동료의 몸이었음을 인지하는 순간.


“끅! 끅! 끄윽!”


시체를 버리고 당혹한 한 놈의 몸을 안듯이 끌고 와, 목, 복부, 가슴에 찔러 박았다.


죽음을 깨닫는 순간 곧바로 버리고, 한 놈 더.


오직 급소만 노려 목과 복부와 가슴에만 한 칼씩. 흘러나오는 피가 그만 장갑 벗은 뽀얀 손마저 다 더럽혀지고 있다.


그렇게 한 놈 더. 또 한 놈, 더.


루드는 시체가 된 경비를 바닥에 버리는 동시에 엄지에 강박적으로 전기를 일었다.


단검을 더 꺼내는 일은 없었다. 공교로운 건진 모르겠으나... 나머지는 직접 처리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 개새끼들아아아아아!”


순간 산탄총을 위로 두 손에 펼쳐 들며 돌진해온 한 드워프 탓에.


장전 타이밍과 엇물려 눈앞에서 벌어진 학살의 현장에 거의 공황이 온 듯 이젠 반격도 못 하는 놈들의 대가리에 개머리판을 후리고, 개머리판을 갖다가 아예 찍어버리고.


“이게 바로 정의의 망치지! 이 삼합회 개새끼들!”


마치 소방도끼를 사용하는 듯이 산탄총의 뒷부분을 휘둘러댔다.


그 결과 드워프의 학학거리는 숨소리뿐이 들려오지 않았다.


스흐읍, 크게 숨을 들이켜는 작은 루드의 숨소리도 더불어.


“후.”


드워프가 산탄총 뒷부분에 묻은 피를 허공에 탁 털어내며 숨을 크게 털어냈다.


“너, 확실히 미친놈이군.”


그러곤 작게 킬킬거렸다. 단검을 사체에서 뽁뽁 뽑아내는 루드를 쳐다보면서.


루드는 잠깐 드워프에게 눈길을 주었다가 장갑 낀 손으로 단검에 묻어난 피를 닦았다.


붉은 실 같은 것들이 장기를 관통하면서 얽혔다.


이내 칼날을 깨끗하게 훑은 루드는 돌아서서 문밖으로 도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뇌파증폭제를 탈취하기도 전이다. 왜 돌아가는지 의문스레 쳐다보는 드워프에게 루드는 그리 물었다.


“이름이 뭐지?”

“뭐? 이름?”

“안 물어본 것 같아서.”

“발다두르... 긴 하다만. 뭐야. 어딜 돌아가는 거지?”

“찾고 있어 봐. 뇌파증폭제인지 뭔지.”


소임을 전가하는 듯한 묘한 말뜻에 드워프, 발다두르가 루드의 뒷모습을 멀찍이 바라보았다.


점퍼 뒤에 검은색 도깨비가 흉측하게 그려져 있다.


곧이어 후드 뒤집어쓴 그 머리 뒤로 흘러나오는 연기.


명백히 담배를 태우는 모습이었다.


꽤나 굳은 듯 다물어져 있던 발다두르의 입에서 픽 웃음이 새 나오기 시작했다. 도무지 가늠이 안 가는 작자다.


‘적들을 도륙 내고 담배라도 태우는 것이 네 아이덴티티라도 되는 거냐?’


그때 그의 눈에 다시금 의문이 어렸다.


‘...응?’


그저 담배를 피우는 것만 같던 루드가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경비의 머리를 덥석 잡고 어딘가로 끌고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흐윽! 끅.”


어깨에 총상을 당한 경비였는데 꽁지머리 바로 앞에 던져놨다.


꽁지머리가 경련하듯 루드를 응시하듯 올려다보았다. 아까와 교차 된 시선과는 사뭇 달랐다.


아래 누운 자와 위에 선 자. 이 극명한 시선의 높이는 루드에게 보통 시선의 높이보다도 익숙했다.


문 담배를 루드가 잠시 입에서 떨어뜨렸다.


반다나 너머로 짙게 연기가 흘러나오며 그는 꽁지머리를 내려다보았다. 익숙할 정도로 수많은 경험, 그에 비롯한 효과적인 조성.


“바깥 땅은 어떻지?”

“...뭐, 뭐?”

“그냥 개인적인 물음이야. 너희 바깥 땅 지부가... 조금 궁금해서.”

“너, 너. 마피아의 개였냐?”


아니. 중얼거리듯 내뱉은 루드는 불쑥 꿇어앉았다.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루드가 앞에 던져놓았던 경비의 머리를 잡았다.


그러고, 푹 푹 푹.


흉부에 난도질에 가까운 칼질이 이루어졌다. 놈의 몸이 활어처럼 부르르 부르르 떨렸다.


그러는 칼질의 주인은 극한으로 인색했다.


입에 문 담배가 무엇 하나 흔들리지 않는다.


마스크에 그려진 해골. 그 해골에서 짙은 연기가 새 나올 때마다 경비의 피 묻은 입에선 달리 가냘픈 헐떡임이 자꾸만 새 나오는데.


“끅, 끅, 꺼억....”


루드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곧장 아까 버렸던 권총을 주워들었다. 허리에 찬 탄창을 꺼내 장전하고 슬라이드를 당겼다.


한 손. 아까 장갑을 벗어냈던 그 한 손.


폐가 훼손된 듯 입에서 주르륵 선혈이 흘러나오는 경비. 겨눈 머리에 총구가 순간 빛났다.


탕-!


철컥.


타앙! 타앙!


철컥, 철컥.


타앙, 타앙, 탕-! 탕!


철커덕-


탄창을 다 비운 권총의 슬라이드가 뒤로 당겨져 나왔다.


피가 과연 지워질지도 의문일 정도로 사방팔방 튀었다. 시체의 머리는 곤죽과 가까운 형태였다. 실체도 알아볼 수 없다.


총을 도로 바닥에 내팽개친 루드는 두 손가락으로 담배를 집었다.


꽁지머리는 이제 단순한 공포감만으로 옭매이지 않았다.


살해의 해악. 그딴 것쯤은 우습게도 여길 기이한 모습을 목격했으니까.


어쩌면 집착과 가까운 루드의 모습은 살인을 두고 황홀경에 빠진 살인광으로 비쳤다.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그렇게, 보이게끔.


“...으, 으....”


꽁지머리의 숨이 파들파들 헐떡여왔다. 루드는 다시금 그의 앞에 꿇어앉았다.


몸짓 하나하나가 심장을 쥐어짜는 것처럼 놈의 몸은 움찔거렸다.


“난 마피아의 개 따위가 아니야.”


그리 말한 루드는 피우던 담배를 꽁지머리의 입에 물어주었다.


“그리고 널 저렇게 해칠 놈도 아니지. 자, 널 위해 준비한 선물. 긴장 완화작용이 담긴.”


피우라는 듯이 작게 손짓했다. 강제였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머금은 꽁지머리는 곧이어 학, 숨을 내쉬며 콜록거렸다.


담배의 매캐한 연기가 오히려 극도로 팽창한 긴장에 해가 되었나 보다.


루드는 잠시 바닥을 내려다보더니 다시 꽁지머리를 올려다보았다. 놈은 담배를 대번에 다 태울 기세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마치 다 안 피우면 죽여버린다고 고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참에 박차를 가하자 생각한 루드는 품에서 단검을 꺼내 그 단검을 놈의 얼굴과 대조하듯이 살피다가, 말했다.


“살려줄 테니까 네 본진에 가서 알리도록 해. 어떤 한 새끼가 난데없이 작업장을 다 털어버렸다고.”


쿡! 얼굴 터진 시체의 다리에 날을 꽂자 피가 뒤끓으며 날 사이로 튀어나왔다.


“그 새끼 아마 용병인 것 같은데, 이름이... 각칸이라고. 감히 삼합회를 적으로 돌린 멍청한 새끼의 이름이, 각칸이라고.”


그게 바로 듣도 보도 못한 용병, 각칸이었다고.


루드의 눈빛에 꽁지머리가 고개를 작게 주억이다가 이내 미친 듯이 주억였다. 루드는 그의 어깨를 탁 치며 볼 일 끝이라는 듯 일어섰다.


명성은 퍼질수록 더 퍼지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악명은 더욱이나.


첫째는 이놈, 둘째는 삼합회 전체.


셋째는 도시 전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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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진사도(辰砂島) 24.09.11 22 0 11쪽
3 명목 24.09.10 21 0 12쪽
2 살아있는 어둠 24.09.10 28 1 17쪽
1 한 왕이 있었다 24.09.09 7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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