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당한 해결사가 돌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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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도과수
작품등록일 :
2024.09.09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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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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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개소

DUMMY

비니, 점퍼, 후드티와 카고 팬츠, 워커.


공통점은 전부 새까맣다는 것.


그리고 그저 길거리를 쏘다니는 불량아와 가장 적합한 모습이라는 것이었다.


적당한 해골 문양이 그려진 반다나 마스크까지 걸치고 나서야 루드는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다.


마술 또는 기술적 기능이 담긴 옷이나 일시적 성형수술은 지금으로선 사치였다.


각 정부의 추적은 신원이 아닌 각각의 몸에 담긴 고유한 마력에 의해서 진행되고, 그 자취조차 지우는 수술은 음지 끝자락에서나 행해졌으며 무엇보다 불안정했다.


그딴 건 바깥 땅으로 추방당하기 전에도 손대지 않았다.


“새 신분이야... 네가 훔친 카드로 반환한.”


갈라키스는 이틀이 지나고 루드를 예홍룡의 3층으로 불러냈다.


중개인의 중개인. 예홍룡의 주된 업무가 은밀히 행해지는 곳.


테이블 위로 올라온 건 조작된 문서였다.


직접 쥐여주는 건 아니고 그저 입증을 위해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식별번호, 새 이름 보이지? 유령망(幽靈網) 놈들한테 부탁했어. 몇 달간 덜미를 잡히는 일은 없을 거야.”


신분 위조는 주로 타인의 정보를 바꾸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본래 식별번호에 기입된 정보를 지우고 새로이 새겨넣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아예 처음부터 식별번호를 만드는 방식은 몇억 크레딧도 더 호가하기 마련이었다.


이런 방식은 비교적 값싼 대신 손쉽게 들통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으나... 그 전에 입지를 다지면 끝이다.


사이버범죄조직인 유령망 따위의 놈들을 타도하거나 해 수족으로 두는 것도 일종의 방식이었다.


“루드... 아니, 각칸. 정계에 닿는 일은 최대한 빠르게 시행해보도록 할게.”


그렇게 얻게 된 새로운 이름은, 각칸.


도발이었다. 네가 죽이려던 놈이 되려 도시로 따라와 너를 부른다.


담대함이 곧 전략일 뿐이다. 그렇다면 네놈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문서를 대강 훑은 루드는 갈라키스에게 도로 돌려주며 소파에 기댔다.


“최근 이름난 중개인이라도 있어? 진사도 위주로.”


갈라키스가 가방에 문서를 주섬주섬 집어넣더니 대답했다.


“돌아와서도 의뢰라니, 딱히 이유가... 있는 거야?”

“아니.”


그 간결한 대답에 ‘질문은 내가 해’라는 뜻이 매우 노골적으로 내포되어있었다.


갈라키스가 뜸을 들이더니 순순히 답했다.


“...알겠어. 어떤 유형의 중개인을 말하는 건데? 쉬운 의뢰? 비싼 보수?”

“간단해. 그냥, 야망 있는 놈.”

“야망? 야망 있는 놈들이 진사도에 찾아드는 일이 있을까? 거의 다 절박하거나 더러운 놈들뿐일 텐데....”

“그러니까 새끼야, 눈치껏 뽑아 오라고.”


루드가 대체로 거닐었던 구역은 온갖 범죄조직들이 판치던 회색 지대였다.


그런 곳에서 중개인의 목숨은 한낱 벌레보다도 유약할 수밖에 없다.


눈앞의 갈라키스처럼 자체적으로 힘이 있지 않은 이상, 소규모 중개인들은 철새처럼 구역을 넘나들기 마련이었다.


기업과 기업의 암투나 정부에서 직접으로 발주하는 의뢰가 아니라면, 보통 조직의 후폭풍을 맞는 게 그들의 일반적인 최후였으니까.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진사도의 ‘루키’를 소개했다.


딱히 나대지 않는 놈. 그렇기에 필시 야망이 내재해있을 거라는 놈.


‘켄서스 뒤시커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긴 하네.’


중개소는 진사도의 중심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마천루를 이루던 건물들의 높이가 5, 6층으로 줄어든 외곽. 그 높이가 다양해서 마치 노숙자의 치열처럼이나 삐뚤빼뚤했다.


루드가 굳이 정평 난 갈라키스를 두고 이런 외진 곳을 찾은 이유는 신뢰의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분방함에 있었다.


마수가 넓다는 것은 그만큼 영향받는 마수도 많다는 것.


정체가 예상보다 더 빨리 탄로 날 수도 있는 일이다.


게다가 그 예홍룡의 주인이 난생 처음 보는 용병을 부리고 그 용병의 활약도 심상찮다? 두고두고 써먹어야 할 도구의 목숨이 위협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루드는 갈라키스에게 뜯어낸 권총의 조정간을 딸깍거리다가 한 건물로 들어섰다.


붉은 벽돌로 건설된 5층짜리 건물.


꼬질꼬질한 엘리베이터, 깜빡거리는 전등. 나대지 않는다는 뜻이 언제부터 검소함을 뜻했는지 몰랐다.


“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서 내리자 복도에 의자를 두고 앉아있는 남자와 루드가 눈을 마주쳤다.


중절모를 쓰고 있었는데 작은 키나 용모를 보았을 땐 드워프였다. 양쪽 길이가 똑 닮은 주황색 콧수염이 특징적인.


끼익- 거리며 의자가 거의 쓰러질 때 중심을 잡고 있었는데, 루드가 모습을 보이자 턱- 꽃무늬의 누런 벽지에 몸을 부딪쳤다.


“뭐야. 볼 일 있어?”


의자의 중심을 도로 잡으며 드워프가 루드의 몸을 훑었다.


“중개소 아닌가?”

“어떻게 찾았지?”

“중개소야 아니야?”

“맞긴 맞지?”

“그럼 네가 켄서스... 뒤시커드?”

“아니?”


극도로 간략한 질과 질 같은 응답이었다.


“용병 일이라도 하려고 찾아왔나?”

“아니면 왜 찾아오겠어?”

“참 고리타분한 놈이군그래. 저리 가라, 다치는 수가 있으니까. 별 같잖은 것들이 이젠 잘도 찾아오는구만.”

“예홍룡에서 왔는데.”


드워프의 미간이 순간 좁혀졌다. 마치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흠. 젠장맞을 RZ. 들어가 봐. 켄서스는 안쪽에 있으니까.”


루드는 드워프를 지나 사무실로 들어섰다. 다채로울 것 없이 평범한 공간이었다.


끝쪽 테이블에 문서를 들여다보고 있는 남성이 보였다.


그건 도마뱀이었다. 정확히는 도마뱀 인간. 본래 도마뱀 인간의 사나운 인상과 다르게 이지적인 얼굴이었다.


켄서스가 문서에서 눈도 떼지 않고 입을 열었다.


“아, 어서 오게. 갈라키스한테 얘기는 들었으니.”


루드는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아서야 그의 세로로 찢어진 눈동자를 마주 볼 수 있었다.


비늘처럼이나 푸르고 청아한 눈.


피곤함에 절어있는 듯하나 몸을 훑어보는 일은 건성이 아니었다. 켄서스가 눈 하나 깜빡 않고서 말을 이었다.


“후드며 두건이며. 보이는 거라곤 눈밖에 없군. 그렇잖은가?”

“상판때기도 중요할 줄은 몰랐는데. 언제부터 용병이 부잣집 노리개였어?”

“허, 뭐.”


픽, 한쪽 입가를 말아 올리며 켄서스가 문서로 다시 눈길을 옮겼다.


딸깍딸깍, 조정간을 당겼다가 말았다가 하는 소리가 신경 쓰인 건지 루드의 손을 한번 내려보았다가.


“그럼, 의뢰를 내주지. 이 주변을 서성이는 불한당이 몇 있다. 거미줄 문신을 한 놈들인데 특정 기업에서 약소한 현상금을 내걸었더군.”

“죽이면 되나?”

“많이 급한가 본데. 꽤 위험한 놈들이다. 아마, 머릿수는 여섯쯤이고 보수는 50만 크레딧. 가능하겠나?”


역시 문서만 들여다볼 뿐이었다. 중개소라는 곳이 계약서 따윈 하등 보여주지도 않고서.


루드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중개인들의 저런 태도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두당 10만 크레딧도 되지 않는다. 아무리 RZ구역이래도 살인을 종용하고 있으면서 이만큼 낮은 몫은 용병에게 위험하기만 했다.


무어라 더 묻지도 않고 루드는 벌컥 일어선 뒤 곧바로 사무실을 떠났다.


이내 종이 펄럭이는 소리만이 사무실에 적막하게 내려앉는다.


그 정적 속에서 켄서스는 문가를 슬며시 노려봤다.


‘갈라키스, 불꽃꾼의 수장이었던 자... RZ구역에 은거하는 암흑 엘프라고 했나?’


드물지만 지역의 마당발들이 직접 꽂아주는 용병이 몇 있었다. 모든 구역에서, 진사도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약 5년간 수많은 구역을 전전한 그는 나름 자기만의 규칙을 몇 가지 세웠다.


첫째는 꽂아주는 용병을 함부로 쓰지 말 것.


신뢰의 문제도 있고 실력의 문제도 한몫했다. 그리하여 극도로 위험한 의뢰를 내주거나 심심한 것들만 연달아 내줄 뿐이다.


방금 켄서스가 내준 것은 전자에 속했다.


의뢰의 대상이 되는 것들은 최근 들어 이곳 중개소를 눈독 들이는 놈들. 분명 경쟁사가 보낸 청부업자였다.


‘괜히 질 떨어진다는 곳이 아니었군. 연방정부의 영향력도 꽤나 커지고 있을 텐데 아직도 삼합회가 이리 설칠 줄은 몰랐는데.’


진사도의 중개소 대부분이 삼합회와 연줄이 있다. 여타 중개인처럼 자유와 안보를 지향하는 켄서스는 이곳에서 이방인에 가까웠다.


이젠 하다 하다 하수구촌까지 찾아들 형세에 흰 머리가 날 듯 골머리가 썩었다.


종이 문서를 컴퓨터의 푸른 스크린 속 문서와 몇 번이고 대조하고, 어떻게든 나아갈 길을 찾고 있을 무렵.


드르륵-


문이 열렸다.


“...각칸?”


돌아온 그가 테이블 앞으로 다가와 느닷없이 보따리를 하나 풀었다.


후두둑- 무언가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고, 켄서스는 눈을 크게 뜬 채 위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검은 해골 두건. 점퍼에.


다시 내려다봤다.


그것들은 살점이었다. 거미줄 검은 문신이 그려진 살점... 칼로 하나하나 잘라낸 듯 선혈이 아주 찐득하게도 묻어난.


3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분명 죽으라고 보낸 의뢰인데도.


* * *


“정체가, 뭐지?”


한동안 말이 없던 켄서스는 그제야 입을 뗐다. 중얼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루드가 한 단어로 설명했다.


“각칸.”

“각칸...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 평생을 RZ구역에만 머물렀던 건가?”

“여러 곳 전전했지.”

“입에 침도 바르지 않는구나. 3시간도 되지 않았다. 심지어 기계화 투사들이었지. 정보 하나 없이 추적에, 사냥까지 완수해낼 실력자면 적어도 내 귀에 몇 번이고 닿았을 거다.”

“뭐야. 어차피 테스트 아니었나? 쉽게 쉽게 가는 거지, 안 그래?”


켄서스는 자신을 쳐다보는 노란빛 눈동자가 도리어 따갑게 느껴졌다.


무슨 속셈이었는지도 전부 까발려진 셈이다. 도통 감 잡히지 못했다.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루드가 딸깍, 다시 조정간을 움직이며 말했다.


“난 말이야, 명성을 원해.”

“명성...?”

“그래. 도시를 집어삼킬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거대한 명성. 그러니까, 네가 뭐가 됐든 간에 잡을 수 있는 가장 버거운 의뢰를 줘봐.”


말의 본뜻을 단 하나도 파악하지 못한 켄서스는 말을 잠깐 얼버무렸다.


루드가 한층 너그러이 말을 이었다.


“네가 드래곤이라도 잡아 오라면 잡아 온다고. 쉽게 생각해.”


스파이, 정부 요원, 아니면 까마득한 암흑가의 어떤 동떨어진 사냥개.


무엇이든 떠올리던 켄서스는 루드의 응시하는 눈동자 속에 담긴 진실성을 얼핏 보았다. 그저 명성이었다. 꾸밈없이, 돈도 뭔가 물질적인 것도 아니라.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었다. 미친놈.


신체를 개조하다 정신이 뒤틀린 미친놈일 확률은 80%, 흑마법이나 혈마법, 그 외 주술적이고도 금기된 마법에 잠식당해 미친놈이 됐을 확률은 20%.


무엇보다 왠지 길이 될 것만 같은 확률... 역설적으로 99%.


“구태여 이유를 캐묻지는... 않겠다. 정말 명성만을 원한다 이건가?”

“그래. 억지로 커미션을 쥐어 짜낼 필요도 없어. 50%. 1억 크레딧이면 나도 5,000만, 너도 5,000만. 밖에 저 드워프 놈 콧수염보다 균형적으로 나눠 갖는 거지.”


진사도 외곽에 자리한 중개소에서 써먹기엔 지나치게 높은 비율이었다.


고위인사를 대상으로 한 암살, 납치, 대기업 침투 등 가족과 그 친척의 운명까지 걸린 의뢰만이 그리 비율을 높게 잡았으니까.


동시에 그 정도로 위험한 조건을 암시하기도 했다.


나대는 걸 선호하지 않는 켄서스는 살아오면서 도박이랄 선택을 한 적이 없었다. 인생은 한탕 아니면 노가다, 그는 노가다였다.


그리고 그 노가다는 그를 진사도에 나앉게 했다.


“걸어볼 만한 배팅이 아닌가? 테스트는 이미 성공적일 텐데.”


실로 그렇다. 기계화 투사. 경쟁사가 사냥개로서 고용한 놈들은 하나하나가 연방정부 소속 경찰과 가까웠다.


지금은 다만 거미줄 문신의 살가죽이 돼 있을 뿐이다. 고작 테스트를 위해서였다.


켄서스가 생각에 잠겼다. 대어인가 활어인가에 대해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대어였다.


그러나 그 대어가 자신을 미끼로 상어를 잡자고 한다.


잡을 수 있을까? 낚싯대를 쥔 건 그 자신일 따름인데.


“.......”

“목숨이 아깝다면 그만두고. 야심 짱짱한 다른 놈들이나 찾아보러 갈 테니까.”

“아니, 잠깐.”


의자에서 일어나려던 루드에게 켄서스가 뜸을 들였다.


난데없이 나타난 대어. 지나칠 정도로 허물이 없으면서 동시에 수상쩍은 점만을 지닌.


과연, 인생의 첫 도박을 맡겨도 될까?


“정말, 50%인가?”


조심스레 물은 켄서스의 물음에 루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돈 따위 알 것 없다. 그저 새로운 도약을 위해 삼을 발판일 뿐이다. 이처럼, 손쉬운 설득을 위한 도구이거나.


루드가 말없이 내민 손을 켄서스가 소심하게 맞잡았다. 장갑 너머로도 비늘이 까끌까끌했다.


“네가 내게 명성을 가져다주면, 난 돈을 물어다 주지. 이보다 합당한 거래가 있을 수 없어. 그렇지?”

“...켄서스 뒤시커드. 잘 부탁하지.”

“난 각칸.”


이젠 루드가 아닌 각칸.


짓씹듯 몇 번이고 내뱉었던 그 이름, 각칸.


마치 본래 제 이름이었던 양 루드는 태연하게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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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원칙에 입각한 협상 24.09.17 3 0 22쪽
8 종속 24.09.16 6 0 11쪽
7 도시 전체로 24.09.14 11 0 20쪽
» 중개소 24.09.13 20 0 13쪽
5 새로운 신분 24.09.12 21 0 19쪽
4 진사도(辰砂島) 24.09.11 22 0 11쪽
3 명목 24.09.10 20 0 12쪽
2 살아있는 어둠 24.09.10 26 1 17쪽
1 한 왕이 있었다 24.09.09 7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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