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당한 해결사가 돌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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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도과수
작품등록일 :
2024.09.09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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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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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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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어둠

DUMMY

하늘이 밝았다, 라는 구절은 언제나 옛 문헌에서나 발견되던 것들이다.


바깥 땅에서 책이란 마력석만큼 귀했다. 도시에선 발에 족족 걸리는 것들이 책이었다. 대체로 100크레딧도 안 되는, 허접한 매거진 따위로.


“감염지대?”


들려온 건 아리따운 미모에 비해 걸걸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확실한 것은 고혹적이지 않다.


그 물음엔 절로 당혹감이 묻어나 있었다. 평화... 롭지는 않은 바깥촌의 광장. 아침임에도 여전히 거뭇한 하늘을 루드가 올려다보았다.


“어.”

“미쳤냐? 얼만데?”

“이십만쯤?”

“선금까지?”

“아니. 선금까지 포함하면 이십삼만 정도? 기본금만 이렇지, 제대로 보존하면 몇 배는 더 쳐준다던데.”


반-엘프인 그녀는 엘프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났다. 덩달아 고아였다. 혼혈보다 태생이 고아란 점이 더 중요했다.


이름은 세카리. 엘프어로 ‘카타나’란 뜻이라고 옛적에 설명해준 적이 있다.


지금은 미간만 좁히고 있었다. 아마 감염지대가 의뢰의 주 무대라 그럴 것이다. 돌연변이 중에서도 꽤 위험한 놈들이 서성이는 곳이었으니까.


“의뢰자랑 둘이서만 가게? 위험할 텐데.”


루드는 언제나처럼 의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지. 이번 건수만 잘 되면 바로 도시 가는 거야. 아니면 뭐, 죽는 거고.”

“병신아, 말 함부로 하지 마라. 죽는다니.”

“함부로라니? 오히려 현실적인 거 아닌가? 우리한테 제일 가까운 게 뭐길래.”


세카리는 흠, 소리를 내더니 담배 연기와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한 것이다.


“에휴, 뭔 놈의 도시를 그렇게 가고 싶어 해선. 누나랑 그냥 있으면 안 되냐? 여기서.”

“그런 걸 보통 촌뜨기라고 하지.”

“그래서? 가면 뭐하는데? 다시 도망자 신세나 하게? 기업 몇 개가 널 노리고 있는지 알면서?”


이번엔 루드가 담배 연기를 내쉬었다. 마찬가지로 변명할 것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도시란 도시 그 자체로 의미였다. 이런 촌뜨기는 모를 의미가 거기엔 담겨있었다.


언제나 바깥 땅이 규격 외였으니까.


모든 생과 삶은 도시에 옭매여있다.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9할 9푼 9리, 그리고 9모 9사, 모든 사람이.


세상과 단절된다는 점에서 바깥 땅은 아무래도 정상적이지 않았다.


물론 천성이 싸움꾼인 세카리는 온종일 치고받는 바깥 땅에서도 곧잘 적응했는데, 심지어 도시에서 추방당하던 때가 외려 가장 즐거워 보이던 날이 아니었나 싶다.


“무조건 당하겠지. 사냥개한테든, 청소부한테든, 정부한테든. 잘 때조차 조심해야 할걸.”


그렇게 말하면서도 세카리는 크게 제지한 적이 없었다.


강요하는 것. 복속하게 두는 것. 도시의 이면을 누구보다도 빨리 접한 그녀는 그렇기에 도시와 갈등을 빚어낼 뿐이었다.


그녀가 도시처럼 사악한 가치관을 받아들일 리 없었다.


“하여튼, 어떻게든 되겠지. 난 이번 건수 꼭 잡을 거야. 돈도 거의 다 모았으니까.”

“그래라. 네가 그래도 어디 가서 쉽게 뒈질 놈은 아니니까. 괜히 주요 인물로 낙인찍혔겠어?”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었어.”


루드가 의미 없이 발로 모래를 차던 때 여인숙에서 한 남자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희미한 등불 앞에 비친 얼굴. 창백하고 핏기도 없는 데다가 어딘가 기품을 풍겼다.


저자가 바로 의뢰자다.


루드는 세카리에게 눈짓으로 인사를 마친 뒤 남자와 바깥촌의 울타리를 떠났다.


목적지는 감염지대였다.


* * *


가는 길엔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으나 루드는 어색해하거나 하지 않았다.


모든 게 정겨울 정도로 지겨웠기 때문이다.


늙고 늙어서 이미 문드러져도 모자를 고목, 마귀의 손처럼 굽이진 보랏빛 가지들.


까마득한 옛적에 공사하다 만 듯 이젠 자국도 희미해지는 길가나, 서서히 기름이 떨어져 갈아 끼울 때가 된 랜턴 같은 것들.


오히려 수상쩍은 점은 이상기류가 꽤 시원하다는 사소한 것들뿐이었다.


되려 기분이라도 홀가분해진 것 같기도 했다.


형형색색의 칵테일, 위스키, 맥주와 창녀. 거리의 방탕함과 분방함... 도시의 빛들이 머릿속에 자꾸만 그려져서일까? 아무래도 그 탓이었다.


“요즘 도시는 어때요? 9구역 동부랑 서부는 아직도 암투 중이고?”


장총을 멘 어깨끈을 매만지며 루드가 물었다.


자기가 늘어놓던 얘기가 아니라면 관심도 없던 남자가 눈길을 준 건 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도시의 내정에는 관심 없다. 오직 하찮은 필멸자들만이 시사에 목매는 법이지.”

“우와. 하찮은 필멸자라니. 전 그쪽이 대학교수쯤은 될 줄 알았는데.”

“대학교수... 웃기는 말이군. 각칸이 새로이 펴낸 정의와 체계엔 발끝도 닿지 못할 놈들이.”


뭐가 됐든 그놈의 왕으로 귀결되니 골 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은근한 자기과시는 덤이었다.


“정의와 체계도 펴냈다니, 그렇게 잘난 왕이 봉인은 어떻게 당한 건데요?”


남자의 헛소리를 믿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배운 정당한 역사로써 옛 인류와 세계사는 그렇게 허황되지 않았으니까.


그저 소설가의 공상을 탐망하듯 맞춰주는 장단일 뿐이었다.


“각칸은 봉인된 것이 아니다.”

“언제는 봉인됐다면서요? 혹시 앞이랑 뒤가 다른 역사인가.”

“고작 그딴 머저리들에게 봉인됐다면 최정점에 근접한 인물도 아니겠지. 각칸은 자신을 스스로 봉인했다.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서.”

“훗날? 무슨 훗날이요. 최정점에 근접한 인물이 굳이 훗날을 도모한다고요?”

“자신이 펴낸 마법의 체계를 운명에서부터 재정립해야 하니까. 흑마법이다. 그 잘난 운명에서, 생과 사를 분리해놓는 거룩한 마법. 작금의 본질을 잃은 쓰레기 같은 흑마법이 아니라.”


루드는 흠, 소리를 내더니 입을 닫았다. 꽤 견고한 남자만의 세계관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가지 더 의문이 생겼다.


이렇게 바깥 땅을 나서는 자들 중 10명꼴에 2명이 광신도였다. 그렇다면 그 각각이 광신하는 신들이 대번에 맞붙는다면, 당최 누가 이길까?


“각칸이랑 기계신이랑 싸우면 누가 이겨요?”


대답은 없었다.


남자는 고개를 앞으로 돌릴 따름이었다.


하찮다는 말조차 아깝다는 듯한 행동으로써. 스산한 바람이 가지들을 스치는 소리만이 나지막이 들려왔다.


컹-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들개의 울부짖음도 함께.


컹컹! 컹!


남자가 멈춰섰다. 마치 그건 또 침묵으로 일관할 수 없다는 듯이.


“별건 아니네요.”


루드가 짧게 내뱉으며 두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갔다. 소리로 봐선 들개였다. 그러나 최대 들개의 상위종인 어둠개일 수도 있었다.


정적일 대로 정적인 곳에서 미묘한 소리가 귓가를 톡 건드렸다.


크르륵-


어둠개였다.


태생적으로 흑마력을 부릴 수 있는 들개의 돌연변이. 어둠개.


그 어둠개나 들개나 공통점은 있었다. 소리를 내기 마련이었다. 더불어 괴수나 외의 돌연변이도 마찬가지로.


사실 사람을 털어먹기로 작정한 사람이 아니라면 모두가 그랬다.


루드가 허리춤의 단검집에서 단검을 하나 꺼냈다.


손가락에서부터, 치지직- 마력을 주입하자 따끔거리는 전기가 일었다. 엄지에서 퍼져나간 그것이 이내 단검 전체에 깃들었다.


빙, 돌렸다.


손 위에서 단검이 휘릭- 날아갔다.


“커헝!”


나선형으로 빙그르 돌아간 단검이 사람 반만 한 개의 목에 정확하게 박혔다. 무엇도 보이지 않던 수풀 속이었다.


후각, 청각.


통틀어 직감이었다.


시각은 아무리 보고 보아도 일정 이상 익숙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치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샛노란 스파크가 어둠개의 목에 일었다. 동시에 빛이 주위로 희미하게 퍼져나갔다.


그제야 대략적으로 보였다.


단검을 하나 더 꺼내 바로 옆에 쏘았다. 콰지직! 스파크가 인다. 그리고 하나 더, 엄지로부터 마력을 주입해서.


콰직- 치지직!


“...컹!”


셋 모두 이쪽으로 쇄도해올 조짐을 보이던 놈들이었다. 지금은 목과 머리, 가슴에 정확히 단검이 꽂힌 채지만.


그대로 단명했을 터다. 단검을 뽑으러 가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천적 마법사인가 보군.”

“뭐, 그런 셈이죠.”


루드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며 여전히 따끔한 전기로 점철된 단검을 빼냈다. 어둠개의 사체엔 아직 식지 않은 흑마력이 흐르고 있었다.


남자와 말이 없다는 것만 빼면, 이후의 길도 반쯤은 순탄했다.


* * *


도착한 곳은 몇백 년은 방치된 듯한 공동묘지였다.


덧붙이자면 옛 유적이다. 영광이란 말로 무모함을 포장하는 불나방들을 위한 장소들.


겁도 없이 터벅터벅 발소리를 내는 저 남자 같은 자들을 위한 곳이기도 했다.


“조심하세요. 괜히 놈들만 불러내면 골치 아프니까.”


여태껏 마주한 들개의 머리만 십수가 더 넘는다. 머리 두 개 달린 돌연변이도 포함한다면 한 이십쯤이었다.


남자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들개를 죽이고, 어둠개를 사냥하고. 단검을 놀리며 고생하라는 모습이라도 더 보이라는 건지.


“참 시니컬하시네. 그것도 각칸인지 하는 왕이 시키신 건가?”


괜히 구시렁거리며 루드는 석관을 하나씩 둘러보는 남자를 뒤따랐다. 묘지에선 남자의 발소리만이 적막하게 퍼져나갔다.


바깥 땅의 생물은 대개 시력보다 청각이 강하다. 기척을 숨기는 건 생존에 있어 필수였다.


그의 귀가 쫑긋거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쉬익-!


곧바로 단검을 꺼내 나무 쪽으로 던졌다.


쿡!


피가 터져 나왔다. 새까맣고 진득한 피. 독수리만 한 까마귀였다.


푸드덕거리며 나무 아래로 처절하게 떨어졌다. 계절마다 뒤바뀌는 이상기후는 생물들도 미치게 했다.


가령 무리생활을 고집하는 까마귀가 피에 굶주려 홀로 사냥을 나서는 것처럼.


뿌극- 사체로 다가가 단검을 빼며 시험 삼아 마력을 주입해보았다.


치직-


손쉽게 날을 타고 드는 노란빛 전기.


“곧 몰려올 것 같은데요. 돌연변이들.”


루드가 남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사방에서 뻗쳐오는 작은 소음에 귀가 아려오고 있었다.


“걱정 마라. 찾았으니까.”


대답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반쯤 무너져 내린 듯한 영묘를 빤히 주시하던 남자는 이내 영묘로 들어섰다. 거침이 없었다. 확신에 찬 것일 수도 있다.


서둘러 함께 따라 들어선 영묘는 마치 미로 같은 곳이었다. 습함과 동시에 후덥지근함이 몸을 덮쳐오는 장소기도 했다.


“확실하군. 힘이 느껴지고 있어.”


남자의 눈빛은 걸을수록 희열에 차오르는 것 같았다.


루드도 목에 두른 두건을 코끝까지 올려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할수록 좋다. 추가금이 기본금보다 더 컸으니까. 이렇게 빨리 끝날 줄은 물론 루드도 몰랐다.


남자에게도 좋은 것이 보통 의뢰라면 실패 확률이 90%였다. 그리고 거기서 의뢰인 본인이 죽을 확률이라면 보통... 89%.


용병이 의뢰인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는 아니고 보통 자기가 무리하다 죽는 경우에 가까웠다.


남자는 그런 점에 있어서 죽지도 않고 실패의 좌절도 겪지 않아도 되니 완벽에 가까운 의뢰였다.


“소년아.”


걸음이 점차 뜸해지던 차였다. 루드가 고개를 돌렸다.


“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어떻게 생각하지?”


반들거리는 눈동자가 루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뜻밖의 물음이었다.


평소 고민이라곤 특정한 상황에서 단검을 사용할지 총을 사용할지가 전부였다. 루드가 되물었다.


“갑자기요? 그건 왜요?”

“어쩌면 네가 각칸과 어울리는 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그 터무니없이 강력하고 세고, 머리 좋고 압도적인 인물이 저랑요? 악인이긴 한데, 칭찬이죠?”


남자의 표정은 여전했다. 무표정. 시니컬. 창백하고 핏기없는.


그 모습에서 대답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 다르다면 달랐다. 쩝 소리를 내며 루드가 순순히 대답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 적어도 소를 위한 대의 희생보단 낫겠죠.”


남자는 잠시 말이 없더니 걸음을 멈추고 루드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흰색의 눈동자가 뚜렷했다.


마찬가지로 걸음을 멈춘 루드는 굳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뭐 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

“네가 그 소의 대상이 된대도, 여전히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택할 것인가?”

“제가 소가 되면 당연히 소를 위한 대의 희생을 선택하겠죠.”

“자기주의적이구나. 여타 인류가 그래왔듯이.”

“그렇죠? 아무래도.”


남자가 벽을 매만졌다. 새까만 벽이었다.


아무 말도 없이 벽을 더듬거리기 시작한 그는 이따금 눈을 찡그리다가도 입술을 벌렸다. 수도승이 의식이라도 하는 자태 같았다.


유해 보존이니 하는 거룩한 목적과는 사뭇 달랐다. 남자는 아예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 생각도 없어 보였다.


이게 과연 성스러운 유해 발굴의 일환인가 끝내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이곳은 확실히 왕의 묘지다. 그의 영혼이 이 모든 공간에 흐르고 있어.”


남자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소년아. 영혼이 짊어진 구속을 푸는 방법을 알고 있느냐?”

“구속? 봉인이요?”

“그래.”


봉인. 통상적으로 영혼 자체를 특정한 곳에 귀속하는 흑마법이었다.


“다시 영혼을 담을 그릇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사람이나 그에 준한 신체겠죠? 아무래도 흑마법이니까.”


이러다 봉인해제식까지 대신 해줘야 하나 싶었다.


그만큼 남자는 아까부터 다짜고짜 물어왔다. 주로 의뢰와 관계없이 부질없는 것들이었다.


그는 다시 의미 모를 눈빛으로 루드를 응시했다.


“소년아.”


남자가 돌벽을 쓰다듬던 손을 멈췄다.


“네?”

“이곳이 왕의 유해 그 자체였더구나. 이 영묘가 말이다.”

“그래요? 그럼, 보존인가 그건요? 다 끝난 건가?”

“아니. 보존이란 봉인된 것을 생생한 것에 도로 옮기는 행위를 뜻하지.”

“...그래서요?”

“어쩌면 맞겠구나. 네가 봉인을 푼다는 말은.”


남자는 키가 컸다. 평균 사람의 1.2배 정도 더. 길쭉하다는 것이 알맞은 표현이었다.


남자가 루드를 내려다보았다.


노란빛의 기다란 머리칼. 투박한 바깥 땅과 달리, 꽤나 앳되고 고운 얼굴.


그러면서도 몇 년을 더 굴러먹었다는 바깥 땅의 길잡이.


“...허?”


그의 두건 뒤로 입가가 비틀리는 것이 남자에겐 확연히도 보였다.


“영광으로 여겨라. 각칸의 위대한 강림, 현신의.”


현신의, 첫 제물.


“첫 제물.”


말을 끝마치기도 전이었다.


쓰다듬던 돌에서 손을 뗀 남자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


단검이 꽂혀있었다.


단검. 들개를 단칼에 죽이고 어둠개의 숨통을 끊었던 단검. 샛노란 전기가 수많게도 일었던 그 단검.


어느샌가.


이렇다 할 흑마법도 사용하기 전에.


순간 고통이 남자의 몸 전체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왼쪽 배 부근에서부터 전신까지.


“너무 간과하셨네. 약이라도 써보지 그러셨어요, 이런 멍청한 새끼야.”


허벅지에 달린 세 개의 검집.


엄지에서 타고 드는 샛노란 전기. 순수한 마력에서 응축된 그 전기.


“...끄, 끄그그극....”


쿵! 남자가 넘어졌다. 루드가 두건을 내리고 쓰러진 남자 옆에 퉤, 침을 뱉었다.


길잡이. 의뢰인.


의뢰인의 입장으로서 바깥 땅을 밟는 도시의 미치광이들은 보통 도시와 바깥 땅에서의 선이 달랐다.


생존이 관건인 곳과 질서가 관건인 곳. 그 틀부터 바깥 땅의 체계는 도시의 그것과 어울릴 수 없다.


눈 뵈는 것 없는 놈들이 바깥 땅에서만큼은 유독 겸손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 했더니, 이런 느자구 없는 새끼.”


10%인 줄 알았던 90%였던가.


루드가 꿇어앉아 단검을 뽑았다. 그러자 남자가 신음을 내며 상처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한껏 무표정이던 얼굴엔 어느새 오묘한 감정이 깃들어있었다. 쯧, 혀를 찬 루드는 도로 일어났다.


숨이 끊어지진 않았다. 그렇다고 숨을 끊지도 않을 것이다.


무지에 대한 일말의 자비였다. 신념이 극한에 달한 광신도, 자기가 세상 제일 잘난 줄 아는 수배범 또는 살인광.


모두가 이런 무지에 목숨을 버렸을 따름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루드가 단검을 단검대에 집어넣고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아까 몰려오던 돌연변이는 과연 몇이나 모였을까? 총알값이 있는 만큼 오로지 단검만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면 좋으련만....


푸그극!


등 뒤를 모조리 적셨다.


피 냄새. 순간에 풍겨오는 그 역하디역한. 그리고 끈적한 감각이었다. 벽에 점철된 검붉은 저, 피들. 무언갈 방증한 듯 거대한 굉음까지.


명확히 뒤에서였다.


루드가 찬찬히 근원지를 돌아보았다.


터진 남자의 머리. 핏자국만 덩그러니 남긴 목 위....


루드가 눈을 끔뻑 감았다가 떴다. 한 번 더. 다시 한번.


남자의 목 위엔 무언가 꾸물거리며 스며들고 있었다.


“.......”


어둠.


“...뭐야.”


그것은 살아있는 어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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