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당한 해결사가 돌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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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도과수
작품등록일 :
2024.09.09 23:19
최근연재일 :
2024.09.17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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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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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속

DUMMY

루드와 발다두르가 습격한 작업장은 제조소보단 RZ구역의 각 도시로 뻗쳐나가는 유통처에 가까웠다.


뇌파증폭제 말고도 다른 마약 주재료들이 즐비했다는 뜻이다.


루드는 별달리 챙기지 않았지만 발다두르는 그 많은 것들을 모조리 품 안에 넣었다.


이 또한 부수입이 될 것이라며.


“아무래도 망치를 잘못 쥔 것 같은데.”


그 모든 것들을 가방에서 쏟아내며 발다두르는 켄서스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무슨 소리지?”


루드가 없는 사무실이었다.


진사도에 도착하자마자 루드가 발다두르에게 미리 혼자 가 있으라며 귀띔했기 때문이다.


차후 연락을 주겠다는 말과 함께.


켄서스가 그 무모한 손을 맞잡은 이래 그들은 단순한 용병과 중개인의 관계를 뛰어넘었다.


어쩌면 건방처럼 보일 수 있는 용병의 행동에 그가 어떤 내색도 보이지 않는 이유였다.


한 팀이었다. 대어 하나만을 믿고 이제는 팀처럼 움직여야 한다.


발다두르를 함께 보낸 것도 그런 차원의 문제에 가까웠다.


“그 녀석, 완전히 또라이야. 손속에 자비가 없는데, 손속에 자비가 있어.”

“정말 재밌는 말장난이군.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말장난이 아니야. 진심이라고. 손속에 자비가 없으면서 손속에 자비가 있어.”


그런데 도리어 돌아와서 경악을 한다니.


켄서스가 주재료들 속 뇌파증폭제만 쏙쏙 종이봉투에 빼 담으며 담담하게 물었다.


“웬 흡혈귀랑 늑대인간이랑 떡치는 소리란 건 너도 잘 알지 않나?”

“그러니까, 내 말이 그 말이라고! 말도 안 돼. 겁대가리라도 상실한 것처럼 단신으로 가서 놈들을 묵사발 내는 건 그러려니 했지. 하지만 그다음은... 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발다두르가 말을 멈췄다.


그는 나름 잔뼈 굵다면 잔뼈 굵은 용병에 속했다.


단 하루 만에 태어나고 하루 만에 죽어 사라지는 용병이 대부분인 판국에, 이처럼 아예 전업으로 삼는 용병은 태반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강직했다.


혈마법사가 수혈을 자처하는 모습이라도 본 듯 얼빠진 드워프의 얼굴은 켄서스가 보기에도 이상했다.


“그래도 임무는 잘 완수하지 않았나? 이렇게, 뜻밖의 소득도 얻었고.”

“아니. 그 새끼는... 그 새끼는 내가 봤을 때, 악마다. 악마.”

“악마?”

“비유가 아니라 진짜 악마일지도 몰라. 현세를 떠도는 그런 악마. 그런 경우가 아닐는지... 혹시 우리가 악마의 소행에 박차를 가하는 거라면?”

“별 미친 소리를 하고 자빠졌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러는 거지?”


삼합회의 일당들에게 일어난 일.


꾸밈없이 얘기를 털어낸 듯한 발다두르는 제 수염을 꼬질꼬질 매만졌다. 공허하게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내 소파에 털썩 앉았다.


대강 설명을 듣자 부수적인 재료들을 매만지던 켄서스의 손도 서서히 느릿해져 가고 있었다.


“...직접, 삼합회 놈을 풀어줬단 말인가?”


의뢰 완수를 증명한답시고 거미줄 문신을 살점으로 떼온 것부터 예사롭지 않긴 했는데.


그저 식별능력이 결여된 괴짜로 보일 뿐이었지 감정마저 결여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대어가 아니라 복어였던 것인가. 상어를 낚기 위해 다다른 곳이 바다가 아니라 피바다였다면?


켄서스가 발다두르를 돌아보았다. 발다두르는 마치 선택을 따르겠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켄서스는 정작 지금 와서 달라질 것은 무엇도 없고 더불어 없게 해야 함을 절실히 인지했다.


삼합회를 대놓고 척지는 의뢰는 진작에 받아들여 그 전령을 만날 차례고, 지금 와서 관계를 재고한다 한들 달라지는 건 새로운 미치광이의 눈밖에 든다는 사실뿐.


불구덩이에 뛰어든 켄서스는 현 상황에서 부가될 손익만을 계산했다.


도박판에 올라섰고 이미 그는 패가 되었다. 블랙잭의 에이스. 1이 될지 11이 될지는 누구도 모를 사실이다.


“지켜보는 것으로 하지... 어차피 RZ구역은 떠나면 돼.”


켄서스의 읊조림에 발다두르는 흐으음, 한숨을 길게 뺐다.


“한 망치를 쥔 이상?”


* * *


루드가 도착한 곳은 예홍룡이었다. 정확히는 1층의 클럽. 음악과 소음이 한데 모여 북적이는 곳.


그 며칠 사이 생명이 몇이나 죽었으나 진사도는 그저 태평하기만 했다.


언제나처럼 번쩍거리는 홍등 아래 모두가 향락을 좇을 뿐이다.


RZ구역에서 활동한 일은 손에 꼽히나, 이런 사태가 된 계기를 파악하는 것은 사회구조를 꿰뚫는 데에도 도움이 있었다.


‘진사도가 거의 방치된 이유. 아무래도 정부의 부재 탓이 크겠지.’


RZ구역이라면 양지든 음지든 삼합회가 꼭 관여되는 이유.


본래 구역을 담당하던 정부 ‘청’이 한순간에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크게 밝혀진 바는 없지만 지배적인 이견은 바깥 땅과 가장 가까이 붙어있는 만큼 바깥 땅의 정토를 위하다가 폭삭 망했다는 것.


그 결과 연방정부의 개입이 청을 대부분 대체했으며, 삼합회는 기회를 틈타 기업화와 동시에 세를 넓혀갔다.


물론 루드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지금은 체념한 주민이 훨씬 많았다.


떠나간 주민은 그보다 더 많았고.


“네가 사는 거겠지?”


루드가 갈라키스가 가져온 술병을 눈에 담으며 물었다.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한 갈라키스는 그저 루드 앞에 앉을 뿐이었다.


“참 시니컬하네. 갈라키스, 난 우리의 관계가 회생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아.”

“.......”

“물론 조금 폭력적인 면모를 보이긴 했지만... 오히려 약소한 수준 아닌가? 술을 따를 수 있는 팔이 두 개나 붙어있는데.”


그녀는 괜스레 주위를 훑어보더니 마지못해 마개를 땄다.


병당 4만 크레딧은 웃돌 잘난 술이 꼴꼴꼴 하고 조각된 위스키 잔에 흘러들었다. 갈라키스의 손 위에서였다.


“오, 땡큐. 굳이 따라달라는 말은 아니었지만.”


입에 잔을 갖다 대자 심상마저 자극하는 향미가 콧속을 찔렀다.


한입 머금으며 루드는 갈라키스에게 손짓했다. 너도 먹으라고. 그러나 갈라키스는 가만있었다.


“일 얘기로 빠르게 넘어가자는 건가? 그래, 그럼 진행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데?”

“...음.”


며칠 만에 이렇다 할 성과를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그 계획은 루드도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갈라키스가 입에 술을 대는 일은 없다. 오직 루드만이 술을 홀짝였다.


그처럼 현 갈라키스와 이어진 관계는 동업도 아니고 상호보완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저 죗값을 가장한 종속이었다.


그걸 갈라키스는 순순히 받아들인 것이고.


그렇다면 그 종속이란 것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과연 일전처럼 그녀가 발등 찍는 도끼로 변모하는 일은 평생 없을까?


루드는 위스키를 마시며 갈라키스를 쳐다보았다.


스스럼이 없다는 듯 시선을 피하거나 하는 일은 있지 않았다. 혀를 파고드는 불맛만이 약하게 감돌 뿐.


“아직 뭔가 이뤄낸 결과는 없어. 그러니까... 정세가 온전치 않아서.”

“계획은 있을 거 아니야? 어떻게 닿게 할 건데?”

“지금 가장 설득력 있는 방법은 삼합회의 연줄을 이용하는 거야. 마약 운반이랑 자금세탁 관련해서 일을 도맡았으니까 접근엔 용이하겠지.”

“삼합회?”

“그래. 삼합회.”


골라도 하필이면 삼합회라니.


탄로에 박차를 가하는 것도 아니고, ‘각칸’이 아닌 ‘루드’의 입장으로서 그들과 가까이 지낼 순 없다.


“다른 방법은?”

“놈들이 아니면 꽤 크게 돌아가야 할 수도 있어.”

“어느 정도로?”


갈라키스가 잠시 말을 멈췄다.


시선이 싸늘하게 가라앉는 것이 찰나의 순간이지만 느껴졌다.


“루... 아니, 각칸. 난 RZ구역에 발을 들인 이후로 대부분의 힘을 잃었어. 기업의뢰 중개나 정보 탈취 쪽은 손 뗀 지 오래지.”


실제로 그렇기도 했지만 요지는 그런 게 아니었다.


루드가 고개를 돌려 붉은 연기가 흐르는 듯한 클럽 내부를 둘러보았다.


다시 그가 갈라키스를 돌아볼 때, 그녀의 입술은 보일 듯 안 보일 듯 달싹이고 있었다.


마치 어떤 말이라도 더 내뱉으려는 듯이.


유추해볼까. ‘삼합회는 안 돼?’나 ‘다른 방법을 더 모색해볼까?’ 따위겠지. 그리고 그건 대개 추궁의 형태였다.


“.......”


지금은 이빨이 다 빠져 보여도 그녀 역시 한자리를 굳건히 취하던 인물이다.


곧이곧대로 대답하지 않고 배배 꼬며 말을 늘리지 않는 것.


개수작이었다.


자연스레 또 다른 질문을 유도하고 있다. 가령 산업 스파이, 기업 간 정보 거래와 중개 등 범죄조직과 관련되지 않은 것들.


굳이 삼합회와 연관된 것이 아닌 손 닿는 다른 범주의 일을 거론하는 즉시, 무엇을 꺼리고 있는지 그녀는 곧바로 알아챌 터다.


팔짱을 낀 채 잠시 바닥을 내려다보던 루드는 흠 소리를 내었다.


길게 내뺀 침음이 끝나갈 때쯤이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올려 갈라키스의 두 눈을 똑똑히 응시했다.


“갈라키스.”

“응?”

“그거 알아? 이딴 도시와 다르게 바깥 땅은 참 단순무식했다는 거.”

“...갑자기?”

“그게 어느 정도냐면 들개는 그저 짖어댈 뿐이고, 돌연변이는 그저 팔을 휘적거리며 다가올 뿐이지. 의뢰자들과의 대화? 똑같아. 뭘 죽여달라, 살려달라는 말밖에 없었어.”


갈라키스는 정녕 뭘 뜻하는지 모르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까지는.


“세월이란 게 참 무서워. 결국 곧이곧대로 듣는 게 습관이 돼버렸으니까. 나도 단순무식해진 거지. 바깥 땅처럼.”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네가 지금 말하는 바는 ‘죽여달라’는 ‘살려달라’야, ‘살려달라’는 ‘죽여달라’야?”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눈동자가 순간 동요했다.


단순했다. 말 돌리지 말라는 뜻이었다. 떠보지도 말고.


갈라키스에겐 결국 두 가지 선택뿐이었다. 자존심 상하도록 죗값을 치르고 주종관계를 유지하던가, 조금이라도 반기를 들어보던가.


조금이라도 반기를 들어서, 삼합회 일당보다도 먼저 죽어보던가.


루드는 후자에 대한 결괏값을 그리 정했다. 이후는 조용히 위스키를 홀짝일 뿐이었다.


잠깐 망설이던 갈라키스는 시치미를 떼듯 대답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 하여간, 최대한 여러 방법을 채택해볼게. 이곳에서 꼭... 삼합회 놈들만 정계에 연이 있는 건 아니니까.”


루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갈라키스는 결국 종속을 택했다. 그러나 그것마저 일시적일지 항상성 있는 선택일지 모른다.


자리를 뜬 갈라키스가 남긴 것은 고요함이었다. 루드는 잔을 작게 흔들며 위스키를 마셨다. 중앙 단상엔 봉을 잡고 춤추는 여인들이 모여있었다.


“각칸.”


그때 또각거리며 테이블로 다시 돌아온 건, 갈라키스.


“...삼합회 새끼들, 어제 너에 대해서 묻고 갔어. 예홍룡에 찾아와서는.”


그건, 뜻밖의 자백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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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당한 해결사가 돌아옴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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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원칙에 입각한 협상 24.09.17 3 0 22쪽
» 종속 24.09.16 6 0 11쪽
7 도시 전체로 24.09.14 10 0 20쪽
6 중개소 24.09.13 19 0 13쪽
5 새로운 신분 24.09.12 21 0 19쪽
4 진사도(辰砂島) 24.09.11 22 0 11쪽
3 명목 24.09.10 20 0 12쪽
2 살아있는 어둠 24.09.10 26 1 17쪽
1 한 왕이 있었다 24.09.09 7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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