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당한 해결사가 돌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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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도과수
작품등록일 :
2024.09.09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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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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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영혼을 위해선 그릇이 필요하다 했다. 그 광경을 보자 어째선지 남자의 말이 떠올랐다. 흑마법, 왕, 유해와 제물.


헛소리일 것이다. 광신도의 황당무계하고도 정성스러운 헛소리.


하지만 루드는 생전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유령이 사람에게 접신했을 때도, 지옥술사가 제 몸을 희생해 악마를 현세에 소환해낼 때도, 흑마법사가 죽어 내면에 잠든 존재를 일깨울 때도.


그것들마저 이런 적은 단 한 번 없었다.


“뭔···.”


본능에 가까운 낌새를 느낀 루드가 슬슬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그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단검을 찾았다. 그렇지만 단검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도 없었다.


어둠은 불길하게도 계속해서 꾸물거렸다. 마치 연기처럼 남자의 몸을 뒤덮으면서.


뒤로 향하던 루드가 이내 완전히 등을 돌렸다. 시야 끝에서 남자의 시체가 서서히 사라져 가던 순간.


달리기 시작했다.


극심한 공포를 느끼면서.


“헉... 헉....”


공포란 감정을 느낀 적은 사실 일생에서 별로 있지 않았다.


어쩌면 어릴적부터 살아남기 위해 몸 자체에서 감정의 일편을 결여한 생존전략일 수도 있다.


지금은 아니었다. 뒤바뀌어버렸다.


경종을 울려댔다. 모든 기감이, 지금 당장 뛰쳐나가 생존하라면서.


꿉꿉한 벽, 이끼. 그다음 꿉꿉한 벽, 이끼. 또 꿉꿉한 벽과 이끼.


영묘가 미로였다. 도대체가 찾아도 찾아도 출구가 없는 미로. 도망칠수록 다시금 중앙으로 돌아오는 듯한.


그리고 이는 심히 중대한 문제였다. 점점 기분 탓만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이젠 정말 중앙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루드는 반대편에서 남자의 시체를 다시금 똑바로 마주 보았다.


허... 실소가 튀어나올 지경이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등을 돌렸다. 일말의 가감 없이.


왔던 길이었지만 도로 찾아 들어갔다. 탈출은 곧 생존과 직결되었다. 감염지대에서 돌연변이를 처리하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이치이다.


아니. 차라리 수십의 돌연변이들의 표적이 되더라도 그게 몇 배는 더 낫다 생각했다.


그때였다. 휘익, 흔들리는 랜턴.


휙.


꺼지는 불.


일정 이상 숙련되지 않던 시야. 그 시야에 빛 없는 어둠만이 가득 퍼지기 시작했다.


1초도 채 되지 않은 순간에.


까드윽-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루드가 숨을 내쉬며 서서히 발을 멈췄다.


후각, 청각.


통틀어 직감.


까드윽-


무언가 파이는 소리였다. 불경하다. 또 불길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명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겠다.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곤, 사방에서 조여오는 듯이 다가온다는 것.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까득, 까득, 까드득거리며.


루드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몸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말을 안 듣는다는 것이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숨을 고르며 벽에 기대 좌우만 설금설금 살필 뿐이었다. 그것밖엔 할 일이 없었다. 엄지에 어떻게든 마력을 불어넣으면서, 그러나 그조차 전기가 이는 일이 없었다.


그것은 까득거리는 소리가 고작 열 걸음 이내에 근접했을 시점이었다.


그리고 다섯 걸음, 네 걸음, 세 걸음 안으로 접근했을 시점.


더 가깝게 다가올수록 숨통이 조여들기 시작했다. 라이터를 켜듯 엄지를 계속해서 달싹이는 건 이제 불안에 비롯한 버릇에 가까웠다.


“.......”


시선이 몇 번을 더 움직이며 어둠 속 형체를 포착하는 순간.


그때에서야 루드는 마주했다.


“...끅.”


손마저 움직일 수 없이 탄생한 공포.


어둠 속 까마득한 어둠이 새로이 쌓여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형상이었다. 켜켜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둠 위로 어둠이 쌓인 듯한.


투명한 형상과 가까운 그것은 얼굴이랄 것이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주시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어둠은 머릿속부터 신체까지 모든 걸 꿰뚫었다. 마치 핥고 있었다.


새로운 개념과 정보를 머릿속에서 통째로 빼내 오듯이.


그러고선, 잡아먹었다.


“커억···.”


인류. 역사. 신학. 사회와 제도와 뒷골목 거리마다 자리한 작고 큰 범죄집단까지. 세계를 이루는 기업과 분열된 정부의 비밀까지....


뇌 내에 더 이상 빼 올 게 없어지자 어둠은 신체를 좀먹기 시작했다. 사방을 뒤덮은 그 어둠이었다.


까득, 까득 소리.


무엇인지 알겠다. 그제야 알았다. 어둠이 깨무는 소리였다.


그건 바로 사방도 몸도 모조리 뒤덮은 어둠이 고립된 것을 잡아먹는 소리였다.


“...끅. 끅.”


그는 상실되고 있었다. 목숨보다도 값진 무언가를.


죽는다. 잡아먹힌다. 아니, 없어진다... 어둠에 잡아먹힌 채 그 자체로 소멸당할 것이다.


여타 범인(凡人)처럼 죽는 것이다. 그간 칼로 찌르고 총알을 박았던 생물들처럼 영락없이 고꾸라지는 것이다.


존재 자체가 하찮게 사멸되는 것이다.


그 순간.


그리 받아들였기에 그 순간. 루드의 입술이 부르르 떨려왔다. 필사였다. 한순간에 뒤바뀐 생존전략.


살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살아나가는 것만이 오직 운명이었다.


벽과 벽을 밀어내듯 벌려낸 입술 사이. 공포 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한 단계씩 그렇게.


“씨, 씨, 씨발, 씨발....”


까득... 하던 소리.


“씨, 발, 주, 죽을 것, 같냐아... 내가....”


까드윽... 하는 소리.


멈추었다.


어둠이 의아하게 보았다. 좀먹는 것이 아니다. 마치 물에 빠진 개미가 발버둥 치는 것을 보듯 순수한 호기심이 어린 시선이었다.


투득- 툭-


벽에 필사로 비벼대 장갑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필사로 움직였다. 손가락 하나하나의 감각이 필사로 제 주인을 찾아왔다.


입에서 목, 목에서 어깨. 어깨에서 손, 손에서 다리.


“으, 끅, 끄윽....”


그 끝에 조여드는 숨통까지.


“...허억, 학! 흐윽, 씁!”


간신히 벽을 붙잡았다. 양옆과 저 끝으로 이어진 통로를 보았다. 루드가 그 속에 잠긴 어둠을 차근차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거센 돌풍이라도 지나는 듯 몸이 무거웠다. 그러나 움직여주는 것만으로도 천운이었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그리고 세 발자국.


털썩-


쿵!


공교롭다··· 쓰러진 묫자리가 남자의 바로 옆이었으므로.


목 아래로 터지듯이 뿜어진 피는 여전히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곧 굳을 듯하다.


“시, 발....”


어둠이 다시금 몸체를 뒤덮는다. 그러나 이불과 같았다. 머릿속에서 조율한 합리화였다. 그것은, 이제 잠자코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평안하기만 했다.


루드가 두 눈을 감았다.


어쩌면 명목(瞑目)이었다.


* * *


목이 시원했다. 덩달아 아팠다. 극도로 차가운 것을 삼킨 기분이었다.


참 오래간만에 꿈을 꾸었다. 이상한 의뢰를 받는 꿈. 빌어먹게도 바깥 땅이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무대였다.


루드는 눈을 떴다.


어둠. 흑마법. 연합. 옛 전설. 그리고... 각칸.


꿈이 아니었다. 차디찬 바람을 스치고 지나는 감각이 버젓이 말해주었다.


그가 눈을 뜬 곳은 공동묘지였다. 기억 속의 영묘가 아니었다. 애당초 영묘는 없었다. 그저 작은 석관들만이 존재할 뿐.


“큭, 퉤....”


관절마다 저린 몸을 가까스로 일으켜 세웠다. 뱉어낸 침에서 진득한 피가 섞여 나왔다.


이상한 일을 구태여 계산하고 싶지 않았다. 루드는 단순 주변을 둘러보았다. 공동묘지, 굽이진 나뭇가지들, 그리고... 주변에 죽어있는 삼십몇의 돌연변이들.


어쩌면 아직도 꿈속에 잠긴 듯한 감각이라 겸허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이게 나았다. 과부하로 치닫는 머리는 나중에 가서 겪는 게 백분 좋을 것이다.


루드는 장총을 어깨에서 풀었다. 지팡이 삼아 한 걸음씩 걸어나갔다. 어둠만이 서린 차가운 길가에는 들개와 어둠개가 떼로 죽어있었다.


떼였다. 마치 무언가에 도망치는 듯하던 수많은 떼거리.


‘...무언가에, 도망치는....’


불안한 기운이 순식간에 몸 모든 곳을 뒤덮었다.


불안한 기운.


그것은 청각과 후각처럼 생존에 있어 필수와 가까웠다. 기르고 싶다고 길러지는 것은 아니었다. 불행을 겪을 때마다 절로 커지는 법이다.


그리 커진 불길함은 예견하고 있었다. 그건 불안감이었다.


두근, 두근-


심장이 뛰는 이유는 무엇인가.


각칸이란 자가 있다 했다. 왕이었다. 흑마법의 시초자였으며, 유일하게 생의 최정점에 군림할 수 있던 인물.


남자가 그러했다. 영묘. 현신. 제물의 첫 희생. 각칸의 위대한 강림.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뛰는 이유가 있었다. 계산하고 싶지 않아도 모든 게 계산되었다. 과부하로 치닫는 머리를 이렇게나 일찍이 받아들인다.


불안감에 의해서였다. 불안에 의해서, 불길에 의해서.


루드는 촌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바깥 땅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리고 떼였다.


시체 떼거리. 어둠 아래 짙은 얼굴들이 빛 하나 없이 하늘만을 올려다보고 있는. 무표정. 정말 무엇도 그려지지 않은 그 표정들로.


그중 한 시체는 무엇보다도 아리땁다. 걸걸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루드가 무릎을 꿇었다.


드르륵- 탁-


장총이 옆으로 쓰러졌다. 반-엘프. 그녀는 눈도 채 감지 못하고서 시체가 되어있었다.


완전한 겁에 질린 채. 마치 둘러싸인 사냥개들 속 고립이라도 되었던 듯.


두근거린다.


두근거리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맥박에 머리가 둥둥 울렸다. 난생 이런 적은 처음이다.


눈앞의 것들이 선명해지기 시작한 건 관절이 하나둘 쑤셔오고서였다.


이 모든 것은 꿈이 아니었다. 진실이었다. 현실이었고. 모든 것이 결국 현실임을 입증해주는 꼴이었다.


진실.


현실....


“...각칸.”


피가 메마른 입술에서 사막처럼 바싹한 소리가 고요히 새 나왔다.


“각칸... 각칸.”


세카리. 엘프어로 카타나라는 뜻.


천성이 싸움꾼이었다. 몇 년 전 도시에서 추방당한 전적이 있고, 태생은 고아. 피부는 매끄러울 따름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 없게도.


루드는 그녀를 내려놓았다.


대신 두 손을 펼쳤다. 현실이기에 선명하다. 현실이기에 몸 곳곳이 칼로 긁힌 듯 아려왔다.


그렇다면 지금 사방에 깔린 이 수많은 어둠도··· 현실이기에 포근한 것일까.


어둠. 암흑. 불경한 것... 불길한 것.


어째선가 부정적인 단어들이 꿀물을 흘리듯 점점 달콤하게 다가왔다. 머릿속에 그 개념을 새겨넣는 것만으로도.


“세카리....”


루드가 고개를 돌렸다. 거친 숨을 따라 어둠이 움직이고 있었다.


어둠이, 본래는 괴이한 소리를 내며 신체를 좀먹어야 할 짙고 까마득한 그 어둠들이.


마치 애도를 표하듯이.


“.......”


누구는 울고 누구는 분개하면서. 어둠의 감정들이 가슴 깊은 곳으로 하나하나 전해져왔다.


그러나 루드는 그러지 않았다. 울지도 않고 분개하지도 않았다.


그는 대신 어둠 속 한 형상을 보았다. 수많은 어둠이 보여주고 있었다. 왕. 흑마법의 시초자.


짓씹듯 내뱉은 그 이름.


“각칸.”


루드가 멀찍이 고개를 올려 내다보았다.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다. 희미한 빛들이 서린 곳이었다.


“이런 뻔뻔한 개새끼가.”


각칸. 놈의 목적지는 다름 아닌 저곳, 도시.


부술 것이다. 분명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다. 명명백백 도시를 바깥촌처럼 암흑으로 뒤덮을 것이다.


누군가를 방해했다면 제 계획 또한 방해될 각오를 놈은 해야만 할 터.


루드가 일어섰다. 어차피 그에게도 머잖던 것이다. 도시로 떠날 마음가짐은 애저녁에 준비했으므로.


궁서설묘. 남자가 이야기했던 설화 속의 영웅들처럼, 그에게도 이제 별다른 방도는 존재치 않았다.


분개하지 않았다. 다만 마음속에 담아두었을 뿐이다. 세카리의 죽음을 누가 이르게 했는지.


또, 자신을 누가 죽이려 들었는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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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원칙에 입각한 협상 24.09.17 3 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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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진사도(辰砂島) 24.09.11 22 0 11쪽
» 명목 24.09.10 21 0 12쪽
2 살아있는 어둠 24.09.10 27 1 17쪽
1 한 왕이 있었다 24.09.09 7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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