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당한 해결사가 돌아옴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청포도과수
작품등록일 :
2024.09.09 23:19
최근연재일 :
2024.09.17 22:16
연재수 :
9 회
조회수 :
200
추천수 :
1
글자수 :
62,682

작성
24.09.11 12:27
조회
21
추천
0
글자
11쪽

진사도(辰砂島)

DUMMY

RZ-977구역. 바깥 땅과 가장 밀접한 도시의 끝자락.


상시 바깥의 이상기후를 차단하는 높다란 방벽은 실제로 드래곤도 넘보지 못할 것이다.


기실로도 그랬다. 방벽에 가까워질수록 새파란 LED가 눈부셨다. 저격수가 항상 지켜보고 있음을 뜻했다.


“4명. 이걸로 끝이지?”


저격수 아랜 도시의 일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도시에선 그들이 저격수 위에 있었다.


상부의 지시를 받드는 저격수들은 그 상부가 무엇에 매수당했는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털어먹을 것 없는 자들을 털어먹는 건 바깥 땅에서나 도시에서나 여전히 사악한 습성이었다.


삼합회.


그들은 바깥 땅이란 개념 자체를 획기적인 사업의 아이템으로 이해했다.


자발적으로 바깥 땅을 나서는 놈들이 수두룩한 판국이다. 당연히 반대의 수도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이 오염된 땅에서 살아남는 것도 모자라 돈까지 벌어들이는 미친놈들. 더불어 부당하게 쫓겨난 높으신 분들. 그들에겐 오롯이 고객이었다.


“4명. 끝입니다. 한 놈은 의원 아들이니 극진히 대하라더군요.”

“별 같잖은 새끼가. 의원 아들이라고? 어떻게 생겨 먹었는데?”

“하얀 머리. 저놈일 겁니다.”


삼합회 중에서도 바깥 땅을 담당하는 이들은 꽤나 높은 축에 속했다. 정부가 공인한 미치광이들을 상대하는 과업은 일개 졸개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대장은 의원의 아들이라는 자를 유심히 지켜보다가 명령했다.


“나머지 놈들이나 봐라. 저년은 내가 먼저 데려갈 테니까.”

“말씀드리는데 어떤 위해도 가하면 안 됩니다. 위에서 직접 지시했습니다.”

“알겠어, 샤꽈 새끼야.”


하얀 머리. 방탕이란 개념이 현실로서 구상되어 만들어진 듯한 얼굴. 널따란 키, 그 폼과 자태까지.


대장은 그를 매섭게 노려보다가 손짓했다.


“이리로 와라.”


시선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던 아들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다가갔다. 이자가 고개 숙이게 했던 도시의 무지렁이만큼이나 그는 세상이 제 것 같을 것이다.


감히 악마를 소환해 바깥 땅에 추방당했음에도 저처럼 위신이 꺾이지 않는 이유.


간단했다. 날 때부터 연이란 특권을 쥐었으니까.


“네가 의원 아들이지?”

“그런데요.”


대장은 딸을 개인 차에 태웠다. 본래라면 호송차에 태웠을 것이지만 아들은 당연한 처사인 듯이 창문을 열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시의원이 아버지더군.”

“뭐, 그렇죠.”

“지옥마법 때문에 추방된 것 같던데. 딱히 손을 댄 이유라도 있나?”

“굳이 말해야 하나?”


아들이 고개를 돌려 다소 섬찟하게 대장을 쳐다보았다. 대장은 웃어 보였다. 빠진 앞니 하나가 입안의 속살을 드러냈다.


“웃긴 새끼.”


그는 이내 앞을 바라보았다. 톡, 톡톡. 거슬리게 핸들을 손가락 몇 개로 두드리면서.


엄지와 검지, 중지 중간에 한자가 문신으로 새겨져 있었다. 죽일 살(殺), 멸할 멸(滅), 마지막은 역설적으로 지킬 수(守).


아들은 일부러 달달 다리를 떨었다. 노골적이고도 기척이 온 곳에 느껴지도록.


대장이 아들을 빤히 바라본 것은 머잖은 일이었다.


“이봐.”

“응?”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나 보군. 그렇지?”


픽 조소를 흘리며 대응하려던 순간이었다. 대장이 아들의 뒷목을 낚아챘다.


쾅!


대시보드에 그대로 머리를 박았다. 으윽! 신음을 내는 소리와 동시 대장의 뒷주머니에서 철컥거리는 소리가 났다.


총을 꺼낸 것이다. 권총이었다. 마탄총이 판치는 판에서도 가장 원초적인, 그 권총.


차갑고도 섬뜩한 감각이 아들의 귀 뒤에 어렸다. 딱, 딱딱! 거슬리게 두드렸다.


총열은 주인의 명에 따라 탄환이 발사되기를 고대할 따름이었다.


“이 개새끼가 우리를 지바로 보는구나. 애비가 그렇게 가르치던?”

“너, 너 우리 아버지가 누군지...!”

“별 같잖은 놈들이 꺼내달라고 웽웽웽.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야, 네 애비는 손가락만 까딱해도 죽일 수 있어. 네 하찮은 몸뚱이도, 네가 소환했다는 그 붉은 악마조차도.”

“이 새끼가 감히!”

“이딴 최전선에서 좆뺑이나 치는 우리는 너 같은 애송이도, 네 애비도 무서워하지 않아. 다만 두려운 건 수틀린 길잡이들뿐이지. 저 어둠 속에서도 지긋하게 살아남는 미친 새끼들.”


대장이 아들의 흰 머리칼을 쥐고 억세게 들어 올렸다. 덜덜 떨리는 그의 눈빛이 대장의 눈과 맞닿았다.


“그런데 그런 놈들조차 여기선 모두가 얌전해. 왜? 후환이 두려우니까.”


그 누가 삼합회를 적대할 수 있겠는가?


현세는 주변의 쓰레기들과 사소한 파벌싸움을 벌이는 중이라지만, 그 위상에 있어 변함은 무엇도 없다.


외려 싸움이 늘어지기 시작하면서 널리 알려진 극악무도함에 치를 떨 뿐이었다.

RZ-977을 포함한 모든 RZ구역. 삼합회의 검은손은 멀고도 넓었다.


의원 따윈 하수구의 잘게 썰린 쥐의 먹잇감으로도 둔갑시킬 수 있다. 그게 삼합회였다. 단순 도시와 바깥 땅 사이의 조달자뿐 아니라.


아들의 눈이 그제서야 겁먹은 듯 움츠렸다. 대장은 총열을 아들의 이마에 두드리며 말을 끝맺었다.


“그러니까 다신 눈에 띄지 마라. 세상은 네놈이 생각하는 것처럼 녹록지....”


꽝!


끄드드드득-


정확히는 절로 끝맺어진 것이다.


차내에 퍼진 또 다른 소리 탓에.


첫째는 탄환이 자동방어체계에 의해 생성된 마력방어막을 꿰뚫는 소리였고, 둘째는 손상된 부분을 체계로써 재가동하는 소리.


대장이 뒤를 돌아보았다.


꽈아앙!


푸스스-


첫째는 마찬가지로 탄환이 방어막을 꿰뚫는 소리였고, 둘째는 방어막이 완전히 박살나는 소리였다.


“뭐야, 씨....”


뿌드드득!


탄환이 대장의 머리를 그대로 꿰뚫었다. 그저 그런 소리일 뿐이었다.


피가 튀었다. 아들의 크게 뜨인 눈 아래, 그리고 권총을 집은 손등 위에.


살, 멸, 그중 기묘하게도 피가 가린 것은 오직 지킬 수.


“어, 어어....”


아들이 상황 판단을 마친 건 뒤늦은 시각이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문 밖, 그리고 탄환이 날아들었던 그 뒤까지.


깨진 창문. 흥건한 피. 도시에서부터 그 끝까지, 바깥 땅을 맞닿는 도로의 바닥이 모두 새빨갛다.


중점은 깔끔하게 경비만 살해했다는 것. 삼합회의 일원부터 몇 층 높이에서 떨어졌는지 모르는 저격수까지....


터벅-


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터벅, 터벅, 터벅.


가까워진다. 걸음은 일정했다. 태평하게 느껴질 정도로.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그 섬뜩한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공포도 가중되고 있었다. 저도 모를 사이였다.


“...끕!”


창문에 누군가 머리를 들이밀었다.


남자였다. 이상스럽게도 이 유혈 사태와는 사뭇 거리가 멀어 보이는.


노란빛의 머리칼, 눈동자. 날카로운 인상에 많아 봐야 이십 대 초일 것 같은 앳되고 하얀 남성. 어깨에 멘 총대를 한차례 달싹이며 그가 차내를 살피고 있었다.


분명 눈을 마주쳤건만 아무런 내색도 없었다.


도리어 태연하게 운전석에 쓰러진 대장을 바닥에 끌어내릴 뿐이었다. 그러곤 탔다. 핸들을 잡고선.


부릉, 부릉-!


차는 그렇게 출발했다.


* * *


바깥 땅과 도시 사이 유독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구역은 RZ-977.


삼합회의 통제하에 이루어졌으며 그런 연유로 경비는 그리 빽빽하지 않다. 고작 저격수 예닐곱 정도.


애초에 삼합회의 개들이 경비였으니 윗선도 인재를 별로 보내지 않는 것이다.


도시에서의 삶을 염두에 두었을 땐 응당 제값을 지불하고 관문을 통과해야 하나, 지금은... 그도 상황을 제대로 몰랐다.


어둠만을 보았던 시야는 LED 아래서 전류를 만난 단검만큼이나 새롭게 깨어났다.


그저 쏘았기에 죽었을 뿐이다. 쾅, 쾅쾅, 하고.


그렇지만 루드의 근심은 지금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일개 범죄집단의 후환 따위도 물론 아니다. 루드는 마음속에 한 형상을 그리고 있었다. 어둠보다도 짙은 어둠. 통칭 암흑.


각칸이었다.


잘도 바깥촌은 박살을 내놨으면서, 정작 가장 가까운 도시의 입구인 이곳은 무엇도 해하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간 건가? 아니면, 아예 도시로 가지 않은 건가?’


그건 아니었다. 루드는 쌩쌩 내달리는 창밖의 어둠을 보았다. 어둠은 여전히 전하고 있었다.


각칸은 분명히 도시로 떠나갔다. 바깥촌을 모조리 부숴놓고선.


‘개시발 새끼.’


그의 입가가 순간에 비틀렸다. 세카리. 그 반-엘프의 헛된 죽음과 각칸의 형상이 교차되었다.


왜.


도대체 왜?


어이가 없었다. 어이가 없어서 화가 날 정도다. 덩달아 창밖의 저 어둠들도 루드의 감정에 서서히 동화되고 있었다.


분개한다. 분노한다. 누구는 저 멀찍이서 여전히 울분을 터뜨리고 있었다.


어둠과 상호작용하는 이 괴이한 능력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지금만큼은 그저 받아들일 뿐이었다.


무엇이 어떻든 간에. 지금만큼은.


“...거, 거기. 너.”


부르는 소리에 루드가 눈을 흘겼다. 조수석엔 흰 머리의 남성이 타고 있었다. 사실 아까부터.


“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그, 삼합회 놈들은? 같이 탈출하려 했던 놈들은? 저격수는... 아니, 애당초 네가 저지른 짓이 맞는 거야?”


횡설수설했다. 짐작은 몇 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호송차가 아닌 개인 차에 타고 있던 것. 유일하게 얼굴의 때깔이 좋던 것.


무엇보다도 피가 차내에 다 튈 만큼 폭력적인 상황에서 이리도 겁먹은 것.


루드가 눈을 다시 앞으로 돌렸다. 저것은 마치 돌연변이 앞에 선 민간인이었다. 늑대에게 둘러싸인 아가처럼이나 무해할 뿐이다.


그래서 물었다.


“현재 진사도(辰砂島)는 어떻지?”

“...뭐?”

“RZ구역의 수도 말이야. 보다시피 도시와 잠깐 연을 끊어서.”

“몰, 몰라. 난 CT구역에 있었어. 그딴 쓰레기 같은 동네는... 몰라.”


중간에 말을 흐리며 다소 눈치를 봤지만 순순히 대답했다.


“CT구역? 시내 한복판에 대놓고 악마를 소환한 멍청이가 추방당했다던데, 그게 네놈이었어?”

“.......”

“시의원을 아버지로 두고 있고. 성이, 라스칼빈?”

“내, 내가! 지원해줄 수 있어.”


남자의 말투가 한층 격양되었다.


“목숨만, 목숨만은 살려줘. 뭐가 필요하지? 돈? 차? 아니면, 아까 죽인 삼합회 놈들의 일을 덮어줄까?”

“덮을 수는 있고?”

“뭐? 우리 아버지는 시의원이야. 안 되는 게 없다고. 너, 너도 필요한 게 있을 거 아냐? 그렇지?”


청장이나 국장도 아니고 시의원.


이미 모종의 사건에 얽힌 이상 그 의원의 목숨도 도륙 날 것이다. 어디 하수구촌에 다짐육으로 팔려나가거나 하겠지.


루드는 남자가 더 이상 뭐라든 내버려 뒀다. 아니.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남자가 시끄럽게 연신 애걸할 무렵이었다.


끼익!


차가 섰다.


“너, 진사도는 모른다고 했지?”


남자는 다시금 눈치를 보다가 고개를 슬며시 까딱였다.


“내려, 새끼야.”


이미 떨군 차주의 시체처럼이나 불필요했다. 눈을 똑바로 마주한 그는 어떤 말도 잇지 못했다.


그렇게 다시, 도시와 바깥 땅 사이의 허허벌판 위에서 한 남자만을 두고 자동차는 출발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추방당한 해결사가 돌아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 원칙에 입각한 협상 24.09.17 3 0 22쪽
8 종속 24.09.16 5 0 11쪽
7 도시 전체로 24.09.14 10 0 20쪽
6 중개소 24.09.13 19 0 13쪽
5 새로운 신분 24.09.12 21 0 19쪽
» 진사도(辰砂島) 24.09.11 22 0 11쪽
3 명목 24.09.10 20 0 12쪽
2 살아있는 어둠 24.09.10 26 1 17쪽
1 한 왕이 있었다 24.09.09 75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