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않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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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데미워터
작품등록일 :
2024.09.10 21:34
최근연재일 :
2024.09.1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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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9.10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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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않은 선물

DUMMY


오랜만에 가지는 휴일.

늘어지게 늦잠을 잔 나의 몸은 쭉쭉 뻗어 기지개를 켜자 개운함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그에 정신 또한 맑아졌다.

맑아진 정신덕인지 무언가가 평소와 다름을 빠르게 알아차렸다.

이상함에 창으로 시선이 돌렸다.

맑은 내 정신과 다르게 창밖으로 보이는 정경은 완전히 어두워진 색감을 띄고 있었다.

어둡고 칙칙한 느낌.

꼭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그런 색채.


하지만.


분명 흐리고 흐린, 음침스럽기까지 한 채색 파노라마인데, 그 배경에 시원한 비가 함께 하자 180도 달라진 분위기와 운치로 변해 버렸다.


그래서 그런가.

갑자기 따뜻한 커피 한잔이 생각났다.

머그잔을 준비하고 커피포트에 물을 담아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흔한 커피믹스의 봉지 머리를 뜯어 내용물을 잔 안에 쏟는다.

일련의 간단한 행동으로 완성된 커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들고 창가로 가, 입으로 가져갔다.


후후~ 후릅.

따뜻한 커피 한 모금.

시원하게 내리는 빗소리.

지나가는 사람 한명 없는 한적한 바깥 풍경.

여기저기 웅덩이에 만들어진 흐릿한 빛의 반사와 물결.


자연스레 눈이 감겨지며 꼭 들리는 것만 같은 어둑한 톤의 소리와 빗소리의 하모니를 감상했다.

거기에 나의 허밍이 첨가되고 과거의 추억 한편이 편안하게 어우러지자 환상적인 오케스트라 공연장이 되어버렸다.


그동안 느꼈던 외로움과 답답함이 이 순간만큼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 없어도 열심히 살아온 나.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진 사회의 심연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나.

사랑하던 사람에게 받은 아픔.

조금씩 피폐 해져가는 나의 감정들.

그런 나에게 지금의 이 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단꿀의 시간이었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라는 말이 있다.


이 추억은 달콤한 열매와 같기도 하고 때론 고약한 냄새를 동반한 썩은 생선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추억을 되짚으면 자신도 모르는 미소를 짓기도 하고 미친 듯이 뛰는 심장과 함께하는 괴기스러운 표정이 되기도 한다.


지금 내가 이 오케스트라 연주에 넣은 추억은 이 완전 다른 양면성 중에 어떤 것일까?


사랑했던 이와의 행복했던 기억일까.

배신당하고 상처 입었던 아픔의 기억일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달콤했든 고약했든 간에 어떤 추억을 넣더라도 한편 두편이 어우러져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잔잔해졌다, 격해졌다, 경쾌하기도 했다 하며 여러 악장이 되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행복했다.

너무도 행복했다.


정신과 치료.

힐링 여행.

좋아하는 사람과의 대화.

등등.

이런 것으로만 가능하다고 얼핏 생각했던 내게 정말로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예기치 않은 선물을 받았을 때 기분을 아는 사람이면 지금의 내 마음의 크기를 조금은 알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뜩 하나의 생각이 자리를 잡고 깨닫게 되었다.


어떤 추억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악장.

어떤 악장이어도 좋게만 다가오는 기분.

여러 악장의 연주를 느끼며 결국 내가 어떤 것을 넣더라도 좋게 느껴지는 지금이 무엇 때문인지 알게 되었다.


지금의 이런 순간이 탄생한 건 어떠한 상처와 아픔과 괴로움을 경험한 삶 속에서도 자신을 버리지 않고 견뎌온 시간, 그리고 그런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작은 파문이 주변의 모든 것과 어우러져 만들어진 것임을···.

결국 모든 건 나로부터 시작한 것임을···.


모든 것은 내가 어떻게 받아드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과 나를 치료해줄 사람은 그 누군가도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

새삼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느끼게 되는 소중한 순간과 시간이다.


직접 느끼고 깨우쳐가는 지금의 나는.

그리고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의 나는.

무척 행복하다.


지금 나는 행복한 내면의 연주를 듣고 있다.


그런데···.

너무 행복해서일까.

들고 있던 머그잔 안의 커피 위로 어느새 나의 상처 한 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똑.


작은 소리와 함께 커피잔 위로 번지는 잔물결.


지금 누군가가 나를 본다면 아마 고개를 갸웃거릴 모습을 만들고 있으리라.

행복한 미소와 입꼬리가 올라간 얼굴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게 될 테니까.


한 방울, 그리고 또 한 방울.


이 한 방울 한 방울의 눈물들은 그동안 받아 왔던 나의 상처들인 듯했다.

감긴 눈에서 나온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다 턱 끝에 이르러 방울이 되어 커피잔 위로 떨어져 내릴 때마다 상처가 조금씩 아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나 자신의 치유.

정말 예기치도 못은 나 자신의 선물.


오늘 지금, 이 순간은 그동안 새겨진 상처를 치료하는 시간.


그래서···.

그러니까···.

아직 상처가 남아 있으니까···.

조금만 더···.


나 조금만 더 울어도 될까?

.

.

.


응.


이 시간이 지나면 아마도 나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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