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않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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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데미워터
작품등록일 :
2024.09.10 21:34
최근연재일 :
2024.09.11 09:26
연재수 :
6 회
조회수 :
61
추천수 :
0
글자수 :
13,196

작성
24.09.1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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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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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6쪽

그녀와 나

DUMMY


그렇게 결혼식을 파투 낸 그녀.

집에 돌아온 그녀에게 날아오는 건 위로의 말이 아니라 비난의 화살이었다.

가난한 그녀의 집과 다르게 부유했던 남자 쪽이었기에 부모님의 분노는 생각보다 컸다.

그녀의 주변 지인들도 그 남자가 어떻게 말했는지 그녀만을 탓했고 욕하고 수군댔다.


모두의 연락을 끊고 혼자 버티던 그녀.

무저갱 속에 파묻혀 지냈다.


그러다 내가 너무 보고 싶어서 무작정 찾아갔다.

멀리서나마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고.

그러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멀리서 고개 숙이고 왔기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가갈 수도 없었다.

불러 보고 싶었고 제발 자기 좀 봐달라고 말하고 싶었고 손잡아 달라고 외쳐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무슨 염치로···.

그녀는 그렇게 내 실루엣만 보고 떠났다.


그녀는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최대한 먼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래서 잡은 2번째 터전은 먼 남쪽 지방 어느 작은 도시.


상처 가득한 그녀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조금씩 스스로 치유해 나갔다.

그곳에서 만난 새로운 인연들과의 일상.

좋은 사람들과의 소소한 대화.

조금씩 살만해져 갔다.

이대로 괜찮을 듯했고 그런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지방 옛사람들의 특색을 몰랐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 집에 숟가락은 몇 개인지도 알려는 특색.

알게 된 남의 일에 꼭 누군가에게 과장되어 전달하는 특색.


상처로 가득했던 그녀에게 따뜻하게 다가오는 사람들로 인해 위안받았고,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풀게 되었다.

그런데 잠깐의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그 주변 모든 사람이 자신에 대해 다 알게 되어버린 것이다.


앞에서는 위로와 이해하는 척하더니 뒤에서는 파혼녀라 손가락질해댔고, 과장된 전달이 이어지면서 자신은 천하에 못된 년이 되어버려 마녀사냥을 당하게 되었다.


점점 강도가 심해진 사람들과 자신은 아니라고 위로하는 척 다가와 또 어떤 이야기가 있나 궁금해하는 눈빛의 위선자들.

몸만 노리고 다가오는 남자들.


경험하지 못한 최악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또다시 상처받고 너덜너덜해진 감정을 떠안고 그녀는 그곳을 떠났다.


3번째 터전은 강원도 어느 시골 마을.


그곳에선 누군가와도 접점을 만들지 않고 일도 온라인으로만 하며 지냈다.


 그런 생활이 길어질수록 대인기피증이 생겨 버렸고, 일상에서 누군가와 같이한다는 자체가 사라져 버린, 그런 삶을 살았다.

바닥까지 말라버린 감정, 의욕 없는 일과 보이지 않은 행복.

삶에 대한 미련이 사라져가던 그때.


꺼져가던 생명의 마지막 불꽃처럼 하나의 의지가 생겨났다.

불현듯 보고 싶다는 생각이···.


왜인지 몰랐지만, 이젠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랑의 시작을 주고받았던 그때의 나를 보고 싶다는 생각.

더 늦기 전에 꼭 보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다.


그 생각이 든 지 여러 날.

그런데 우연의 일치일까?

그때, 보고 싶었던 나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예기치 않은 선물처럼.



***



약속하고 이렇게 날 만났다.


끝이 난 그녀의 긴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에 작게 말하는 그녀의 독백.


“미련으로 남아있었는데 이제 다 풀게 되어서 다행이고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 미안해. 너무 미워하지 말아줘···.”


그녀의 독백에 감응되어 나는 울컥했다.

그녀는 얼마나 감정이 메말랐는지 슬프고 아픈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말했다.


나는 듣는 내내 그녀의 감춰진 표정 뒤에 숨겨진 눈을 봤다.

내가 본 그녀의 눈은 예전에 내 눈과 같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기시감의 정체도 알게 되었다.


그녀가 짓는 미소 뒤에 새겨진 씁쓸함.

평범하게 자신의 과거사를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유언을 읊으듯 독백 같은 말투.

그런 그녀에게서 과거의 내 모습이 거울처럼 비쳤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게 동정심을 원하는 게 아니다.

그저 자신이 이 세상에 살다 간 흔적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 자신을 모르고 있다.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주길 바라는 그녀의 깊고 깊은 내면의 어린 여아가, 살고 싶다고 잡아달라고 작고 작은 손을 내밀고 있음을···.


내가 그때 용기를 내어 고백했으면 어땠을까?

다시금 후회가 몰려오고 그녀 내면에 있는 어린 여아의 손을 잡아 주고 싶었다.

예전의 나였으면 바로 위로와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뜻 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건 나 자신이란 걸 안 지금은 특히···.


연민의 감정으로 내민 손은 더 큰 상처를 줄 뿐이기에.

내가 그녀에게 먼저 해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가 끝나고 그녀가 돌아가면 다시 볼 수 없을 거란걸 안다.

지금, 이 순간이 그녀에게 인생의 마지막 추억이니까.

나를 보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녀가 마지막으로 정리해야 했던 것이니까.


내가 이렇게 확신하는 건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녀의 지금 눈은 나도 했던 눈이라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


인생을 마무리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사람을 바라보는 눈.


난 안다.

정말 잘 안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내가 그녀의 사진을 보며 지었던 눈이었기에.

지금 그녀의 마음이 어떤지 너무 잘 안다.


거기다 그때의 나처럼 그녀의 눈 뒤로 심연 아래 바닥 같은 아주 깊은 곳에서 작은 자아가 외치고 있었다.


살고 싶어···.

살려줘···.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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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함께라는 건 24.09.11 9 0 4쪽
5 나의 이야기 24.09.11 8 0 5쪽
» 그녀와 나 24.09.11 9 0 6쪽
3 그녀의 이야기 24.09.10 10 0 5쪽
2 초대받지 않은 손님 24.09.10 10 0 5쪽
1 예기치 않은 선물 24.09.10 16 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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