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머리 앰흑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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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밖으로
작품등록일 :
2024.09.11 00:26
최근연재일 :
2024.09.1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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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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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 이상한 의대생 김치만 (1)

DUMMY

“자! 잔을 가득 채워서 축배를 드세나!!!”


대학을 운영하는 이사회와 교수진은 아직 명확한 결정을 내린 바 없었다. 허나 피르호 교수는 이미 모든 게 통과된 양 기분 좋게 맥주잔을 가득 채우고 하늘 높이 들었다.


“그들의 얼굴을 보았나? 하!! 진리의 편린을 엿보았는데도 그걸 감히 인정하지 못하는 무지함이란···.”


신랄하게 그들을 까내린 교수는 독일인답게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킨 후, 탕! 소리가 나게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나와 개틀링 선배는 구운 소시지를 안주로 맥주를 홀짝거리며 흥분해 고함치다시피 하며 떠드는 교수의 장단을 맞췄다.


“진실! 진리!! 논증을 통해 보아 놓고도 말한 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달라지는 그 꼬락서니하고는!! 누구는 백인에 박사학위가 있고, 누구는 어리고 유색인이니 같은 논증을 해도 가치가 다르단 말인가? 그게 진리를 탐구하는 자들이 할 소린가?”

“···감사합니다.”


맞는 말이다.


어디까지나 21세기인인 내 감성에서만.

이 시대는, 유색인과 겸상한다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시대다. 흑인을 버스에서 내쫓는다? 그게 대충 1950년대나 60년대쯤이니까 그 시대로부터 한 백 년쯤 전이다.


2024년과 1924년의 차이를 생각해 보라. 1851년과 20세기 중반이 그 정도의 차이가 난다.

아, 물론 버스도 없지만.


“그래서 더더욱 교수님이 이 ‘발견’을 출판해 주셨으면 합니다.”

“···날 도둑놈으로 만들지 말아주겠나? 제자의 업적을 도둑질하라고? 이건 자네 발견일세! 이미 알려져 있던 거라지만 그걸 엄밀하게 과학적으로 입증한 건 자네 아닌가!!”

“하지만 절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깜둥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건방지고 똑똑한 깜둥이는 더더욱 말이지요.”

“······.”


1848년의 혁명 이후, ‘불온한 사상’에 물들었다며 고국 프로이센에서 추방당하듯 탈출했다던 피르호 교수.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말이 없었다.


계몽주의와 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는 유럽에서도 급진적이라는 취급을 받던 선진 지식인이었던 그에게, 여전히 야만스런 노예제가 살아 숨 쉬는 아메리카는 낯선 듯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Veritas vos liberabit).”

“요한복음 8장 32절이군요.”

“그렇네.”


진리를 통해 자유를 얻으라!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진리를, 무지로부터의 자유를 말한 사람들은 무지한 이들에게 박해당해 왔다.


“나는 끔찍한 광경들을 많이 봐 왔네. 슐레지엔(Schlesien)을 아나?”

“아··· 대강 알 듯합니다.”


물론, 지리는 잘 모르지만 독일··· 아니, 이 시대는 프로이센 땅 어딘가가 아닐까?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곤 아련하게 회상하듯 허공을 바라보았다.


“내 고향 근처네. 아름다운 땅이지. 부유한 이들도 많았고. 하지만 그 땅에서는 끔찍한 괴질이 가난한 이들을 사냥한다네. 어째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지방 중 하나에서 가장 근면하게 일하는 이들이 그리 가난하고 질병에 시달려야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네.”


1844년의 슐레지엔 봉기, 1847-48년 슐레지엔의 티푸스 유행. 그 광경을 보기 전의 자신을, 교수는 ‘상아탑에 갇힌 장님’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상아탑을 박차고 나와 진실을 고발했더니, 저들은 나를 내쫓더군.”


예언 능력을 얻었으되, 아무도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박해받게 된 카산드라처럼. 피르호 교수는 나와 스스로를 겹쳐보는 듯했다.


“하지만··· 교수님은, 그리고 사이먼은 무기가 있지 않습니까?”


조용히 듣던 개틀링 선배가 불쑥 끼어들었다.


“지식은 무기입니다. 저는··· 솔직히 고백하자면 삼십 년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삶을 살아오는 동안 여기 있는 두 사람같이 박식한 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 듣는 동안 멍하니 듣게 되는데, 하하하하···.”

“아이고, 선배, 민망해요! 뭘 그렇게 금칠을 하시는지···.”


나는 민망함에 손을 내저으며 말렸지만, 피르호 교수는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며 껄껄 웃었다.


“날 너무 높이 평가하는군. 미스터 킴 만한 젊은이와 날 동일선상에 놓다니! 하하하하!”

“교수님!”

“아··· 들켰습니까? 으하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두 사람은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나는 어쩐지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근 이십 년간 겪어본 지독한 차별. 아부지와 어무니는 좋은 분이셨지만, 남들의 시선 전부를 막아줄래야 다 막아줄 수는 없었다.


전생에서도 삼십 년 세월 동안 가난의 설움은 겪어본 적 있어도, 입 있고 귀 있어 말하고 듣는 인간을 짐승 취급하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사람이되 사람 아닌 무엇으로 보낸 그 시간들!


“···그래서 더더욱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교수님. 교수님의 이름으로 저 발견들을 출판해 주십시오. 대신 하나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무얼 부탁하려고 그러나?”

“곧, 충분히 가까운 미래에 노예제가 폐지될 겁니다.”

“그렇게 되겠나···? 아, 물론 나머지 유럽 세계에서야 이미 노예제가 폐지되었으니, 자네 말도 일리가 있다만.”


지금은 1851년. 역사책의 연도를 잘 기억하진 못하지만, 아무리 멀어도 링컨이 취임하고 남북전쟁이 터져서 20세기가 되기 전에 노예제가 폐지된다는 정도는 안다. 그게 정확히 몇 년도인지를 모를 뿐이지.


“그 전에 저는 최대한 많은 걸 이뤄놓고 싶습니다. 바뀐 세상에서 저희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겠나?”


피르호 교수는 흥미와 감명을 동시에 느끼는 듯 했다. 내가 풀어놓은 이야기의 절반만 사실이라도 예언자 수준의 발언인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미래가 바뀔 지를 예측하고 준비한다고?


“일단,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벌어들일 방법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갑자기 숭고한 이야기를 하다가 돈 이야기가 나오자, 피르호 교수와 개틀링 선배의 표정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피부색으로 인한 차별은 21세기에도 있다.

그럼 돈이라도 있어야 날, 우리를 무시 못하지 않겠는가?


“돈···을 번단 말인가?”


지식인이자 교수다운 꼬장꼬장함으로 살짝 경멸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던 교수에게,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돈이 아닙니다.”

“그럼 어떤 돈인가?”

“아주, 무지하게, 정말 많은 돈이지요.”


* * *


‘S자목 플라스크 실험’은 결국 성공리에 끝났다. S자 목이 있으니 2주일 동안 멀쩡한 한 플라스크, 그리고 목을 제거하자 곧 쉬어버린 다른 플라스크를 본 이들은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게 모두 틀렸다고?”

“실험결과가 잘못됐겠지! 몇백 년 전부터 의사들이 공부해 온 게 모조리 틀렸을 리가 있나?”


교수들마저도 반쯤은 혼란에 빠져 문헌을 뒤지고 주위에 연락을 돌리는 등 난리를 피우는 와중, 피르호 교수는 담담히 웃으며 일침을 놓았다.


“갈레노스 이후로 천오백 년간 우리는 심장이 혈액을 순환시키는 펌프인 줄 모른 채 그저 옛 성인들이 그렇게 말했단 이유만으로 믿고 있지 않았습니까? 고작 이백 년 전의 하비와 말피기가 순환론을 입증하기 전까지 말이지요.”


그 스스로가 천연두에 걸려 본 개틀링 선배도 나를 옹호하며 여론에 호소했다.


“제너의 종두법은 또 어떻습니까? 옛날 그리스나 로마의 위대한 의사들이 그와 같은 방법을 상상한 적이나 있을까요? 최소한 비슷한 문헌조차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나 혼자서 떠들어 봤자 몰매나 안 맞으면 다행이었겠지만, 무려 독일의 명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피르호 교수와 집안에 돈 좀 있고 두루두루 사람들과 친한 개틀링 선배가 적극적으로 나서자 사람들의 의견도 점점 ‘가능성을 고려는 해 보자’쪽으로 기울었다.


“···그래서 어찌 해보잔 말입니까?”

“킴의 주장에 따르면 병동과 시술기구들, 그리고 심지어 우리 몸에도 들끓는 아주 작은 미세 입자들이 병을 일으킨다지 않습니까? 그의 말대로 했을 때 병이 줄어드는지를 보면 되겠지요.”

“난 깜둥이의 치료법을 내 환자에 쓸 생각 없소!”


몇몇 교수들은 벌컥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나 또 호기심 많거나, 진짜 이게 새로운 발견인지 긴가민가한 이들은 자리를 지키고 피르호 교수를 응시했다.


교수가 신호를 주자, 나는 개틀링 선배와 뚝딱뚝딱 만들어 온 커다란 통을 쾅.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건 뭐요?”

“예! 이건 바로 ‘멸균 소독기(autoclave)’입니다.”


개틀링 선배는 다시 긴가민가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교수들은 반대로 뭔가 신기해보이는 쇳덩어리의 모습에 오― 하는 표정이 되었지만.


“이건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이 통 안에 각종 도구들을 넣고 가열을 하면 됩니다. 높은 온도와 압력으로 병균을 죽여버리는 거지요.”


사실은 그냥 압력솥이다. 아니, 현대의 오토클레이브도 사실 압력솥과 다를게 없다. 120~130도의 증기로 대상을 쪄 버리는 도구임은 동일하니까.


작은 증기구멍에 달린 무게추가 물의 끓는점을 120도로 만드는 2기압 압력을 구현할 수 있도록 측정해 달아놓았을 뿐. 이미 압력솥이 나온 세상에 별달리 새로울 것도 없었다. 아, 위로 열리냐 옆으로 열리냐 정도의 차이가 있으려나?


허나 이걸 ‘살균’에 사용한다는 개념은 새롭다. 그리고 나는 다른 하나를 꺼내 강단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석탄산의 희석 용액입니다. 열 말고도 몇몇 화학 약품들은 균을 죽일 수 있습니다. 이걸로 환부를 소독하면 패혈증(敗血症), 혹은 피부의 염증 등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이미 석탄산, 즉 페놀(phenol)은 콜타르에서 추출하는 형태로 분리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위험하기는 해도 강력한 소독제로 사용할 만했다.


“이 ‘소독법’을 사용하여 병동을 운영해볼 것을 여러 교수님들께, 특히 외과의분들께 제안드립니다.”


웅성웅성. 피르호 교수의 발언에, 남아 있던, 상대적으로 호의적인 교수들마저도 꺼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허나 한 구석에서 젊은 사람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예전에 얼핏 읽기로, 산욕열을 예방하는데 손 씻기가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만··· 관련이 있습니까?”

“예. 손을 씻는 것 만으로도 상당한 수의 병균을 줄일 수 있습니다. 물론 더러운 물이냐, 깨끗한 물이냐의 차이는 있겠지만요.”

“존스 교수! 자네 환자들에게 저 말도 안 되는 짓을 할 셈인가?”


존스 교수는 나이든 선임 교수들의 호통에 어물거리면서도, 끝끝내 대답을 했다.


“저희 누님이 이 병원에서 산욕열로 사망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산파에게 갔으면 죽지 않았을 거라 하셨지만···.”

“그러고 보니 민간요법에서는 출산 시 뜨거운 물과 깨끗한 손을 중요시한다고 하기는 한다오.”


제 누이가 죽었단 말에, 호통을 친 교수는 인상을 구기면서도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또 한 명이 거들자, 좌중은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늙수그레한 교수 하나가 끼어들어 제안을 하나 던졌다.


“그럼 이렇게 해 보는건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의 환자에게 직접 저 덜 검증된 방법을 사용하는 게 꺼려진다면··· 노예들을 몇 명, 돈을 주고 데려옵시다. 만삭의 노예 임산부 열 명씩 두 패를 두고···.”

“!!!”


이런 씹, 뭐라고?


“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콜린스 교수님. 만약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이··· 사이먼 킴이라는 친구가 우리 의과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은 걸로 보아도 되겠습니까?”


나는 사실 ‘노예를 사와서 실험해보자’ 라는 발상을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피르호 교수님이나, 개틀링 선배도 마찬가지였는지 경악으로 입을 쩍 벌린 채였고.


허나 피르호 교수는 빠르게 다시 이성을 찾고, 콜린스 교수의 말에 끼어들어 대담한 제안을 내놓기까지 했다.


그리고 피르호 교수가 던진 돌덩이로 인한 파장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 작성자
    Lv.80 공포의머왕
    작성일
    24.09.16 18:39
    No. 1

    와 임상실험이 아니라 노예로 인체실험이라니 과연 혐성국의 핏줄이 진한 WASP! 내 상상을 초월했다...;;;;

    찬성: 5 | 반대: 0

  • 작성자
    Lv.78 와타리
    작성일
    24.09.16 18:39
    No. 2

    노예로 실험해서 검증한다니 역시 미합 중국 ㄷㄷㄷ

    찬성: 4 | 반대: 0

  • 작성자
    Lv.60 닝겐상
    작성일
    24.09.16 20:36
    No. 3

    흑인 앞에서 노예 사오자고 하네 진자 시벌 말이 안나온다ㅋㅋㅋㅋㅋ

    찬성: 4 | 반대: 0

  • 작성자
    Lv.58 k7******..
    작성일
    24.09.16 22:24
    No. 4

    충격이다 이렇게 정상적인 작품이 나오다니
    어떤작품 시대적 감수성 전혀 고려 안함
    한국 헬 이라고 하는 분들게
    남아공 가라
    납치 강도 17분 에 한명씩 살해 당하는
    전국민 못먹어 자동 다이어트 되는 나라 가볼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1 to******
    작성일
    24.09.17 09:59
    No. 5

    굳이 흑인설정이 필요한 이유가 있음?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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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002. 이상한 의대생 김치만 (2) +7 24.09.17 310 25 12쪽
» 002. 이상한 의대생 김치만 (1) +5 24.09.16 335 29 12쪽
8 001. 검은 머리 김치만 (7) +5 24.09.15 343 23 13쪽
7 001. 검은 머리 김치만 (6) +1 24.09.14 356 25 12쪽
6 001. 검은 머리 김치만 (5) +6 24.09.13 373 29 11쪽
5 001. 검은 머리 김치만 (4) +6 24.09.12 408 31 12쪽
4 001. 검은 머리 김치만 (3) +2 24.09.11 434 28 13쪽
3 001. 검은 머리 김치만 (2) +1 24.09.11 416 28 15쪽
2 001. 검은 머리 김치만 (1) +3 24.09.11 529 26 12쪽
1 000 프롤로그 +4 24.09.11 576 31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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