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교수님이 지도하는 서로마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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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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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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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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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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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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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벤나 전투 - 4

DUMMY

이제 오도아케르가 이끄는 반군은 라벤나 성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상태.

나는 작전회의에서 모두를 모아두고 이야기했다.



-야습을 한다.


-야..야습 말씀이십니까?


-그래.



내가 야습을 한다는 말에, 제장들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우리는 32000 VS 7000의 소수이다.

병법에도 나와 있듯이, 소수의 병력을 성에 기대서 싸우는 것이 더 좋다.

수성자의 입장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모두들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일까?

내가 내뱉은 야습이라는 단어에 모두들 표정이 의미심장하게 변하고 있었다.


모두들 내가 야습이라는 말을 꺼내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병대장 파울루스는 대놓고 아연실색한 표정을 하고 있었으며,

근위군단장 콘스탄티누스는 넋이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보병대장 킬데리크는 흐음... 하고 턱을 괴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 밑의 장교들도 전부 회의적인 표정으로, 표정 관리가 잘 되지 않고 있었다.

병법을 알 것 같지 않은 17살짜리 애송이 황제가 아군보다 5배가량은 많은

적을 상대로, 뜬금없이 야습을 한다고 하니, 어떤 장교가 좋게 생각할까.


단 두 사람만 빼고 말이다. 그들은,

훈족 용병단의 리더를 맡고 있는 여전사 슈리와 동고트족 왕자인 테오도릭이었다.

슈리는 야습을 한다는 말에 오호. 하고 재미있겠다는 표정을 얼굴 한가득 짓고 있었으며,

테오도릭은 그거, 좋구만.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안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로마군과,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것을 즐기는

이민족의 차이일까. 아니면 단순히 이들의 성격 차이일까. 알 수는 없다.

내가 지금 해야 할 것은, 야습의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 반응이 나올 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수가 적은데, 적은 많으니 말입니다.


-그럼 폐하께서는 어떠하신 이유로 야습을 지시하신 겁니까? 적은 오도아케르입니다.

오도아케르는 우리 서로마의 사령관 중 한명으로서 많은 전공을 세운 자입니다.

그런 자가 단순 야습을 대응조차 못 할 리 없습니다.


-단순 야습일까요. 과연?


-예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의 모두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저 작전없는 단순한 야습이라면 당연히 자살행 지름길일 수밖에 없다.

적인 오도아케르는 잔뼈가 굵은 역전의 용사이다. 당연히 생각없는 야습은

그에게 통하지 않을테고, 우리의 명을 재촉할 뿐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없이 야습을 이야기하진 않았다.

나도 큰 전쟁을 겪어 본 사람이며, 군대에 있을 때 병사로 시작해서

하사관을 거쳐서 대위까지 올라가서 전역한 사람이다. 아마 이들이 겪고 있는

전쟁보다 더 참혹했을 전쟁일테고 말이다..



-폐하! 폐하!! 전령이 도착했습니다!!



역시. 이때쯤 오는군.

아침에 보낸 정찰병들이 지금 복귀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오도아케르 군을 몰래 미행하면서, 오도아케르 군이 어디쯤 올 지,

최종 숙영지는 어디인지, 그리고 이곳 근처에 와서 진을 펼친 다음 다음날에

전투를 시작할 것 같은지, 아니면 이곳에 좀 떨어진 곳에 진을 치고 다음날 아침에

몰려올 것 같은지 예측하기 위해 정찰을 지시하였다. 보낸 정찰병은 총 3명.

그들에게는 라벤나 성 안에 있는 모든 말 중 제일 빠른 말이 대여되었었다.


나는 전령이 도착했다는 소리를 듣고, 전령을 이곳으로 모두 데리고 오라고 이야기 하였다.

시종이 잠시 나가 전령들에게 들어오라는 말을 하자, 온몸이 땀 범벅으로 뒤덮인 전령 세명이

빨갛게 상기된 볼을 하고 들어온다.



-그래. 적의 동태는 어떠한가?



나의 물음에, 한 쪽 무릎을 내 앞에 꿇고 대기했던 전령들 중, 제일 가운데에 있던 자가 입을 열었다.





- 예. 폐하. 적은 이곳 근교, 도보로 약 2시간 정도 되는 거리에 진을 쳤습니다.

그 거리에 진을 친 것을 보니, 가까운 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휴식을 취한 다음

내일 아침 일찍 이곳 라벤나 성으로 공격을 개시할 예정인 듯 합니다.



-그렇군. 예상대로로군. 그렇다면 적의 공성기 준비는 어떠한가?



-예. 공성 망치가 여러 대 있고, 공성 사다리와 밧줄이 상당히 많이 보였습니다.

급하게 부랴부랴 공격해온 까닭인지, 공성탑과 사다리차는 따로 보이지 않습니다.







역시. 오도아케르는 로마 시에서 오레스테스를 베고 바로 이곳으로 최소의 준비를 하고

달려온 것이다. 오레스테스가 잡혀 죽었다는 소리가 라벤나에 닿자마자 공격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실제 역사대로라면, 오레스테스가 패사한 후, 그 소식과 오도아케르가 라벤나 성으로

진격하고 있다는 사실이 거의 비슷하게 전달되고, 아 소식을 들은 파울루스가 성급하게

수도방위군을 데리고 나갔다가 오도아케르에게 패배하였기 때문에 허망하게 성문이

열려버린 것이다.


나는 예전부터 이 상황에 의문이 들고 있었다. 라벤나 성은 분명히 호노리우스 황제조차도

믿고 있는 불후의 요새인데, 로마에서 오레스테스를 잡아 죽이고 공성장치도 제대로 된 것이

없는 오도아케르 군에게 왜 맥없이 항복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제 퍼즐이

맞추어 진 것이다.



-그렇다면 놈들은 지금쯤 진을 치고 휴식중이겠군.


-맞습니다. 황제폐하. 적들은 우리의 야습을 대비하였는지, 애매한 거리에 진을 치고

전면 휴식 중입니다.



대놓고 휴식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수적인 우세와 질적인 우위 때문일 것이다.

오도아케르의 군은 오도아케르가 직접 이끄는 그의 부족인 스퀴리족 출신의

로마군과 포에데라티(외국인 용병)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서로마의 사령관이었던

그와 함께 오랜 세월 전장을 다닌 만큼, 그의 직속 병력들 역시 상당히 강력한 이들.

게다가 라벤나 성에서 긁어모은 7천의 병력보다 훨씬 많은 수이다.


질도 양도 다 많은데다 경험까지 많으니, 야습을 당해도 능히 물리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제장들은 나에게 야습 소리를 듣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 역시 진짜 현대전을 2 번이나 거쳐왔고,(태평양 전쟁, 한국전쟁)

작전지휘부에 있었으며, 112년의 삶을 그냥 산 것이 아니다. 오도아케르보다 나는

3배 가량이나 더 오래 산 사람이다. 거기에 로물루스의 17년의 기억까지 내 속에

들어 있으니, 나는 경험으로만 치면 130년 가량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거리에 진을 치고 휴식이라니. 자신이 어지간히 있나보군. 하긴, 우리 로마의

정예군이었던 이들이니 말이지. 우리가 당장이라도 습격해올 수 있는 거리에

배짱 좋게 진을 친 것이야말로, 그들의 자신감을 이야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하지만 나는 다르다. 야습은 강행한다.


-예에?! 폐하!



모든 장수들이 놀라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적은 정예군이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용병을 제외하면

수도를 주로 지키던 수도방위군과 신병 나부랭이 뿐이다. 그런데도 야습을

하겠다고 하는 내가 철없는 어린애처럼 보일 것이다.



-들어 보십시오. 내 계획을 지금 말씀드리겠소. 만약 내 계획을

모두 듣고도 야습이 안 될 것 같으면, 누구든지 말씀 하십시오. 그럼

야습을 취소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이렇게까지 황제가 말하는데, 듣지 않을 수 있을까.

장수들은 모두 모여서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럼....





약 30분 후.




-자. 이게 제 계획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내가 설명을 마치고 모두의 의견을 묻자, 모두들 아까와 달리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까는 내가 철없이 야습을 기획한 줄 알았겠지만,

나에게 야습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난 뒤에는 모두 태도가 달라져

있었다.



-오...폐하. 이거 진짜 가능성 있겠습니다. 스스로 생각하신 겁니까?



나를 쳐다보는 파울루스의 얼굴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히 느껴질

정도였다. 얘가 어디서 그런 것을 배웠을가? 하는 의문감과, 얘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는 대견함, 대단함이 함께 내포되어 있는 표정이었다.

나의 계획은, 그의 칼자국 난 얼굴이 상기되어 붉게 물들게 할 정도였다.

오랜 세월동안 전장에서 활동했던 기병대장의 얼굴에, 아무 운동 없이

식은땀을 흐르게 할 정도의 계획일 줄은 몰랐다.



-맞습니다. 이 정도 계획이라면 승산 있습니다. 저도 이 야습 찬성합니다.

게다가 아군과 적군이 깃발과 의장, 군복이 동일한 것 역시 이 계획의 성공률을

높여 줄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폐하.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프랑크인 보병대장 킬데리크 역시 찬성하였다. 훈족 밑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기병대장으로서 많은 활약을 한 파울루스와, 프랑크 왕국 시절부터 많은 전장을

누벼 본 역전의 용사인 그 역시 나의 계획에 찬성하고 나서자, 나머지들 역시 이견이

없는 것 같았다.




[짝짝짝!!!]



때마침 들려오는 박수소리. 모두들 뜬금없는 박수소리에 놀라 박수소리가

들린 근원을 쳐다 보았다. 그 곳에는, 돌기둥에 기대어 서 있는 훈족 용병대의

대장인 슈리가 서 있었다.



-정말인지. 대단한 작전입니다. 황제폐하. 저도 황제폐하와 나이차이가 그리 크지 않지만,

어렸을 때부터 전장을 이리저리 누벼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전쟁에 대한 경력은

그리 짧지 않다 자신했는데, 폐하께서는 대체 어디서 이런 경험을 하신 지는 모르지만,

정말 모두의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작전을 짜 내셨다는 게 정말 대단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폐하에게 지혜를 빌려주신 것 같네요. 저도 감탄했습니다.




슈리.


나는 이 사람에 대해 자세히는 모른다. 다만 파울루스와 오레스테스가 로마군으로 영입한

훈족 기병대의 리더로 알고 있을 뿐이다. 파울루스, 오레스테스를 따라 공을 꽤 세운 적이

있으며, 바로 작년에 있던 부르군트와의 전쟁에서도 활약했다고 들은 인물이다.


나이는 약 20대 초반쯤 되었을까.

아시아가 근원이고 훈족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유럽인과 많은 혈통이 섞였기 때문에,

그녀의 외모는 훈족이라고 하기보다는 마치, 현대의 동유럽인, 혹은 카자흐스탄 정도의

지역 사람을 보는 기분이었다. 혹은 국내의 백인혼혈 연예인을 보는 기분이었다.


서양과 동양이 적절하게 조화된, 훈족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하얀 피부에,

갈색의 길다랗게 길러 가지런한 생머리와 가지런한 앞머리는 현대에 오면 샴푸 모델을

해도 될 정도로 단아하고 아름다웠다. 키는 약 170cm정도. 로마에서도 지배층 자제 출신이라

신장이 큰 로물루스와 거의 비슷한 정도의 장신이었다.


그녀의 출신인 훈족이 동서양이 합쳐진 종족이란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초록색과 갈색의 오드아이는

그녀를 보는 사람에게 신비한 이국적인 느낌을 갖게 만드는, 말 하기 힘든 위력이 있어 보였으며,

활동적인 일을 많이 하지 않는 이 시대의 여성들과 전혀 다르게, 어린 시절부터 말을 타고 전투를

해 온 유목민 답게, 현재로 치면 탱크탑 비슷하게 입은 짧은 상의 아래로, 가녀리고 좁은 어깨와 비교하여

단단하게 계곡처럼 다져진 11자 복근과, 가느다랗지만 근육이 보기좋게 갈라져 건강미가 드러나는 여전사이다.


가녀린 어깨에 맞지 않은, 날렵하고 탄탄한 몸에 비해, 가죽 상의를 입고 안에 천으로 묶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둥그런 양모 방석처럼 아프로디테 여신을 보는 양 두드러지게 튀어나온 젖가슴 양 옆으로,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알아서 나는 전사다. 라고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얇지만 근육이 붙어 갈라진 팔뚝이 보인다. 팔뚝의 검은 가죽으로 만든 아대 아래의 오른손 검지에는,

항상 활을 쏘아서 그런 것인지 굳은살과 손가락 상처를 방지해주기 위해 묶은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전투가 일어나면 이 위에 상갑과 각반이 각자 위치할, 지금은 몸에 꽤 붙는 짧은 치마

아래 드러난 매끈하고 잔상처 없는 허벅지와 종아리는 잔상처가 조금 나 있는 것을 빼면,마치 화폭에

살구색 물감을 물을 좀 많이 섞어 큰 페인트 붓으로 칠한 것처럼 은은하게 느껴지는, 살구색과

하얀색의 중간으로 연하게 물들어 있었다.


등 뒤로는 훈족이 쓰는 작고 날렵한 활 대신 꽤 커다랗고 억세 보이는 검은 색의 정체모를

물질로 만들어진 활이 마치 그녀의 트레이트 컬러인 듯 한 그녀의 검은색 활집에 장착되어 있었으며,

그녀의 오른 허리에는 검은 나무로 만들어진, 마치 석탄과도 비슷한 색의 화살통에 로마군의 화살보다

더 길다란 화살이 빼곡하게 콩나물 시루 안에 있는 콩나물인 양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왼쪽 허리에는, 그녀에게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로마군 소속임을 알려주는 로마군의 제식무기인

길다란 스파타가 역시 검은 칼집에 가지런히 묶여 있었다. 회의장 유리에 비친 햇빛에 반사되는 빛이

그녀의 값비싸 보이는 스파타의 손잡이 부분을 신의 가호처럼 밝게 비추어 주고 있었다.

로마군이 주로 장착하는 샌들 형태의 신발이 아닌, 가죽으로 만든 부츠처럼 생긴 길다란 신발을

신은 그녀는, 여러모로 보아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인물이었다.


옷과 무기, 장비의 색깔을 모두 검은색으로 도배해 놓았지만, 정작 본인의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깔은

검은색이 아닌 것이,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검은색이었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머리카락 색과 눈동자 색은 검은색이 아니라는 점에서, 약간의 언밸런스가 느껴졌다.

현대의 아이돌과도 견주어 볼 때 손색없는 엄청난 미모의 여전사였다. 나는 이 사람이 현대에 태어났다면

분명히 인기 아이돌의 멤버이거나, 혹은 유명 배우가 될 법도 하겠다고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머리카락과 같은 색의 눈썹 아래, 쌍커풀이 은은하게 지고 보석 같은

모양의 아름다운 눈망울은 이 여자의 몸에서 느껴지는 전사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녀의 자신감 느껴지는, 양쪽에 힘을 주어 꽉다문 입과 이유는 모르지만 남을 곁눈질로 내려다보며

대하는 태도와 합쳐져서 묘하게 정체를 알 수 없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보통 훈족 전사라고 하면 가죽옷을 입고 기품과 외양을 신경쓰지 않는 투박한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확실히 이 여자만은 예외 중의 예외였다. 금방이라도 아름다운 말을 할 것만 같은 분홍색의 입술은

튼 곳 하나 없이 가지런히 고급 옷감을 개어 놓은 듯 다물어져 있다.




슈리는 우리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몇 걸음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와

나를 쳐다보았다. 양쪽 눈동자 색깔이 다른 두 개의 눈동자가 나를 오묘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나까지 신기한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그 놈들을 끌어내는 역할을 하는게, 우리 기병대란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고트족 기병대와 함께, 놈들의 진영을 습격하여, 아까 말한 대로 닥치는대로

불사르고, 있는 화살을 전부 퍼부은 다음 내가 말했던 지점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훌륭합니다. 폐하.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상상을 하니, 적이 이 일격으로 인해

상당한 피해를 보리라는 것은 정말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리고 적은 이 일격으로 당한

피해로 인해 다음 날의 전투에 상당한 지장을 받을 것이고요. 저도 모르게 감탄해서,

저도 모르게 마치 귀신에 홀린듯이 박수를 치고 있었습니다. 무례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전투에서 잔뼈가 굵은 분이 그렇게 평가해주시니, 저도 감사할 따름이지요.


-그런데 폐하. 하나 질문이 있습니다.


-뭡니까?


-폐하께서 말씀하신 작전이 제대로 통할 경우, 놈들은 피해 수준이 아니라 전멸 혹은 이 전투에서

처참히 패배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그건 물론 저희들에게 승리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적당히 공격하고 철수를 명령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생각보다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누구나 궁금해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첫 번째로, 우리가 일부러 적들을 모두 죽일 수 있는데도 그러하지 않는다는 데서,

우리의 여유로움과, 우리는 너희가 얼마든지 덤벼도 이길 자신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적들은 더더욱 더 이 전투에 회의감을 느낄 테고, 이 전투에 의미를 찾지 못하여 스스로

내부에서부터 의심을 품게 되어 쉽게 무너질 것입니다.


둘째로, 혹시나 모를 적의 발악이나 적의 대비를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분명히 제 계책이

잘 들어가면 우리는 승기를 잡게 되겠지요. 하지만 적들의 수는 우리의 약 4배입니다.

계책이 성공했더라고 운용가능한 병력의 수에 차이가 확실하게 존재합니다.

이 때에 우리가 실수를 하나라도 하거나, 대규모의 적들이 합류에 성공하거나 한다면

우리는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적들은 대병력이고 실수를 한두번 해도 용납이 되겠지만,

비교적 소병력인 우리들은 실수를 하면 그것으로 곤란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만에 하나 변수를 대비하기 위해 그리 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적 수장인 오도아케르에 대한 경고입니다. 계책이 성공하고 크나큰 피해를

주었지만 우리는 오늘 너를 치지 않는다. 그러니 얼마든지 와 봐라. 우리는 얼마든지

준비되어 있다. 우리는 언제든지 너를 죽일 수 있다. 라고 그의 마음속을 사탄처럼 휘저어 놓을

불안감과 의심을 심어 놓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것은 첫 번째 말씀드린 것과 함께 동반효과가

나서 적들 수뇌부와 병력들 모두에게 효과를 드러낼 것입니다.



내 말을 들은 모두들은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내 말이 끝나고도 모두가 약 10초동안 조용했다. 마치 국경일에 묵념이라도 하는 것처럼

고요했다. 하지만 10초 뒤, 테오도릭의 한 마디가 정적을 모두 일소하였다.



-과연....황제폐하. 황제폐하와 대화를 나누어 보았지만, 그 나이에 그만큼 저런 지식을

가지고 계신 분은 없습니다. 어디서 그런 경험과 지식을 쌓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대단합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솔직히 서부 로마 여러분들이 부럽습니다.

저렇게 영명하고 뛰어난 생각을 하는 황제께서 계시니 말입니다. 테오도시우스 대제의

후손일 뿐 아니라, 테오도시우스 대제의 그 식견, 능력까지 닮으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테오도릭의 말에는, 굳이 로마가 아니라 '서부 로마'라고 일컫는 데에서 동로마에 대한

가시돋친 감정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것을 느낀 것은 나 뿐인지,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금방 회의장 내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어 모두들 웅성거렸다.



-그래 맞아...황제께서는 참 대단하신거 같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말야...


-그래도 우리 입장에서는 우리 황제폐하께서 영명하신 게 좋잖아?



나는 모두의 주의를 끌기 위해 박수를 세 번 쳤다.

이제 슬슬 작전을 준비해야 할 뿐 아니라, 모두가 나를 칭찬하고 무조건적으로

떠받드는 이런 분위기는 정말인지 낯설기 때문이다. 전생에 있던 학위논문 심사때도,

논문 발표, 이론 발표때도 이런 일방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물론 지금 나는 황제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수도 있지만 말이다.



-자. 여러분.이제 슬슬 작전을 준비합시다. 모두 무기를 들고 준비합시다.



모두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무기를 들었다.



-자. 이제 나갑시다. 준비를 하고 모두 승리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내가 앞장서서 회의장을 나가자, 장수들, 사제들, 관료들은 내 뒤를 마치 조선시대의 왕이

행차할 때 뒤에 신하들을 줄줄이 소세지처럼 몰고 다니듯이 따라왔다.

나는 대제의 갑옷을 입은 그대로, 오른손에 대제의 백은 투구를 감싸안고,

굳게 입을 다물고, 모두를 의식하여 어깨를 쫙 펴고 당당한 걸음걸이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내가 걸어간 곳은, 병사들이 보이는 라벤나 시의 중앙 광장이었다.

이곳에 라벤나 성을 지키기 위한 상당수의 병사들이 나를 보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파울루스는 이것이 군법에 위배된다고 표정을 찡그렸지만, 크게 위반되는 것도 아니고,

병사들이 자신들을 지휘하고 자신들과 함께 싸울 황제의 모습을 보겠다는데,

말릴 이유도 없기 때문에 나는 파울루스에게 손을 저으며 만류했다.




[황제 폐하 만세!!]


[황제 폐하를 믿습니다!! 와아!!!!!]


[우리들의 젊은 임페라토르여!!! 우리에게 승리를!!!!]




어느 새, 나는 그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광장 위쪽에 서 있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마치 출정을 앞둔 사령관이 병사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하는 그 구도가 되어 있었다. 나를 쳐다보는 병사들의 눈빛을 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황제를 신기해 하는 눈빛, 황제를 신뢰하는 눈빛, 황제에게

기대를 하는 눈빛들이 제각각 뒤섞여 있었다. 황제가 모두에게 작전을 짜고,

여론을 통합하고, 병력을 모아 오도아케르에게 직접 맞붙는다고 소문이 난 모양이다.


과거 로마의 집정관과 황제들은 항상 자신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나가 솔선수범하는,

사령관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테오도시우스 이후로는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러한 황제가 아무도 나지 않았다. 테오도시우스 대제 사후 무기력하고 꼭두각시

같은 황제가 많이 나왔던 서로마. 그리고 그러한 무기력하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의미없는 황제들만 봐 와서 황제라는 존재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크게 저버린 이 서로마에,

갑자기 나타난 이 '임페라토르'는 크나큰 환호를 받을 만한 존재였다.



병사들은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누구는 로마인 출신, 누구는 게르만족 출신, 누구는

아랍, 누비아, 아프리카, 켈트 등등 다양한 피부와 다양한 모습을 한 눈들이 나를 쳐다본다.

누구는 기병, 누구는 궁병, 누구는 중보병, 누구는 척후병. 모두 그 역할과 지위도 달랐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른 이들에게 공통점이 존재한다.




바로 로마.



이들의 조국과 이들이 지켜야 할 존재, 이들의 행복은 지금 내 두 어깨 위에 있는 것이다.

이들의 얼굴을 보자 나는 황제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 그리고 의무가 무엇인지,

설명을 듣지 않았는데도 깨달을 수 있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그렇다. 이게 바로 황제이다. 제국을 통치하고 지도하며, 제국에 환란이 생기면

자신이 솔선수범하여 맞서는 자. 군림만 하고 통치만 하고, 권력의 달콤한 맛만 보는

자가 아닌, 국가와 희로애락을 모두 함께 하고, 국가 그 자체인 자.




나는 모두를 한번 돌아보며, 심호흡을 크게 하고 나지막히 말했다.



-모두들, 고맙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젊은 황제가 우리의 수도를 노리고 오는

수괴에 맞서겠다고 치기를 부릴 때, 모두들 의심 없이 따라주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시민 여러분. 이 아니라, 동지들. 그리고 친구들. 모두 고맙다.



자신들은 동지, 친구로 일컬어 주는 나에게, 병사들은 시선과 이목을 집중하여

조용히 하면서 나의 말을 귀담아 듣기 위해 집중하였다. 마치 학회에서 발표하는

거두, 석학의 말을 조금이라도 잘 귀담아 들으려 하는 학자들 같았다.



-길게 말은 필요 없지 않는가? 연설은 항상 짧고 굵게. 긴 연설은 독이다.

그렇지 않는가 동지들이여?


[맞습니다!!!]


-좋다. 말이 잘 통하는군. 다 알고 있겠지만, 나는 이번 전투를 총지휘할,

황제. 로물루스이다. 재미있게도..우연히 우리 로마의 창시자와 이름이 같다.

신기하지 않은가?



순간 아재개그 급의 허무한 개그였음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은 순수한 얼굴이 되어

내가 한 말에 웃어주고 있었다. 황제가 강요한 웃음이 아니라, 황제의 말을 듣고

순수하게 지은 웃음들이다.



-내가 지금 여러분들에게 하고싶은 말은 길지 않다. 이기고 돌아온다면 더 많은 말을

하겠지만, 지금 우리는 전투를 앞두고 있다. 그러니 양해 바란다.

내가 할 말은 바로 이것.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다.

황제가 무슨 말을 할까?

우리의 황제는 과연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할까?

우리의 황제는 과연,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제스처를 취할까?

우리의 황제는 과연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제스처를 취하고, 어떤 작전을 짤까?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다.


모두의 이목이 나에게로 집중된다.




황제인, 사령관이기도 한 나에게.

소리 없이, 기색 없이, 그리고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자연스레 집중된다.

뛰는 가슴을 움켜쥐고, 벅찬 가슴을 움켜쥐고, 그들을 지휘할 임페라토르의

말을 기다린다.


우리들을 이끌어 주십시오.

우리들과 함께 싸워 주십시오.

우리들을 이끌어 승리로 나아가 주십시오.

우리를 만만히 보는 저 빌어먹을 자식들을 박살내 주십시오.


우리를 배신하고 우리를 치러 오는 저 개같은 자식들에게 신의 벌을 내려 주십시오.



모두가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나에게 전달한다.

모두의 눈빛이 나와 교차한다.


그리고,


나는 말한다.




-나가자. 싸우자. 그리고....


-승리를 쟁취한다. 나를 따르라!!!!!



[......]



아차. 이런...너무 구시대적인가? 너무 단순했나?

다들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기 때문에 나는 순간 내가 말실수를 했나

하고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제대로 말할 것을... 젠장.....


하지만......



[와아!!!!!!!]




우레와 같은 함성이 라벤나 성의 광장에 울려 퍼진다.

수천 명의 병사들, 관료들, 제장들, 사제들이 지르는 함성이,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마치 쓰나미라도 불어닥친 듯, 마치 날벼락이라도 떨어진 듯

모두의 고막을 얼얼하게 앞뒤로 뒤흔들고 있었다. 폭풍이라도 몰아닥친 것처럼 말이다.



[황제폐하 만세!!!!!!!]




모두가 승리를 원한다.

모두가 승리를 쟁취하기 원한다.

모두가 승리와 행복을 쟁취하기 원한다.

모두가 나를 바라본다.


자신들을 이끌어 달라고.

자신들의 행복을 지켜 달라고.

자신들의 자존심과 자부심을 지켜 달라고.




무엇으로서?



바로 황제. '임페라토르'로써 말이다.



나는 병사들의 거대한 환호성에, 테오도시우스 대제의 스파타를 뽑아

높게 치켜들었다. '임페라토르' 로써 말이다. '임페라토르'답게 말이다.





가자. 모두가 원한다.


승리를 원한다.



패배주의와 위험, 절망에 빠져 있던 서로마 제국의 수도, 라벤나는 이로서,

황제 단 한명의 기지로 인해 완전히 분위기가 뒤집혀 버리고 말았다.



동시에, 역사의 수레바퀴 역시 그 방향을 다르게 틀게 되었다.



서로마 제국의 황제인 나. '임페라토르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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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교수님이 지도하는 서로마 제국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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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라벤나 전투 - 9 24.09.15 21 0 14쪽
9 라벤나 전투 - 8 24.09.14 41 1 24쪽
8 라벤나 전투 - 7 24.09.14 34 0 16쪽
7 라벤나 전투 - 6 24.09.13 48 0 19쪽
6 라벤나 전투 - 5 24.09.13 33 0 28쪽
» 라벤나 전투 - 4 24.09.13 38 0 26쪽
4 라벤나 전투 - 3 +2 24.09.13 49 0 24쪽
3 라벤나 전투 - 2 24.09.13 53 0 21쪽
2 라벤나 전투 - 1 24.09.13 64 0 18쪽
1 교수,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되다. 24.09.13 67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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