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교수님이 지도하는 서로마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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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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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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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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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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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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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벤나 전투 - 6

DUMMY


가끔 생각하다 보면 참으로 운명이라는 녀석은 기묘하기 짝이 없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여신 중에 제일 지랄같은 여신은 운명의 여신이라고.




내가 좀 더 어렸을 적, 나는 그 말을 반쯤 농담 삼아 우스갯소리로밖에 느끼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렸을 적, 왕자였던 나는 운명에 대해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황에 처해 있어서 그랬을 지도 모른다.


내가 어렸을 적, 고트족의 동쪽 갈래인 우리 부족은 로마의 굴레에서 벗어나, 독립했다.

하지만 그렇게 크지 않은 우리 부족은 동쪽 로마에게 협조하였고, 나는 그 이후 로마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성장하면서 교육받고, 특혜를 누렸다.


그리고 우리 부족은 때마침 훈족의 치하에서 독립한 오도아케르의 부족과 싸우게 되었고,

우리는 서로를 죽이고 죽였다. 우리를 당해내지 못한 오도아케르는 서부 로마로 달아났으며,

결국 그는 서부 로마의 사령관 중 하나가 되었다. 그 이후 우리 부족은 두려움에 떨었다.



오도아케르는 가만 있을 자가 아니다.


오도아케르는 서부 로마의 병력을 이끌고 와서 우리를 죽일 것이다.


오도아케르는 서부 로마를 차지하여 우리와 맞설 것이다.



승리를 한 우리에게 오도아케르는 큰 불안감과 불길함을 잿더미처럼 남기고 서부 로마로 사라졌다.

우리도 로마를 섬기는 부족 중 하나였기 때문에, 서부 로마로 간 오도아케르를 더 이상 단죄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나는 동부 로마에서 관직도 받고, 우리 부족을 왕래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렇게 누리던 불안한 평화. 그리고 그 속에서 커져 간, 부족의 원수를 눈 앞에서 놓치고 이제 더이상

복수할 수 없다는 그 안타까움.



그 복잡한 감정 속에서 살아왔다.



하지만...불행일까? 다행일까? 내 아버지를 속으로 부를 때 마다,

나는 더 이상 갚을 수 없는 부족의 복수를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속으로 소리 없이 울부짖었다.

그 교활한 놈이 하필이면 서부 로마로 향했고, 나 역시 동부 로마의 가신이기에.

그래서 놈을 더 이상 칠 수 없다는 것을, 생각이 날 때마다 원망하고 저주했다.



그럴 때마다 몸이 부르르 떨린다.

몸이 전율하고, 피부 겉표면에 송충이가 기어다니듯이 슬금슬금 짜증나는 감각이 몰려온다.

왜 나는 그때 놈을 죽이지 못했는가. 왜 나는 놈을 그냥 보낼 수밖에 없었는가.

왜 나는 놈의 행방을 알고도 복수할 수 없는가.



울고 또 울었다. 수십, 수백번을 말이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지랄같은 여신이다.


동시에 운명의 여신은 장난꾸러기이자 심술쟁이이다.

누가 그랬던가? 세상을 제패하려는 자. 세상을 먹으려는 자. 운명의 여신의

실타래를 끊지 말아라. 운명의 여신의 실타래에 걸리지 말아라. 하고 말이다.



신께서는 나에게 놈에게 복수할 기회를 빼앗았다.

하지만 지금 운명의 여신의 장난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놈은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자신을 받아준 서부 로마에, 그 더러운 칼날을 들이밀고

배은망덕한 진군을 하였다. 그리고 나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니면 운명의 여신의 장난인지

모르겠지만, 오도아케르 그놈이 반란을 일으켜 서부 로마제국 황제에게 칼날을 들이민 이 때,

우연찮게 서부 로마의 수도인 라벤나에 와 있었다.




섬뜩했다. 만약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라벤나 성이 함락되면, 오도아케르 그놈은

실수나 혼란 속 난전을 빙자해서 나를 죽였겠지. 라고 생각이 든다.

내가 아는 서부 로마의 얼간이들은 충분이 그리 당하고도 남을 놈들이었다.

하지만 아까 말했지 않는가? 운명의 여신은 장난꾸러기라고.



이러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여신은 서부 로마의 젊은 황제에게,

가호를 주었다. 그는 위대한 테오도시우스의 후예였으며, 그의 영명함과 태도는

힘없이 수숫단처럼 꺾여가고 있던 서부 로마에게 용기와 희망을 가져다 주었다.

나는 황제를 보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대단함과 신뢰를 느꼈고, 오도아케르의 대군이

몰려오는데 대담하게 그 5분의 1의 병력을 이끌고 당당하게 나간 그 모습에, 과거 로마의

사령관 황제(임페라토르)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함께 싸우자고. 자신의 계책으로 이길 수 있다고.

나보다도 어린 10대 후반의 나이이지만, 그는 웬지 나 자신보다 더 믿음직해 보였다.

어쩌면 동부 로마의 황제인 제노보다도 더 말이다...



이번 전투는 서부 로마의 황제, 그리고 나의 염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전투이다.

서부 로마의 황제는 자신의 제국을 지켜낼 수 있으며, 황제로서 발돋움 할 수 있는

장을 만들 것이며, 나는 케케묵은 나의 오래된 원수를 갚을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병력의 수는 황제의 군이 더 적고, 병사들의 숙련도 역시 더 저열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황제의 눈에 비춰지는 영웅의 그림자를 보았다.

황제는 나에게 말할 때 주저함 하나 없이 자신의 작전을 설명했으며, 자신의 비전을 얘기했다.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처럼. 수천년 수백년을 살아온 경험을 가진 사람처럼.

그 모습에 나는 함께 싸워달라는 황제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전장을 누벼 본 사람이라면 아는, 이 전투는 이길 수 있다. 하는 그런 본능적 느낌이

온 몸을 전율하면서 흐르는데,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여신 중에 제일 지랄같은 여신은, 운명의 여신이라고.



그리고 나는, 그 여신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여신이 만들어 준 두 개의 만남. 황제와의 만남과 그 놈과의 만남. 이것을 말이다.



내가 보기에 서부 로마의 황제는 아직 새파랗게 젊지만, 보통 인물이 아니다.

황제는 오늘의 전투에서 승리할 것이다. 내 본능이 그리 말하고 있다.

그리고......우리 부족의 묵은 원수도.....




오늘 해결한다. 이 모든 운명의 족쇄를 오늘 부수고 말겠다.




오도아케르여. 너의 목숨은 오늘 해가 중천에 떠오르기 전에 끝날 것이다.

오도아케르여. 네놈이 보는 밝은 만월의 달밤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다.

오도아케르여. 너의 목숨으로서 세상을 떠난 우리 아버지와 부족민들에게 속죄하겠다.

오도아케르여. 신의 가호나 빌고 있어라.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 로마의 황제는 네놈의 적수가 아니다.





-왕자님. 작전시간입니다.



로마군의 본진을 떠나온 지 얼마나 되었을까.


찬란하게 은빛으로 자수를 놓은 이불처럼 하늘을 환하게 덮고 있는

달빛 아래, 구름이 줄을 세운 양들의 행렬처럼 회색이 되어 지나가고, 고요한 적막이

눈에 보이는 사방을 덮어, 밤의 커튼이 반투명하게 세상을 덮은 새벽,

테오도릭은 잠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감상에 젖어 있다가 부하의 말에 감상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왔다.



일군을 이끌면서 감상에 빠져 부하의 말을 듣고 깨어나다니.

테오도릭은 왕자임에도 머쓱한 기분이 들어 으흠. 하고 헛기침을 애써 한 번 하고

자신의 일행을 돌아보았다.


자신과 함께한 동고트족 기병 200명에 보병 100명. 그리고 황제가 지원한 서로마 궁기병 100명과

근위 군단병 600명. 현재 테오도릭 자신에게 맡겨진 1천명의 목숨이다. 테오도릭 자신까지 합해서.




-그래. 다들 모여라. 거기 로마분들도 오시오. 작전을 시행할 준비를 합시다.



테오도릭이 말에서 잠시 내려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오자, 그의 수하인 고트인들과 로마인들도,

기병은 말에서 내리고, 보병은 저벅저벅 최대한 발소리를 줄이면서 그의 말을 듣기 위해 모였다.

조용한 달밤, 적들은 적의 진지 안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꿈나라에 간 상태이지만,

혹시나 만약을 대비하여 테오도릭은 그리 크지는 않지만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입을 천천히 열었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작전을 할 곳이다. 아까 황제 폐하의 말씀을 들은 이들도 있을 것이고,

못 들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을 하지만 우리의 역할은, 지금 당장 놈들을

전멸시키는 것이 아니다. 황제 폐하의 명대로 놈들 진지에 불을 지르고, 놈들이

우리에게 반격할 시간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다. 내 말 알아 듣겠냐? 이놈들아?



테오도릭의 말에, 고트족 병사들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로마군 병사들은 뭐라고 해야 할 지 잠시 사고회로가 정지한 듯 했지만,

비록 자신들을 하대한 이 사람이 야만족인 고트족 사람일지라도, 무려 고트족의

왕자이고, 동부 로마의 높은 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고트족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따라서 한 박자 늦게 고개를 같이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테오도릭은

웃을 뻔 했지만, 웃을 분위기는 아닌 상황이라서 어흠. 하고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넘어갔다.



-아. 물론...로마인 여러분도 같이 해당입니다. 흠흠...편의상 우선 우리 종족들에게

말 하듯이 할테니, 오해는 없으시기 바랍니다. 로마군 여러분.

우선, 우리 병력은 기병 300에 보병 700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을

하기 위해, 우선 적진으로 1차로 들어가는 것은 기병 300으로 제한한다.

보병들은 지금, 우리가 가지고 들어갈 불화살을 만들고, 기병들은 2인 1조로 움직여,

한 명은 횃불을 들고, 한 명을 유황과 기름을 묻힌 화살에 불을 붙여 날려라.

모든 화살을 있는대로, 최대한 쏠 수 있는대로 퍼부어라. 화살 아끼지 말고 몽땅

퍼부으란 말이다. 알겠는가? 화살값은 황제 폐하께서 신경쓰실 일이니, 손아귀에 있는

단 하나의 마지막 화살도 다 아낌없이 쏴버리란 말이다.



테오도릭의 설명에 고트인, 로마인 할 것 없이 키득키득 하고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렇다면, 황제폐하의 신호가 올 때까지, 모두 불화살을 준비하고, 출격할 준비를 한다.

실시하라. 최대한 많이 만들어라. 놈들은 우리를 과거에 두번이나 엿먹인 스퀴리 놈들이다.

자비따위 줄 생각 말고 다 태워버린다 생각해라. 알겠나?



그리고 자신도 준비해 온 기름과 유황을 손수 화살들에 바르면서, 테오도릭은

황제의 신호가 언제 올 것인지 마음 속으로 긴장을 타면서 생각했다.



'오늘로서, 오도아케르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가능하면 놈의 목을 베어 버린다.'




화살을 준비하는 데는 10분정도가 걸렸다.


테오도릭은 병사들에게 모두 적진으로 돌입할 준비를 하게 하였으며, 자신도 다시

투구를 쓰고 말안장에 고정해 놓은 게르만 활을 꺼내들었다.

그를 따라갈 고트 기병 200명과 서로마 기병 100명도 함께 짝을 이루어 한 명은 활과 화살을,

한 명을 횃불을 들고 있었다. 테오도릭은 남은 700명을 향해 말했다.




-우리는 황제폐하의 지시에 따라 놈들 진영을 불태우고, 그리고 유린하고 올 것이다.

분명 놈들은 악에 받쳐 우리를 쫓아올 것이다. 남은 700명은 여기서 대기하고 있다가,

우리가 놈들의 진영을 유린하고 빠져 나오면, 그 때 우리가 다 나온 다음에 우리를 쫓아 따라오는

놈들이 약이 오르도록 화살을 몇 방 쏴주고 달아난다. 알겠는가?



[예. 알겠습니다.]



말안장에 오른 기병들도, 지상에 발을 딛고 있는 보병들도 모두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긴장감 속에 목구멍으로 침 한방울 한방울이 삼켜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모두가 긴장감 가운데 말이 없이 고요한 침묵이 유지되고 있을 때였다.


테오도릭이 기다리던, 작전을 알리는 신호가 울린다.



[뿌우우우우우--------]



이것은 아까 황제가 말했던 작전 시작을 알리는 뿔나팔 소리이다. 테오도릭은 이 소리를

듣고, 작전의 시작이 도래했음을 알고, 마음 속에 전투를 앞둔 싸늘한 감각이 들면서,

가슴이 순간 파도가 일듯이 철렁거렸다. 드디어 시작인 것이다. 병사들도 서로가 서로를

쳐다보면서 굳은 표정을 지으며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테오도릭 역시 병사들의 눈빛을

받아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손에 든 게르만 궁에 화살을 끼워 활줄을 끼리릭-하고 당긴다.

테오도릭이 활줄을 당기자, 옆에서 말을 타고 횃불을 들고 있던 고트 기병 한병이 그의 활에

횃불로 불을 붙여 준다.


화르륵-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진입하기로 약속되어 있던 기병들의 화살에 불이 일제히 붙어

불빛이 마치 낮을 보듯이 환하게 비추어진다. 테오도릭은 불빛들 가운데서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우렁찬 목소리로 모두에게 소리쳤다.



-자! 돌격하라!!! 놈들의 진영으로 들어간다! 불화살을 있는대로 모두 쏘아라!!!!


-와아!!!!!!




테오도릭은 선두에서 질풍과 같이 달려가면서 불이 이글이글 타고 있는 화살을,

아무나 맞아라. 하는 심정으로 스퀴리족의 진영 천막으로 날려 버렸다.

테오도릭이 선두에서 말을 달려 뛰어가면서 불화살을 날리자, 그 뒤에 있던 고트-로마

기병들 역시 모두 불화살을 인정사정없이 스퀴리족의 진영에 날리기 시작했다.



-놈들의 진영은 허술하게 지어져 문이 없다!!! 그냥 박차고 들어가라!!!



테오도릭과 그 수하들이 지른 불은 금새 이곳저곳으로 퍼졌다. 아무리 150기의 불화살이지만,

기름을 충분히 먹여 두었기 때문에 그 하나하나의 개체가 허투루 불타는 일은 다행히 없었다.



-건초더미, 천막, 깃발, 옷 등 타기 쉬운것을 노리고 화살을 쏘아라!!!



테오도릭은 다시 말을 달리면서 놈들의 진지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에 쏜 불화살들로

인해 서서히 불들이 불꽃놀이를 보는 듯, 캠프파이어를 보는 듯이 불어나 있었다.

주변에는 비명과 소리를 지르면서,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공포에 질려 달아나거나,

이제서야 잠에서 덜 깬 상태로 허겁지겁 준비하는 스퀴리족들, 오도아케르의 군세들이 보인다.


테오도릭은 화살을 다시 활시위에 당겼고, 그와 함께한 부하가 다시 횃불로 부을 붙여 준다.

활시위를 잡고 있던 오른손이 손가락을 놓자, -쇄액---- 하는 소리와 함께 바람을 힘차게 가르며

그가 쏜 불화살이 한 천막으로 뚫고 들어간다. 이윽고 그 천막 안쪽이 환해지더니,

천막에 불이 옮겨 붙는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황제의 식견은 매우 정확했다.


오도아케르와 그 수하들, 그 군대는 자신들의 수의 절대적 우위를 믿고 편하게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래서 방비도 제대로 해놓지 않은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놀라

졸린 듯이 눈을 비비고, 그제서야 적습인 것을 알아채며 달아나거나, 이제서야 갑주를 준비하는

스퀴리족의 군사들은 테오도릭의 군사들이 이끈 화살을 맞았다.




-무기를 들거나, 갑주를 챙겨입는 놈을 먼저 쏘아라! 불을 끄려고 시도하는 놈도 쏘아라!

남녀노소 상관없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다 쏘고 불태워 버려라!! 몽땅 죽여버려라!!!!




완벽하게 철저한 무장을 하고 불화살을 날려대는 테오도릭의 군세가 겨우 300명이었지만,

준비따위는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불의의 기습을 받은 오도아케르 군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불에 타거나, 화살을 맞고 죽어가고 있었다. 어느새 커진 불들은 눈에 보이는 시야를 보두 불로 뒤덮고

있었으며, 불은 넓은 진지를 주황빛 파티장으로 탈바꿈해놓고 있었다. 다만, 이 곳에 너무 오래 머물면

안 된다.



오도아케르군과 스퀴리족은 전혀 대응하지 못한 체 속수무책으로 화공과 기습에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진영을 태울 수는 없다. 초반의 기습이 정말 잘 먹혀 들어갔지만,

테오도릭이 이끈 군세는 겨우 300명. 이것으로 3만이 넘는 적을 모두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너무 시간을 오래 끌면 적들이 추격해올 것이다. 이제 슬슬 모든 화살을 퍼붓고 퇴각해야 할 때라는

것을 그는 본능으로 깨달았다.




[뿌우우우!!!!------]




때마침 테오도릭의 귀에 들리는 거대한 뿔나팔 소리. 테오도릭은 이것이 황제의 군영에서 들리는,

작전상 후퇴를 위한 신호임을 깨달았다. 테오도릭은 자신의 활을 왼손에 높이 들고 주변의 모든 아군에게

외쳤다.




-신호다! 모두 왔던 길로 되돌아 나가라!!! 작전대로 행동하라!!!




테오도릭의 외침을 듣자, 그 외침을 들은 병사들과 동료들은 모두 함께 소리쳤고, 고트군, 로마군을

가릴 것 없이 테오도릭의 군세들은 말머리를 거꾸로 돌려 들어왔던 방향으로 다시 부리나케 달아나기

시작했다. 수백의 기병들이 우르르 일사불란하게 행동하는 장면은 가히 장관이었다.



그 광경은 마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다 태워 버리고 약탈하고, 죽여버리는 죽음의 기병대.



과거 수십년 전 유럽 땅을 휩쓸던 악마들이 연상되는 모습이었다.

테오도릭은 황제의 계획이 완벽했음을 느끼고, 신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한 체 뒤를 돌아보았다.

슬슬 준비를 한 스퀴리족의 보병들과 기병들이 악에 받힌 얼굴로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증오의

눈길을 하면서 일행들을 따라온다. 그 수는 어림잡아도 테오도릭의 군세보다 훨씬 많다.

불의의 기습을 당하여 많은 인명피해를 본 지라 그 분노와 증오는 하늘을 찌를 터.


테오도릭은 제일 먼저 진영 밖으로 나가 말을 달린다. 불이 나고 말들이 달려오자, 아까 화살을

만들던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보병들이 일제히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제일 선두에서 활을 잡고 달려오는 테오도릭에게 향해 있었다.

테오도릭은 그들에게 소리쳐 지시하였다.



-자! 작전은 성공했다! 모두 화살쏘고, 튈 준비 해라!!!



테오도릭의 기병대 300명이 재빨리 빠져나오자, 곧바로 뒤에서 악에 받친 오도아케르군이

테오도릭의 기병대를 당장이라도 잡아 죽여버릴 기세로 따라온다. 그 수는 상당히 많았다.

300밖에 안되는 테오도릭의 기병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



그리고. 그들을 향해, 테오도릭이 지시한 700명이 일제히 활시위를 당겼다가,



-타악.




하고 뗀다.




[슈와아아아아아아아악!!!!!-----]



하고 바람을, 대기를, 공기를 가르면서, 적들의 피를 갈구하는 돌진을 맹렬하게 하는.




수많은

화 살 들.




테오도릭은 자신을 쫓아오던 오도아케르군의 병력들이 매복하고 있던 자신의 군에게

화살을 고슴도치처럼 맞고 쓰러지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달려 황제와 합류하기 위해

달아났다. 활을 쏜 보병들 역시 몇방만 화살을 쏘고 지금까지 쉬면서 비축해 놓았던 체력을

달리는 데에 모두 투입한다.




-몽땅 튀어라!!!




그리고 테오도릭의 예상대로 오도아케르군은 성난 멧돼지처럼 테오도릭의 군사들의 뒤를

악착같이 따라오고 있었다. 테오도릭과 그 병력들은 달아나면서도 한 놈이라도 더 죽이기 위해,

정확도는 신경쓰지 않고 무지성적으로 뒤를 향해 화살을 날리면서 달아난다.

일부는, 더러는 그 눈 먼 화살에 맞아 쓰러지기도 한다. 놈들의 군세 중 기병은 생각외로

별로 없는 것이 도망에 더 도움이 되었다. 아무래도 무장을 하고 말을 갖춰 타고 달려오는 것보다는

바로 그냥 나가서 반격하는 것이 더 편할테니 말이다.




바로 오늘, 황제는 성공할 것이다. 그리고 오도아케르는 지옥으로 갈 것이다.


테오도릭의 마음 속 황제를 신뢰하는 마음은 굳고 한결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이렇게 대단하고 참신한 작전을 세운 서부 로마의 황제는 대체

어떤 인간인가? 하는 궁금증과, 이런 인간이 우리의 적이 아니라 다행이다. 라고

그는 어느 순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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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수,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되다. 24.09.13 67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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