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원 키우는 사천당가 데릴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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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빈
작품등록일 :
2024.09.1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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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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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팔려버린 제자

DUMMY

충칭과 버금가는 상업도시인만큼 청두의 거리는 늘 활기가 넘쳤다.


돌로 깔린 널찍한 길 양옆으로 빼곡하게 늘어선 가게들.


이곳저곳에서 상인들이 손짓하며 호객하는 소음.


각종 향신료와 비단, 도자기 같은 특산품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향빈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딤섬 한 접시에 하루종일 수다를 떠는 찻집.


그들 중 대부분이 검을 패용했다.


삿갓을 푹 눌러쓰고, 눈가에 흉터가 있는 사내들이 음흉한 시선으로 저잣거리를 흘겨보고 있다.


‘어휴. 무서워라.’


향빈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누가 봐도 사천성 사람들이 아니다.


정사대전에서 정파의 승리로 끝났다곤 하나, 사파의 잔당들이 세상 곳곳으로 흩어졌다.


그로부터 어느덧 20년이나 흘렀으니···.


옆집 이웃이 인성 파탄 난 연쇄살인마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내가 이래서 속세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니까.’


원래는 없던 인간 불신증도 절로 생길 지경.


역시 화원에서 술이나 퍼마시는 신선놀음이 최고다.


100년이 지나도 덩실덩실 춤을 추는 스승님처럼 말이다.


‘빨리 술이나 사고 돌아가야겠다.’


향빈이 양조장에 도착한 순간, 짙은 술 향이 그의 코를 찔렀다.


입구에 들어서자 넓은 창고 안에는 술이 담긴 주항(酒缸)들이 가득 차 있었다.


향빈은 그 광경을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이 많은 술 중에서 네 단지 정도 사는 건 문제 없으리라.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주방주(酒房主)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으랏차!”


그때 양조장 안쪽에서 젊은 소공(小工)이 항아리를 껴안고 힘겹게 나왔다.


향빈은 땀을 닦아내는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소공. 혹시 주방주는 안 계십니까? 주항 네 단지만 사려고 하는데요.”


하지만 소공은 깊은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물량이 없습니다.”


“예?”


주변에 보이는 게 전부 주항(酒缸)인데, 대놓고 없다고 말하다니.


황당하기 그지없다.


소공은 뒤통수를 긁적이는 향빈을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이것들은 전부 도화원(桃花苑)에서 예약한 주항들입니다. 그런데도 주문한 물량을 맞추지 못해서 죽을 맛이에요. 하아···.”


도화원(桃花苑)은 사천성에서 가장 유명한 청루다.


문예를 겸비한 고급 기생이 머무는 곳.


달콤한 술 향과 절세 미녀의 노랫가락에 현혹되는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자신의 돈주머니를 볼 수 있다.


‘풍류는 무슨. 그런 곳에 돈 쓰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지.’


향빈은 턱을 쓰다듬었다.


그건 그렇고, 곤란한 상황인 건 여전했다.


‘사부님은 여기 양조장에서 빚은 술밖에 안 마시는데.’


꽃을 팔아 하루 먹고 살기 빠듯한데, 입맛은 어디 사천성의 최고 관리인 순무(巡撫)가 따로 없었다.


소공은 말이 없어진 향빈을 보고 주항을 두드렸다.


“그래도 10년을 지내 온 단골을 내쫓는 것도 좀 그렇고.”


“······.”


향빈의 눈에 희망이 깃들며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역시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이다.


“꼭 필요하시다면 도화원에 가서 네 단지만 빼달라고 부탁드려보십시오. 우리도 신뢰로 먹고 사는 사람인지라 그쪽 허락 없이 멋대로 빼주기는 힘들거든요.”


향빈은 이마를 부여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누굴 술로 죽일 것도 아니고. 도화원은 뭔 놈의 술을 이리도 많이 주문했답니까?”


“글쎄요. 저도 자세한 건 모르겠는데.”


소공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얼핏 듣기로는 요녕성(遼寧省)에서 모용세가의 차남과 삼남이 방문했다고 했던가? 호위를 거의 군에 버금갈 정도로 끌고 왔다죠? 아마.”


그의 말에 향빈은 찻집을 떠올렸다.


‘아··· 걔들이 모용세가의 호위무사들이었나 보네.’


소공은 쓴웃음을 흘리며 손을 흔들었다.


“아무튼 허가만 받아오시면 주항을 드리겠습니다.”


향빈은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쓰읍. 첫 단추부터 꼬이네. 영 찝찝하단 말이야.”


하지만 그의 불안은 도화원 앞에 서는 순간 사르르 녹아내렸다.


누구나 한 번쯤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게 되는 절경.


화려한 청색 기와지붕이 반짝이는 햇살을 받아 빛나고.


기와 끝마다 섬세하게 조각된 도화(桃花) 문양이 그곳이 특별한 장소임을 알려주었다.


커다란 붉은 대문 위로 금빛 편액에는 ‘도화원(桃花苑)’이라는 세 글자가 우아한 필체로 새겨져 있었다.


“여긴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네.”


마치 선경(仙境)으로 이어지는 문인 양, 향빈은 문턱을 넘으며 감탄사를 흘렸다.


“거기! 잘생긴 미남 공자님! 오늘도 꽃 팔러 온 거야?”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점소이가 향빈을 친근하게 맞이했다.


옆트임이 있는 차파오라 그런지, 걸을 때마다 허벅지의 속살이 드러나 절로 눈길이 내려갔다.


향빈은 방긋 웃으며 손을 뻗었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손등을 뒤집는 순간, 모란 한 송이가 손바닥 위에 피어났다.


“눈앞에 도화(桃花)가 있는데, 제가 어찌 꽃을 팔 수 있겠습니까?”


그녀의 귓가에 모란을 장식해준다.


점소이는 머리칼을 수줍게 쓸어넘기며 고양이처럼 향빈의 어깨를 툭 쳤다.


“아잉, 몰라.”


향빈은 얼얼한 어깨를 매만졌다.


부탁하기 전에 호감도를 끌어올린 건 좋은데···.


‘아··· 아파.’


점소이는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속삭였다.


“꽃을 팔러온 게 아니면 즐기러 온 거지?”


그녀는 다 안다는 듯 음흉한 미소를 그렸다.


“그런데 오늘은 아쉽게도 만석이거든. 하지만 특별히 공자님을 위해 한 자리 마련해줄게.”


“예?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으이그. 은근히 숙맥이라니까. 조용히 하고 이 누님만 믿어.”


향빈은 점소이에게 끌려가다가 조심스럽게 어깨를 붙잡았다.


“저··· 그게, 혜원 소저.”


“응?”


“오늘 방문한 목적은 총관님을 뵈러 온 겁니다.”


“총관님을?”


혜원은 향빈과 팔짱을 꼈던 팔을 슬그머니 풀었다.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묻는다.


“왜?”


“만월 주방(酒房)에서 매입한 주항의 일부를 혹시 받을 수 있을까 해서 말이죠.”


그녀는 뒷짐을 지며 시선을 돌렸다.


“흐응···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근데 아마 안 될걸?”


향빈은 혜원의 눈길을 따라 삼삼오오 모인 식탁을 바라보았다.


“저기 왼쪽에 앉은 사람이 모용세가의 차남, 모용현. 반대편에 앉은 자가 모용휘라고 삼남이지.”


자주색 비단에 흩날리는 학 문양이 장식된 옷.


하지만 고풍스러운 겉모습과 달리 쩍 벌어진 다리와 호탕한 웃음은 그 기품을 따라오지 못했다.


“1층 대부분은 저기 요녕성 지역의 상권을 어떻게든 뚫어보겠다는 표국(鏢局)들로 가득하고, 무림맹에서 찾아온 사자도 접객해야 해서 아마 주항이 남아나질 않을 거야.”


혜원의 말에 향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모용세가의 위상이 어마어마하군요. 근데 천 리의 길을 뚫고 사천성에는 무슨 일이랍니까?”


말이 천 리지, 실제로는 6천 리에 가까운 먼 길이다.


그런 수고를 들여서 올 만한 용무란 말인가?


혜원은 그것도 모르냐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요 며칠간 엄청 떠들썩했잖아. 모용세가의 차남이 사천당가의 막내딸에게 청혼하겠다는 소문 말이야. 못 들어 봤어?”


향빈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그저 웃었다.


산속에 틀어박혀 살다 보니, 세간의 소식을 접할 리가 있겠나.


“아무튼 여기 은근히 명당자리거든? 잠깐 눈요기하고 있어. 총관님께 한 번 말씀드려보고 올 테니까.”


“고맙습니다, 소저.”


혜원은 찡긋 윙크하고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


기둥에 딱 붙은 자그마한 자리.


향빈은 식탁에 턱을 괴고 물끄러미 무대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명당이긴 하네.”


인파로부터 소외된 자리라 그런지, 무대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비파의 맑고 청아한 선율에 맞춰 절세미인이 춤사위를 펼치고 있다.


긴 소매는 공중을 가르며 우아한 곡선을 그렸고, 발걸음은 가볍고 정교하게 리듬에 맞추어 이어졌다.


갈색 머리를 물결처럼 늘어뜨린 채, 눈부신 미모로 청루의 모든 이목을 사로잡는 무희.


그러나 한 폭의 그림 같았던 공연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모용세가의 삼남, 모용휘가 무대 위로 난입했기 때문이었다.


“고년, 참으로 곱구나. 내 특별히 어여쁜 네년에게 영광을 쟁취할 기회를 주마.”


비틀거리는 걸 보니, 상당히 취한 모양이다.


“이리 냉큼 와서 우리 형님께 한 잔 따라보거라.”


그러나 무희는 눈을 가늘게 뜰 뿐,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어허! 땍! 이리 오래도.”


무용휘는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붙잡고 무대에서 끌어 내렸다.


그 와중에 차남인 무용현은 차분하게 술잔을 매만졌다.


소매에서 흩날리는 새하얀 가루가 스르르 녹아내린다.


향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 세상이든 악인은 있기 마련.


청루에서도 움직이지 않는 걸 보니, 상당한 거물인 건 확실했다.


게다가 인파 사이에서 예리한 눈빛을 지닌 자들이 많다.


식객의 4할이 호위무사라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상황을 파악한 향빈이 내린 결단.


‘어휴. 부담스러워. 슬슬 자리를 떠야겠네.’


무희의 일은 안타깝지만, 그녀를 구하겠다고 뛰어드는 것은 영웅심이 아니라 자살행위에 불과했다.


머릿수만 대충 주판으로 두드려도 결과는 뻔하지 않나.


그 누구도 구하지 못하는 개죽음일 뿐이다.


사부한테 한소리 들을 게 분명하지만.


‘뭐, 내일도 날이니까.’


굳이 술 따위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었다.


‘혜원 소저한테 인사만 하고 가야겠다.’


안 그래도 바쁜데, 자신을 찾다가 차질이 생기면 안 되니까.


이런 사소한 행동이 인맥을 더욱 돈독하게 엮어준다.


마음을 정한 향빈은 도박장이 있는 2층 계단으로 향했다.


때마침 계단 끝자락에 선 혜원이 보였다.


“혜원 소저···.”


향빈은 반갑게 손을 치켜올렸다가 멈칫했다.


민머리의 험상궂은 사내가 혜원에게 죽지(竹紙)를 보여주고 있다.


먹으로 정교하게 그려진 초상화.


‘이야··· 누군진 몰라도 잘 생겼네.’


그는 죽지(竹紙)의 뒷장에 스며든 먹을 바라보며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근데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란 말이야.’


점차 계단 아래로 옮겨지는 둘의 시선.


향빈은 침을 꿀꺽 삼키며 초상화의 하단부를 보았다.


[백향빈(白香斌)]


뒷장이라 거꾸로 보여 눈치채는 게 늦었다.


저 필체···.


‘스승님?’


혜원은 민머리의 사내를 대동하고 계단 아래로 내려왔다.


“저기 공자님. 혹시 이름이 향빈인가?”


향빈은 방긋 웃으며 본능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닌데, 아닌데? 얼굴이 완전 판박이인데?”


혜원은 초상화를 향빈의 얼굴 옆에 두고 번갈아 보았다.


뒤에 있던 민머리의 사내도 거친 콧바람을 뿜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향빈은 미소를 머금은 채 딱딱하게 굳었다.


“물론! 저는 향빈이 아니지만··· 혹시 무엇 때문에 그러십니까?”


“별 건 아니고. 무상이란 노인이 도박으로 빚 좀 졌나 봐.”


“얼마나···.”


“금자 10냥 정도?”


“이런 미···.”


육성으로 터져 나오려던 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담보로 향빈 공자를 걸었는데··· 오늘이 기일이라서 말이야.”


혜원은 고개를 갸웃하며 향빈의 턱을 검지로 치켜올렸다.


“혹시 스승님 어디 계신지 알아?”


“아니요. 저는 그런 정신 나간 사부를 둔 기억이 없습니다. 사람 잘못 보셨다니까요.”


격하게 고개를 젓는 향빈.


혜원은 민머리의 사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가 나무로 된 호패를 손바닥 위에 살며시 놓는다.


“이래도?”


[백향빈(白香斌)]


향빈은 눈앞에서 살랑살랑 흔들리는 호패를 보고 이를 악물었다.


“이 미쳐버린 사부가! 풍류지성? 진짜 개소리하네!!”


결국 터져버린 마음의 소리.


뒤늦게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늦었다.


“하하하핫.”


“흐응.”


향빈과 혜원은 서로를 마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정겨운 대치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혜원이 턱을 까딱인다.


“잡아.”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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