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원 키우는 사천당가 데릴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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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빈
작품등록일 :
2024.09.1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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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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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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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이 남자, 얼마라고 했지?

DUMMY

갈색 머리칼이 부드럽게 흘러내리며 무희의 어깨를 감쌌다.


그녀는 술잔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술 향이 달아.’


맑은 술에 비치는 갈색 눈동자에 흔들림이 없다.


‘도화산(桃花散)이네.’


달콤한 향을 지닌 미약의 일종으로 복숭아꽃에서 추출한 성분이 들어있다.


혈류를 자극해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고, 집중력을 떨어뜨려 마음을 쉽게 열게 하는 효과를 지닌다.


‘도화원에서 도화산을 쓰다니···.’


그녀는 매혹적으로 술잔을 쓰다듬으며 가소롭다는 듯 미소를 머금었다.


“이거 미안하게 됐소. 낭자.”


모용세가의 차남, 모용현.


“내 극구 말렸건만. 우매한 동생 녀석이 형을 위한다고 도를 넘었구려.”


그는 공손히 손바닥을 펼치며 술잔을 가리켰다.


“사죄의 의미로 한 잔 받아주시겠소?”


공연을 펼쳤던 무희는 말없이 모용현을 바라보았다.


“허허, 소저. 그런 눈으로 날 보지 않았으면 좋겠소. 내게 다른 뜻은 없소이다. 소저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으니, 사죄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 아니겠소?”


모용현은 술잔을 들고 그녀에게 건배하듯 내밀었다.


“이 잔 받으시고,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떠나셔도 좋소. 부디 아우 녀석의 무례한 행동을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길 바라오.”


삼남인 모용휘도 뒤통수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드디어 그녀가 술잔을 든다.


하지만 마시지 않고 빙글빙글 돌리며 도도한 입술을 뗐다.


“모용 소협께선 어인 연유로 사천성까지 발걸음을 하셨는지요?”


“이거 참··· 요녕성에서 불어온 풍문이 그새 사천성에 도착했나 보오. 허허.”


그녀의 속뜻을 모용현이 모를 리가 없다.


사천당문과 혼약을 맺으러 방문한 것.


“하지만 그게 뭐가 문제란 말이오?”


모용현의 말에 그녀는 눈을 깜빡였다.


“청루는 본디 속세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러 오는 곳이지요. 분명 사천당문의 소저께서도 이해해 주시리라 믿소.”


식탁이 흔들리고 있다.


“형님이 이렇게 부탁하는데,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안 그래?”


반대편 좌석에서 다리를 떠는 모용휘가 입술을 야릇하게 핥았다.


반면 모용현은 조용히 술잔을 한 모금 들이켰다.


‘천박하긴.’


둘을 번갈아 본 그녀는 잔을 천천히 입가에 가져댔다.


그 모습을 모용현이 곁눈질로 보며 침을 꿀꺽 삼킨다.


하지만 그가 원하던 그림은 그려질 수 없었다.


“우어어어! 자··· 잠깐만! 나 진짜 그런 사람 모른다니까 그래!!”


웬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사내가 식탁 위를 돌담 건너듯 뛰어넘고 있다.


“이 쥐새끼 같은!!”


우락부락한 덩치의 남자는 식탁을 뒤엎으며 그를 좇았다.


쨍그랑-!


콰득-


접시가 깨지고, 나무 의자가 부러졌다.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는 난장판.


그 와중에도 무희는 담담하게 갸름한 미청년을 바라보았다.


‘보법···?’


언뜻 보면 그저 거구의 사내에게 쫓기는 듯 보인다.


그러나 큼직한 손은 번번히 미청년을 놓쳤다.


마치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잡으려고 애쓸수록 손아귀에서 멀어졌다.


우연이라고?


천만에.


변함없는 일정한 간격.


우연히 겹치면 필연이다.


‘재밌네.’


그녀는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흥미로운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점차 방향이 이쪽으로 가까워지고 있다.


“음···?”


눈앞에 있는 식탁을 나비처럼 살포시 밟은 청년.


정수리 위로 가볍게 날아오르더니, 순식간에 그녀의 배후를 잡았다.


그가 무희의 술잔을 쳐내고 목덜미를 끌어안으며 뒤로 내뺀다.


“어어. 다들 가까이 오지 마.”


숟가락으로 사방을 겨누며 경고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적어도 단도라도 들면 모르겠다.


“이거 참. 무례를 범해 미안합니다, 낭자.”


무희의 귓가에 속삭이는 사내.


“근데 어차피 그 자리에 있었으면 도화산(桃花散)을 마시고 저들의 노리개가 되었을 겁니다. 그럴 바에 소인 좀 도와주시죠. 제가 자연스럽게 빼돌려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고개를 살며시 돌렸다.


‘이 남자. 그걸 어떻게······.’


하지만 한가롭게 대화할 때는 아니었다.


모용현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운봉위(雲峰衛).”


그의 한마디에 2층에서 흑색 비단에 붉은 구름이 새겨진 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려왔다.


모용세가의 직속 호위대, 운봉위(雲峰衛).


스르릉-


수십 명이 검을 발도하여 미청년을 포위한다.


“여인을 방패로 삼다니, 천박한 무뢰한답구나. 하지만 네놈도 참 운이 없군. 천하의 모용세가를 상대로 이런 짓을 벌였으니···.”


모용현은 운봉위의 대장에게 검을 넘겨받았다.


“소저, 걱정하지 마시오. 소인이 금방 해결해드리리다.”


식은땀을 흘리는 미청년.


‘이야··· 이거 좇됐네.’


향빈은 침을 꿀꺽 삼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면초가(四面楚歌).


외통수를 맞은 격이다.


추풍유영보(秋風流影步)는 상대의 흐름에 맞춰 공격을 흘리는 보법.


하지만 제아무리 낙엽이라도 장대비는 피할 수 없는 법이다.


분명 사방에서 들어오는 칼침에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겠지.


‘하아··· 사부님. 그 말씀, 진심이셨습니까?’


-내가 네놈을 당장 죽이겠다고 해도 말이냐?


향빈은 이를 악물었다.


토해내고 싶은 말은 산더미 같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정 수틀리면 추뢰신법(追雷身法)으로 튀는 수밖에.’


병법서인 무경십서(武經十書)에서도 말하지 않나.


삽십육계 줄행랑.


서른여섯 가지 계책 가운데 달아나는 것이 제일이라고.


향빈은 슬슬 기력을 끌어올리며 준비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비장의 한 수를 놓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혜원이 차파오의 치마를 펄럭이며 도도하게 걸어온다.


“다들 거기까지.”


모용휘는 거만하게 팔짱을 낀 그녀를 피식 비웃었다.


“일개 점소이가 낄 자리가 아니다. 물러나라.”


팅-


휘이이익-


순간 눈앞에서 뭔가 번쩍였다.


머리칼을 무언가 훑고 지나갔다.


모용휘는 침을 꿀꺽 삼키며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받아냈다.


‘방금 뭐였지?’


혜원은 아름답게 다듬어진 손톱을 매만지며 가볍게 입김을 불었다.


“호··· 공자님들.”


그녀가 눈웃음을 짓는다.


“여긴 요녕성이 아니랍니다.”


모용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에게 시선을 옮겼다.


슬쩍 곁눈질로 기둥을 흘겨보았다.


나무 기둥에 반쯤 박힌 철침.


“세가의 공인이 서로 만났으면 인사부터 나누는 게 예의지 않겠소?”


그의 물음에 혜원은 방긋 웃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네요. 처음 뵙겠습니다. 모용세가의 공자님들. 저는 사천당문의 장녀, 당혜원이라 하옵니다.”


모용현의 눈동자가 커진다.


하지만 더욱 놀란 자는 따로 있었으니···.


향빈은 눈알이 빠질 듯 눈을 부릅떴다.


사천당문(四川唐門)은 사천성 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문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미친 사부가! 빚을 사천당문한테 진 거냐고!!’


은혜는 두 배, 원수는 열 배로 갚는다는 가문.


분명 이대로 튀면 대륙 끝까지 추격해올 것이다.


“그리고 모용 공자가 껄떡거렸던 여인은 말이죠.”


혜원의 눈빛이 향빈에게 향했다.


그의 품에서 청아한 목소리가 울린다.


“사천당가의 막내, 당화린입니다.”


“히익!”


향빈은 그녀의 어깨에 걸쳤던 팔을 얼른 풀었다.


무미건조한 화린의 눈빛에 향빈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사부님! 이건 진짜 아니죠!!’


혜원은 향빈에게 눈웃음을 보냈다.


“고생했어, 미남 공자님. 진작 이 촌극을 엎어버리고 싶었는데, 덕분에 속이 다 시원하네.”


반면 모용현의 입가는 아래로 휘었다.


“상당히 불쾌하군. 사천당문이 감히 모용세가의 차남인 나를 시험한 것이오?”


그 물음에는 화린이 대신 답변했다.


“시험이라니, 우리 사천당문은 그런 속된 일에 흥미를 두지 않습니다. 다만, 공자께서 우리 가문과 어울릴 자격이 있는지 자연히 확인하게 되었을 뿐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루주(樓主).”


청루의 주인, 루주(樓主)를 불렀는데···.


혜원이 철선을 펼치며 미소가 번진 입가를 가렸다.


“사천당문이 초대한 연회의 장에 스스로 찾아오신 모용 공자께서, 청혼할 분을 앞에 두고 다른 여인에게 그리 마음을 두시다니··· 참으로 유감스럽습니다.”


향빈은 불꽃 튀기는 신경전에 고개를 끄덕였다.


‘쯧쯧. 함정에 제대로 빠졌구먼.’


모용현은 검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금방이라도 발도할 것 같았지만.


2층에서 느긋하게 술잔을 들이켜는 노인을 보고 스르르 손의 힘을 풀었다.


무림맹의 도관(都官), 비연검풍(飛燕劍風) 강풍휘.


무림맹의 내외 사무를 모두 관장하는 자인만큼 밉보여서 좋을 건 없었다.


“자초지종이야 어찌 되었든, 아우의 무례가 발단이 된 것은 사실이니 이 몸이 대신 사과하리다. 그리고 오해가 있을까 하여 덧붙이지만, 청루의 여인을 향해 흑심을 품은 적은 결코 없소.”


화린은 피식 코웃음 쳤다.


“술에 섞인 미약은 그럼 도화원에서 내온 것이란 말입니까?”


그 말에 모용현의 눈동자가 떨렸다.


하지만 모용휘에게 차분히 걸어가더니.


짝-!


“커헉!”


손등으로 모용휘의 볼을 냅다 후려쳤다.


“혀··· 형님?”


“닥쳐라! 네가 감히 여인의 술잔에 그런 짓을 하고도 모른 척하려는 것이냐? 모용세가의 이름을 이렇게 더럽히다니! 세가의 명예를 추락시킨 죄를 어찌 갚을 셈이더냐?!”


모용현은 검집으로 나무 바닥을 거세게 내리찍었다.


쿵-!


“운봉위는 당장 모용휘를 연행하라. 내 이 일은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이다!”


“형님! 그런 말도 안 되는! 그건 형님이··· 읍! 으으읍!!”


모용휘는 호위무사들에게 입을 틀어막힌 채 청루에서 끌려 나갔다.


“이번 일은 미안하게 됐소. 사건이 일단락되는 대로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소저를 찾아뵙겠소이다.”


모용현은 비단옷을 거칠게 휘날리며 호위대를 이끌고 사라졌다.


적막이 깔린 도화원.


향빈은 슬그머니 발을 뒤로 내뺐다.


“이야··· 일이 잘 마무리돼서 다행입니다. 역시 남자는 잘 만나야지요. 암, 그렇고말고.”


가볍게 손을 흔든다.


“조만간 당 소저도 좋은 인연을 만날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럼 저는 이만.”


하지만 뒤를 도는 순간.


촤악-!


향빈의 목에 독사 같은 채찍이 휘감겼다.


“커헉!”


화린은 조용히 눈을 깜빡였다.


장녀인 혜원이 쫓던 남자다.


그래서 일단 잡긴 했는데···.


“언니. 이 남자, 필요해?”


“응. 정산할 게 좀 있거든.”


차파오를 펄럭인 혜원은 어느새 향빈의 어깨에 팔을 얹고 있었다.


“금자 10냥은 주고 가야지. 안 그래? 화창남?”


화린이 고개를 갸웃한다.


“화창남?”


“이따금 청루에 꽃을 팔러 왔었어. 얼굴도 반반하고, 말솜씨도 제법이고. 눈독 들이고 있었는데. 이게 웬걸. 스승이 호패를 걸고 팔아버렸지 뭐야.”


혜원은 웃는 얼굴로 향빈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렇게 쫄지 마. 한 10년 여기서 일하면 금방 갚을 수 있어. 아자!”


향빈은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살폈다.


평범하게 걸어 다니는 점소이들.


하지만 쟁반 아래에 번뜩이는 철침을 어루만지고 있다.


‘제기랄. 덫에 걸린 건 모용세가가 아니라 나였네.’


이대로면 사천당문 소속의 창남이 된다.


돈 많은 중년 여인들이 씹고 뜯고 맛보는 노리개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내가 이래서 속세에 내려오기 싫었던 건데!’


화린은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향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길가에 버려진 강아지처럼 금방이라도 울 것 같다.


“저기 언니.”


“응?”


화린의 부름에 혜원은 뒤를 돌아보았다.


“이 남자, 얼마라고 했지?”


“금자 10냥인데.”


혜원은 흔들림 없는 화린의 갈색 눈동자를 보며 입을 벙긋거렸다.


“너 설마···.”


화린은 눈을 가늘게 뜨는 혜원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채찍을 가볍게 당겼다.


“그럼 내가 낙적(落籍) 받아 가도 돼?”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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