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원 키우는 사천당가 데릴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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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빈
작품등록일 :
2024.09.1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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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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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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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혹시 제게 관심 있으세요?

DUMMY

화장대와 침대가 전부인 허전한 방.


천장 구석에 자리 잡은 거미줄은 이곳이 창고였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침대에 누운 향빈이 화장대 거울을 힐끗 바라본다.


‘아니, 남자가 지내는 방에 화장대는 도대체 왜 놓은 거야?’


이해하려 해봤자 머리만 아플 뿐, 의미가 없었다.


암살도 아니고, 눈앞에서 대놓고 독을 먹이는 미친년.


다짜고짜 채찍을 휘두르는 여인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거울에 저 멀리 당화린의 처소가 비친다.


향빈은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에휴. 기다리다가 숨넘어가겠네. 넌 잠도 없냐?’


한밤중에도 여전히 촛불이 일렁이고 있다.


그 순간.


삐그덕-


격자창(格子窓)이 갑작스럽게 활짝 열렸다.


‘와이 씨!’


향빈은 곧바로 이불을 코까지 끌어올렸다.


낮에는 새가 듣고, 밤에는 쥐가 듣는다고 하였는데···.


본인의 험담을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정말 무서운 여자다.


향빈은 실눈을 조심스럽게 떴다.


어느새 거울에 비치던 촛불이 사라졌다.


달이 중천에 떠오른 자시(子時)가 되어서야 잠들다니···.


“정말이지 독하다, 독해.”


문뜩 그녀의 방에 산처럼 쌓인 책이 떠올랐다.


“뭐, 학구열이 뜨거워서 나쁠 건 없는데···.”


향빈은 이불을 걷어내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은 절세미인.


아침에 식사를 내오면서도 자기 관리가 철저한 노력가.


삐뚤어진 그녀의 성적 취향만 아니었어도 최고의 현모양처였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었다.


“에휴. 저런 여자를 어떤 남자가 받아주려나.”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은밀하게 움직이는 향빈.


그는 나무 문에 귀를 기울였다.


솨아아아-


대나무가 흔들리는 잔잔한 소리만 들린다.


‘좋았어. 아무도 없고.’


끼이이익-


문 경첩이 어찌나 녹슬었는지, 불길한 소리가 울렸다.


‘쓰읍. 아직 괜찮아.’


혹시나 걸리면 변소에 가려 했다고 변명하면 된다.


아직은 사천당가의 내원이었으니까.


“흠······.”


향빈은 이곳에 올 때의 기억을 되짚었다.


얼굴에 자루를 씌운 탓에 정확한 길을 떠올릴 수가 없다.


다만 정문부터 자루를 벗겨줬기에 당문의 본가 구조는 어렴풋이 감이 잡혔다.


내원에서 외원을 지나 정문.


하지만 외원에 있는 연무장은 안 된다.


은폐물이 없는 개활지라 쉽게 발각될 것이다.


향빈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담장을 쓰다듬었다.


“지름길을 놔두고 굳이 정면 돌파할 필요는 없잖아?”


담장벽을 박차고 기와장을 사뿐히 뛰어넘는다.


“후후. 그러니까 방심하지 말았어야지.”


금자 10냥을 금고도 아닌 창고에 넣어두다니.


발이 달려 도망가도 할 말이 없지 않겠나.


팡-!


추뢰신법(追雷身法).


향빈은 내공을 운용하며 안개가 자욱한 죽림(竹林)을 번개처럼 가로질렀다.


무작정 직진하다 보면 대나무숲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사천당문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일다경도 지나지 않아 그는 황급히 발걸음을 멈췄다.


아니, 멈출 수밖에 없었다.


“뭣?!”


정면에서 명치를 향해 쇠말뚝이 날아든다.


향빈은 추풍유영보(秋風流影步)로 넘어지듯 허리를 젖혔다.


쩌저적-!


코끝을 스친 말뚝이 대나무를 좌우로 갈라냈다.


“으아아아악!”


가까스로 회피는 성공했지만, 가속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엉덩방아 찌며 쭉 미끄러졌다.


낙엽과 흙먼지가 요란하게 솟구친다.


촤아아아-!


향빈은 다리를 휘감으며 벌떡 일어나 자세를 고쳐잡았다.


‘습격? 내가 도주한 걸 벌써 알아차렸다고?’


등골이 사늘해졌다.


험담도 귀신같이 알아차린 당화린이다.


그러니 탈옥을 눈치챘다고 한들 전혀 이상하진 않았다.


자세를 낮춘 향빈은 조용히 신음을 흘렸다.


“으음···.”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첫 일격 이후로 잠잠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연격이 들어오지 않는다.


“뭐지?”


향빈은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한 걸음 내디뎠다.


틱-!


그 순간 발목에 걸린 실이 뚝 끊어졌다.


“설마···.”


쏴아아아아아-!


향빈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불길한 소리가 들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내 자욱한 안개를 뚫고 장대비 같은 철침들이 쏟아져 내린다.


“읏!”


그는 소름 돋는 장관에 뒷걸음질 치던 발을 움찔 떨었다.


‘이건 추풍유영보(秋風流影步)로 안 돼!’


아무리 낙엽이라도 비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회피할 간격이 없다.


‘그렇다면···.’


발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풍무연화(風舞煉華).’


발로 흙바닥을 끌며 몸을 회전시킨다.


‘제3무, 회천(回天).’


날개처럼 펼친 향빈의 손짓에 따라 낙엽이 소용돌이치며 솟구치더니.


휘이이이이익-!


금세 거친 돌풍으로 변모했다.


무수한 철침이 회오리에 휩쓸린다.


타다다다다닥-!


애꿎은 땅에 고슴도치처럼 박히는 철침들.


“후우···.”


향빈은 고요해진 적막 속에서 길게 숨을 뱉어냈다.


낙엽이 하늘하늘 흩날리며 가라앉는다.


‘사부님의 짱돌을 막아내던 무공이었는데, 이걸 이렇게 써먹네.’


식은땀을 소매로 닦아내고 안개가 자욱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역시 암기와 독공으로 유명한 사천당문.


기관 장치가 살벌하다.


하지만 그뿐이다.


“바보들. 땅이 안 되면 하늘로 가면 되지.”


쾅-!


향빈은 땅이 움푹 파일 정도로 발경(發勁)을 내디뎠다.


‘풍무연화(風舞煉華) 제1무, 비연(飛燕).’


순식간에 허공으로 솟구치는 향빈.


등을 떠미는 바람을 타고 대나무의 상단부를 박찬다.


그는 이리저리 대나무를 옮겨 타며 마치 활공하는 제비처럼 하늘을 가로질렀다.


하지만 입가에 번지던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대나무가 흔들리는 순간.


하늘에서 실처럼 얇은 그물이 떨어졌다.


“뭣?!”


어찌나 다급했는지, 대나무를 걷어찬 가죽 신발이 벗겨졌다.


다행히 그물의 범위에서 벗어났지만.


서걱-!


눈앞에서 신발이 균등하게 조각나 버렸다.


향빈은 깃털처럼 사뿐히 착지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우와··· 죽림(竹林)에 들어오면 사람이 실종되는 이유가 있었네.”


이 이상 전진하는 것은 황천을 제 발로 가는 거나 마찬가지다.


결국 향빈은 발길을 돌렸다.


자시(子時)에 출발했는데, 처소에 돌아오니 어느덧 동이 트는 묘시(卯時)가 되었다.


그는 흙먼지를 뒤집어쓴 너덜너덜한 복장으로 침대에 털썩 엎어졌다.


“후··· 미친 건 그 여자뿐인 줄 알았는데, 그냥 당문 자체가 미쳤을 줄이야.”


돌아오는 길에도 기상천외한 함정들이 반겨줬던 걸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도대체 사람 머리에서 어떻게 그런 발상이 나오냐? 아휴. 소름 돋아.”


경공술인 추뢰신법(追雷身法)은 번개처럼 빠른 것도 특징이지만, 뛰어난 지구력 또한 장점이었다.


하지만 세 시진이나 내공을 다스렸으니, 탈진이 찾아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천근처럼 무거운 눈꺼풀이 절로 감긴다.


그렇게 못 이룬 탈옥을 꿈에서 이루나 싶었는데.


똑똑-


“백 공자님. 화린 아씨의 시비, 시월이옵니다. 혹시 기상하셨는지요?”


향빈은 ‘화린’이란 이름을 듣자마자 눈을 번쩍 떴다.


허겁지겁 몸을 일으킨다.


“소저! 잠시만··· 우어어어!”


우당탕-


정신은 깨어나도 몸은 잠결에 취했는지, 다리가 풀리며 바닥에 엎어졌다.


“공자님?!”


어깨를 들썩인 시월이 문을 벌컥 열었다.


“에?”


그녀는 거지꼴을 한 향빈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옷이 여기저기 찢겨 있고, 신발도 한 짝이 없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에 먼지를 뒤집어쓴 듯한 때 낀 얼굴.


하지만 걱정보다 미소가 번지는 입부터 살며시 가렸다.


‘흙이 묻어도 금자는 금자구나. 아씨가 홀딱 빠질 만하네.’


역시 태생부터 미남은 다른 것 같다.


“괜찮으세요···?”


“어휴! 문제없습니다, 소저. 아주 건강해요.”


향빈은 벌떡 일어나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시월이 소매로 입가를 가리며 쿡쿡 웃는다.


“어머, 소저라니··· 편하게 시월이라 불러주시면 된답니다. 그런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는 그녀의 시선에 향빈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원래 제가 잠버릇이 좀 고약합니다.”


“오··· 야유증(夜遊症)이라도 있으신가 봐요?”


“비슷하죠. 예···.”


야유증은 몽유병의 일종이다.


하지만 시월의 걱정은 따로 있었다.


“그렇다면 조심하셔야겠어요. 여기 죽림(竹林)에는 외부의 침입을 막는 여러 기관 장치들이 설치되어 있거든요. 정확한 길을 밟지 않으면 정말 큰 일 난답니다.”


방긋 올라간 향빈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걸 진작 말해줬어야지. 시월아.’


이제야 화린이 태평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어차피 사천당문에서 탈출하는 건 불가능.


마치 절벽에 지어진 독수리 둥지나 마찬가지였다.


“흠··· 근데 그 꼴로 조찬을 들기에는 무리겠네요.”


시월은 팔짱을 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찬이요?”


“네. 아씨께서 공자님을 처소로 호출하셨어요. 분위기를 보니까, 앞으로 매일 이 시간 때에 함께 식사하실 것 같아요.”


향빈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그럼 나보고 매일 독을 먹으라는 거야?’


당최 이해를 못 하겠다.


고통스러워 하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건가?


“일단 새 옷을 준비해드릴 테니, 일다경 전에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자님.”


“노력해보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시월은 금세 곱게 접힌 포의(布衣)를 가져왔다.


흰색과 회색이 뒤섞인 단조로운 천 옷이었다.


향빈은 주섬주섬 옷을 입고 화린의 처소로 향했다.


죽지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한숨을 푹 내쉰다.


‘에휴.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그나마 독공을 익힌 몸이다.


그리 쉽게 당하진 않을 터.


‘당분간 화린의 장단에 맞춰줘야겠어.’


그녀의 호감을 얻어 자연스럽게 외출할 기회를 노린다.


향빈은 새로운 탈출 계획을 머릿속에 그리며 조심스럽게 노크했다.


“당 소저. 백향빈입니다.”


고운 목소리가 죽지 너머에서 들려온다.


“들어오세요.”


끼이이익-


향빈은 그녀의 처소에 발을 들였다.


식탁 앞에 다소곳하게 앉은 화린이 가볍게 묵례한다.


“좋은 아침이에요, 백 소협.”


그는 격자창을 힐끗 흘겨보고 방긋 웃었다.


안개가 자욱하고 으스스한 날씨.


좋은 아침 맞나?


“그렇군요. 당 소저도 편히 주무셨습니까?”


“예. 덕분에요···.”


향빈은 눈썹을 꿈틀 올렸다.


‘덕분에?’


침을 꿀꺽 삼킨다.


‘설마 어제 튀려고 했던 걸 알고 있었나?’


만약 이게 반어법이었다면 정말 소름 돋을 것 같았다.


화린이 고운 손길로 자리를 권한다.


“일단 앉으세요.”


향빈은 무거운 발을 옮겨 억지로 착석했다.


무슨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다.


‘이번엔 또 무슨 독이 들어 있으려나.’


식탁에는 큼직한 두 개의 찐빵이 놓여 있었다.


그 옆으로 다호(茶壺)와 두 잔의 찻잔도 보인다.


하지만 조용히 내공을 끌어올리던 그와 달리 화린은 담담하게 찐빵을 집었다.


부드러운 입술이 벌어지며 찐빵을 살짝 베어 문다.


먹는 모습이 마치 다람쥐 같다.


“음?”


화린은 빤히 바라보는 향빈의 시선을 뒤늦게 눈치채고 찐빵을 입가에서 뗐다.


“아침에는 소식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향빈은 멋쩍게 웃으며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그러고 보니 어제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그걸 기억하고 계셨군요.”


향빈도 찐빵을 집었다.


‘일단 독은 없는 것 같네.’


한 입 베어 먹고 찐빵을 까딱이며 화린을 가리킨다.


“이거 참··· 기억력이 원래 좋으신 겁니까? 아니면···.”


향빈은 방긋 미소를 머금었다.


“혹시 제게 관심 있으세요?”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찐빵을 크게 베어 먹었다.


안 그래도 날씨가 우중충한데, 식사 자리까지 분위기가 축축 처지면 되겠나.


활기찬 사람의 첫인상은 긍정적인 말과 밝은 미소에서 나온다.


그래서 가볍게 던진 농담이었는데···.


화린은 다람쥐처럼 깨작깨작 먹던 찐빵을 내려놓고 도도한 입술을 열었다.


“네. 관심 있어요.”


향빈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우물거리던 턱을 멈췄다.


“예?”


그녀는 찻잔에 연분홍빛 차를 따르며 긴 속눈썹을 깜빡였다.


“그렇지 않았으면 당신을 금자 10냥에 살 이유도 없었겠지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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