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원 키우는 사천당가 데릴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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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빈
작품등록일 :
2024.09.1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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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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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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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 막내딸의 은밀한 취미

DUMMY

자욱한 안개 속.


바둑알처럼 우후죽순 솟아오른 대나무들이 길을 가로막는다.


한참을 걸어도 마치 제자리인 듯, 한곳을 맴도는 기분 나쁜 감각을 떨칠 수가 없다.


만약 운이 나빠 그곳에서 시커먼 그림자를 마주했다면, 소리소문 없이 황천길로 인도되리라.


······라는 사천성의 구설.


이 때문에 사천성 사람들 사이에는 절대 청두의 죽림(竹林)에 발을 들이지 말라는 불문율이 자리 잡았다.


‘근데 하필 그 풍문의 중심지에 내가 있네?’


향빈은 격자창(格子窓)에 턱을 괴고 바깥 풍경을 공허한 눈으로 감상했다.


뿌연 연무 속에서 대나무가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길 반복한다.


‘무슨 심령특집도 아니고···.’


슬쩍 눈동자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사천당문(四川唐門)의 본가.


드높은 담장 아래로 정갈하게 정리된 정원이 보인다.


대청 앞에는 맑고 깨끗한 연못과 고운 색의 꽃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문제는···.


‘만년청(曼陀羅), 부귀화(芙蓉花), 우담화(優曇華)··· 독초란 독초는 죄다 모아놨구먼.’


특히 만년청(曼陀羅)은 씨앗과 꽃에 강한 환독(幻毒)을 지니고 있다.


‘외부인이 방문하면 좋아 죽겠네.’


농담이 아니다.


정말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실실 웃다가 황천길로 떠나리라.


향빈은 슬그머니 방으로 시선을 옮겼다.


침대는 작고 간결했다.


부드러운 비단 이불이 곱게 접혀 있다.


머리맡에는 자그마한 책자(冊子)가 붓과 함께 놓여 있었다.


가지런히 꽂힌 책장.


책상 위에 차곡차곡 쌓인 책과 문서들.


전체적으로 잘 정돈되었지만, 삭막한 감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나마 침대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도화(桃花)의 향기가 사천당문의 막내딸, 당화린의 방임을 상기시켜주었다.


“흠···.”


향빈은 의자에 팔을 걸치고 활짝 펼쳐진 서적을 내려다보았다.


이내 문구를 훑던 검지가 우뚝 멈춘다.


“이건 좀 잘못됐는데?”


초오(草烏), 일명 투구꽃이라 불리는 독초의 재배 방법에 대해 적혀 있다.


하지만 서적에는···.


“일조량이 너무 많아.”


투구꽃은 서늘한 기후를 좋아한다.


따라서 아침 햇빛이 들어오는 곳이나 부분적으로 그늘이 있는 곳이 좋다.


향빈은 서적의 하단부에 붓을 휘갈겼다.


“후후. 뿌듯하네.”


몇 번 입김을 불어 먹을 말리고 책을 덮는다.


잘 때도 책자를 머리맡에 두고 자는 여인.


곳곳에 노력의 흔적이 스며들어 있다.


자고로 부단히 노력하는 자는 보기 좋은 법이다.


향빈은 책상에 걸터앉으며 희미한 미소를 그렸다.


“그나마 다행이네.”


사천당문에 팔렸을 때만 해도 이제 죽었구나 싶었다.


사람에게 여러 독을 먹이며 인체실험을 한다는 둥.


새로운 무기의 살상력을 시험하기 위해 대나무 대신 사람을 조각낸다는 둥.


기괴한 소문만 수십 가지였으니까.


하지만 풍문과 다르게 향빈의 주인이 된 사천당문의 막내딸은 온화한 노력가인 듯했다.


게다가 중년 여인의 노리개보다는···.


‘어여쁜 처자의 노리개가 훨씬 났지.’


향빈은 인기척 없이 갑작스레 열린 방문으로 눈길을 옮겼다.


햇볕이 스며든 것 같은 밝은 갈색 머리카락이 찰랑인다.


보석처럼 맑은 눈동자와 백옥 같은 피부.


그 미모는 넋을 잃을 정도로 대단했지만, 차갑게 식은 무표정이 그 빛을 반감했다.


‘살짝만 웃어도 대륙의 남자들이 줄을 섰을 텐데··· 아쉽다, 아쉬워.’


향빈은 그녀 대신 반갑게 웃으며 당화린을 맞이했다.


“아이쿠. 당 소저. 어찌 이리 무거운 걸 가녀린 여인이 든단 말입니까? 이리 주십시오.”


쟁반에 올려진 진수성찬.


나물부터 고기, 뜨끈한 국물 등등 8첩 밥상이 휘황찬란하게 차려져 있었다.


향빈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아침부터 절세미인이 밥상을 차려주다니···.


사천당문에 팔렸지만, 이런 삶이라면 몇 년이든 식객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아니, 당문에서 뼈를 묻으라고 한다면 스스로 관짝도 짜겠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스승님께선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20년간 스승의 수발을 들어왔다.


솔직히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 건 맞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은혜를 갚지 않았나?


‘이제 내 인생을 살아야지.’


향빈은 원형 식탁에 반찬을 가지런히 놓으며 슬쩍 당화린을 흘겨보았다.


사천당문(四川唐門)은 폐쇄성이 짙다.


강호의 그 누구도 함부로 발을 들이기 힘든 곳.


그렇다면 제2의 천독화원(千毒花園)을 만들기에 안성맞춤이란 뜻이다!


‘사부님께 배운 백매설화(百魅舌話)로 그녀를 반드시 꼬시겠습니다. 후후후···.’


몸이 가까우면 마음도 가까워지는 법.


지금은 금자 10냥에 팔린 천한 몸이지만, 나중에는 당문의 데릴사위가 되어 팔자를 고치리라.


하지만 음흉한 미소를 짓던 향빈은 나물을 내려놓다가 멈칫했다.


“음?”


참기름에 버무린 생나물.


근데 모양새와 향기가 이상하다.


‘아니, 이거 설마··· 반하(半夏) 아니야?’


구강과 인후부에 심한 자극을 주고, 심할 경우 호흡 곤란과 중독 증상을 일으키는 독초다.


적절한 해독이 없으면 심각한 중독으로 사망한다.


‘그리고 이 수육 위에 올라간 깨···.’


피마자(蓖麻子)는 기름을 추출하는 식물이지만, 그 씨앗은 독성이 매우 강하다.


얼마나 치명적인지, 소량만 섭취해도 문 앞에 저승사자가 찾아오리라.


가장 큰 문제는 8첩 밥상 중에 독이 없는 음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딱 하나 있긴 하다.


밥상 끄트머리에 놓인 삶은 계란.


향빈은 해맑은 미소로 달걀을 집었다.


‘하핫. 고기반찬을 보니까 사부님이 생각나네. 꼭 스승님께 먹여드리고 싶은걸?’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지만, 이는 바득바득 갈렸다.


“혹시 입맛에 맞지 않으신가요? 백 공자.”


당화린은 머뭇거리는 향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니요, 아니요! 그런 게 아닙니다.”


향빈은 어깨를 미세하게 떨었지만, 목소리만은 활기가 넘쳤다.


“이야··· 이게 중식으로 나왔으면 허겁지겁 먹었을 텐데 아쉽네요.”


껍질을 깐 새하얀 계란을 그녀의 앞에서 가볍게 흔들었다.


“저는 원래 아침에 소식하는 편인지라, 이 삶은 달걀 하나면 충분하거든요.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 소저.”


눈동자조차 깜빡이지 않는 화린의 시선에 향빈은 얼른 계란을 입속에 쑤셔 넣었다.


“우물우물. 아휴! 이게. 쩝쩝. 간이 또 잘 배여···.”


하지만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황급히 앞접시에 뭉개진 계란을 뱉었다.


‘아니, 이런 씨! 이건 사리풀로 삶은 계란 아니야?’


사리풀의 독은 무색무취인 것이 특징이다.


강력한 마비와 함께 단시간에 절명하기에 정치가 판을 치는 왕실에서도 이따금 사용한다고 들었다.


만류귀원신공(萬流歸元神功)으로 길들여놓은 독공이 반응하지 않았다면, 온몸이 마비되어 골로 갈 뻔했다.


“역시···.”


당화린은 확신에 찬 눈빛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섬주섬 반찬들을 쟁반 위에 올려놓고 조용히 방에서 나간다.


향빈은 점차 멀어지는 발소리를 듣고, 재빨리 격자창(格子窓)을 뛰어넘었다.


역시 사천당문에 대한 소문은 거짓이 아니었다.


‘설마 진짜로 사람에게 독을 먹여 실험할 줄이야!’


이딴 미친 곳에서 한시도 있을 수 없었다.


헐레벌떡 연못에서 물을 떠서 입을 헹군다.


“푸하! 당장 여기서 나가야겠어.”


독은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곡사포로 사람을 찢는 어느 국가의 미친 독재자처럼.


대나무에 묶어놓고 암기 다발로 오체를 분해할지도 모를 일이다.


‘한동안 사천성은 얼씬도 하지 말자. 대륙 오악산이라 불리는 곳에 숨어서 나만의 화원을 다시 만드는 거야.’


하지만 굳은 결심은 뒤에서 둘려온 파공음에 산산조각으로 찢겨나갔다.


휘이익-!


탁!


독사처럼 길게 늘어진 채찍.


화린은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어딜 그리 급하게 가십니까? 백 소협.”


“아니, 당 소저. 이··· 이건 오해요.”


향빈은 침을 꿀꺽 삼키며 목을 쓰다듬었다.


“방금 계란을 먹었더니, 어찌나 목이 막히던지. 근데 운이 좋게도 눈앞에 연못이 있지 뭡니까? 하하핫.”


“그렇군요. 말씀하셨으면 녹차를 가져다드렸을 것을···.”


하지만 차분한 말투와 별개로 독사 같은 채찍이 향빈을 향해 매섭게 날아들었다.


휘이이익-!


향빈은 눈을 부릅뜨며 넘어지듯 발을 뒤로 내뺐다.


모든 행동은 바람을 일으킨다.


자그마한 나비의 날개짓조차 꽃잎을 살랑살랑 흔든다.


추풍유영보(秋風流影步)도 마찬가지.


가을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낙엽처럼.


공기를 찢으며 떨어지는 채찍의 손아귀에서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갔다.


팡-!


쏴아아아아아!


채찍이 작렬하며 연못의 물줄기가 화산 폭발하듯 솟구쳤다.


향빈은 차가운 물을 뒤집어쓰며 이를 악물었다.


방금 걸 맞았으면 분명 오체가 분해됐으리라.


‘저거 완전 미친년 아니야?!’


그의 아우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허공으로 떠오른 채찍이 꿀렁였다.


‘온다.’


피부가 찌릿한 감각을 느끼며 향빈은 뒤로 체중을 실었다.


탁-!


이번에도 빗나간 채찍.


흙바닥이 깊게 파이며 먼지가 휘날린다.


화린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회타연편십삼식(廻打軟鞭十三式).”


도화원의 무대에서 춤사위를 펼쳤던 것처럼 그녀는 우아하게 몸을 돌렸다.


빙그르르 돌아가는 화린의 손길을 따라 나선으로 회전하는 채찍.


그녀는 땅을 박차며 돌진했다.


그 모습은 마치 매섭게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같았다.


원심력으로 채찍의 힘을 끌어올린 연격이 향빈을 덮친다.


파바바바바밧-!


눈을 깜빡이는 찰나의 순간에 12번의 채찍이 쏟아졌다.


하지만 태풍이 불수록 낙엽은 멀어지는 법이다.


향빈은 채찍과 1촌(寸)의 간격, 약지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무한정 도망갈 수는 없었다.


‘이거 맞아주지 않으면 끝나질 않겠는데?’


담장에 등을 붙인 향빈은 허공으로 치솟은 채찍을 올려다보았다.


화린이 눈을 부릅뜨며 마지막 일격을 내리찍는다.


팡-!


공기를 찢으며 낙뢰처럼 떨어지는 채찍.


향빈은 좌측으로 넘어지며 손등을 1촌(寸)의 간격 안으로 살짝 넣었다.


서걱-


“끄아아아아악!”


그는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엎어졌다.


피부의 겉면이 찢겨나가 시뻘겋다.


“아이고! 나 죽네, 나 죽어!”


오른손을 붙잡고 흙바닥을 뒹구는 향빈.


눈을 휘둥그레 뜬 화린은 채찍을 놓고 그에게 달려갔다.


향빈은 코앞에서 쭈그려 앉는 그녀를 보고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히익! 죄송합니다! 앞으로 절대 도망치지 않을 테니, 제발 죽이지만 말아주십시오!”


하지만 화린은 들은 채도 안 하고, 소매에서 고이 접힌 죽지를 꺼냈다.


“가만히 있으세요, 백 소협.”


입으로 죽지를 찢고 향빈의 손등에 황갈색의 가루를 뿌린다.


“금창약(金瘡藥)입니다. 지혈 효과가 있어요.”


“당 소저···?”


향빈은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다행히 상처가 깊지 않아요. 이 정도면 명일 진시(辰時)에도 똑같이 일과를 진행해도 되겠네요.”


향빈은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자··· 잠깐만요. 명일 일과라뇨?”


하지만 화린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로 채찍을 걷어차 재빠르게 휘어 감고, 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녀의 인기척이 사라지자, 향빈은 흙바닥에 대(大)자로 드러누웠다.


손으로 눈을 덮으며 천천히 실소를 터트린다.


“하. 하핫. 하하핫.”


미친 년이다.


그것도 사디스트 취미를 지닌 변태녀한테 호패와 함께 팔렸다.


향빈은 손등을 들어 올렸다.


“무슨 병 주고 약 주고도 아니고.”


피딱지에 눌어붙은 황갈색 가루.


“그래, 새로운 장난감이 빨리 망가지면 안 된다 이거지?”


이대로면 당화린의 뒤틀린 성욕에 살가죽이 다 터져나가리라.


아무래도 사천당문 탈옥 계획을 시급히 구상해야 할 것 같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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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팔려버린 제자 24.09.14 361 5 12쪽
1 천독화원의 수제자 24.09.13 453 5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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