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원 키우는 사천당가 데릴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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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빈
작품등록일 :
2024.09.1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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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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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련방(毒蓮幇)의 화원

DUMMY

화린은 다호(茶壺)를 향빈에게 내밀었다.


“한잔하시겠어요?”


향빈은 그녀의 앞에 담긴 찻잔을 보고 입가를 움찔 떨었다.


달콤한 향이 풍기는 복숭아색의 차.


도화산(桃花傘)이 섞여 있다.


색이 짙은 걸 보니, 상당한 양을 우려낸 것 같았다.


그걸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권하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당 소저.”


화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호를 내려놓았다.


향빈은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그래, 관심 있겠지.’


마음이 아니라, 이 잘생긴 얼굴과 다부진 몸에 말이다.


만약 미약을 마셨다면···.


‘어휴!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그는 살벌했던 채찍을 떠올리고 닭살이 올라온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미남으로 태어난 게 죄지, 죄야. 하아···.’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찐빵을 입가에 가져갔다.


그런데 화린도 찻잔을 들었다.


‘뭣?!’


향빈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당장 그녀의 얇은 손목을 붙잡았다.


“마시지 마십시오. 차에 미약이 들어 있습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지만, 속에선 울화통이 터졌다.


‘그걸 네가 마셔서 뭘 어쩌려고?!’


안 그래도 버거운 그녀가 흥분한 걸 떠올리니 절로 살이 떨렸다.


게다가···.


잘못하면 막내딸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당문에 찍힐지도 모른다.


화린은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향빈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소매를 살포시 잡고 손길을 떼어낸다.


“역시 제 안목은 틀리지 않았네요.”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갸웃하는 향빈.


그녀는 찻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문의 여인들은 미약에 내성이 있거든요.”


“예?”


향빈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눈썹을 꿈틀 올렸다.


화린은 아랑곳하지 않고 찻잔을 들이켰다.


꿀꺽-


이내 잔을 사뿐히 내려놓는다.


마치 취기가 올라온 듯 볼이 홍조로 물들었다.


하지만 눈동자에 전혀 흔들림이 없다.


“호오··· 대단하군요. 정말 내성이 있다니.”


향빈은 솔직한 감상을 털어놓았다.


차에 색깔이 입혀질 정도면 도화산(桃花傘)을 상당량 우려냈을 터.


일반인이었다면 과다복용으로 심박수가 높아지고, 호흡 곤란과 고열이 동반됐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심장 마비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런데도 멀쩡한 걸 보니, 내성이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리라.


향빈은 어렸을 적, 사부의 요리를 먹고 피를 토했던 걸 떠올리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 소저도 쉽지 않았겠네.’


어쩌면 그녀의 삐뚤어진 성향은 집안 환경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반면 화린은 향빈의 칭찬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나 이내 시선을 떨군다.


“당문에선 이게 보통이에요. 그러니 딱히 대단한 건 아닙니다.”


“아휴! 겸손도 참···.”


능청스럽게 손을 휘젓는 향빈.


드르륵-


하지만 화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강제로 화제가 끊겼다.


‘뭐지? 내가 말실수라도 했나?’


향빈은 침대로 향하는 그녀를 보고 이마를 긁적였다.


침대 밑에서 화분을 꺼내와 식탁 위에 사뿐히 내려놓는다.


“이건 초오(草烏)군요.”


향빈도 익히 알고 있는 독초였다.


보랏빛 꽃잎을 만지려다가 주먹 쥐며 되돌린다.


“아름다운 겉모습과 달리 치명적인 독을 품은 독초죠. 그렇기에 초오(草烏)의 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라 합니다.”


은근슬쩍 턱을 쓰다듬었다.


꽃말로 빙빙 돌려 말했지만.


화린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였다.


그러나 어떨 때는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법이다.


“백 소협은 독초에 관해 해박하신가 봐요. 그런 재미난 설화도 아시고···.”


“아니, 뭐. 그 정도까진 아닙니다. 그냥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일 뿐이죠.”


“그런가요? 제 생각은 좀 다른데···.”


화린은 비전독서 제1권, 양독비결(養毒秘訣)을 식탁 위에 툭 던졌다.


“당신이죠? 사천당문의 비전서를 고쳐 쓴 사람···.”


향빈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잠시만요··· 이게 비전서라고요?”


무공 구결이 적힌 것도 아니고.


겨우 식물을 키우는 방법이 비전서라니, 그걸 어떻게 알겠나!


‘이거 좇됐네.’


어찌 됐든 외부인이 본가의 비전독서에 낙서한 꼴이 됐다.


이럴 때는 죽기 살기로 오리발을 내미는 수밖에 없다.


“이야··· 살다 살다 당문의 비전서를 보는 날이 올 줄이야. 근데 이리도 귀한 걸 제게 보여주셔도 되는 겁니까?”


화린은 피식 콧바람을 뿜고 양독비결(養毒秘訣)을 펼쳤다.


“으아닛! 당 소저! 전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향빈은 눈을 질끈 감고 양팔을 교차하며 필사적으로 시야를 가렸다.


그러나 향빈의 손목을 낚아챈 그녀가 천천히 내린다.


“딱히 문책할 생각은 없습니다, 백 소협.”


화린의 확답을 받고 나서야 향빈은 눈을 슬며시 떴다.


“그게 정말입니까?”


“네. 당문의 독경사(毒經士)들도 매일같이 양독비결(養毒秘訣)을 수정하고 집필합니다.”


화린은 서적을 덮고 향빈에게 슬쩍 밀었다.


“독초를 키우는 과정에서 새로운 특이사항이 발견될 때마다 이를 기록하고, 비결을 보완하며 완성도를 높이는 게 그들의 책무죠.”


“오··· 근데 저는 독경사(毒經士)가 아닌데요.”


향빈은 명치까지 밀어진 비전서를 그녀에게 다시 밀었다.


“아니요. 백 소협은 조만간 독련방의 독경사(毒經士)가 될 겁니다. 그리고 방주가 된 저를 보좌하겠죠.”


다시금 향빈의 앞으로 밀려오는 비전독서.


‘이젠 나한테 잡무까지 시키겠다?’


노리개로도 모자라 금자 10냥의 값을 뼛속까지 뽑아먹겠다는 심보.


‘그렇게는 안 되지.’


이대로 그녀의 노예가 될 수는 없다.


“으음. 저 같은 미천한 자가 소저를 보좌하는 일은 과분하오니, 더 적합한 인재를 찾으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럴 시간 없어요.”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 하였습니다. 조급함은 독이에요, 당 소저.”


비전독서가 식탁의 가운데에서 부들부들 떨린다.


“당신도 그렇게 말하는 건가요···.”


화린은 눈을 가늘게 떴다.


“백향빈. 나는 당신에게 부탁하는 게 아니야.”


그녀의 손등에 힘줄이 돋는다.


‘야잇. 치사하게 내공을 운용해?’


향빈은 온화하게 웃으면서도 입꼬리를 떨었다.


힘겨루기에서 밀려 서적이 다가오고 있다.


“난 너의 모든 권리를 샀어.”


화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에 몸을 반쯤 기대며 얼굴을 들이민다.


“네 몸도 마음도 머리카락 한 올까지 전부 내 거야. 그러니 네게 거부권은 없어. 알아들어?”


향빈은 미소를 유지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망할 사부 때문에 인생 종쳤네. 진짜···.’


금자 10냥에 묶인 몸.


나라에서도 공적으로 인정한 노예라는 거다.


변명할 여지가 없다.


결국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손에 힘을 풀었다.


하지만 예고도 없이 균형이 무너지면 사고가 터지는 법이다.


“어···?”


화린은 뚝이 무너진 물살처럼 앞으로 쏠렸다.


식탁을 엎으며 그대로 향빈을 덮친다.


“자··· 잠깐! 당 소저?!”


우당탕탕-


향빈의 품에 화린이 포개졌다.


“아읏···.”


화린은 향빈의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때 처소에 노크가 울린다.


똑똑-


“아씨. 부탁하신 녹차를 우려왔습니다.”


시월이 죽지문을 연다.


하지만 곧 쟁반을 든 채 얼어버렸다.


향빈의 위로 홍조를 띤 당화린이 몸을 반쯤 기대고 있다.


엎어진 식탁 탓에 쏟아진 차가 그녀의 비단옷을 적신 상태.


얇은 비단옷이 그녀의 매끈한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은은한 곡선이 눈에 선명하게 비친다.


게다가 달콤하면서도 자극적인 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미약의 향에 절여진 공기가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어머, 어머···.”


시월은 조용히 뒷걸음질 쳤다.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여 송구하옵니다. 소인은 이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닫히는 문.


‘넌 이게 오붓한 걸로 보이냐?!’


향빈은 이마를 부여잡으며 화린을 올려다보았다.


‘누가 봐도 날 죽이려는 거였잖아. 하아···.’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갸웃하는 화린.


그래도 시월 덕분에 분위기가 많이 풀어졌다.


“일단 당 소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았습니다.”


그는 굴곡진 계곡에서 애써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 슬슬 비켜주시겠습니까?”


***


사천당가 외원의 좌측에는 귀곡문(鬼哭門)이라 불리는 대문이 있다.


하지만 섬뜩한 이름과는 달리, 빽빽한 죽림을 지나 산길에 다다르면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반겨준다.


우뚝 솟은 절벽을 따라 덩굴들이 무성하게 뻗은 깊은 산속.


경사진 산비탈에선 맑은 계곡물이 쉼 없이 흐른다.


그 옆으로는 마치 보석함을 연 듯, 오색찬란한 꽃들이 만개해 빛을 발했다.


향빈은 멀찍이서 절벽 인근을 훑어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쟤들이 저기서 자랄 애들이 아닌데. 희한하네.’


예를 들어, 절벽 아래 그늘진 곳에 피어난 붉은 꽃.


천남성(天南星)은 햇볕을 좋아하고, 양지바른 곳에 서식한다.


그리고 절벽 위에 어렴풋이 보이는 보라색 꽃, 부자(附子).


저 독초는 그늘지고 서늘한 환경을 선호하며 음습한 숲속에서 자주 발견된다.


‘서로 집이 바뀌었는데? 뭐지.’


물론 눈앞의 문제에 비하면 그리 신경 쓸 수준은 아니었다.


애초에 향빈이 키운 독초도 아니었으니까.


“아가씨.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독련방(毒蓮幇)을 수호하는 화독위(花毒衛)의 위장이 난처하게 손을 휘저었다.


화린은 눈을 가늘게 뜨며 위장을 쏘아보았다.


그의 눈앞에서 비전서, 양독비결(養毒秘訣)을 흔든다.


“당가의 혈족이 비전을 익히기 위해 견학을 하겠다는 게 문제야?”


“아니요. 당연히 훌륭하신 마음가짐이지요. 하지만 방주이신 당진수 도련님의 허가가 없으시면 들어가실 수 없으십니다.”


“그러니까 그게 왜 허가가 필요해? 내가 언제 독을 배합한다고 했어?”


위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답변했다.


“아가씨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독련방의 오색원(五色園)은 숨 쉬는 것조차 치명적입니다. 이 모든 조치가 다 아가씨의 안위를 위한 것 아니겠습니까?”


독에 중독된 자들이 곡소리를 내며 죽어간다고 하여, 귀곡문(鬼哭門).


문턱을 넘는 자들에 대한 마지막 경고였다.


향빈은 티격태격하는 둘을 흐뭇하게 보며 뒷짐을 지고 계곡을 내려다보았다.


‘이야··· 우리 위장님. 일 잘하네.’


독경사(毒經士)로 만들어줄 거라는 말에 화린이 대단한 입지를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녀는 사천당문 내에서 온실 속 화초인 모양이었다.


한참을 다투던 화린은 팔짱을 끼며 입을 다물었다.


드디어 포기했나.


‘그래, 가문의 규율은 잘 따라야지.’


갈색 머리칼을 물결처럼 찰랑이며 몸을 돌린다.


향빈은 성큼성큼 되돌아가는 화린의 뒤를 따르며 하품을 했다.


“하암! 이제 귀가하실 겁니까? 당 소저.”


대답이 없다.


‘이크. 단단히 토라졌나 보네.’


이럴 때는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다.


향빈은 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걷다가 멈칫했다.


“음? 당 소저?”


앞에서 화린이 멈췄다.


그녀는 고요한 죽림을 지그시 둘러보았다.


이내 향빈을 향해 몸을 돌린다.


“가죠.”


“예? 어딜 말입니까?”


화린은 대나무 사이의 허공을 만지작거렸다.


“소저···?”


불길한 예감에 식은땀을 흘리는 향빈.


그녀는 햇살에 반짝이는 실을 중지로 가볍게 튕겼다.


“오색원(五色園)이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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